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가 헌신대에 한 어르신이 나오셨습니다. 그 옆으로는 따님 되시는 집사님이, 그리고 그 뒤로는 목장 식구들이 앉으셨습니다. 아버님은 연세가 많으셨는데 이번에 편찮으셔서 유성 선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폐렴이 회복되시고 퇴원하시면서 집으로(제 기억으로는 전남이셨던 것 같습니다) 가시기 전에 교회를 들려서 예배를 드리신 것입니다. 집사님은 중보기도실에 아버님을 위한 기도제목을 올리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버님께서 먼저 따님과 목장식구들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고 헌신대에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제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소년같은 귀여움까지(^^) 있는 얼굴이셨습니다. 제 마음이 먼저 열리면서 기도를 해드리기 시작했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께서 제가 기도하는 문장의 끝마다 ‘아멘’ ‘아멘’ 하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가다가 말년에 하나님을 믿었던 이어령 교수가 쓴 회고록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암투병을 하던 딸이 한국에 온다는 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한국에 오면 뭘 하고 싶니? 하고 싶은 것 다 들어줄게” 했는데, 의외로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그때 하용조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셨는데, 자신도 모르게 끝에 ‘아멘!’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나서 믿지도 않는 본인이 ‘아멘’이라고 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순간이 이어령 교수에게 있어서 믿음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우리 마음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딸의 병이 나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따라 했을 그 ‘아멘’을 비집고 들어오신 것이지요. 생명의 삶에서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받고 싶어하는 의지보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누군가 기도를 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찬양대가 찬양을 할 때 어느 한 대목에서라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하고 ‘아멘!’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의 마음 가운데 분명 그분의 역사를 만드시리라 믿습니다. -손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