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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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일 주일설교/요한복음 3:1-3/신앙의 이력 vs 거듭남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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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기록된 지 약 30년 후에 쓰여졌습니다. 요한복음은 앞선 복음서들을 대체하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개정증보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세 복음서에서 이미 다룬 사건들을 기록할 때도 더 길고 깊게 다루며, 초신자도 읽기 쉬운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깊은 영적 진리를 담아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창세기와 동일한 ‘태초에’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함께 계셨던 예수님이 ‘새 창조’를 일으키러 이 땅에 오셨다는 의도적인 선언입니다. 요한복음 3장과 4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바로 이 예수님의 새 창조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두 인물은 모든 면에서 대조적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 남성이자 존경받는 지도자였고, 사마리아 여인은 멸시받는 민족의 여성이자 동네에서 손가락질받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마음속 갈증과 공허함이라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사회적 지위와 지식을 가졌음에도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야(위로부터 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지성적 틀에 갇혀 있던 그는 “나이 많은 내가 어떻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갑니까?”라고 반문하며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는 거듭남이 지식이나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장 더운 정오에 홀로 우물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다섯 번의 결혼 실패와 현재의 불안정한 동거 상태로 인해 마음이 뻥 뚫린 상태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남편에게 다섯 번이나 버림받았다는 것은 부정한 여인이기 이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인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아픈 과거를 이미 다 아셨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결국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치는 치유된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두 사람의 변화 양상은 달랐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즉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변화된 반면, 니고데모는 그 자리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슬며시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그는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은근히 변호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는 빌라도를 찾아가 시신을 요구하며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드러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즉각적으로 변하든, 니고데모처럼 시간이 걸리든,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둠을 비추고 목마름을 해갈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단순히 오래된 ‘신앙의 이력서’에 안주하지 말고, 내면의 영적 갈증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거듭남의 은혜를 확인해야 합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처럼 새 창조의 기쁨을 누리고, 이제는 다른 이들의 새 창조를 돕는 예수님의 멋진 동역자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1)현재 나의 삶에서 세상의 그 어떤 조건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예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느끼는 ‘영적인 목마름’이나 ‘마음의 공허함’은 무엇인가요? 2)니고데모나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숨기고 있는 상처나 약점이 있나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내어놓았을 때 받은 위로나 회복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3)사마리아 여인처럼 즉각적으로 변화되는 삶이 있는가 하면, 니고데모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되는 삶도 있습니다. 현재 나의 신앙 여정은 어느 지점에 있다고 느끼시나요? 최근 내 삶 속에서 성령님이 일으키고 계시는 작은 ‘새 창조’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