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4월9일 주일설교/마가복음16:1-8/부활절 복음)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나 하더라 |
예수님의 무덤에 가려고 마음을 먹은 여인들은 새벽에 집을 나섰는데 너무 서두르다 보니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서로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덤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 걱정이 괜한 기우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의 걱정과 염려와 근심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성경이 거듭해서 말하는 것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만 했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참 감사하며 예수님을 위대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분을 믿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믿을 수 없으니 여전히 내 삶은 내가 걱정하고 내가 염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세상의 종교 창시자들은 다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필요하고 유익한 말씀들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교는 인간의 마음에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나의 미래를 나도 모르고 그 종교 창시자들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사람은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죽음까지도 정복하신 예수님인데 그분이 나의 염려, 그것 하나 책임져 주시지 못할까~’ 하는 담대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번째 부활절 복음입니다.
무덤에 들어간 여인들은 청년으로 보이는 천사에게서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갈릴리! 예수님을 만나 꿈을 키웠던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절망의 발걸음으로 그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여인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것은, 가서 다시 예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들어야 할 두번째 부활절 복음입니다. 성도의 인생은 주님을 기대함으로 일어나는 선순환 인생입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 주님처럼 내 삶에도 주님이 언제나 나보다 먼저 가시면서 나를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기대할 때 성도의 인생은 내 능력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서 노력과 결과는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삶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주님께 충성하며 과정에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 내 삶에 부어주시는 플러스 알파로 인해 내 능력 이상의 일이 되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성도의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천사의 말을 들었지만 여인들은 너무 놀라고 떨려서 도망하였습니다. (고대 사본으로 갈수록) 마가복음은 이같은 미완의 결말로 끝납니다. 이런 결말을 통해서 마가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본 여인들은 너무 무섭고 놀라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들 대신에 누가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할 것입니까?”
부활의 복음은 내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9장은 내가 써야 하는 것처럼 마가복음 16:9절부터는 내가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부활절 복음입니다. 바라기는 2023년 부활절 복음으로 주신 위로와 권면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한 주도 승리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지난 한 주간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므로 “줄어든 염려”가 있다면 나눠 봅시다.
☺내가 “돌아가야 할 갈릴리”(주님과의 첫사랑)는 어떤 부분인지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