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주일설교/열왕기상11:1-4/유혹 앞에, 세월 앞에, 설마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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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로몬 왕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하였다. 이집트의 바로의 딸 말고도,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과 에돔 사람과 시돈 사람과 헷 사람에게서, 많은 외국 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2 주님께서 일찍이 이 여러 민족을 두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경고하신 일이 있다. "너희는 그들과 결혼을 하고자 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청혼하여 오더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분명히 그들은 너희의 마음을, 그들이 믿는 신에게로 기울어지게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외국 여자들을 좋아하였으므로,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다. 3 그는 자그마치 칠백 명의 후궁과 삼백 명의 첩을 두었는데,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 솔로몬이 늙으니, 그 아내들이 솔로몬을 꾀어서,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의 주 하나님께 그의 아버지 다윗만큼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
역사 기록에는 기록자의 관점(史觀)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열왕기’는 이스라엘 왕조의 흥망성쇠를 정치적, 경제적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했느냐’라는 신앙적 관점으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은 정치적으로 유능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는 한 줄 평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열왕기서에 등장하는 40명의 왕 중 38명이 악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하나님의 평가가 가장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솔로몬 왕의 시대는 겉보기에는 화려했습니다. 아프리카 스바의 여왕이 찾아와 그의 지혜를 찬양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스바 여왕의 칭찬과 찬양 이면에는 “이 지혜와 업적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잊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해마다 666달란트(약20톤)의 금을 세금으로 거둬들였는데, 이것 가지고 애굽의 병거들을 사는 등 군사력을 키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용이 아닌 과시용 금 방패를 만드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평안과 풍요는 ‘헤벨(입김/수증기)’처럼 금방 사라지는 불안한 풍요일 뿐입니다. 실제로 솔로몬 사후, 그 화려했던 금 방패들은 애굽 왕에게 모두 빼앗기고 놋 방패로 대체되었습니다.
신명기 17장에는 왕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병마, 아내, 은금)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조금씩, 나중에는 대담하게 이 모든 명령들을 어겼습니다. 특히 솔로몬은 유혹 앞에 무너졌는데, 1,000명의 여인을 둔 정략결혼은 단순히 여인을 사랑한 것을 넘어, 그들이 가져온 이방 신과 우상숭배를 예루살렘 성읍까지 들여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솔로몬은 또한 세월 앞에 무너졌습니다. 성경기자는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라는 표현을 쓰면서 세월 앞에 무너지는 솔로몬을 기록합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의 유언인 “대장부가 되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는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과거의 헌신이 아니라 ‘지금’의 충성이 중요합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영적 타성에 젖지 않도록,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청년’으로 초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설마’ 앞에 무너졌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지만 “설마 그 말이 실제가 되겠느냐?”며 가볍게 여겼습니다. 말씀을 소홀히 하고 현실의 실리와 판단을 앞세울 때 영적 감수성은 무뎌집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솔로몬에게 결국 하나님도 등을 돌리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게 등을 돌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외부의 대적을 없애달라고 구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불순종이라는 대적과 먼저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유혹과 세월, 안일함(설마) 앞에 넘어지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하나님 없는 불안한 풍요: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만의 금방패”는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2)붙들어야 할 신앙의 초심: 나는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나 직분을 맡았을 때의 초심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떨쳐버려야 할 신앙적 안일함: 나의 영적 감수성을 무디게 만드는 ‘설마’ 하는 마음이나 세상과의 타협점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진짜 대적과 싸우기 위해 내가 해야 할 노력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