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3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4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그를 통하여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믿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 차례의 선교여행을 통해 로마 동쪽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최종적인 선교 목표는 로마와 더 나아가 스페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아 서쪽으로 복음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로마서가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복음’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 복음은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와 관련하여 사용되던 익숙한 표현이었습니다. 특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살아 있을 때부터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으며, 그의 탄생을 ‘온 세상을 위한 복음의 시작’이라고 표현하는 비문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바울은 황제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제국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황제의 복음이 말하는 평화의(팍스 로마나) 중심에는 힘과 정복, 명예와 돈, 복수와 지배가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남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가 힘과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삶의 방향 자체가 다릅니다. 황제의 복음의 중심에 칼과 힘이 있다면, 하나님의 복음의 중심에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있습니다. 성도의 목표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공과 힘을 주셨다면 그것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음을 따라 사는 삶의 핵심적인 열매 가운데 하나는 용서와 용납입니다.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성도가 가져야 하는 것은 ‘영적 부채의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 받으며”(롬15:7)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평생 전하며 산 이유는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믿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렇다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단순히 지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인정하는 것이나, 감정적으로 감동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제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설교 중에 말씀드린 외줄타기 곡예사 예화처럼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바로 예수님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이 가시는 길을 함께 걷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이라는 말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이라면 집중해서 듣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순종이란,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좁은 길이라도 걸어가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목적은 단순히 구원받고 복음을 아는 데 머물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순종’을 이루게 하려는 것입니다. 황제의 복음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성도는 힘으로 군림하기보다 사랑하고, 복수하기보다 용서하며, 자신을 높이기보다 섬겨야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따라 살아가며,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삶으로 실천하는 믿음의 순종을 이루며 살아가 봅시다. 그것이 황제의 복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은 “나는 빚진 자”(롬1:14)임으로 “서로 받아주며”(롬15:7) 사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을 듣고 내가 여전히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났다면, (1)왜 그 사람을 받아주기가 힘이 드나요? (2)내가 그 사람의 입장(그의 현재상황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이 된다면 나는 어떨 것 같은가요? (3)주님께서 “네가 그 사람을 받아주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너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하신다면 나는 내 행복을 위해서라도 무엇을 어떻게 하기로 결심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