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노회 교역자 부부 수양회를 제주에서 가졌습니다. 도착한 날 처음 일정으로 제주 극동방송을 방문했습니다. 극동방송국은 대전에서도 설교 녹음을 위해서 자주 찾는 곳이기 때문에 친숙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송국 견학이라는 것이 뭘 그리 특별한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원분의 안내로 탐방을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분의 설명에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사실 극동방송을 작게나마 섬기면서도 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습니다. 원래 극동방송(FEBC: Far East Broadcasting Company)은 그 이름대로 1945년 미국에서 "전파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전한다"는 비전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 전초기지로 선정된 곳이 당시는 미국령이었던 일본의 오키나와였습니다. 하지만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되면서 종교 방송이 금지될 위기에 처했고, 이때 일본 FEBC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윌킨스 선교사님의 눈에, 전파가 북한과 중국까지 가장 잘 뻗어 나가는 최적의 입지인 제주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처럼 선교사님은 척박한 제주 땅에서 방송국을 건립하기 위해 온 힘을 쏟다가 개국을 2년 앞두고 과로로 쓰러져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극동방송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하는 북한과 공산권 영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사진 한 장과 함께 이런 설명도 들었습니다. 2012년, 한 선교사님을 통해 북한 지하교회 성도가 보낸 중국 돈 500위안이 방송국에 전달된 일도 있다고 합니다. 당시 제주 극동방송은 노후된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모금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방송을 한 북한 주민이 듣고 헌금을 보낸 것입니다. 500위안은 당시 한화로 10만원 정도가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북한 주민의 6개월 치 생활비에 달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이런 큰 돈을 북한 성도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위험을 무릅쓰고 보냈던 것입니다.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 중에는 방송을 들으며 몰래 받아 적은 신앙 노트나 순교를 각오하고 자신의 실명과 직업(군인도 있었습니다)까지 공개하면서 보낸 편지도 있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견학의 마지막 순서로 들어간 곳은 어둡게 꾸며진 방이었는데 북한의 지하교회 모임장소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수단인 라디오, 중간에 홈이 파져 있는 나무 막대기들! 혼자서 갖고 있으면 의심을 받지 않지만, 만날 때 서로 맞추면 나무 십자가가 되는. 너무 편한 환경에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가 부끄러워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에 감사와 결단이 있는 참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손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