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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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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겹줄 기도회를 하기 전에 성도들과 함께 나눌 책을 고르게 됩니다. 이번에는 2026년 키워드로 우리 공동체에 주신 “감사, 용납, 기도” 이 3가지 주제 중에서 하나에 관련된 책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기도가 다른 두 가지를 다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하게 되면 감사할 것들이 더 많아지게 되고,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면 그 사람을 용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책들은 그 어떤 주제보다 많았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한 시간 기도>,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 유상섭 교수님의 <예수님의 기도>, 팀 켈러 목사님의 <기도> 등등.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가 <기도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에는 그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제는 더 엉뚱합니다. <Praying Like Monks, Living Like Fools> 그대로 직역했다면 이 책의 제목은 <수도사처럼 기도하기, 바보처럼 살기>가 되었겠죠. 지난 주간 새벽설교에서 제가 가장 많이 썼던 단어가 있다면 ‘조급함’일 것 같습니다. 그 조급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요청사항만 잔뜩 가지고 나아가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기도의 목적은 단순히 ‘기도응답’이 아니라 그 기도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수도사들이 하던 기도방식 중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성화 속 예수님의 모습이 진짜 예수님 얼굴은 아닐테니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상상하든 그분의 얼굴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환대일 것입니다. 즉 수도사들이 일상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듯이 우리도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르며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가 이 조급함과 분주함의 시대 속에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보처럼 살기”에서 바보란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주님을 위한 바보”겠지요. 조급함이 필연적으로 낳는 ‘효율성’이라는 세상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랑과 희생이 들어간 섬김 그리고 용서라는 복음의 가치를 따르면서 살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바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결국 상주실 길임을 믿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 책의 부제인 “경이로움과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기도의 유익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 올해 세겹줄 기도를 하면서 점점 이런 소원이 듭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 기도회를 마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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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종류의 나무인 소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잣나무가 함께 기뻐한다는 뜻에서, 친구가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혜분난비(蕙焚蘭悲)라는 말도 있는데 "혜초(蕙草)가 불에 타니 난초(蘭草)가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라는 말씀입니다. 참 좋은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실천해보려 하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쉽지는 않은 말씀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지 않은 관계가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이 되고, 그 사람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관계가 있습니다. 곧 가족입니다. 내 배우자, 내 부모, 내 자녀의 일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그의 감정이 공유됩니다. 계시록 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어”주신다고 합니다. 먹는 것은 주로 식구(食口)들과 함께 먹는 것이니 이 말씀은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주님이 나랑 식구처럼 살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해 주시고, 내가 울 때 함께 울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가족관계 안에서는 송무백열, 혜분난비가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육신의 가족 말고 또 하나의 영적가족을 허락해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지난 해를 돌아보니 정말 목장 안에서 기쁨을 나누어 배가 되게 하시고, 슬픔을 나누어 반이 되게 하시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아무 상관이 없었을 분들인데, 그리고 한 교회를 다니지만 같은 목장식구가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친밀해지지는 않았을텐데 목장의 가족이 되다보니 로마서12:15절 말씀의 실천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가정교회의 행복을 맛보는 한 해였습니다. 그래서 목장생활을 꾸준히 하게 되면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마음 다해 축하해주고, 타인의 불행을 진심으로 아파해주는 그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드러내 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2026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송무백열과 혜분난비’의 풍경들이 우리 목장에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깊은 멋과 넓은 품이 있는 우리 목장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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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칼럼입니다. 52주가 언제 이렇게 빨리 지나갔을까요? 지난 12월 첫째 주일 1부 예배 때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설교를 마치자마자 중 2층에서 “목사님!!”이라는 큰 소리가 들려와서 이단이 들어와 있다가 설교에 꼬투리를 잡고 질문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니까요^^ 들어 보니 “목사님 오신지 4주년을 축하합니다. 우리 교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말이라면 장미꽃 한 송이라도 들고 따뜻하게 해 줄 것이지 너무나 무섭게(?) 큰 소리로 하셔서 완전 쫄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가 우리 교회에 온 지도 4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올 때 대학교에 들어간 자매들은 졸업을 하니 정말 시간은 무섭도록 빠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지나가는 시간들 가운데서도 매년 마지막 주일에 제가 쓰는 칼럼의 주인공들이신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큰 나무 같은 분들입니다.

 

얼마 전 목사님들과 만난 모임에서, 아무래도 내년에 교회 봉사할 분들 임명하는 시즌이 되다 보니 주일 점심식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주일 점심식사를 없앤 교회들도 많고, 하더라도 봉사자들이 없어서 제일 힘든 부분인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기회는 이때다!!”하고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행복부뚜막”이라는 주일 중식 준비팀이 7개조로 운영되는데 내년부터는 청년들까지 들어가서 8조가 되었다고^^ 새가족으로 오시는 분들이 “여기 반석동 맛집이네요”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주님! 저 분들이 이곳에서 육신의 밥을 맛있게 먹다가 주님을 만나서 여기가 반석동 영혼의 맛집이네요!!”라고 고백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일중식준비며, 화장실청소며 힘든 일이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봉사자들이 생겨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바로 그 일을 먼저 시작하신 분들이 큰 나무처럼 서 계셔주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명의 삶에서 “제자는 배운 것을 전수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뭘 배우고 전수하는가?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전수하는데 삶이라고 하면 사역과 성품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힘들어도 예수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을 하는 분들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분들을 보고서 ‘나도 한번 저분 따라 해봐야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또한 교회 일은 세상 일과는 달라 그 일을 하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되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분의 저런 성품을 닮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모델이 되어주는 큰 나무같은 제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준비하는 요즘, 저는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욱 많답니다. 저는 참 행복한 목사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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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의 로비나 소그룹실 같은 데서 세 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 나누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교회 주변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같은 목장 식구들도 아니고 연합교회에서 같은 사역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어? 저 조합은(^^) 뭐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그 아름다운 모습이 세겹줄 기도회 사전 모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겹줄 기도회의 파워는 강력해서 우선 개근하는 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근사한 개근상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개근하면 기도회 끝나고 한번 더 모이셔서 감사나눔 하시라고 찻집 한번 갈 정도의 상금을 드립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해의 첫 10일을 내가 새벽기도 성공했다”는 영적 성취감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그 사귐이 오래 갑니다. 기도회 열흘만이 아니라 일년 동안 종종 만나고 기도제목이 있으면 중보해주고 12월 쯤에 쫑파티를 하는 조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영적 기대감을 가지고 준비한 조에서는 기도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흘 동안에 그 역사를 경험하는 조도 많고, 기도회가 끝난 이후로도 많은 기도응답이 들려오곤 합니다.

 

세겹줄 기도회 때는 좋은 책을 한 권 정해서 설교를 합니다. 23년에는 <하나님의 뜻> 24년에는 <기독교의 기본진리> 25년에는 <남자의 결단>을 가지고 했습니다. 고전은 고전 나름대로 깊이가 있어 좋고, 신간은 신간 나름대로 시대를 읽는 신선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올해 제가 정한 책은 작년 12월에 나온 타일러 스테이턴 목사님이 쓰신 <기도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입니다. 세겹줄 기도회를 올해도 기대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하는 책 제목치고는 어울리지 않아서 망설였지만, 읽을수록 그 깊이와 실천적 제안에 매료되어서 세겹줄 책으로까지 정하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처럼 이번 세겹줄 기도회에 참여하는 분들 중에 기도가 어려웠던 분들은 많은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익숙하신 분들은 자신의 기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실 것입니다. <사귐의 기도>라는 책을 쓰신 김영봉 목사님은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눈 질끈 감고 ‘믿습니다’ 식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왜 기도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기도를 통해 구할 것이 무엇인지, 기도를 통해 기대할 것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고 대답하면서 기도해 온 저자의 기도에 대한 안내는 독자에게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하나님은 세겹줄을 준비하는 우리들을 경이롭고 신비한 기도의 세계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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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다른 달보다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이 둘째 주일인데 마음은 벌써 송구영신예배인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동안도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느라 참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가정교회의 장점 중의 하나로 얘기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사역자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지체’라고 합니다. 가정교회를 하다보니 목장에는 나오지만 연합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오래된 VIP들이 간혹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목장식구들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예배는 드리지 않지만 목장이 하는 청소며 설거지 봉사 등에는 나오시곤 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뵐 때마다 인사를 드리면 “난 이런 자원봉사 너무 좋아해서 꼭 교회가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많이 다녀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교회사역은 ‘자원봉사’는 아닙니다. 물론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내 시간, 노력, 때로는 돈까지 써가면서 봉사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가 도움을 받고 나도 보람을 얻으니 자원봉사하고 비슷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교회 사역은 그런 자원봉사의 개념이 아닙니다.

 

교회 사역을 우리 몸의 ‘지체’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우리 몸에는 쓸모없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발톱, 눈썹 같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두 그 자리에 있어야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듯이, 모든 성도가 맡은 사역을 통해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을 맡았으면 무엇보다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즉 꾸준해야 합니다. 교회 사역은 보통 1년마다 임명이 되니까 힘들다거나 막상 해보니 나에게 안 맞는다고 느끼더라도 일단 약속한 1년은 해 보고 그만두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작은 훈련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 사역은 은사(재능)를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인데, 내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은 가능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 사역을 어느 정도 하셨으면 또 다른 사역을 찾아서 해보시는 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나 역할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 사역은 자원봉사나 종교적 취미활동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교회 사역은 오히려 나에게 득보다는 실이 될 수 있는데,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나를 믿음 좋은 사람으로 비치도록 하는, 일종의 내 신앙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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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삶공부 <새로운 삶> 이런 내용이 있는데, 목장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청년, 아버지입니다. 어린아이는 말 그대로 이제 VIP딱지를 떼고 목장에 나온지 얼마 안되는 분입니다. 청년은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좌충우돌하는 면도 없지 않고, 하지만 넘어지면 또 툭툭 떨고 일어서는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와 청년들을 다 품어주는 사람입니다. 자기같은 하나님의 자녀 한명 만들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장은 가족이고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보세요. 항상 평안한가요? 항상 천국 같은가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 않나요? 부부가 혹은 자녀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목장구성원들을 ‘목장식구’라고 부른다면 마찬가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즉 목장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에서 ‘세례자 숫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목장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목장에는 신앙적으로 ‘어린아이’가 많은 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의 어린아이들이 또 청년으로 자라고, 그 청년이 아비가 되는 그런 모습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목장이 정말 성숙한 목장이라는 것입니다. 즉 좋은 교회란 오늘 처음 나온 사람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몇 달 된 사람, 1년 된 사람, 3년 된 사람, 이런 식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이 같이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목장이, 이런 교회가 늘 조용할까요? 문제나 갈등이 없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바람 잘 날이 없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목장이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한다고 해서, 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와 갈등한다고 해서 집을 나가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참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뛰쳐나가지 않고 그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원들이 보여야 할 성숙함입니다. 이것도 <새로운 삶>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우리는 모두 리더입니다. 리더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향력’입니다. 목장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우리 목장 분위기가 흐려진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목장을 뛰쳐 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그가 오히려 목장식구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변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목장이 보여야 할 성숙함인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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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오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그 교회는 우리 교회와 교단도 다른데 모든 것이 너무 비슷해서 마음이 편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정교회 문화 때문입니다. 문화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 물결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물결 중에 하나가 ‘세겹줄기도회’입니다. 세겹줄기도회는 휴스턴교회가 아니라 양주에 있는 열린문교회가 처음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가정교회의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매년 하는 것이라서 다 아시겠지만 작년 세겹줄기도회 이후로 우리 교회 식구가 되신 분들에게는 생소한 것일테니 칼럼을 통해 한번 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세겹줄기도회는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전도서 4:12절 말씀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짝이 되어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열흘 동안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입니다. 세겹줄 기도회의 유익은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다고 해서 큰 결심을 하고 참석을 해도 3일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도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10일 완주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짝이 정해지면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만나서 열흘 동안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제목들을 함께 나누고,(그런 후에 조장은 오늘 나눠드린 기도카드에 제목들을 적어서 교역자에게 제출합니다) 실제로 열흘 동안 매일 새벽마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서로 기도해주고, 기도회가 끝나면 완주기념 쫑파티(^^)까지 하니 한 해를 시작하면서 뭉친 세겹줄 짝들은 제가 보니 거의 1년은 그 교제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세겹줄기도회의 장점을 더 말씀드리자면. 세겹줄기도회는 10일 동안 기도짝 세 명이 설교가 끝나면 손을 붙잡고 10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기도훈련에도 참 좋습니다. 우리가 내 가족 말고 누군가를 위해서 10분 동안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보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겹줄기도회의 설교는 책을 한 권 정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성도들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 나의 영적시야를 넓혀주는 독서의 기회가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세겹줄 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짝을 정하는 원칙을 말씀드리면, 1)남녀는 안되고, 2)같은 목장끼리는 안되고 3)목자목녀들끼리는 안되고 4)계속 했던 사람과 하면 안됩니다. 2)번의 목적은 이런 기회에 목장을 뛰어넘는 교제의 기회를 가지시라는 것이고, 3)번의 목적은 기도가 익숙하신 분들이 그렇지 못한 분들과 짝을 맺으셔서 이끌어 주는 섬김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같은 아름다운 한 물결을 이루며 2026년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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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는 갑자기 돌아가신 조기현 집사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한번 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수관 목사님 글에서 참 잘 정리된 칼럼이 있어서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사랑이라면서 어떻게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는 몇 가지 오해가 숨어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함에 대한 오해입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작은 악은 그저 섭섭함이 느껴지는 정도이지만, 나도 모르게 혈압이 오르는 그런 악도 수없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선함 그 자체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과연 그 악함을 견딜 수 있으실까요? 따라서 선함이란 참아 주는 부분도 있지만 참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만든 인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도 없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얘기했고, 하나님을 향해 ‘Leave me alone, 날 내버려 두라’고 얘기해왔습니다. 따라서 지옥, 즉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우리가 늘 바라고 꿈꾸어 왔던 곳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도 그토록 하나님이 싫었다면 하나님의 완벽한 임재 가운데 있어야 하는 천국은 그에게 있어 절대로 좋은 곳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하나님이 보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어떤 곳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너희 가운데 이미 임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이 땅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통치하는 삶이지요. 우리가 평생 그 삶을 누리고 연습하다 보면, 죽음이라는 관문을 건너는 순간 그것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에 다다를 텐데 그곳이 천국입니다.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 땅에서 지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 능력으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 지옥과 같은 상황은 언젠가 완성될 텐데 그곳이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보내진다기보다는 내가 추구해온 삶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네번째는 나는 그나마 선한 사람이고, 혹시 천국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지옥 갈 만큼 악하지 않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 선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 살인, 강간, 등 모든 악함은 그 개인의 악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악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악함을 우리는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법에서는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평가를 받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존재의 악함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품으로 숨을 수 있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관 목사님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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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저는 생명의 삶과 감사의 삶을 성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명의 반원들과 하는 감사의 삶은 이번에 1기라서 경험해보지 못한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의 삶을 시작하는 날부터 반원들과 ‘2감 1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감사 2가지, 내일의 소원 1가지”를 단톡방에 올리는 것인데, 하루씩 늘려서 요즘은 하루에 3개, 일주일에 4번 하고 있습니다. 점점 감사 찾기가 익숙해져서 하루에 다섯 감사를 하는 것, 그리고 매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나 혼자만 감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과 감사나눔을 하는 것도 시도하고 있고, 특별한 날을 맞은 사람에게는 그분을 생각하며 ‘10감사’를 써서 보내는 것도 하고 있습니다.

 

반원들과 <감사나눔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어나가고 있는데 지난 주에 읽었던 챕터에서 ‘감사 7진법’이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감사를 내 생활에서 단계적으로 훈련하는 방법인데 ①무조건 감사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에도. ②소리 내어 감사한다: 내 귀가 반응하도록. ③꼬집어서 감사한다: 방해요인까지도 역발상하여. ④마음 가득히 감사한다: 감사의 마음이 차고 넘칠 때까지 반복. ⑤즉시 감사한다: 늦으면 다시 하기 어려우니. ⑥모든 면에 감사한다: 감사에 예외는 없으니. ⑦사람은 ‘감감축’한다: 그에게 상처를 입었어도.

 

그 중에서 제 눈에 띄었던 것은 ‘사람에게는 감감축 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감감축’이라는 말은 저자가 만든 말인데 “감사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우리 삶에서 감사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화가 나기 때문이고 그 말은 내가 아직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삶에서도 말씀드리는 것인데,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의 노예가 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내가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나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지난 주에 유퀴즈에 유방암 투병 중인 박미선씨가 나왔습니다. 애써 눈물을 참으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지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계속 나오는 단어는 ‘감사’였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모자를 써야 하는데, 항암하는 계절이 겨울이어서 감사했고, 방사선을 하는 공간이 너무 추운데 그때는 여름이어서 감사했다고......감사하니 행복해졌는데, 그 행복이 그 어떤 치료제보다도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고...감사♡행복♡용서♡기쁨, 이 네 단어는 한 세트인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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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인가 헌신대에 한 어르신이 나오셨습니다. 그 옆으로는 따님 되시는 집사님이, 그리고 그 뒤로는 목장 식구들이 앉으셨습니다. 아버님은 연세가 많으셨는데 이번에 편찮으셔서 유성 선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폐렴이 회복되시고 퇴원하시면서 집으로(제 기억으로는 전남이셨던 것 같습니다) 가시기 전에 교회를 들려서 예배를 드리신 것입니다. 집사님은 중보기도실에 아버님을 위한 기도제목을 올리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버님께서 먼저 따님과 목장식구들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고 헌신대에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제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소년같은 귀여움까지(^^) 있는 얼굴이셨습니다. 제 마음이 먼저 열리면서 기도를 해드리기 시작했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께서 제가 기도하는 문장의 끝마다 ‘아멘’ ‘아멘’ 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가다가 말년에 하나님을 믿었던 이어령 교수가 쓴 회고록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암투병을 하던 딸이 한국에 온다는 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한국에 오면 뭘 하고 싶니? 하고 싶은 것 다 들어줄게” 했는데, 의외로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그때 하용조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셨는데, 자신도 모르게 끝에 ‘아멘!’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나서 믿지도 않는 본인이 ‘아멘’이라고 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순간이 이어령 교수에게 있어서 믿음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우리 마음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딸의 병이 나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따라 했을 그 ‘아멘’을 비집고 들어오신 것이지요. 생명의 삶에서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고 싶어하는 의지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누군가 기도를 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 어느 한 대목에서라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하고 ‘아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의 마음 가운데 분명 그분의 역사를 만드시리라 믿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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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오늘 청소년 입교식을 하는데, 이때도 “당신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생명의 삶>의 목적 중 하나 역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입니다. 하지만 그 삶 공부에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못갑니까?” 이 질문은 성도님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드리는 질문이 아니라 성경이 이 부분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답은 의외로 “구원의 확신이 천국 가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세리와 바리새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리는 나는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며 하늘을 향해 기도도 못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바리새인은 확신에 차서 얘기합니다. “나는 금식도 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내고 저 세리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세리는 구원받았고, 구원의 확신이 분명했던 바리새인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 문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모든 문제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균형이 중요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만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확신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면,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부분에 대해서 예수 믿기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면 “내가 과연 구원받은 것이 맞나?”라고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아서 천국 갈 것인데 뭘 더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열심도 열정도 사라진다면 이것은 구원의 확신이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구원의 확신이라면 틀린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리가 가지고 있었던 “나의 부족함으로 인한 건강한 아픔과 두려움”을 늘 느껴야 합니다.

 

반대로 구원의 확신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 그것은 꼭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날 구원해주셨다는 것 때문에 감사가 넘치고, “이런 것까지 달라고 기도해도 되나?” 이런 생각 없이 하나님이 내 아빠라는 확신 때문에 무엇이든 구할 수 있고,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으니 찬양하게 되고, 나아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내가 확실하게 믿기에 이웃에게 분명하게 전할 수 있다면 그 구원의 확신은 맞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기 원하면 구원의 확신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손목사-

 


2025.10.25 19:24

수정하고, 보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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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차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신학특강, 여러 목사님들의 사례발표, 삶공부(저희 부부는 이번에 목자목녀의 삶을 들었습니다^^), 숙소에서 6명이 모여서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육겹줄 모임 등 시간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가득했습니다. 컨퍼런스 마지막 시간에는 보통 주최하는 초원의 한 목사님이 ‘도전의 시간’을 맡아서 메시지를 전해주시는데 이번에는 최영기 목사님께서 그 시간을 맡아주셨습니다. 지난 주에 81회 생신이셨는데, 그 연세에도 미주, 한국, 대양주, 여러 선교지를 다니시면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시는 것에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다른 일정이 있어서 부목사님들께 부탁한 녹음본으로 들은 강의였지만, 역시 최목사님의 말씀은 명불허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바로 가정교회의 가장 근본원리인 ‘성경대로’입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해 보려는 운동입니다.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중에는 “가정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라면, 우리 교회는 비성경적인 교회라는 말이냐?”하고 반발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성경대로’라는 말은 성경에 대한 단순한 이해와 단순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다니시는 성도들이라면 자주 들으시는 말씀인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 하면 아닌 줄 알고,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 단순한 성경 접근 방법”이 ‘성경대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경만을 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과 사역을 성경을 통해서 끊임없이 점검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수정하고, 놓친 것이 있으면 보충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많이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딱딱하기만 한 율법서(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읽을 때도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그 마음! 하나님이 무엇은 좋아하시고 무엇은 싫어하시는지, 무엇은 원하시고 무엇은 원하시지 않는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분들 중에서 가끔씩 내가 몇 독 했다는 것은 자랑하면서도 ‘성경대로’가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손목사-

 

2025.10.18 18:51

밥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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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밥이었습니다. 누가 요새 손님을 대접할 때 식당에서 밥을 사주지 집으로 초대를 하냐는 것입니다. 서너 식구 밥 하는 것도 아직 서툰 젊은 여성도들은 난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고, 나이가 지긋하신 여성도님들은 애들 다 키우고 이제야 주방에서 벗어났는데 내가 “이 나이에” 또 누구 밥을 해줘야 하냐고 난색을 표하셨습니다. 초대 목자목녀로 세워지신 분들에게 왜 우리가 목장으로 모였을 때 밥을 먹어야 하는지를 잘 말씀드려서 대부분 수용을 하셨는데 한 목장이 끝까지 밥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뜻대로 다과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그 목자목녀님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희 목장도 밥으로 하기로 지난 주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안했는데, 본인들이 느끼신 것이었습니다. 다과는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고, 김치찌개는 식구들과 함께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1년 동안 모이기는 열심히 모였는데 왜 다른 목장처럼 끈끈함이 없고 왜 모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한마디로 마지 못해 가는 목장이 되었을까, 그분들이 스스로 내린 결론은 우리가 함께 밥을 먹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밥의 힘이고 가정에서 모이는 힘입니다.

 

지난 주에 새가족반에서 한 성도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처음 만난 언니가 교회 가자고 했으면 거절했을텐데 가정집으로 가자고 해서 부담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바비큐를 한다고 해서 또 갔지요.” 오늘 세례식이 있습니다. 오늘 간증은 유례없이 노래로 하는 간증인데 성도님이 직접 쓰신 가사가 랩으로 속사포처럼 나오니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으시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처음의 시작은 ***집사님의 따뜻한 꼬심이 있었지. 행복한교회 밥이 정말 맛있다며 한번 먹으러 오라 그랬지~” 이것이 바로 식탁의 힘입니다. 김호경 교수는 그의 책 <예수의 식탁이야기>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불현듯 예수를 만났을 때 “예배는 빠지지 않았니? 설교 시간에 딴짓하지는 않았니? 헌금은 제대로 냈니?”와 같은 말을 들으면 슬플 것 같다. 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 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 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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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 추석은 장례(6일)-결혼(9일)-장례(11일/저 개인적인 일)로 기억되는 명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다릴 땐 길게 느껴졌던 연휴가 돌아보니 무척 짧았던 것 같습니다. 1년 중 마음은 급한데 힘은 떨어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목요일 교회에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한 형제에게 “언제 결혼할꺼야?”했더니 그 옆에 있던 저는 모르는 한 친구가 “와~명절 잔소리를 교회에서까지 듣게 되다니...”하고 말해서 제가 “아차~실수했구나” 생각했답니다. 이번 명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2040미혼 싱글 100명에게 <결혼을 고민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그 결과가 참 재밌었습니다. 저는 1위가 당연히 경제적인 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4위에 있었습니다.

 

6위는 “결혼한 친구들이 나에게 아내, 남편 험담을 많이 해서”(5.4%) 5위는 “시댁이나 처가 신경쓰기에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7.4%) 4위는 제가 1위일 것이라고 생각한 “모은 돈이 없어서”(13.8%) 3위는 “나같은 2세가 태어날까봐”(16.2%) 2위는 “결혼하고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 만날까봐”(24.2%) 1위는 “지금처럼 재밌게 못 놀 것 같아서”(32%). 이 앙케이트 결과를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소수의 대답으로 6위에 있기는 하지만, 저는 그 대답을 들으며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어떤 결혼생활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를 보고 내 아들 딸들이 “나도 크면 엄마 아빠처럼 행복한 가정 이루기 위해서 결혼해야지”라고 생각할는지 아니면 “엄마 아빠 보면 나는 커서 결혼같은 것은 절대 안할꺼야”라고 생각할는지^^

 

1위와 2위의 대답을 듣고서는, 요즘 미혼청년들의 “나 중심의 세계관”을 한번 더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결혼식 때 제가 말한대로 결혼은 약속인데, 이런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살림이 넉넉할 때나 가난할 때나, 조건없이 귀하게 여기고 배려하며....” 어떻게 보면 결혼식 때 늘 듣는 진부한 표현같지만, 이 약속은 내 남편, 내 아내를 나는 “평생 사랑”하며 살겠다는 것인데, 이 설문조사에서 많은 싱글들이 이것이 자신이 없어서 결혼을 고민한다는 것이 이 세대의 나 중심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혼 전 싱글들이 결혼을 고민하는 이유로 대답한 것들이 오히려 결혼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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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금요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해서인지 더 긴 연휴가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푹 쉬시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즐거워야 할 명절에 신앙문제 때문에 갈등이 있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갈등을 통해서 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과정을 뛰어 넘어야 한 집안과 가문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 가운데 힘들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무엇인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 일이 힘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일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일하든지, 아니면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일하지만 열매가 없을 때 힘듦을 느낍니다. 영혼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전도는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하다가 지쳐서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다시 한번 시도해보라고 하나님이 또 한번의 기회로 주시는 것이 명절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론에 설득당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명절에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전도한다는 생각에 ‘종교토론’을 벌이는 것은 정말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 때는 감동적인 섬김,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경우라면, 조금더 일찍 고향을 찾고, 조금더 오래 부모님과 형제들과 시간을 보내다 오시기 바랍니다. 명절 때는 부모님, 형제들과 같이 그 지역의 시골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해드리며 헌금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양촌제일목장이 섬기는 논산에 있는 양촌제일교회를 방문했는데, 올해 기도제목이 주일예배인원이 20명이 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물론 주일 한번이겠지만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찾은 시골교회가 명절만이라도 예배당에 성도들이 가득 차서 예배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도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명절에는 시댁에 좀더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시댁에 무조건 많은 비중을 두기보다는 더 연로하신 부모님 혹은 건강이 더 좋지 않으신 부모님이 계신 쪽에 비중을 더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양가 중 한쪽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들의 마음이 복음에 대해 열릴 수 있도록 그쪽에 조금 더 힘과 정성을 쏟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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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가정교회’ 한다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 한번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럼 “성경적인 교회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교회의 존재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애쓴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돕는 선한 사업에 힘쓰는 것도 교회가 할 일이라서 이번 명절에도 우리 교회는 반석마을, 송림마을의 어려운 이웃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기존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자 성경공부라든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 등을 비롯해서 많은 프로그램들을 돌리는데 애를 쓰는 것도 교회가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은 아닙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때 “왜 하는가?”를 질문해야 하는데 교회가 해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여러분과 함께 만 4년을 보내면서 느끼는 한 가지 감사가 있다면, 이제는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의 존재목적, 목장이 모이는 목적에 대한 이해가 점점 분명해지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VIP가 목장에 와서 영혼구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떠하든지 VIP와의 접촉점을 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어제도 싱글 목장 중에 한 목장이 VIP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교회 주방에서 몇 시간 동안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분주한 명절을 보내고 나면 이번 가을에는 목장마다 VIP들을 초대하는 이벤트를 마련해보심에 어떨까 생각합니다. 가까운 야외로 나가시는 것도 좋겠고, 교회로 초대해서 잔디마당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VIP가 하루 아침에 목장에 나오고 예수님 영접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 중에 VIP들을 자주 만날 기회를 주시고, 그 만남에서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가 우리 눈에 보이게 해 주세요. 그들에게 우리가 만날수록 좋은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나도 믿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해 주세요!”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조급하지 말라는 것이 관심을 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섬기고 적극적인 초청의 기회를 마련할 때 하나님도 그 기회를 사용하셔서 영혼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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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심당이 지난해 올린 매출액은 1,937억 원, 영업이익은 478억 원이었다. 한 도시에만 기반을 둔 제과 기업으로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비결이 뭘까? 회사 이름 성심(聖心)은 ‘예수님의 마음’이란 뜻이다. 성심당의 사훈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롬12:17)이다. 이 사훈은 1999년 가톨릭 영성 운동단체 ‘포콜라레’(뜻은 벽난로)의 지도자 끼아라 루빅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는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EoC)를 말하면서 기업이 사회적 가난에 적극 대응하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견인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성심당은 회사의 모든 의사 결정을 이 기준에 따라 숙고하여 결정했다. 인근 노점상들 쓰라고 수도꼭지 하나를 일부러 길가로 낸 것도, 새 매장 낼 때 인근에 혹시 타격 입을 가게가 없는지 먼저 살피는 것도, 유명 백화점이 서울 본점과 해외 지점에 좋은 조건으로 매장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굳이 사양한 것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겨야 한다’는 기준에 따른 것이다. 직원들 상당수가 하루 종일 흰색 파티시에 복장으로 일하는데 요즘 세탁 물량이 두 배 이상 많아져 다른 업체를 알아봐야 하지만 옛날부터 관계맺은 연로하신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그 세탁소를 이용했고 재작년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은 세탁소를 이어받아 성심당 세탁물을 계속 담당하고 있다. 성심당은 그 세탁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성심당이 붙든 것은 ‘관계’였다. 성심당이 끼아라 루빅의 ‘모두를 위한 경제’(EoC)를 경영 이념으로 받아들인 때는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1999년이었다.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의 원도심은 밑도 없이 쇠락하고 있었고, 사장의 동생이 벌인 프랜차이즈 사업은 부도가 나 수십억 원의 빚을 떠안았을 때였다. 당장 사업을 접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때 오히려 관계 지향의 사회적 경제를 회사의 정체성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일개 지역 빵집 브랜드가 대기업의 경영 실적을 일부 넘어섰다는 사실은 놀랍기는 하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느냐이다. 성심당은 ‘부’가 아니라 ‘관계’를 축적해서 오늘날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성심당의 실천이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EoC의 권위자인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의 철학과 경영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생겨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장담한 적이 있다. 요컨대 성심당은 그 자체가 ‘관계의 축적을 통한 사회개혁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작가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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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 수양회 일정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금요일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포에버 어르신들과 점심을 같이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는 3박5일 일정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는 날 못자고, 오는 날 못자는 일정이라서 돌아오는 모습은 난민(^^)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한국이 가을날씨가 시작될 때 무덥고 습한 곳으로 떠났던 기가 막힌 일정이었습니다. 하하^^ 노회라는 것은 지역에 있는 같은 교단에 속한 교회들의 연합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희 교회가 속한 노회는 ‘서대전노회’인데 그리 큰 노회가 아님에도 90개가 넘는 교회가 노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1년에 두 차례 정기모임이 있음에도 서로가 잘 모릅니다. 이번에도 저는 모르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셋째날인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처음 뵙는 목사님이 저희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네는 한번도 안 싸우죠?”

 

갑작스런 질문에 살짝 당황했지만 사실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는데, 그날 그럼 우리가 왜 싸운 적이 없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사랑이 아니라, 한 의자에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이라고. 꿈이 같으니까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침대에 누우면 오늘 겪었던 일, 생각했던 일들을 다 얘기하고 싶은데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되니까 절제하고 잠을 청합니다.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상대가 채워주니 정말 고마워서 안 싸우는 것 같습니다. 저를 조금 아시는 분들은 제가 참 허당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돈 계산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34명의 해외여행 회계를 맡았으니 그 부담감에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그 부분을 아내가 잘 커버해주어서 많은 목사님들에게 이렇게 꼼꼼하게 하니 다음 번에 한번 더 해달라고 칭찬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 약점을 채워주는 존재이니 아내는 싸울 대상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대상입니다. 셋째는 결혼할 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로맨스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실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서로 아껴주기로, 싸우지 않기로, 존중하며 살기로 결혼식 때 한 그 약속! 하나님과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순간순간 생각하니까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다 넘어가게 되면서 싸우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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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명의 삶과 말씀의 삶이 개강함으로 하반기 삶공부가 시작됩니다. 계속해서 확신의 삶, 생명언어의 삶, 일터의 삶, 감사의 삶이 개강이 될 것입니다. 신청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반기에는 삶공부 참여율이 37%였는데, 이번 하반기에는 17%라서 조금은 아쉽습니다. 상반기에 막강했던 싱글들의 파워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개설된 삶공부를 다하셔서 더 들을 것이 없으신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에게 삶공부를 권면하면 못 하신다고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삶공부를 시작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목자목녀 사역을 권면하는 경우에도 같은 말을 듣습니다. 아직은 그런 사역을 시작하기에 자기 자신이나 가정의 상황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생각을 오래 하는 사람이 있고, 행동부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 있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생각을 오래 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다가 마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행동부터 하는 사람은 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나 당황하거나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 경우 다 문제가 있다면, 후자를 선택하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만, 준비하는 그 자체가 이미 시작한 것이고, 그렇게 먼저 시작을 해봐야지 그 일에 뭐가 더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고, 또 우리는 나중에 해서 후회하기보다 안 해서 후회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꼭 교회 사역뿐만이 아닙니다. 2025년이 반이 훌쩍 넘어서 이제 올해도 딱 4달이 남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올해 계획한 것 중에 혹시 아직도 계획 중, 생각 중인 것이 있지는 않으신지요? 너무 생각만하고 준비만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시진 않았는지요? 정호승씨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영화 ‘아비정전’으로 유명한 홍콩의 영화감독 왕저웨이에게, 한 기자가 ‘왜 좀 더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촬영을 시작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매번 완성된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왕 감독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라는 것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 맘에 우러나와서 진심으로 사랑할 때를 기다리다가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도 사랑하거나 섬겨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완성을 기대하시지 않습니다. 시도했다, 애썼다는 것에 점수를 주십니다. 그리고 실수해도 일단 해보면서 성장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완벽한 때는 오지 않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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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은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한 라틴어인데,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잠언을 읽어보라고 합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과거지향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입니다. 과거의 일을 잘 살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지혜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단 1초 뒤라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완벽히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진짜 지혜는 시선을 미래에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이 이 뜻일 것 같은데, 이것이 전도서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잠언이 말하는 것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물론 지혜이지만, 사실 그런 삶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준비해야 미래를 걱정 없이 살 수 있는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면서, 주신 의식주에 감사하면서,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면 잠언과는 달리 전도서는 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을 할까요? 그 이유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에 있습니다. 이 문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전도서의 유명한 구절인 12:1절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이 구절은 보통 “청년들이여! 청년의 때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라!”는 설교주제로 많이 쓰이는데, 사실 문맥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들이 전부 죽음을 나타내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2:5절은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그런 말들을 한 후에 1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그러니 무엇을 기억하라는 말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전도서가 말하는 ‘헛되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갈 정도로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입김처럼 짧은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태도를 보이며, 어떤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겠냐는 것입니다. 은혁형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귀중한 이 진리와 교훈을 주고 떠났습니다. 제 카톡 프로필 사진 싱글수련회 단체 사진 속에서 여전히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은혁이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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