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마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뭔가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던 2000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유학길에 오를 때도, 내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아프리카에서 교회를 섬길 때도, 첫 담임목회자로 부담 백배의 사역을 시작할 때도,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결정을 하고 우리 교회로 올 때도, 제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기도가 삶이셨던 분이고예수님을 영접하신 이후로는 교회가 전부셨던 분이었습니다. 1년에 명절 말고 많아야 두어번 찾아뵈면 그때마다 아버지는 교회를 비우고 뭣하러 왔냐고 하셨습니다.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지난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아버지의 임종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핸드폰에 적어 놓았던 <아버지 유언>을 또 꺼내 보았습니다. 입원하신 동안 세 번 정도 함께 밤을 보내며 간호해 드렸을 때, 어느날 아버지가 힘이 없으셔서 작은 목소리로 30분 간격으로 얘기하신 것이, 늘 하시는 말씀이셨지만 예사롭지가 않아서 적어 둔 메모였습니다. ①근석아! 성도들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어라. 성도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어려움을 돌보는데 애쓰는 목사가 제일이야. ②예수님 닮은 제자 한 명 만들면 그것처럼 보람있는 일이 어디 있겠니? 그걸 목표로 삼고 목회하렴. ③근석아! 너도 목회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성도들은 어쩌면 더 힘든 삶을 산단다. 성도들은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면서 교회 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 성도들의어려움을 알아주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억지로가 아니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목사가 되어줘. ④무엇보다 목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단다.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충분하게 알려줄 수 있도록 말이야.....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달라서 저희 가족은 아버지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지만 주님은 아버지와 저희들이 그 시간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주기만 하셨던 아버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신 두 달 동안 가족들이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셨고, 아버지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맞춤 유언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제게는 죽음으로 남겨주신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명절이라 당연히 가족끼리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빈소도 작은 것으로 준비했는데, 많은 성도님들 찾아오셔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다시 한번 큰 감사를 드립니다. -손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