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희 가정도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오시고, 결혼한 큰 아들네도 강릉 처가를 들려 내려와서 처음으로 며느리와 함께 보내는 명절을 경험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설 당일에 그리고 연휴 다음날에 장례가 있었습니다. 92세 되신 아버님과 86세 되신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며칠 아프시고 돌아가셔서 가족들의 상심이 더 크셨습니다. 명절에 장례를 치르다 보니 재작년 추석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버지가 매일매일 생각나는 건 아닙니다. 그게 자식인 것 같습니다. 배우자나 자식이 먼저 떠나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생각이 날 텐데 부모님은 먼저 가시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리사랑만 받아먹는 철없음이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아서인지 돌아가신 그때만 슬플 뿐 다시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넉 달 전에 어머님을 여의시고 이번에 아버님 상을 당하신 집사님 말씀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은 “불현듯”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냥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와 뵙고 싶은 것, 정말 “불현듯”이란 말이 딱 맞습니다.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의 가방을 사러 갔습니다. 벌써 고등학생이 되어 아빠 키를 훌쩍 넘긴 막둥이의 가방을 고르며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새 학년을 맞는 아들을 위해 난 가방 하나 달랑 사주는 것만 할 뿐인데, 그 시절 아버지는 바로 이번 주간, 옛날에는 2월 마지막 주간이 봄방학이었고 봄방학을 하는 날, 우리들은 새 학년 책들을 가방에 잔뜩 받아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아버지는 누나와 나의 교과서를 싸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달력이 귀한데 그때는 연말에 여기저기서 달력이 많이 들어왔고 아버지는 그 달력들을 모아두었다가 저희 남매의 책을 싸주셨습니다. 책을 다 싸신 후에는 하얀 달력종이가 때가 탈까 봐 아버지는 문방구에 가서 비닐 몇 마를 끊어 오셔서 또 한번 재작업을 하셨습니다. 제가 4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갔다 오시면서 일제(^^) 연필깎이를 사 오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누나와 저의 필통 속에 그날 수업에서 쓰기에 충분할 만큼의 뾰족한 연필들이 항상 있게 해주셨습니다. 막내의 책상에 놓여진 새 필통을 보면서도 또 그렇게 아버지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그렇게 자상하셨던 아버지와의 추억은 모든 것이 감사하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믿음을 물려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인생이라는 것, 교회를 섬기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아버지! 새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한주였습니다. -손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