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주일설교/예레미야 42:4-6/들어야 복을 받습니다!)
4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5 그들도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였다. "우리는 주님께서 예언자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시는 말씀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6 그분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11년(BC 587) 마침내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보는 자리에서 귀족들 뿐만 아니라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처형했고, 그 모습을 다 보게 한 후, 시드기야의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가운데 예레미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를 좋게 보아서 그가 원하는대로 해 주겠다고 했고, 예레미야는 조국에 남는 쪽을 선택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이제 독립된 나라라기 보다는 바벨론 제국의 한 지방이 된 유다를 자기 입맛에 맞게 이끌어 줄 사람으로 토착민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어려운 자리였지만, 그다랴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망하기 전에 다른 나라로 피신해 있던 백성들이 그다랴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이스마엘이라는 왕족이 그다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그를 암살합니다. 잿더미 속에서 가느다랗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한줄기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다랴를 죽인 이스마엘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평범한 70명의 순례객들까지 무참히 죽인 후에 자기를 후원해주는 암몬 왕에게 남은 백성들을 데리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군부의 실세인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추격하여 백성들을 구했고, 이스마엘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면서 암몬으로 도망갑니다.
유다는 이제 그다랴의 시대에서 이스마엘의 정변을 거쳐 요하난이 백성들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부상을 합니다. 요하난은 현실 정치에 능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유다땅에서 계속 사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라고 판단하여 백성들을 이끌로 애굽으로 피신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피난 길에 요하난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부탁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겠다고 맹세하지만, 열흘 뒤에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대 땅에 머무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가 전해주자 예레미야를 거짓선지자로 몰아붙이며 기어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 후부터 유다인들은 애굽에 거주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합니다.
오늘 설교의 서두는 “예루살렘은 망해도 하나님의 역사는 망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졌다”라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칼이 무뎌지면 숫돌에 갈 듯이 영적으로 민감해야 할 성도들이 무뎌질 때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숫돌에 우리를 올려 놓으십니다.
신자의 안전은 조건이 좋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그분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고난의 순간에는 감사할 “수많은 이유가 되어” 노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향해서 “송축하라 왕되신 주님을 송축하라!”고 외치게 됩니다. 신자에게는 고난마저도 은총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묵상해 본다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그들은 지독하게 안 듣는다는 것입니다. 작정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몸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몸이 기울여져야 제대로 들립니다(경청傾聽). 하나님은 그들과 이야기하시려고 친히 몸을 기울이시는데 그들은 한번도 자신들의 몸을 기울이는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내 뜻을 향해서 기울어진 몸을 이제는 하나님 뜻 쪽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야 약속된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연습될 때 우리는 사람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기울이면 들립니다. 들리면 관계가 풍성해집니다. 그게 복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복이 아니라 관계가 풍성해지는 것이 복입니다.
고난(苦難): 고난을 겪으며 이전에 내게 없었던 감사와 노래가 생겼다면 어떤 것인지 나눠 봅시다. 경청(傾聽): 설교시간 중, 혹은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내가 몸을 기울이는 구체적인 모습을 말해봅시다.(예:메모, 말씀기도문 쓰기 등). 상대방과의 대화 중에서 나는 어떻게 나를 기울입니까?(참고: 행복한 삶 4과 소통을 위한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