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과 같은 진정한 왕이 오시기를 대망하며 끝이 납니다. 400년이라는 영적 암흑기 끝에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시작됩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자주 그리면서 왕의 탄생, 왕의 교훈(산상수훈), 왕의 나라(비유), 왕의 백성(교회), 그리고 왕의 명령(지상명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주님이 일보다 사람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엘리트가 아닌 갈릴리 해변의 어부들과 세리 마태와 같은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즉 제자의 자격이 ‘조건’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에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버림과 따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회개하면 천국이 임한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처럼 “버림과 따름”을 통하여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고, 그럴 때 진정한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유명한 산상수훈이 시작됩니다. 즉 산상수훈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버리고 따르면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좇던 회심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상수훈에는 구원받은 제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반전의 가치관’이 담겨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세상 가치를 뒤집는 반전의 삶이 성도의 정체성임을 보여줍니다. 팔복만 보더라도 세상의 기준과는 정반대인 “심령의 가난, 애통, 박해”를 복으로 선포합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복은 가치관과 행동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아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목표로 첫째,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을 버리고, 겉과 속이 일치하는 투명한 삶, 가식의 삶이 아니라 가시성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예수가 보이는 삶이 가장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전도입니다. 둘째, 돈(맘몬: 돈신)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헌금은 내가 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임을 선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셋째, 비판 대신 긍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타인의 티를 보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비판이 당연한 세상에서 서로를 기다려주고 섬기는 삶이 바로 소금과 빛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닮은 온전함”이라는 신앙생활의 목적 아래서 (1)대신관계에서는 가식하는 삶이 아니라 가시성있는 삶을, (2)대물관계에서는 염려를 중단하고 더 나아가 염려의 방향을 바꾸는 삶을, (3)대인관계에서는 비판의 대상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고 기다려주는 삶을 목표로 삼고 나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더욱 의미있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1)나의 삶 중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오직 하나님만 보고 계시는 영역(예: 인터넷 사용 습관, 혼자 있을 때의 생각, 돈을 쓰는 방식 등)에서 나는 얼마나 투명합니까? 그 영역에서 가식을 버리고 “가시성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번 주에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2)나는 현재 무엇을 쌓아두는 데 집중하고 있는지,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염려는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그 염려를 ‘거룩한 염려’로 바꾸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말해 봅시다. 3)내 마음속에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대상이 있나요? 그를 긍휼히 여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를 비판의 대상에서 기도의 대상으로 바꾸려고 할 때 오늘 내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기도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