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하박국이 살던 시대는 남유다의 성군 요시야 왕이 전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폭군 여호야김이 통치하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율법이 해이해져 정의가 왜곡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강포’가 가득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신흥 강국 바벨론이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유다를 위협하던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언자로 부름받은 하박국은 종종 ‘의심의 선지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당시 유다 사회의 부조리를 납득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정직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의심의 뿌리는 믿음입니다. 성경은 질문과 의심을 꾸짖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심และ 질문을 거친 단단한 믿음을 가질 것을 요청합니다.
그의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 어찌하여 불의와 강포를 보고만 계십니까?”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악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바벨론을 일으키겠다”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대답은 당연히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어떻게 우리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도구로 써서 우리를 치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결국 그 바벨론은 망할 것이고 너희는 회복될 것이다!!”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은 ‘껴안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그의 탄식과 호소는 개인적인 원망이 아니라, 망가져 가는 공동체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시대의 예언자로 산다는 것은 타인의 통증과 시대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않고,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는 ‘공감의 영성’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역시 심판의 도구일 뿐이며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하박국의 태도가 바뀝니다. 질문에서 기도로, 불평에서 찬양으로 바뀝니다. 물론 이 말씀을 들었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즉시 사라지는 ‘해결’보다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오해가 풀리고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는 ‘해소’의 과정입니다.
기도는 내 요구를 쏟아놓는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답을 듣기 위해 망대에 올라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늦는 법이 없으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하박국은 결국 하나님의 ‘큰 그림’(심판을 통한 회복)을 신뢰하기로 합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드릴 제사(예배)마저 중단될 위기 속에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복잡한 질문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결국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1)하박국이 자기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사회를 보고 탄식한 것처럼, 요즘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이웃이나 공동체, 혹은 VIP의 아픔은 무엇인지, 그 통증에 공감하며 기도하기 시작한 일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현재 내 삶에서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혹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입니까? 하박국처럼 망대 위에 올라가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며 기도로 나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3)지금 내 삶에서 ‘무화과나무 열매’나 ‘외양간의 소’처럼 그것이 “없어서/부족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결핍은 무엇이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기 위해 내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고백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말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