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5일 주간 목장모임 나눔지
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6월15일 주일설교/에스더 9:29-32/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계신 하나님)
29 아비하일의 딸 에스더 왕후는, 유다 사람 모르드개와 함께, 전권을 가지고 두 번째로 편지를 써서, 부림절을 확정하였다. 30 위로와 격려의 말이 담긴 그 편지는, 아하수에로 왕국 백스물일곱 지방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들에게 발송되었다. 31 이 편지는 이틀 동안 계속되는 부림절을 확정짓는 것이다. 이것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와 에스더 왕후가 지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다 사람들 스스로도 기꺼이 부림절을 명절로 확정하고, 그 자손들도 그 때가 되면, 금식하며, 슬피 울면서 지키도록 하였다. |
생명의 삶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문장이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눈이 안 보인다고 섣불리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십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것을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하나님, 혹은 “편재(遍在)”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지금도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만의 계획대로라면 아달월 13일은 유다인들을 몰살시키고 그 재산을 모두 빼앗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서 그날은 유다인들이 그들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페르시아 사람들을 제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전역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날을 명절로 지키자고 제안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죽일 날을 정하기 위해서 던진 주사위(부르)의 이름을 따서 부림절이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물론 유대인의 명절이라 우리는 지키지 않지만, 이 부림절 속에 들어 있는 영적인 교훈과 정신은 우리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교훈은 뭐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연수가 쌓여갈수록 희미해져가는 그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12월13일 이후의 삶은 한 마디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기에 그 이후로의 삶은 정말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아니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산”(엡2:1) 사람들이기 때문에 덤의 인생이 아니라 부활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부림절의 이런 정신은 당연히 두번째 정신으로 이어지는데, 이 기쁨과 감사를 혼자서만 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 날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감격을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어야 하고, 가난한 이웃을 구제함으로 이 부림절의 기쁜 정신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베데스다(자비의 못) 곁에 38년 동안 아파서 누워 있었던 사람을 예수님이 만나신 때는 부림절이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서로, 특별히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하는 절기인데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비의 못에 자비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세상의 원리인 경쟁만 있었습니다.
에스더서는 2500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두 가지를 말하며 끝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덤의 인생, 아니 죽었다가 다시 산 부활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감격과 감사를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 은혜를 주위에 나눠주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청사진을 한꺼번에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여주시는 만큼만 순종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리고 인내하면서! 이것이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한 일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의 삶에 역사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예배당이든 가정이든, 일터든, 학교든,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시며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 묵상을 마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볼 때 “우연처럼 다가왔던 하나님의 필연”은 무엇이었는지 나눠 봅시다. 나의 삶에 장기계획은 보여주시지 않지만 요즘 내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