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2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10:18-19]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9 그룹들이 내가 보는 데서 날개를 펴고 땅에서 떠올라 가는데, 그들이 떠날 때에,바퀴들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 그룹들은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무르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머물렀다.
유배지에서 부름받은 예언자 에스겔은 주전 597년 바벨론의 1차 침공 당시, 여호야긴 왕과 함께 포로로 잡혀간 제사장 가문 출신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 약 10년 전부터 바벨론 그발강 근처의 유배지에서 사로잡힌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에스겔서는 난해한 환상이 많아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예언자의 치열한 신앙과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과 포로로 잡혀 온 자들 모두에게는 강력한 신념이 있었는데 다윗 언약, 선민사상, 그리고 성전 신학, 이 3가지에 근거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결코 파괴될 수 없으며, 선택받은 백성인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시온불패’ ‘성전불패’에 빠져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 성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지만, 선택받은 특권에는 항상 그에 합당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배지에 있던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내부의 타락한 실상을 보여주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일상에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불의와 부정직함 속에서 살면서도 안식일에 성전에 와서 제사만 드리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을 죄를 세탁하고 신분을 세탁하는 ‘종교적 도피처’이자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와 함께하실 수 없기에, 성전의 중심인 지성소를 떠나 성전 문지방으로, 이어 성전 동문으로, 마침내는 성읍 동쪽 산으로 점점 영광을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 장면을 기록하는데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우리 눈에 띕니다. 곧 ‘머물고’라는 단어입니다.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의 발걸음은 느리십니다. 그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십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시는 듯 머뭇거리십니다. 가다가 머무시고 또 머무십니다. 유다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지는 않을까, 이 성전이 다시금 참된 예배로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렇게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은 멈추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을 피상적으로 읽으면 그 주제가 하나님의 심판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살리시려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당신의 백성이 한 명이라도 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절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수많은 제물이나 화려한 예배 형식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정직과 이웃 사랑,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특권에 안주하여 성전을 도피처로 삼았던 유다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에 계속 머무실 수 있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정결한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나의 예배가 혹시 불순종이나 죄를 묵인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일상에서의 정직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내 삶에서 변화되어야 할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거나 영적으로 무뎌져 있을 때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머뭇거리며 기다려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3)선택받은 특권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이 나에게 영적 교만이 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보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