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08일 주간 목장모임 나눔지
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6월8일 주일설교/에스더 7:9-10/섬기면 승리하고 통제하면 몰락한다.)
9 그 때에 왕을 모시는 내시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르보나가 말하였다. "하만이 자기 집에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을 해치려는 자들을 제때에 고발한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세운 것입니다." 그 때에 왕이 명령을 내렸다. "하만을 거기에 매달아라!" 10 사람들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세운 바로 그 장대에 하만을 매달았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왕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
왕은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초대한 두번째 잔치에 와서 에스더의 소원을 다시 물었습니다. 에스더는 그간 아껴두었던 말을 꺼냅니다. 당연히 죽음의 위기에 처한 우리 민족을 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에스더가 하만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을 왕과 함께 옆에서 듣고 있는 하만의 심장은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주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유다민족을 죽이는 것이 왕에게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것, 아니 더 나아가 왕에게 막대한 손해”임을 말합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에스더가 드디어 하만의 이름을 밝힙니다.
에스더의 입에서 하만의 이름이 불려질 때 하만만큼이나 왕도 놀랬습니다. 끓어오르는 분을 삭히기 위해서 왕은 후원으로 나갔는데 그 사이에 하만은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서 에스더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이 뒷모습이 후원에서 들어오던 왕의 눈에는 하만이 왕후를 범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신하들은 하만의 얼굴을 덮었는데 그 말은 처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때 왕 곁에 있었던 내시 하르보나라는 사람이 왕에게, “하만의 집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여서 매달려고 한 높은 장대가 있다”고 왕에게 말했고, 끝없이 모르고 올라갔던 하만은 자기가 세운 높이 23미터 높은 장대 위에서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스더의 인생과 하만의 인생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왜 승리할 수밖에 없었고, 하만은 왜 몰락할 수밖에 없었는지 비교해 보면, 에스더의 인생은 한 마디로 누군가를 살리려는 인생이었고, 하만의 인생은 누군가를 죽이려는 인생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한 사람의 인생은 승리로, 한 사람의 인생은 몰락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살리고 성공시켜주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시냐면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자기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성공시켜주기 위해서 십자가 희생을 치르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높여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누군가를 살려주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도 살려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높여주시고 승리케해주십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어서, 내가 칭찬 들으려고 한 일이 아니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남을 성공시켜주려고 애쓰면 우리 인생을 승리와 행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고대의 제국 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읽으며 “왕”이라는 단어 속에는 ‘통치’와 ‘통제’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들을 잘 통치하여서 백성들로 하여금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왕도 있고, 왕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여 백성들을 죽이는 나쁜 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왕의 자리는 비단 한 나라의 왕뿐만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서도 적용됩니다. 왜 남편과 아내 사이가 행복하지 못합니까? 서로를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서로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 각자가 서로의 약점을 감수하는 섬김을 할 때 그 결혼생활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듣는 섬김”을 해야 합니다. 들어주는 섬김을 받은 자녀들은 커가면서도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부모로부터 들어주는 섬김을 받지 못한 자녀는 그 자녀 자신도 자기가 보고 배운대로 누군가를 통제하려고 하는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에서 “섬기면 승리하고 통제하면 몰락한다”라는 귀한 진리를 잊지 않고 실천해나가시는 목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 설교를 듣고 가정에서 배우자에 대한 섬김(상대의 약점을 감수하는 섬김), 자녀들에 대한 섬김(듣는 섬김)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나눠 봅시다. 싱글들의 경우에는 학교나 직장 동료, 선후배, 목장의 지체들이 그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