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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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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오늘 청소년 입교식을 하는데, 이때도 “당신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생명의 삶>의 목적 중 하나 역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입니다. 하지만 그 삶 공부에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못갑니까?” 이 질문은 성도님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드리는 질문이 아니라 성경이 이 부분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답은 의외로 “구원의 확신이 천국 가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세리와 바리새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리는 나는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며 하늘을 향해 기도도 못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바리새인은 확신에 차서 얘기합니다. “나는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고 저 세리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세리는 구원받았고, 구원의 확신이 분명했던 바리새인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모든 문제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균형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만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확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부분에 대해서 예수 믿기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면 “내가 과연 구원받은 것이 맞나?”라고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아서 천국 갈 것인데 뭘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열심도 열정도 사라진다면 이것은 구원의 확신이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구원의 확신이라면 틀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리가 가지고 있었던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건강한 아픔과 두려움”을 늘 느껴야 합니다.

 

반대로 구원의 확신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꼭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주셨다는 것 때문에 감사가 넘치고, “이런 것까지 달라고 기도해도 되나?” 이런 생각 없이 하나님이 내 아빠라는 확신 때문에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으니 찬양하게 되고, 나아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내가 확실하게 믿기에 이웃에게 분명하게 전할 수 있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맞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기 원하면 구원의 확신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손목사-

 


2025.10.25 19:24

수정하고, 보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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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차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신학특강, 여러 목사님들의 사례발표, 삶공부(저희 부부는 이번에 목자목녀의 삶을 들었습니다^^), 숙소에서 6명이 모여서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육겹줄 모임 등 시간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컨퍼런스 마지막 시간에는 보통 주최하는 초원의 한 목사님이 ‘도전의 시간’을 맡아서 메시지를 전해주시는데 이번에는 최영기 목사님께서 그 시간을 맡아주셨습니다. 지난 주에 81회 생신이셨는데, 그 연세에도 미주, 한국, 대양주, 여러 선교지를 다니시면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것에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다른 일정이 있어서 부목사님들께 부탁한 녹음본으로 들은 강의였지만, 역시 최목사님의 말씀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가정교회의 가장 근본원리인 ‘성경대로’입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해 보려는 운동입니다.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중에는 “가정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라면, 우리 교회는 비성경적인 교회라는 말이냐?”하고 반발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경대로’라는 말은 성경에 대한 단순한 이해와 단순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다니시는 성도들이라면 자주 들으시는 말씀인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 하면 아닌 줄 알고,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 단순한 성경 접근 방법”이 ‘성경대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경만을 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과 사역을 성경을 통해서 끊임없이 점검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수정하고, 놓친 것이 있으면 보충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딱딱하기만 한 율법서(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읽을 때도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그 마음! 하나님이 무엇은 좋아하시고 무엇은 싫어하시는지, 무엇은 원하시고 무엇은 원하시지 않는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분들 중에서 가끔씩 내가 몇 독 했다는 것은 자랑하면서도 ‘성경대로’가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손목사-

 

2025.10.18 18:51

밥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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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밥이었습니다. 누가 요새 손님을 대접할 때 식당에서 밥을 사주지 집으로 초대를 하냐는 것입니다. 서너 식구 밥 하는 것도 아직 서툰 젊은 여성도들은 난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고,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도님들은 애들 다 키우고 이제야 주방에서 벗어났는데 내가 “이 나이에” 또 누구 밥을 해줘야 하냐고 난색을 표하셨습니다. 초대 목자목녀로 세워지신 분들에게 왜 우리가 목장으로 모였을 때 밥을 먹어야 하는지를 잘 말씀드려서 대부분 수용을 하셨는데 한 목장이 끝까지 밥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뜻대로 다과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그 목자목녀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희 목장도 밥으로 하기로 지난 주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본인들이 느끼신 것이었습니다. 다과는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고, 김치찌개는 식구들과 함께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1년 동안 모이기는 열심히 모였는데 왜 다른 목장처럼 끈끈함이 없고 왜 모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한마디로 마지 못해 가는 목장이 되었을까, 그분들이 스스로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함께 밥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밥의 힘이고 가정에서 모이는 힘입니다.

 

지난 주에 새가족반에서 한 성도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언니가 교회 가자고 했으면 거절했을텐데 가정집으로 가자고 해서 부담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바비큐를 한다고 해서 또 갔지요.” 오늘 세례식이 있습니다. 오늘 간증은 유례없이 노래로 하는 간증인데 성도님이 직접 쓰신 가사가 랩으로 속사포처럼 나오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으시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처음의 시작은 ***집사님의 따뜻한 꼬심이 있었지. 행복한교회 밥이 정말 맛있다며 한번 먹으러 오라 그랬지~” 이것이 바로 식탁의 힘입니다. 김호경 교수는 그의 책 <예수의 식탁이야기>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불현듯 예수를 만났을 때 “예배는 빠지지 않았니? 설교 시간에 딴짓하지는 않았니? 헌금은 제대로 냈니?”와 같은 말을 들으면 슬플 것 같다. 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 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 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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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추석은 장례(6일)-결혼(9일)-장례(11일/저 개인적인 일)로 기억되는 명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다릴 땐 길게 느껴졌던 연휴가 돌아보니 무척 짧았던 것 같습니다. 1년 중 마음은 급한데 힘은 떨어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목요일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한 형제에게 “언제 결혼할꺼야?”했더니 그 옆에 있던 저는 모르는 한 친구가 “와~명절 잔소리를 교회에서까지 듣게 되다니...”하고 말해서 제가 “아차~실수했구나” 생각했답니다. 이번 명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2040미혼 싱글 100명에게 <결혼을 고민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그 결과가 참 재밌었습니다. 저는 1위가 당연히 경제적인 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4위에 있었습니다.

 

6위는 “결혼한 친구들이 나에게 아내, 남편 험담을 많이 해서”(5.4%) 5위는 “시댁이나 처가 신경쓰기에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7.4%) 4위는 제가 1위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은 돈이 없어서”(13.8%) 3위는 “나같은 2세가 태어날까봐”(16.2%) 2위는 “결혼하고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 만날까봐”(24.2%) 1위는 “지금처럼 재밌게 못 놀 것 같아서”(32%). 이 앙케이트 결과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소수의 대답으로 6위에 있기는 하지만, 저는 그 대답을 들으며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어떤 결혼생활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보고 내 아들 딸들이 “나도 크면 엄마 아빠처럼 행복한 가정 이루기 위해서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할는지 아니면 “엄마 아빠 보면 나는 커서 결혼같은 것은 절대 안할꺼야”라고 생각할는지^^

 

1위와 2위의 대답을 듣고서는, 요즘 미혼청년들의 “나 중심의 세계관”을 한번 더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결혼식 때 제가 말한대로 결혼은 약속인데, 이런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살림이 넉넉할 때나 가난할 때나, 조건없이 귀하게 여기고 배려하며....” 어떻게 보면 결혼식 때 늘 듣는 진부한 표현같지만, 이 약속은 내 남편, 내 아내를 나는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인데, 이 설문조사에서 많은 싱글들이 이것이 자신이 없어서 결혼을 고민한다는 것이 이 세대의 나 중심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혼 전 싱글들이 결혼을 고민하는 이유로 대답한 것들이 오히려 결혼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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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금요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해서인지 더 긴 연휴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푹 쉬시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워야 할 명절에 신앙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갈등을 통해서 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과정을 뛰어 넘어야 한 집안과 가문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 가운데 힘들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무엇인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 일이 힘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일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일하든지, 아니면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일하지만 열매가 없을 때 힘듦을 느낍니다. 영혼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전도는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하다가 지쳐서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시도해보라고 하나님이 또 한번의 기회로 주시는 것이 명절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론에 설득당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명절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전도한다는 생각에 ‘종교토론’을 벌이는 것은 정말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 때는 감동적인 섬김,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경우라면, 조금더 일찍 고향을 찾고, 조금더 오래 부모님과 형제들과 시간을 보내다 오시기 바랍니다. 명절 때는 부모님, 형제들과 같이 그 지역의 시골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해드리며 헌금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양촌제일목장이 섬기는 논산에 있는 양촌제일교회를 방문했는데, 올해 기도제목이 주일예배인원이 20명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주일 한번이겠지만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찾은 시골교회가 명절만이라도 예배당에 성도들이 가득 차서 예배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명절에는 시댁에 좀더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시댁에 무조건 많은 비중을 두기보다는 더 연로하신 부모님 혹은 건강이 더 좋지 않으신 부모님이 계신 쪽에 비중을 더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양가 중 한쪽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마음이 복음에 대해 열릴 수 있도록 그쪽에 조금 더 힘과 정성을 쏟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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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가정교회’ 한다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 한번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럼 “성경적인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교회의 존재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애쓴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돕는 선한 사업에 힘쓰는 것도 교회가 할 일이라서 이번 명절에도 우리 교회는 반석마을, 송림마을의 어려운 이웃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기존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자 성경공부라든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 등을 비롯해서 많은 프로그램들을 돌리는데 애를 쓰는 것도 교회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은 아닙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왜 하는가?”를 질문해야 하는데 교회가 해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만 4년을 보내면서 느끼는 한 가지 감사가 있다면, 이제는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의 존재목적, 목장이 모이는 목적에 대한 이해가 점점 분명해지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VIP가 목장에 와서 영혼구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떠하든지 VIP와의 접촉점을 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어제도 싱글 목장 중에 한 목장이 VIP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교회 주방에서 몇 시간 동안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분주한 명절을 보내고 나면 이번 가을에는 목장마다 VIP들을 초대하는 이벤트를 마련해보심에 어떨까 생각합니다. 가까운 야외로 나가시는 것도 좋겠고, 교회로 초대해서 잔디마당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VIP가 하루 아침에 목장에 나오고 예수님 영접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 중에 VIP들을 자주 만날 기회를 주시고, 그 만남에서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가 우리 눈에 보이게 해 주세요. 그들에게 우리가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나도 믿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해 주세요!”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조급하지 말라는 것이 관심을 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섬기고 적극적인 초청의 기회를 마련할 때 하나님도 그 기회를 사용하셔서 영혼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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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심당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1,937억 원, 영업이익은 478억 원이었다. 한 도시에만 기반을 둔 제과 기업으로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비결이 뭘까? 회사 이름 성심(聖心)은 ‘예수님의 마음’이란 뜻이다. 성심당의 사훈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롬12:17)이다. 이 사훈은 1999년 가톨릭 영성 운동단체 ‘포콜라레’(뜻은 벽난로)의 지도자 끼아라 루빅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는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EoC)를 말하면서 기업이 사회적 가난에 적극 대응하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견인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성심당은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을 이 기준에 따라 숙고하여 결정했다. 인근 노점상들 쓰라고 수도꼭지 하나를 일부러 길가로 낸 것도, 새 매장 낼 때 인근에 혹시 타격 입을 가게가 없는지 먼저 살피는 것도, 유명 백화점이 서울 본점과 해외 지점에 좋은 조건으로 매장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굳이 사양한 것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겨야 한다’는 기준에 따른 것이다. 직원들 상당수가 하루 종일 흰색 파티시에 복장으로 일하는데 요즘 세탁 물량이 두 배 이상 많아져 다른 업체를 알아봐야 하지만 옛날부터 관계맺은 연로하신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그 세탁소를 이용했고 재작년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은 세탁소를 이어받아 성심당 세탁물을 계속 담당하고 있다. 성심당은 그 세탁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성심당이 붙든 것은 ‘관계’였다. 성심당이 끼아라 루빅의 ‘모두를 위한 경제’(EoC)를 경영 이념으로 받아들인 때는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1999년이었다.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의 원도심은 밑도 없이 쇠락하고 있었고, 사장의 동생이 벌인 프랜차이즈 사업은 부도가 나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았을 때였다. 당장 사업을 접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때 오히려 관계 지향의 사회적 경제를 회사의 정체성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일개 지역 빵집 브랜드가 대기업의 경영 실적을 일부 넘어섰다는 사실은 놀랍기는 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느냐이다. 성심당은 ‘부’가 아니라 ‘관계’를 축적해서 오늘날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성심당의 실천이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EoC의 권위자인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의 철학과 경영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요컨대 성심당은 그 자체가 ‘관계의 축적을 통한 사회개혁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작가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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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 수양회 일정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금요일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포에버 어르신들과 점심을 같이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3박5일 일정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는 날 못자고, 오는 날 못자는 일정이라서 돌아오는 모습은 난민(^^)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한국이 가을날씨가 시작될 때 무덥고 습한 곳으로 떠났던 기가 막힌 일정이었습니다. 하하^^ 노회라는 것은 지역에 있는 같은 교단에 속한 교회들의 연합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 교회가 속한 노회는 ‘서대전노회’인데 그리 큰 노회가 아님에도 90개가 넘는 교회가 노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1년에 두 차례 정기모임이 있음에도 서로가 잘 모릅니다. 이번에도 저는 모르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셋째날인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처음 뵙는 목사님이 저희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네는 한번도 안 싸우죠?”

 

갑작스런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사실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날 그럼 우리가 왜 싸운 적이 없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사랑이 아니라, 한 의자에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이라고. 꿈이 같으니까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오늘 겪었던 일, 생각했던 일들을 다 얘기하고 싶은데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되니까 절제하고 잠을 청합니다.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상대가 채워주니 정말 고마워서 안 싸우는 것 같습니다. 저를 조금 아시는 분들은 제가 참 허당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돈 계산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34명의 해외여행 회계를 맡았으니 그 부담감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그 부분을 아내가 잘 커버해주어서 많은 목사님들에게 이렇게 꼼꼼하게 하니 다음 번에 한번 더 해달라고 칭찬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 약점을 채워주는 존재이니 아내는 싸울 대상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대상입니다. 셋째는 결혼할 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로맨스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실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서로 아껴주기로, 싸우지 않기로, 존중하며 살기로 결혼식 때 한 그 약속! 하나님과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순간순간 생각하니까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다 넘어가게 되면서 싸우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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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명의 삶과 말씀의 삶이 개강함으로 하반기 삶공부가 시작됩니다. 계속해서 확신의 삶, 생명언어의 삶, 일터의 삶, 감사의 삶이 개강이 될 것입니다. 신청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반기에는 삶공부 참여율이 37%였는데, 이번 하반기에는 17%라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상반기에 막강했던 싱글들의 파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개설된 삶공부를 다하셔서 더 들을 것이 없으신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에게 삶공부를 권면하면 못 하신다고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삶공부를 시작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목자목녀 사역을 권면하는 경우에도 같은 말을 듣습니다. 아직은 그런 사역을 시작하기에 자기 자신이나 가정의 상황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생각을 오래 하는 사람이 있고, 행동부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 있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생각을 오래 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다가 마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행동부터 하는 사람은 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나 당황하거나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 경우 다 문제가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만, 준비하는 그 자체가 이미 시작한 것이고, 그렇게 먼저 시작을 해봐야지 그 일에 뭐가 더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고, 또 우리는 나중에 해서 후회하기보다 안 해서 후회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교회 사역뿐만이 아닙니다. 2025년이 반이 훌쩍 넘어서 이제 올해도 딱 4달이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올해 계획한 것 중에 혹시 아직도 계획 중, 생각 중인 것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너무 생각만하고 준비만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시진 않았는지요? 정호승씨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한 홍콩의 영화감독 왕저웨이에게, 한 기자가 ‘왜 좀 더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촬영을 시작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매번 완성된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왕 감독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라는 것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 맘에 우러나와서 진심으로 사랑할 때를 기다리다가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도 사랑하거나 섬겨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완성을 기대하시지 않습니다. 시도했다, 애썼다는 것에 점수를 주십니다. 그리고 실수해도 일단 해보면서 성장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때는 오지 않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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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은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한 라틴어인데,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잠언을 읽어보라고 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과거지향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입니다. 과거의 일을 잘 살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단 1초 뒤라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완벽히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진짜 지혜는 시선을 미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이 이 뜻일 것 같은데,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잠언이 말하는 것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물론 지혜이지만, 사실 그런 삶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준비해야 미래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면서, 주신 의식주에 감사하면서,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면 잠언과는 달리 전도서는 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을 할까요? 그 이유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에 있습니다. 이 문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전도서의 유명한 구절인 12:1절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이 구절은 보통 “청년들이여! 청년의 때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라!”는 설교주제로 많이 쓰이는데, 사실 문맥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들이 전부 죽음을 나타내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2:5절은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그런 말들을 한 후에 1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그러니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갈 정도로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입김처럼 짧은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태도를 보이며, 어떤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겠냐는 것입니다. 은혁형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귀중한 이 진리와 교훈을 주고 떠났습니다. 제 카톡 프로필 사진 싱글수련회 단체 사진 속에서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은혁이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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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목자컨퍼런스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평신도세미나에 가면 참석자들을 ‘천사’라고 호칭하며 섬겨줍니다. 목자컨퍼런스는 삼사백 명이 참석하는 행사라 그런 섬김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수고하시는 목자목녀님들을 섬겨드리고자 그 전날부터 가서 일을 했습니다. 땡볕에서 2시간 동안 주차안내도 하고, 아침과 밤에는 숙소로 식사와 간식을 배달하기도 하고, 못하는 노래지만 특송도 하고...작은 섬김이지만 목자목녀님들은 참 고마워하셨습니다. 전통교회에서 가정교회로 전환한 지가 얼마 되지 않는 교회의 목자목녀님들은 저희들의 그런 작은 섬김에 몸 둘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사실 목자목녀들은 섬기는 것이 익숙해지신 분들입니다. 내 시간을 쓰고, 내 돈을 쓰고, 내 힘을 쓰는 일이 몸에 배신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목녀들이 목원들을 위해서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학을 공부한 전문사역자들도 아니고,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분들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요즘 남자집사님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회사에서 MZ세대들과 대화를 하거나 일을 하기가 참 힘들다고 토로하십니다. 그들의 말 속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자기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분위기와 정신이 이 시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특별히 가정교회에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섬김의 문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좀 아픈 것은, 이런 섬김을 계속 받다보면 이 섬김에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목자목녀는 으레껏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목장식구들이 목자목녀의 섬김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목장은 가족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아내가 남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목자목녀와 목장식구는 동역의 관계입니다. 목자목녀는 항상 섬겨야 하고 목장식구는 섬김을 받기만 하는 것은 정상적인 가정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번처럼 목자목녀가 컨퍼런스를 참석해야 할 때, “목자가 없으니 이번 주 목장모임은 쉬어서 좋다” 혹은 “목자님이 오시면 주일날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없으니 우리 가정이 한번 섬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목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한 사람! 그 한 사람, 그 한 가정이 있을 때 여러분의 목장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질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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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왜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을까요? 그 금신상이 하나님보다 소중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걸 반대로 해서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가치를 두는 것이 있다면 그게 우리 금신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가치를 두는 그것들이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그런 것들은 성공, 사랑, 돈, 사회적 지위, 성취, 건강, 가정, 이런 것들일텐데 그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이 궁극적인 것으로 바뀌는 순간, 즉 “난 그거 없으면 못 살아!”가 되는 순간 그것이 내 금신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생각해봅시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내게 저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주신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많이 주셨다면 그것은 남을 도우라고 주신 사명이니까 써야 합니다. 그때 나에게는 돈이 금신상이 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성도 중에 한 분이 부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언제 새벽이나 수요일날 설교하실 기회가 되면 이것 한번 성도들에게 말해주세요” “뭔데요?” “예배 시간에 핸드폰으로 비트코인이나 주식 좀 보지 말라고 해 주세요.” 회사원들이 직장 가서 일하면서 틈틈이 주식 들여다본다는 말은 들었지만, 성도들이 예배시간까지 그러는 분들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성도님이 그런 모습들을 자주 보셨나봐요. 그런 분들에게는 이미 돈이 좋은 것이 아닌, 금신상이 된 거예요. 액수가 문제가 아니예요. 우리는 돈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돈에 절하는 사람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내 마음의 금신상이 된 거지요. 돈은 대표적인 우상이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돈을 맘몬(돈신)이라고 하셨던 거지요. 

 

 여러분, 돈은 많든 적든 우리의 금신상이 되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어요. 왜냐하면 돈은 우리를 두 가지 방향에서 지배하기 때문인데, 돈이 많으면 돈은 욕심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 돈이 없으면 돈은 염려와 불안을 통해 우리를 지배해요. 즉 어떻게든 더 벌고 싶은 욕심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탐심이고, ‘나 이렇게 돈이 없어서 어떡하나, 더 아껴야 해’ 그러면서 남을 위해서 돈 쓰는 것에 과도하게 인색한 것도 탐심이예요.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돈에 대한 가치관은 청년 때에 정립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훈련을 목장에서부터 하기를 원합니다. 알바를 해서 번 소중한 돈을 가지고 목장모임 간식으로 과자를 사 가지고 가는 지체를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청년은 돈이라는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훈련을 이 순간도 하고 있구나” 제가 말하는 순교적 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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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캠핑을 좋아하시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아이들 정서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서울에 사는 친구 가정과 캠핑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언젠가부터 캠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그날 보니 완전히 캠핑 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야 캠핑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정말 몸만 갔습니다. 그 친구가 캠핑 장소 예약부터(저를 위해서 공주까지 내려와 주었습니다), 캠핑 장비(캠핑은 장비빨^^이라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까지 다 준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1박2일 캠핑을 한번 해보고 나니까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거기에 빠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물론 빠지는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내가 만약 캠핑에 빠진다면 나는, 캠핑이 주는 ‘사귐과 교제’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캠핑을 하니 시간이 참 더디게 갔습니다. 입과 눈이 바쁘지가 않았습니다. 먹는 것도 간단했고, 앞의 호수와 꽃들은 제 시선을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서 빼앗아 갔습니다. 친구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불을 피웠습니다. 캠핑의 맛은 불멍이라며....그렇게 불을 피워 놓고 그 불 주위에 우리 네 명은 둘러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는데 끝이 없었습니다. 서로의 아이들 얘기를 하며, 서로의 교회 얘기를 하며. 캠핑장 주인이 와서 이제는 좀 취침해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밤을 새웠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텐트 안은 역시 불편했습니다.(이럴 줄 알고 저는 당일치기 캠핑을 처음에는 고집했었습니다.) 친구가 우리 부부를 위해서 쿠션 좋은 최신 매트리스를 준비해주었건만 역시 내 집, 내 침대가 최고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캠핑의 매력을 알았습니다. 캠핑은 불편함과 동시에 그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깊은 ‘사귐과 교제’가 있는 것, 그게 캠핑의 매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달도 더 지난 일을 칼럼으로 쓰는 이유는, 7월 내내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다보니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캠핑과 같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the tabernacle of God)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요? 우주를 만드신 분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오셨으니, 시간을 만드신 분이 시간 안에 갇히러 오셨으니, 무한이 유한 안으로 들어오신 그 불편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 이유, 나와 함께 깊은 사귐과 교제를 갖으시려고 그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그분 덕분에 나는 영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불멸(不滅)과 필멸(必滅)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을 위해서 반드시 없어질 것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날 나를 위해서 멋진 하룻밤 캠핑을 준비해 준 그 친구가 더 고마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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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푸드, K컨텐츠, 선교사님들과 만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화 소재는 K열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이 북미에서 5,337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세웠는데 이번에 그 기록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장성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입니다. 장성호 감독은 “어떻게 예수의 생애라는 뻔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 위대한 예수님의 생애가 어떻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그동안 한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가 더 의문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요기도회가 끝나고 종현 형제가 “목사님 <킹 오브 킹스>라는 영화 곧 개봉인데 같이 보러 가지 않으실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라고 했는데 기사를 찾아보니 꼭 봐야 할 것 같아서 지난 주 월요일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영화관엘 갔습니다.(같이 보러 가자 했던 종현이한테는 미안하네요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세익스피어와 함께 영국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찰스 디킨스가 오직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썼던 <예수의 생애>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당연히 출판은 물론 이 원고는 세상에 공개하지 말라고 유언하기까지 했는데, 85년 동안은 가족의 소중한 비밀로 간직되어 오다가, 훗날 손자들의 바램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 속에서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기에 기독 부모들이 보면 참 좋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들을 신경 쓸 시간이 없습니다. 일할 때는 문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종이를 붙입니다. 아들 월터는 아서왕 이야기에 꽂혀서 장난감 칼을 들고서 자기가 마치 원탁의 기사라도 된 듯한 착각 속에서 아빠의 일을 방해합니다. 아빠와 아들은 서로의 세계에 몰입되어 갈등합니다. 그때 아내의 역할이 빛을 발합니다. 아내는 아서왕 이야기에 꽂힌 아들에게 정말 왕 중의 왕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떻겠냐고 남편을 설득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다른 부분은 너무 익숙한 부분이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감동이 되었습니다. 많은 가정들이 아빠와 아이들 관계가 어렵습니다. 둘 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들은 일 때문에 늘 바빠서 지쳐있고,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빠와 대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줄 사람은 바로 아내요 엄마입니다. 그래서 이런 역할을 하는 아내를 잠언에서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지만, 제 마음에는 지혜로운 아내요 엄마인 캐서린으로 인해서 아빠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되어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 계속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손목사-


2025.07.19 16:04

휴가다운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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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칼한 일이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편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 우리에게는 자기 관점에서만 사물이나 사건을 보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살기에 바빠서 자기를 돌아볼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을 며칠이라도 탈피하는 것이 휴가라서, 그런 시간동안 자신을 살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벌써 ‘이번 여름휴가는 어딜가지?’ 인터넷을 검색하며 평소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고 복잡한 일정을 계획합니다. 그래서 월요일 증후군처럼 휴가 후유증을 앓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바쁜 일상을 살아가지만, 생이 끝날 때쯤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은 조금은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생을 잘 살았나?> <하나님 앞에 가면 뭐라고 하실까?> 요즘은 매일 요한계시록을 묵상하고 있어서인지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올 가을은 성도님들 자녀 결혼식이 여섯 가정이나 있습니다. 저는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에게 과제를 내 줄 때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적어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몇 살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결혼 전후의 삶은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내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혼과제를 내 줄 때뿐만 아니라 새가족반이나 삶공부 등에서도 제가 종종 성도님들께 묻는 질문은 이런 겁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내 삶에서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고 그 일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최고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것, 혹은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금 당신이 추구하며 살아온 것,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살아온 지금 당신의 삶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이것만은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이대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여행도 가셔야 하겠지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이런 기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진다면 정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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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는 80.6세, 여자는 86.4세로,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5.9년 더 깁니다. 그에 반해 건강 수명은 남성 70.7세, 여성 74.1세입니다. 즉 남녀 모두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기간이 평균 10년 이상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주위를 보면 연세드신 부모님들을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시는 성도님들이 제법 많으십니다. 유치원의 숫자는 줄어드는 대신에 어르신들을 위한 주간보호센터나 요양병원, 요양원은 동네마다 세워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는 나중에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나이가 되면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우리도 요양원만은 가지 않으려고 버틸지도 모릅니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는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요양원에 부모님을 보내는 경우 중에 치매로 인해 기억력을 상실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시는데, 찾아뵐 때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해드려야 할까요? 아래에 옮기는 글은 중증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요양원 간병인이 쓴 것인데 간단하게만 옮겨봅니다. 

 

 “치매 환자 중에는 화를 잘 내고 폭력적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외롭고 힘들어서 그럽니다. 누가 같이 있어주고 사랑받는다고 느끼면 그러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당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치매 환자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거나, 설득하려 하거나, 치료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무례한 말을 해도 바로 잡아주지 않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그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제 이름을 말하고 당신을 돌봐드리러 왔다고 말합니다. 제 이름을 틀리게 불러도 바로 잡지 않고 내 이름인양 응대합니다. 방에 있지도 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눠도 방에 그런 사람 없다고 말하지 않고 잠잠히 듣고만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해도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합니다. 허황된 추억담을 늘어놓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어주고 똑같은 가족사진을 몇 번씩 보여주어도 처음 보는 것처럼 같이 봅니다. 할 말이 없으면 손을 마주 잡고 몇 시간씩 창밖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 같이 있어 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못 알아봐도 섭섭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이 누구이든, 같이 있어 주고 관심을 쏟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분들은 행복해 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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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로운 삶 수료식을 함으로써 전반기 삶공부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의 삶 47명, 새로운 삶 29명, 확신의 삶 18명, 말씀의 삶 9명, 일터의 삶 10명, 생명언어의 삶 21명, 총 134명이 삶공부를 수강하셨습니다. 삶공부는 수료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출석이나 과제가 기준을 미치지 못했을 때는 탈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함께 수료를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는 제가 사정을 “봐 드려서” 수료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다음 기회에 한번 더 도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니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가정교회의 성경공부를 ‘삶공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지정의’(知情意)가 채워질 때 행복해집니다. 나이가 5-60세가 되어서도 대학에 들어가서 스무살 청년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을 보면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지적인 부분이 만족될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그렇습니다. 아마 유교적인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높은 교육열이 신앙에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서 신앙의 성장도 성경교육으로 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균형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의지나 실천이 중요하지만 교회가 그것만 강조하면 그저 선한 일 많이 하는구호단체가 됩니다. 신앙생활에 감정이 따라오면 좋지만,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소위 말하는 기도원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지성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지만 지성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면 교회 분위기가 차가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공부의 목적은 수료에 있지 않고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삶공부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세 부류인데 첫 수강자, 재수강자, 반복수강자들입니다. 재수강자란 한번 탈락하셔서 다시 도전하시는 분들이고, 반복수강자들은 이미 수료를 하셨지만 다시 들으시는 분들을 말합니다. 삶공부를 반복해서 들으시는 분들은 삶공부의 목적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강의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보통 그 내용의 20%를 흡수한다고 합니다. 들을 때는 다 이해한 것 같아도 실상 내가 온전히 흡수한 것은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공부도 반복해서 들을 때 전에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게 되고 그러면서 내 삶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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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면서 ‘답답함’을 느껴보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요? 물론 “나는 애들한테 공부하라는 말 한번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다 자기들이 스스로 했어요!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그냥 자기들이 다 알아서 했어요!” 이런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런 부모들을 보면 ‘하나님은 저 사람에게는 무슨 복을 저렇게도 많이 주셨을까?’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도님들의 가정을 심방해보면 그런 분들에게도 절절한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주님을 떠난 자녀들, 늦지 않게 결혼을 한 것까지는 감사한데, 자녀가 생기지 않든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자녀들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결국 아무리 자녀가 남들보다 잘 나가는 것 같아도 모든 부모는 똑같습니다. 부모는 영원한 부모입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오기곤 선교사님을 만나서 브라질 목장식구들과 식사하며 교제를 했습니다. 오선교사님은 제 대학 동기입니다. 총신대학교에는 헤세드라는 찬양팀이 있습니다. 신학교이기 때문에 매일 채플이 있어서 헤세드의 찬양인도자였던 오 선교사를 모르는 학생들은 없었습니다. 저와 나이도 같기 때문에 자녀들 나이도 거의 같은데, 오선교사님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 한 명은 브라질에서 아빠와 같이 선교사역을 하고, 한 명은 멕시코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교사님들의 헌신을 귀하게 보시고 그 자녀들에게는 참 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탁월하게 자라는 아들들임에도 선교사님도 ‘답답함’을 느끼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그 눈길로 내 자녀를 보자”라는 것이었답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생명의 삶에서 제가 가르치는 ‘성도의 신분’에 관한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성도님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殿)입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깨달은 것은 ‘여기서 내가 한 가지를 더 가르쳤어야 했구나, 아니 가르치기 전에 내 삶에 적용했어야 되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시듯이, 나도 내 자녀를 그렇게 바라봐야 되겠구나! ○○이는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아이지! ○○이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시고 계시지!’ 이런 눈길로 우리가 내 자녀를 바라본다면 예전의 ‘답답함’은 자연스럽게 소망과 기대와 감사로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친구 오선교사님께 한 수 배운 행복한 월요일이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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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전 월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제 다이어리에 <6월9일 서울성도님들>이라고 적혀 있는 날이었습니다. 10시에 “이산가족들 지금 만나서 출발합니다”라는 톡이 왔습니다. 차 안에서 너무 신나게 얘기하시는 바람에 길을 놓쳐 1시나 되어서야 교회 주차장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그리웠던 얼굴들이 차에서 내리셨고, 그들을 이산가족 되게 만든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제가 행복한교회로 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 저는 ‘내가 떠나도 우리 교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익숙해진 성도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맞아들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났고 또 그 자리에 많은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날 오신 분이 다섯 분인데 두 분 빼고는 섬기는 교회가 다 달랐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내가 그런 결정만 안했더라도 아무 일 없이 같은 교회 섬기면서 행복하게 지내셨을 분들인데~’하는 생각에 여전히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우리들의 대화는 영적으로는 무척이나 풍성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한 교회를 섬기고 있다면 그저 한 교회의 얘기만 했을텐데, 그날은 행복한교회까지 합치면 다섯 교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얘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당연히 있으십니다. 성도가, 다니던 교회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없이 기도하고 또 고민하면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단 그 교회에 식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옮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분들이 갖는 생각인 “이 교회에 가서는 정말 ‘예배만’ 드려야지”하는 생각은 버리셔야 합니다. 교회를 옮긴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교회를 옮기고 나서의 결과는 똑같아야 합니다. 곧 믿음의 성장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분명 이런 이유일텐데, 교회는 다니면서 세상적으로 완전히 나가자니 찜찜하고, 또 신앙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자니 세상이 부러운 것입니다. 이런 삶만큼 불편하고 힘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생활도 마찬가집니다. 그 교회 다니기는 하는데 그냥 이름만 올려 놓는다면(우리 교회는 이런 불행한 성도를 만들지 않으려고 등록절차가 까다로운 것입니다^^) 그것처럼 불편한 교회생활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옮기신 분들은 먼저 저와 함께 새가족반을 하시고(2주), 예수영접모임을 하시고(1주), 목장탐방을 다니시고(3번), 생명의 삶을 듣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고, 그런 다음에 연합교회 사역도(이것은 생명의 삶 수강 이후이니 주위 성도님들은 아무리 그분과 함께 일하고 싶어도 기다려 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행복한교회 오셨으니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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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보면 목사님은 가정교회를 하고 싶어 하지만 교인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결국 포기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입니다. 원로목사님과 함께 7년 동안 우리 교회에 가정교회를 셋팅하였고, 그 경험을 가지고 서울의 30년 된 전통교회를 가정교회로 전환시켜 보았고, 또 다시 우리 교회에 와서는 18년 차가 된 가정교회를 성도들과 함께 섬겨보는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꼭 교인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저항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가정교회를 반대하는 것도 그같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무슨 특별한 교회로 만들려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의 교회에 청빙을 받아 가서 2년 동안은 ‘가정교회’라는 단어는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정교회의 모토가 ‘성경대로’이니까 “우리 한번 성경적인 교회 만들어보자”고만 성도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즉 성경적인 교회는 열매맺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성경적인 교회일까요? 첫째,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7년이 지나면 그 사람 주위에 안 믿는 사람들이 없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이 교회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VIP 주위에는 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에서 올인해보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가 VIP전도입니다. VIP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그 사람을 따라 계속해서 비신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열매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는 사람의 삶이 변합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타인의 삶에 넘어서지 않으려는 예의바름(?)이 있습니다. 당연히 타인이 자신의 삶에 넘어오면 불쾌해합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하면서 남의 집도 가고 자신의 집도 오픈하다 보면 이같은 개인주의가 허물어지면서 기신자의 인격과 성품이 변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한 최적의 장소도 목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셋째, 교회 생활에 기쁨이 있습니다. 가정교회 예배시간에는 간증이 많습니다. 삶공부를 수료해도 간증, 세례를 받아도 간증, 평세를 다녀와도 간증! 간증이 뭘까를 한마디로 말해본다면 내가 변화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사람이 변화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열매가 가정교회엔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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