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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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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례를 받는 친구들과 예수영접모임을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답하기 좀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물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들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뭐가 어렵겠어요?” “목사님! 성경에 그렇게 써있잖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아이들의 대답의 클라이막스는 이 한 마디였습니다. “목사님! 사실이니까요! 사실인데 안 믿으면 안되잖아요!” 와우^^

 

맞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3주 전 개강한 생명의 삶 첫 시간에 그 증거들을 세 가지 정도로 말씀드렸는데 첫째, 제자들이 돌변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주님을 배신하고 도망갔던 그들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소심했던 제자들이 담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바뀐 데에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았겠습니까?

 

둘째, 제자들이 전한 메시지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그들이 단순하게 교인 한 명 늘리려고 전도했다면 이렇게 믿어지기 힘든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굳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전도메시지를 고수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봤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셋째, 당국자들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금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고 성도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마차에 싣고서 예루살렘 시내를 한 바퀴만 돌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봐라! 예수의 시체가 여기 있는데 너희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그 당시 당국자들은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만들어 낸 거짓말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 앞에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 사실 앞에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는 분들이 생겨나는 복된 2026년 부활절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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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은 이렇게 보냅니다.

이제 내일부터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냅니다. 천주교인들을 보면 사순절이라는 것을 지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성도들은 부활절 전에 주일을 뺀 40일을 절기로 정하여 두고 금식, 기도, 참회 등 여러 가지 경건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것이 중세에는 거의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폐단도 많았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사순절을 지키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도 사순절을 지키지 않기로 오래 전에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력에 따른 절기가 주는 유익은 생각보다 큽니다. 절기가 있음으로 해서 느슨해져버린 자신의 신앙을 다시 추스르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고난주간에 우리가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하려고 하는 것은 첫째, 특별새벽기도입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교회만의 자랑은 새벽기도였지만, 요즘은 아닙니다.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한국인들의 수면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난주간에 새벽을 깨우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이번 주간에는 한끼 금식을 하면서 주님의 수난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수면과 식사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절제하는 것은 당연히 고통입니다. 그러니 그 작은 고통을 자원하여 해봄으로써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세끼 중에 언제 금식을 하는지는 각자가 정하시면 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는 수가 많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는 아침을 금식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목요일까지는 아침금식을 하시고, 금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 금식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셋째, 엣지 통독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엣지통독 <신약> 1권을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61페이지) 그래서 이번 주 엣지통독은 그 부분의 성경을 읽어나가시면 되고, 특별새벽기도의 말씀도 그 본문으로 준비했습니다. 넷째, 성금요일 성찬예배에 나와서 찬양과 말씀, 그리고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을 대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는 것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드라마, 영화, 게임 같은 미디어와 골프와 같은 취미생활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므로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내가 좀 과도하게 빠져 있다 싶은 것들이 있으면 이 한 주간은 멀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약속이나 행사 등은 한 주만 미루시기를 권합니다. 바라기는 이 고난주간을 나에게 있는 악습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과한 습관과 염려나 게으름 등 평소에 고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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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목장들을 보면 어떤 목장은 VIP 전도가 잘 되어서 분가도 몇 번씩 합니다. 어떤 목장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있는 목원들이 하나 되어서 현상유지를 해 나갑니다. 또 어떤 목장은 목원들이 이사를 가는 등등의 이유로 오히려 점점 줄어드는 목장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각각의 경우가 30%정도 되는 것이 모든 교회들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내가 속한 목장이 첫 번째 경우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런 목장의 특징은 어떤 것일까요?

 

일단 이런 목장은 목원들이 자주 만납니다. 정식 목장모임과 주일날 예배드리고 만나는 모임 외에도 주중에 한두번은 만납니다. 자꾸 만나다보니 가까워지고 목장의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전도가 잘 되는 목장을 보니 우선 분위기가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에 대해서 너무 둔감합니다. 목장이라는 곳이 안 믿는 사람들이 오기에 참 불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자기 말고는 다 이미 알고 친한 사람들인데 그 모임에 자기 보고 오라고 하니 거기에 왜 가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한번 예의상 가본 것인데 막상 가보니 자신이 생각한 그런 홀~~리한 분위기가 아니라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라면 ‘다음에도 한번 더 와볼까?’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장의 분위기가 거룩? 성경적 주제 가지고 토론? 그런 분위기여서는 비신자 전도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목장의 분위기는 가족이 모인 것 같은 느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예지만, 목장모임날도 목원들 오기 전에 그날 섬기는 목원의 집에서 완벽히 다 차려 놓으면 그것은 손님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보다는 가족들이 명절에 미리 와서 음식을 함께 만드는 것처럼 목장모임날도 조금 일찍 와서 음식도 함께 만들며 웃고 즐거워하는 그런 분위기가 될 때 그 목장은 전도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냥 놀고 즐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가 잘 되는 목장을 보니 그 즐거움에 따뜻함이 베여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모임에 세상이 줄 수 없는 뭔가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을 받았다든지, 목자목녀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교훈을 받았다든지,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마음속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모두다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든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인데 목장 식구들의 간절한 중보기도 덕분에 응답을 받았다든지, 하여튼 영적인 진지함이 같이 있는 목장이 전도가 잘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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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에서는 그런 거 없거든요”

 가정교회를 시작할 때는 어느 교회든 장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다가 장년부에 어느 정도 가정교회가 정착이 되면 싱글들, 청소년들, 유초등부 아이들, 이렇게 차츰차츰 적용해 나갑니다. 가정교회는 1993년 미국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최영기 목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의 역사는 33년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열린문교회가 처음으로 가정교회를 도입하여서 한국에서의 역사는 26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가정교회를 정식으로 하는 교회는 260개이고, 목장 수는 5,147개이며 목자목녀는 1만명이 넘습니다. 그동안 선배님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가정교회 매뉴얼이 있어서 지금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가정교회를 해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년부 이외의 세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아직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어느 교회가 가정교회 싱글 사역을 잘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화를 해보거나 탐방을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꿈꾸는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자신의 교회의 실버목장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사례발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발표를 들으며 정말 부러워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교회는 언제 저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저는 이번 학기 개강한 포에버 목장을 보면서 나의 소원에 이렇게 빨리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금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하십니다!!! 포에버 목장 안에는 5개의 조가 있습니다. 각 조마다 10-15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그 중에 은혜조(남성들)를 탐방했습니다.  

 

 저는 남자 어르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실까? “그냥 다 감사지요~” 정도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92세가 되신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작년에 아팠잖아요. 목사님, 조장님, 그리고 우리 집사님들이 찾아와서 위로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내가 다 나아서 교회 왔을 때 나도 모르는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나를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고 안아주는 거예요. 노인정에서는 그런 거 없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이게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거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모두는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 어르신들도 가정교회가 뭔지를 정확히 아시는구나~’ 그 생각에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실버목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도 마땅치 않고 모델로 삼을만한 교회도 별로 없었지만, 가정교회를 꾸준히 하다보니 모든 세대에 가정교회 정신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서 이런 좋은 열매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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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변합니다. 물론 한번에,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변합니다. 그런데 가정교회를 하다보니 그 변화가 눈에 띄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가정교회는 ‘세 축’이라는 것들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지(知) 정(情) 의(意)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부분이 충족될 때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의미와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부분만 채워져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부흥회나 찬양집회를 통해서 감동만 받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공부모임에만 다닌다고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 배경이 없으신 분들은 보통 가정교회의 목장에서 먼저 정(情)적인 부분이 충족됩니다. 지난 주 칼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목장식구들의 이유없는 사랑, 희생이 들어간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때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하게 됩니다. 그럴 때 듣는 생명의 삶은 지(知)의 부분을 충족시켜 줍니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주는 이 분들이 왜 그렇게 사는지, 왜 그렇게 “없는 것”으로 섬겨주는지, 왜 예수라는 분을 믿어야 하는지가 생명의 삶을 통해서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지와 정이 채워지면 주일예배는 그저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지적인 결단을 하는 시간이 됩니다.

 

생명의 삶 같은 것은 이미 들어보셨다고 해도 저에게 듣지 않으신 분들은 다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내용은 같아도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릴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어떤 것을 처음 들을 때는 50%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삶은 목장생활, 성도의 가치관, 영적싸움, 선교에 대해서 깊은 가르침을 주니까 수강해보시고, 말씀의 삶은 특별히 올해 우리가 엣지통독을 하기 때문에 병행해서 들으시면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감사의 삶은 2026년 우리 교회의 목표인 <감사, 용납, 기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고, 생명언어의 삶과 일터의 삶은 변화되기 가장 어려운 우리의 언어생활과 직장생활에 신선한 도전을 줄 것이기 때문에 수강을 권합니다. 이런 모든 변화는 한번의 이벤트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영적 루틴이 자리 잡을 때 가능한 것인데, 그 루틴을 가능하게 해 줄 확신의 삶도 여러분이 선택하실 수 있는 좋은 삶공부입니다. 다들 하나씩 꼭 선택해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목장 식구들 모두가 삶공부에 참여해서, 이번 상반기는 목장 나눔 시간이 은혜받은 얘기로, 실천하는 얘기로, 그리고 내가 변해가고 있다는 얘기로 풍성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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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가의 지하로 내려가니 분주한 손길로 다과를 셋팅하는 자매님이 서툰 한국말로 “목사님들~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워먼교회의 목녀였습니다. 그 뒤로 조금 후에 그 교회의 담임이신 쟝목사님이 나오셔서 환영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쟝목사님은 대만 침례교단의 목사님인데 37년 전 그 교단의 목사님들이 우리나라로 세미나를 왔었습니다. 그때 그 세미나를 주관한 교회의 목사님께서 초청된 대만의 젊은 목회자들과 자기 교회의 부목사들 몇몇을 의형제처럼 맺어주셨고, 그 부목사님 중의 한분이 박창환목사님(꿈꾸는교회)이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는데 박목사님과 쟝목사님의 관계는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박목사님이 중국말을 아주 잘 하실 줄 알았는데, 이번에 나란히 앉아 식사하시는 것을 보니 두분이 서로 별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따금씩 한국어, 영어, 중국어 몇 마디를 섞어 쓰실 뿐ㅎㅎ 그래도 37년의 우정은 두 분을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 교회는 현재 가정교회를 하고 있고, 13개의 목장이 있는데 모두 집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대만의 가정집에는 부엌이 없는 집도 많다는 겁니다. 대만 가정들은 거의 다 맞벌이고 식사도 대부분 밖에서 사 먹거나 사 가지고 와서 먹는다는 겁니다. 그런 문화다보니 최영기목사님께서 대만 목회자들 대상으로 가정교회특강을 하실 때 그분들이 제일 어려워하셨던 것이 바로 “꼭 가정에서 모여야 되느냐?” 하는 것이었답니다. 하지만 워먼교회가 모든 목장들이 집에서 목장을 하는 교회가 되었던 것에는 이 교회를 향한 박목사님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박목사님은 그동안 해마다 두세번씩 이 교회를 방문하고, 때론 그 교회 성도님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며 가정교회 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박목사님은 이유없는 사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에는 당연히 희생이 동반했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얼마나 더딘지 목사님은 대만은 안되나보다 생각하고 몇 년 전부터는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워먼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섬김은 당장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유없이, 희생이 들어간, 지속적으로!!” 박목사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았으니 나와 우리 교회 성도들이 VIP들에게 줄 사랑도 이같은 사랑이어야겠구나, 이번 대만 가정교회 탐방을 통해 주님이 주신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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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희 가정도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오시고, 결혼한 큰 아들네도 강릉 처가를 들려 내려와서 처음으로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명절을 경험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설 당일에 그리고 연휴 다음날에 장례가 있었습니다. 92세 되신 아버님과 86세 되신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며칠 아프시고 돌아가셔서 가족들의 상심이 더 크셨습니다. 명절에 장례를 치르다 보니 재작년 추석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버지가 매일매일 생각나는 건 아닙니다. 그게 자식인 것 같습니다. 배우자나 자식이 먼저 떠나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생각이 날 텐데 부모님은 먼저 가시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리사랑만 받아먹는 철없음이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아서인지 돌아가신 그때만 슬플 뿐 다시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넉 달 전에 어머님을 여의시고 이번에 아버님 상을 당하신 집사님 말씀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은 “불현듯”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냥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와 뵙고 싶은 것, 정말 “불현듯”이란 말이 딱 맞습니다.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의 가방을 사러 갔습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아빠 키를 훌쩍 넘긴 막둥이의 가방을 고르며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새 학년을 맞는 아들을 위해 난 가방 하나 달랑 사주는 것만 할 뿐인데, 그 시절 아버지는 바로 이번 주간, 옛날에는 2월 마지막 주간이 봄방학이었고 봄방학을 하는 날, 우리들은 새 학년 책들을 가방에 잔뜩 받아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아버지는 누나와 나의 교과서를 싸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달력이 귀한데 그때는 연말에 여기저기서 달력이 많이 들어왔고 아버지는 그 달력들을 모아두었다가 저희 남매의 책을 싸주셨습니다. 책을 다 싸신 후에는 하얀 달력종이가 때가 탈까 봐 아버지는 문방구에 가서 비닐 몇 마를 끊어 오셔서 또 한번 재작업을 하셨습니다. 제가 4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갔다 오시면서 일제(^^) 연필깎이를 사 오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누나와 저의 필통 속에 그날 수업에서 쓰기에 충분할 만큼의 뾰족한 연필들이 항상 있게 해주셨습니다. 막내의 책상에 놓여진 새 필통을 보면서도 또 그렇게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그렇게 자상하셨던 아버지와의 추억은 모든 것이 감사하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믿음을 물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인생이라는 것, 교회를 섬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아버지! 새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한주였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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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빨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신체적으로 지친다는 의미보다는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합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만나 그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을 때, 혹은 모임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의 정신없는 대화를 듣다 보니 심리적인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을 때 “기 빨리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가 속어라면, 같은 뜻으로 ‘감정 소모’라는 단어도 사용됩니다. 현대인들은 참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스트레스들을 적당히 관리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몫이기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해서 정서적인 소모를 줄이며 살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통계에도 반영되었는데, “당신은 친밀한 지인이 몇 명이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2022년에 6.4명에서 2025년에는 4.1명으로 하락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축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특히 3-40대에서 두드러졌는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바,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직장 내 경쟁, 육아, 경제적인 기반 마련 등등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큰 시기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소수와 깊게’보다는 ‘다수와 얕게’를 선호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고,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내 문제 관리하기만 해도 벅찬데 다른 사람 고민까지 들어가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느슨한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현대 기독교인들과 교회에서 하는 봉사나 사역은 딱 들어맞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자기 달란트대로 하는 사역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신앙적으로 자기만족도 되고 세상 일과는 비교도 안되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얘기를 안 해도 됩니다. 그 사역에 대한 회의만 하면 되니 느슨한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성도들에게는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한 것은, 사람들은 느슨한 인간관계를 좋아하면서도 소수의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친밀한 지인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만족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통계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목장은 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장의 싸이즈가 너무 커서 그저 피상적으로 “할 얘기” 정도만 하게 되면 그 목장은 교제나 삶의 나눔은 되어도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삶의 변화는 진솔한 나눔과 깊은 중보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소수와 얕은” 관계를 추구하는 목장은 3가정 정도가 목장의 존재목적(삶의 변화, VIP를 초대하려는 동기부여)에 가장 알맞은 크기인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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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세미나를 듣고 많은 목장들이 목원들과 함께 엣지통독을 해보겠다고 신청하셨습니다. 엣지통독 교재의 서문에 있는 임철 목사님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성경 읽읍시다. 묵상 좀 합시다. 일 년에 일독은 합시다! 이 시대 목사님들의 대표적인 잔소리에 성도들도 할 말이 많다.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읽히지 않는’다고 말이다. 성경을 읽고 싶고,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는 뜻이다.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자신도 없다고 말한다. 아무런 도움 없이 성경을 한눈에 그 흐름을 파악하고 의미까지 읽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성경을 읽기 위해 더 많은 사전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면 그 방대함에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지 모른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다 갖추고 시작할 수도 없다. “통(通)해아 통(通)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通)할 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뜻과 비로소 통(通)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교재는 이런 관점에서 정리하고 엮고 다듬고 담아낸 통독입문서다. 성경을 읽을 때 필요한 것이 ‘더 넓고 더 깊은’ 시선이다. 그래야 ‘흐름 읽기’와 ‘깊이 읽기’가 가능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통독(通讀) 속에서 성경의 핵심 주제나 메시지, 의미를 짚어가며 꼼꼼히 읽는 정독(精讀)을 더한, 말 그대로 ‘엣지있는(묵상을 담은) 통독 교재다.>

 

처음에 제 계획은 반을 구성해서 내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통독이니까 창세기부터 하면 좋을 것 같고, 또 목장식구들과 이 통독여정을 함께 하면서 200일 동안 매일 영적인 나눔을 하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목장별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혼자서 안하고 ‘함께’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같이 해야 끝까지 하기가 쉽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이유는 엣지통독은 단순히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읽고 묵상하는 통독이기 때문에 묵상을 함께 나누면 나 혼자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장에서 하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목장단톡방 말고 엣지통독 단톡방을 하나 더 만드십시오. 그리고 매일 목자님이 말씀으로 하루를 열어주시면 좋습니다. 예를 들면 <1월9일 월요일, 오늘은 1.창조(창세기1-2장)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라고 하신 후에 목자님이 그날 통독분량과 교재에 써 있는 묵상이나 질문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올립니다. 그러면 이어서 통독을 함께 하는 목원들도 같은 방식으로 느낀 점들을 올리게 되고, 서로가 그 묵상들을 읽어보면서 공감표시를 눌러 주거나, 댓글로 그 묵상을 확장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직 묵상소감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우신 분들은 그날 읽은 성경이나 묵상교재에서 제일 마음에 남은 구절이나 문장을 옮겨 적으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묵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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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의 세 축이 무엇인지는 유초등부 아이들 중에도 아는 친구들이 있을만큼 이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는 익숙해졌습니다. 주일연합예배, 목장모임, 삶공부입니다.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살다보면 우리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지정의가 만족될 때 행복해지는데, 이 세 축이 인간에게 필요한 그 세 가지 면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지적인 면을, 목장모임은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우리의 정적인 면을, 주일연합예배는 결단하고 실천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의지적인 면을 채워줍니다. 그런데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다 의지적인 면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의도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그 목적이 달성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제일 앞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고 거기에는 헌신카드가 놓여져 있는데, 헌신의 내용은 여섯 가지입니다. 새가족반 신청, 예수영접, 세례, 삶공부 또는 기도받기 원하는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를 듣고 혹은 예배를 통해서 어떤 깨달음이 있을 때 결단한 내용을 가지고 주님 앞에 재헌신하고 기도를 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헌신대에 나오는 빈도와 신앙 성장의 속도나 깊이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목회를 하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헌신이 주는 능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즉 자기의 문제를 내어놓고 구체적으로 고백할 때 그것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물론 설교를 듣고 혼자서 ‘이번 한주는 내가 이렇게 해보겠다’라고 결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헌신대로 걸어 나오는 그 자체가, 그 결단과 실천을 분명히 방해할 사단을 대적하는 선포이며 동시에 그것을 가지고 목회자의 기도를 받음으로써 오늘 들은 설교가 애매한 은혜로 끝나지 않고 나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헌신대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분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것은 정말이지 신경 쓸 꺼리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설교하고 힘드신 목사님 피곤하게 만들면 안된다고 아주 저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오히려 재헌신하러 나오시는 분들을 보면 목사의 피곤은 눈녹듯이 사라진답니다. 지난 달까지는 싱글들의 광고시간으로 인해 2부 예배드리시는 분들은 재헌신 시간이 어려웠는데 지난 주부터 싱글들이 광고시간을 헌신시간에 양보해주었습니다. 정말 싱글들 최고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싱글이든 장년이든 말씀을 듣고나서 재헌신하는 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재헌신은 그 자체가 예배의 일부이기 때문에 예배가 마쳐지고 사람들이 다 나갈 때 앞으로 나오기보다는, 말씀 후 결단찬양 중간쯤 모두 일어나서 찬양할 때 앞으로 나오셔서 헌신대에 앉아서 헌신할 내용들을 쓰시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그 용기가 바로 마귀를 향한 강력한 대적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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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겹줄 새벽기도가 끝나고 완주하신 조는 또 한번 모이셔서 뒷풀이(?)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하시는 얘기가 “집사님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혼자서 했다면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지만 “조원들이 기다리고 계실텐데 힘들어도 나가야지~”하는 생각에 개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같이 기도하니 다른 생각이 나지 않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합심기도의 위력이기도 하고, 동시에 통성기도의 힘이기도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처음으로 하시는 분들이 적응을 어려워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이 통성기도입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소리를 내서 (조금 심하면 소리를 지르는^^) 기도하는 모습이 초신자들의 눈에는 ‘광신자 집단’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서 그냥 조용히 기도하면 되지 왜 부르짖으면서 기도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통성기도가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세겹줄 기도회 말씀 중에 호흡기도, 침묵기도라는 것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씀드리면서 처음에는 2분 정도로 시작하시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을 감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2분 이상 지속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리를 내서 기도하면 다른 생각이 개입되지 않습니다. 내 귀에 내가 말하는 것이 들리는 중에는 나의 뇌가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 경험으로 볼 때, 기도 훈련의 가장 첫 단계는 통성 기도입니다. 기도가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기도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냥 생각으로만 기도하든지, 소리를 내도 입속으로만 소곤소곤하고 기도하십니다. 그러는 이상 기도가 훈련되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기도로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통성기도가 자연스러워지면서 뜨거운 기도의 맛을 알기 시작하고, 그 단계가 지나면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말씀을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기도 등 다양하고도 더 깊은 기도의 경지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3주를 해보셔서 알아차리셨겠지만, 예전에는 설교 후에 조용한 묵상의 시간을 가졌는데 올해부터는 설교를 듣고 나서 찬양을 하고, 말씀과 찬양을 붙들고 통성기도를 하고 예배를 마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공동체에 주신 3가지 키워드 중의 하나인 ‘기도’를 예배 시간 중에서도 훈련해보고 싶은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통성기도에 익숙하지 않아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도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기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다음 단계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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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세겹줄 기도가 끝났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개근한 조도 더 많아 감사했습니다. 그 중에서 세겹줄을 처음으로 하시는 분들이 군기 든 신병(?)처럼 더 성실하게 참여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감사했고, 매일매일 하나의 설교를 만들어내는 열흘이 “혼신의 힘”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생각될만큼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 제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세겹줄 첫 주간이 지나고부터 제게 전해지는 기도응답 감사문자였습니다. 그 문자를 읽으면서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시고 해결해주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저는 목자목녀들에게 섬기시는 목장모임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목장으로 만들어달라고 자주 말씀드립니다.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도록 하면 그 목장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즉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목장식구들이 함께 기도했을 때 응답되는 것을 보면서 목원이나 VIP들이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 모양이다”라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기도응답을 받고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본인이 간절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목장식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해주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거나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는 거지요.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라서 그런 기도에도 응답해주시지만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정말 중요한 일은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두 번째 경우는 충분한 감사를 돌리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이지요.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명만 감사를 드리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마땅한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응답보다 더 귀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감사를 돌리는 방법도 말씀드려보면 새로운 사역 혹은 신앙적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또는 기도응답 경험을 간증문으로 써 보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삶 나눔 때 두서없이 말하기보다는 정식으로 간증문을 작성해 볼 때 더 많은 깨달음들이 옵니다. 또한 감사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에는 언제나 마음이 실리기 마련이므로 기도응답의 감사를 감사헌금으로 표현할 때 그 감동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마지막 날 불렀던 찬양이 생각납니다. “최고의 시간에, 최고의 순간에” 아직 응답되지 않는 기도들도 우리에게 가장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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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겹줄 기도회를 하기 전에 성도들과 함께 나눌 책을 고르게 됩니다. 이번에는 2026년 키워드로 우리 공동체에 주신 “감사, 용납, 기도” 이 3가지 주제 중에서 하나에 관련된 책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기도가 다른 두 가지를 다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감사할 것들이 더 많아지게 되고,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면 그 사람을 용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책들은 그 어떤 주제보다 많았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한 시간 기도>,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 유상섭 교수님의 <예수님의 기도>, 팀 켈러 목사님의 <기도> 등등.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가 <기도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에는 그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제는 더 엉뚱합니다. <Praying Like Monks, Living Like Fools> 그대로 직역했다면 이 책의 제목은 <수도사처럼 기도하기, 바보처럼 살기>가 되었겠죠. 지난 주간 새벽설교에서 제가 가장 많이 썼던 단어가 있다면 ‘조급함’일 것 같습니다. 그 조급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요청사항만 잔뜩 가지고 나아가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기도의 목적은 단순히 ‘기도응답’이 아니라 그 기도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하던 기도방식 중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화 속 예수님의 모습이 진짜 예수님 얼굴은 아닐테니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상상하든 그분의 얼굴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환대일 것입니다. 즉 수도사들이 일상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듯이 우리도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르며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가 이 조급함과 분주함의 시대 속에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보처럼 살기”에서 바보란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님을 위한 바보”겠지요. 조급함이 필연적으로 낳는 ‘효율성’이라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랑과 희생이 들어간 섬김 그리고 용서라는 복음의 가치를 따르면서 살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바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결국 상주실 길임을 믿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 책의 부제인 “경이로움과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기도의 유익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올해 세겹줄 기도를 하면서 점점 이런 소원이 듭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 기도회를 마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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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인 소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잣나무가 함께 기뻐한다는 뜻에서, 친구가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혜분난비(蕙焚蘭悲)라는 말도 있는데 "혜초(蕙草)가 불에 타니 난초(蘭草)가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라는 말씀입니다. 참 좋은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실천해보려 하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쉽지는 않은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지 않은 관계가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이 되고, 그 사람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습니다. 곧 가족입니다. 내 배우자, 내 부모, 내 자녀의 일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그의 감정이 공유됩니다. 계시록 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어”주신다고 합니다. 먹는 것은 주로 식구(食口)들과 함께 먹는 것이니 이 말씀은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주님이 나랑 식구처럼 살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해 주시고,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관계 안에서는 송무백열, 혜분난비가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육신의 가족 말고 또 하나의 영적가족을 허락해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지난 해를 돌아보니 정말 목장 안에서 기쁨을 나누어 배가 되게 하시고, 슬픔을 나누어 반이 되게 하시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었을 분들인데, 그리고 한 교회를 다니지만 같은 목장식구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친밀해지지는 않았을텐데 목장의 가족이 되다보니 로마서12:15절 말씀의 실천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가정교회의 행복을 맛보는 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목장생활을 꾸준히 하게 되면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마음 다해 축하해주고, 타인의 불행을 진심으로 아파해주는 그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드러내 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2026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송무백열과 혜분난비’의 풍경들이 우리 목장에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깊은 멋과 넓은 품이 있는 우리 목장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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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칼럼입니다. 52주가 언제 이렇게 빨리 지나갔을까요? 지난 12월 첫째 주일 1부 예배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설교를 마치자마자 중 2층에서 “목사님!!”이라는 큰 소리가 들려와서 이단이 들어와 있다가 설교에 꼬투리를 잡고 질문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니까요^^ 들어 보니 “목사님 오신지 4주년을 축하합니다. 우리 교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이라면 장미꽃 한 송이라도 들고 따뜻하게 해 줄 것이지 너무나 무섭게(?) 큰 소리로 하셔서 완전 쫄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가 우리 교회에 온 지도 4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올 때 대학교에 들어간 자매들은 졸업을 하니 정말 시간은 무섭도록 빠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지나가는 시간들 가운데서도 매년 마지막 주일에 제가 쓰는 칼럼의 주인공들이신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큰 나무 같은 분들입니다.

 

얼마 전 목사님들과 만난 모임에서, 아무래도 내년에 교회 봉사할 분들 임명하는 시즌이 되다 보니 주일 점심식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주일 점심식사를 없앤 교회들도 많고, 하더라도 봉사자들이 없어서 제일 힘든 부분인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기회는 이때다!!”하고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행복부뚜막”이라는 주일 중식 준비팀이 7개조로 운영되는데 내년부터는 청년들까지 들어가서 8조가 되었다고^^ 새가족으로 오시는 분들이 “여기 반석동 맛집이네요”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주님! 저 분들이 이곳에서 육신의 밥을 맛있게 먹다가 주님을 만나서 여기가 반석동 영혼의 맛집이네요!!”라고 고백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일중식준비며, 화장실청소며 힘든 일이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봉사자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바로 그 일을 먼저 시작하신 분들이 큰 나무처럼 서 계셔주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명의 삶에서 “제자는 배운 것을 전수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뭘 배우고 전수하는가?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전수하는데 삶이라고 하면 사역과 성품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힘들어도 예수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을 하는 분들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분들을 보고서 ‘나도 한번 저분 따라 해봐야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또한 교회 일은 세상 일과는 달라 그 일을 하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분의 저런 성품을 닮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모델이 되어주는 큰 나무같은 제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준비하는 요즘, 저는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욱 많답니다. 저는 참 행복한 목사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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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의 로비나 소그룹실 같은 데서 세 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 나누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교회 주변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목장 식구들도 아니고 연합교회에서 같은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어? 저 조합은(^^) 뭐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모습이 세겹줄 기도회 사전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겹줄 기도회의 파워는 강력해서 우선 개근하는 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근사한 개근상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개근하면 기도회 끝나고 한번 더 모이셔서 감사나눔 하시라고 찻집 한번 갈 정도의 상금을 드립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해의 첫 10일을 내가 새벽기도 성공했다”는 영적 성취감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그 사귐이 오래 갑니다. 기도회 열흘만이 아니라 일년 동안 종종 만나고 기도제목이 있으면 중보해주고 12월 쯤에 쫑파티를 하는 조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영적 기대감을 가지고 준비한 조에서는 기도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흘 동안에 그 역사를 경험하는 조도 많고, 기도회가 끝난 이후로도 많은 기도응답이 들려오곤 합니다.

 

세겹줄 기도회 때는 좋은 책을 한 권 정해서 설교를 합니다. 23년에는 <하나님의 뜻> 24년에는 <기독교의 기본진리> 25년에는 <남자의 결단>을 가지고 했습니다. 고전은 고전 나름대로 깊이가 있어 좋고, 신간은 신간 나름대로 시대를 읽는 신선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올해 제가 정한 책은 작년 12월에 나온 타일러 스테이턴 목사님이 쓰신 <기도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입니다. 세겹줄 기도회를 올해도 기대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하는 책 제목치고는 어울리지 않아서 망설였지만, 읽을수록 그 깊이와 실천적 제안에 매료되어서 세겹줄 책으로까지 정하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처럼 이번 세겹줄 기도회에 참여하는 분들 중에 기도가 어려웠던 분들은 많은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익숙하신 분들은 자신의 기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실 것입니다. <사귐의 기도>라는 책을 쓰신 김영봉 목사님은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눈 질끈 감고 ‘믿습니다’ 식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왜 기도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기도를 통해 구할 것이 무엇인지, 기도를 통해 기대할 것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고 대답하면서 기도해 온 저자의 기도에 대한 안내는 독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하나님은 세겹줄을 준비하는 우리들을 경이롭고 신비한 기도의 세계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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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다른 달보다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이 둘째 주일인데 마음은 벌써 송구영신예배인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동안도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느라 참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가정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로 얘기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사역자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지체’라고 합니다. 가정교회를 하다보니 목장에는 나오지만 연합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오래된 VIP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목장식구들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예배는 드리지 않지만 목장이 하는 청소며 설거지 봉사 등에는 나오시곤 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뵐 때마다 인사를 드리면 “난 이런 자원봉사 너무 좋아해서 꼭 교회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많이 다녀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사역은 ‘자원봉사’는 아닙니다. 물론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내 시간, 노력, 때로는 돈까지 써가면서 봉사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가 도움을 받고 나도 보람을 얻으니 자원봉사하고 비슷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교회 사역은 그런 자원봉사의 개념이 아닙니다.

 

교회 사역을 우리 몸의 ‘지체’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우리 몸에는 쓸모없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발톱, 눈썹 같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두 그 자리에 있어야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듯이, 모든 성도가 맡은 사역을 통해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을 맡았으면 무엇보다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즉 꾸준해야 합니다. 교회 사역은 보통 1년마다 임명이 되니까 힘들다거나 막상 해보니 나에게 안 맞는다고 느끼더라도 일단 약속한 1년은 해 보고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작은 훈련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 사역은 은사(재능)를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인데, 내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은 가능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역을 어느 정도 하셨으면 또 다른 사역을 찾아서 해보시는 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나 역할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 사역은 자원봉사나 종교적 취미활동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교회 사역은 오히려 나에게 득보다는 실이 될 수 있는데,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나를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치도록 하는, 일종의 내 신앙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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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삶공부 <새로운 삶> 이런 내용이 있는데, 목장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청년, 아버지입니다. 어린아이는 말 그대로 이제 VIP딱지를 떼고 목장에 나온지 얼마 안되는 분입니다. 청년은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좌충우돌하는 면도 없지 않고, 하지만 넘어지면 또 툭툭 떨고 일어서는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와 청년들을 다 품어주는 사람입니다. 자기같은 하나님의 자녀 한명 만들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장은 가족이고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보세요. 항상 평안한가요? 항상 천국 같은가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 않나요? 부부가 혹은 자녀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목장구성원들을 ‘목장식구’라고 부른다면 마찬가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즉 목장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 ‘세례자 숫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목장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목장에는 신앙적으로 ‘어린아이’가 많은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의 어린아이들이 또 청년으로 자라고, 그 청년이 아비가 되는 그런 모습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목장이 정말 성숙한 목장이라는 것입니다. 즉 좋은 교회란 오늘 처음 나온 사람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몇 달 된 사람, 1년 된 사람, 3년 된 사람, 이런 식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이 같이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목장이, 이런 교회가 늘 조용할까요? 문제나 갈등이 없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바람 잘 날이 없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목장이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한다고 해서,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와 갈등한다고 해서 집을 나가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참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뛰쳐나가지 않고 그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원들이 보여야 할 성숙함입니다. 이것도 <새로운 삶>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우리는 모두 리더입니다. 리더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향력’입니다. 목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우리 목장 분위기가 흐려진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목장을 뛰쳐 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그가 오히려 목장식구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변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목장이 보여야 할 성숙함인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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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오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그 교회는 우리 교회와 교단도 다른데 모든 것이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편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교회 문화 때문입니다. 문화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 물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물결 중에 하나가 ‘세겹줄기도회’입니다. 세겹줄기도회는 휴스턴교회가 아니라 양주에 있는 열린문교회가 처음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가정교회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매년 하는 것이라서 다 아시겠지만 작년 세겹줄기도회 이후로 우리 교회 식구가 되신 분들에게는 생소한 것일테니 칼럼을 통해 한번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세겹줄기도회는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전도서 4:12절 말씀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짝이 되어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열흘 동안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입니다. 세겹줄 기도회의 유익은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큰 결심을 하고 참석을 해도 3일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도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10일 완주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짝이 정해지면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만나서 열흘 동안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제목들을 함께 나누고,(그런 후에 조장은 오늘 나눠드린 기도카드에 제목들을 적어서 교역자에게 제출합니다) 실제로 열흘 동안 매일 새벽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서로 기도해주고, 기도회가 끝나면 완주기념 쫑파티(^^)까지 하니 한 해를 시작하면서 뭉친 세겹줄 짝들은 제가 보니 거의 1년은 그 교제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세겹줄기도회의 장점을 더 말씀드리자면. 세겹줄기도회는 10일 동안 기도짝 세 명이 설교가 끝나면 손을 붙잡고 10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기도훈련에도 참 좋습니다. 우리가 내 가족 말고 누군가를 위해서 10분 동안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보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겹줄기도회의 설교는 책을 한 권 정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성도들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 나의 영적시야를 넓혀주는 독서의 기회가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세겹줄 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짝을 정하는 원칙을 말씀드리면, 1)남녀는 안되고, 2)같은 목장끼리는 안되고 3)목자목녀들끼리는 안되고 4)계속 했던 사람과 하면 안됩니다. 2)번의 목적은 이런 기회에 목장을 뛰어넘는 교제의 기회를 가지시라는 것이고, 3)번의 목적은 기도가 익숙하신 분들이 그렇지 못한 분들과 짝을 맺으셔서 이끌어 주는 섬김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같은 아름다운 한 물결을 이루며 2026년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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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는 갑자기 돌아가신 조기현 집사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한번 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수관 목사님 글에서 참 잘 정리된 칼럼이 있어서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사랑이라면서 어떻게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는 몇 가지 오해가 숨어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함에 대한 오해입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작은 악은 그저 섭섭함이 느껴지는 정도이지만, 나도 모르게 혈압이 오르는 그런 악도 수없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선함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과연 그 악함을 견딜 수 있으실까요? 따라서 선함이란 참아 주는 부분도 있지만 참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만든 인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도 없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얘기했고, 하나님을 향해 ‘Leave me alone, 날 내버려 두라’고 얘기해왔습니다. 따라서 지옥, 즉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우리가 늘 바라고 꿈꾸어 왔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도 그토록 하나님이 싫었다면 하나님의 완벽한 임재 가운데 있어야 하는 천국은 그에게 있어 절대로 좋은 곳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하나님이 보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어떤 곳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너희 가운데 이미 임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이 땅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통치하는 삶이지요. 우리가 평생 그 삶을 누리고 연습하다 보면, 죽음이라는 관문을 건너는 순간 그것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에 다다를 텐데 그곳이 천국입니다.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 능력으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 지옥과 같은 상황은 언젠가 완성될 텐데 그곳이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보내진다기보다는 내가 추구해온 삶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네번째는 나는 그나마 선한 사람이고, 혹시 천국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지옥 갈 만큼 악하지 않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 선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 살인, 강간, 등 모든 악함은 그 개인의 악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악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악함을 우리는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법에서는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를 받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존재의 악함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품으로 숨을 수 있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관 목사님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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