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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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1일 주일설교/마태복음 1:1~2,16/족보 속에 감추어진 크리스마스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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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2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 |
마태가 예수님에 관한 책을 한 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는 예수님과 함께 직접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쓰는데,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예수님은 이런 분이었어요!”라고 써도 이 얘기를 “옛날 옛날에~~” 이런 식으로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옛날이야기는 재미만 있으면 됩니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역사 속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자신이 쓰는 예수님 얘기가 그저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만족시켜주는 “옛날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첫 장에 족보를 써 놓은 것입니다. 읽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할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는 예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근거가 분명한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충고의 종교가 아니라 소식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도 아닙니다. ‘지성이면 감천’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지옥으로 갈 운명인 당신이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라는 복음을 전해주는 소식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 족보를 쓸 때 세상의 상식을 벗어납니다. 고대 시대의 족보는 현대의 이력서와 흡사합니다. 우리가 이력서를 쓸 때, 나에게 불리한 것은 굳이 쓰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도록 오히려 부풀리기도 합니다. 고대 시대의 족보가 이와 같았습니다. “내 조상들 중에는 이렇게 유명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분들의 후손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자랑하는 용도로 쓰이던 것이 바로 족보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조상들 중에 부끄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족보에서 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태는 예수님에 관한 족보를 쓰면서 완전히 반대로 했습니다.
먼저, 마태가 쓴 족보에는 여자들이 나옵니다. 그것도 5명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즉 마태는 당시 성적으로 소외된 여인들과 인종적으로 소외된 이방인들을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시켰습니다.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는 기록하기를,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은 그 어머니가 ‘우리야의 아내’라고 말합니다. 우리야는 다윗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한 30인 용사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솔로몬을 낳은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누구라도 숨기고 싶은 이 얘기를 굳이 꺼낸 마태의 의도가 점점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세상 말로 하면 지저분합니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 흠이 많습니다. 성적으로, 인종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방금 이야기한 도덕적인 일탈까지! 그런데 그런 족보들이 쭉 이어지면서 마지막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드디어 성탄의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즉 마태가 선포하고 싶었던 성탄복음은 이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에서 제외될 조건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습니다! 유대인이든 그 외의 민족이든 상관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을 다 그분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족보에 감추어진 크리스마스 복음입니다. 이같이 인류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신 분, 아니 가장 좋은 소식 자체가 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라기는 이 예수님의 오심에 기쁨을 넘어선 경배로 반응하는 이번 성탄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vs.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마태의 족보 속에 감추어진 성탄 복음은 우리에게 이것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목원들과도 나눠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