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11월17일 주일설교/요한복음16:25-33중 발췌/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2 "고발하여라. 너희 어머니를 고발하여라. 그는 이제 나의 아내가 아니며,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서 색욕을 없애고, 그의 젖가슴에서 음행의 자취를 지우라고 하여라! 5 그는 자랑하기를 '나는 나의 정부들을 따라가겠다. 그들이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고, 내가 입을 털옷과 모시옷과, 내가 쓸 기름과 내가 마실 술을 댄다' 하는구나. 그렇다! 그들의 어머니가 음행을 하였다. 그들을 배었던 여인이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8 바로 내가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으며, 또 내가 그에게 은과 금을 넉넉하게 주었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그 금과 은으로 바알의 우상들을 만들었다. |
신약성경의 복음과는 아주 많이 다르게 변질되어 버린 중세 로마 카톨릭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항의하는 사람들)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참모습입니다. 즉 잘못된 것, 왜곡된 것에 대해선 아니라고 저항하며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 우리가 저항해야 할 왜곡된 신앙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선지자 호세아가 사역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 때로 북이스라엘이 최대전성기를 누리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는 가장 어두웠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라는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명령을 하심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백성들을 깨우치려고 하십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멜과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은 자녀들의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첫째 아들은 이스르엘, ‘하나님이 흩어 놓으신다’라는 뜻입니다. 둘째 딸은 로루마하,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라는 뜻입니다. 셋째 아들은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써 부인하며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릅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아픈 가슴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공과 번영에 취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너희가 참된 나의 백성이라면, 너희는 시대의 사상과 조류에 맞서서 항의하고 저항하며 살아야 되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저항해야 할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그 땅에서 나는 풍성한 수확물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인들의 농사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까지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고 하나님은 “누가(who) 주었는지는 묻지도 않고 무엇을(what) 받았느냐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너희들의 그 삶의 방식이 바로 영적 간음이다”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내 하나님이 아닌 모든 부는 내게 빈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보다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하나님 경배하지 않고서도 풍성한 수확을 누리면서 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보며 하나님께 탄식하며 질문했던 사람이 하박국입니다. “하나님! 왜(Why) 그들이 잘 됩니까? 그리고 도대체 언제까지(How long)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답이 그 유명한 “의인은 오직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 프로테스탄트들, 곧 성도들이 가지고 살아야 할 가치관입니다. 바라기는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때로는 내게 손해가 있고 불이익이 있어도 그것을 이 땅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예수의 흔적이라 여기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참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교묘하게 다가오는 우상인 줄 알면서도 개혁하고 저항하지 못하고 내 삶에서 여전히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