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왜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을까요? 그 금신상이 하나님보다 소중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걸 반대로 해서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가치를 두는 것이 있다면 그게 우리 금신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가치를 두는 그것들이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그런 것들은 성공, 사랑, 돈, 사회적 지위, 성취, 건강, 가정, 이런 것들일텐데 그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것이 궁극적인 것으로 바뀌는 순간, 즉 “난 그거 없으면 못 살아!”가 되는 순간 그것이 내 금신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생각해봅시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내게 저 사람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주신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많이 주셨다면 그것은 남을 도우라고 주신 사명이니까 써야 합니다. 그때 나에게는 돈이 금신상이 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성도 중에 한 분이 부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언제 새벽이나 수요일날 설교하실 기회가 되면 이것 한번 성도들에게 말해주세요” “뭔데요?” “예배 시간에 핸드폰으로 비트코인이나 주식 좀 보지 말라고 해 주세요.” 회사원들이 직장 가서 일하면서 틈틈이 주식 들여다본다는 말은 들었지만, 성도들이 예배시간까지 그러는 분들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성도님이 그런 모습들을 자주 보셨나봐요. 그런 분들에게는 이미 돈이 좋은 것이 아닌, 금신상이 된 거예요. 액수가 문제가 아니예요. 우리는 돈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돈에 절하는 사람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이 내 마음의 금신상이 된 거지요. 돈은 대표적인 우상이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돈을 맘몬(돈신)이라고 하셨던 거지요.
여러분, 돈은 많든 적든 우리의 금신상이 되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어요. 왜냐하면 돈은 우리를 두 가지 방향에서 지배하기 때문인데, 돈이 많으면 돈은 욕심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고, 돈이 없으면 돈은 염려와 불안을 통해 우리를 지배해요. 즉 어떻게든 더 벌고 싶은 욕심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탐심이고, ‘나 이렇게 돈이 없어서 어떡하나, 더 아껴야 해’ 그러면서 남을 위해서 돈 쓰는 것에 과도하게 인색한 것도 탐심이예요.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돈에 대한 가치관은 청년 때에 정립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훈련을 목장에서부터 하기를 원합니다. 알바를 해서 번 소중한 돈을 가지고 목장모임 간식으로 과자를 사 가지고 가는 지체를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청년은 돈이라는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훈련을 이 순간도 하고 있구나” 제가 말하는 순교적 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손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