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목장
> 연합목장 > 목회자칼럼
목회자칼럼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월 첫 주일부터 쉼 없이 달려온 <생명의 삶>이 드디어 오늘 수료식을 합니다. 생명의 삶을 두 번 하면 일년이 가는구나~ 할 정도로 가정교회에서 생명의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오늘 칼럼의 제목은 눈치 채셨겠지만 30년도 더 전인 19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34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 목사님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패러디해본 것입니다. 생명의 삶은 배워볼수록 그 안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 삶공부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가장 먼저 생명의 삶을 듣지 않고는 다른 삶공부를 수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24기 생명의 삶도 34명이 수료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처음 들으시는 분들도 있고, 이미 들으셨지만 다시 한번 수강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부목사님과 함께 가정교회 일일특강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사는 최영기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기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부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다 아시는 것일텐데 뭘 그렇게 적으세요?” 맞습니다. 저는 이미 최목사님이 일일특강에서 다루시는 내용을 목사님으로부터 서너번도 더 들은 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흡수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을 이번에 또 들으신 분들도 마지막 시간에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다고,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생명의 삶임에도 늘 수강하시는 분들이 아쉬워했던 것은 강의를 듣는 반원들끼리의 교제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르쳐드릴 내용이 너무 많다보니 교제 시간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기수부터는 결단을 하고서 강의 내용을 좀 줄이더라도 중간에 조별모임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이 정말 신의 한 수? 아니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습니다. 이번에도 5명씩 7조로 나누어서 조별나눔을 가졌습니다. 목양실까지 나눔 장소가 되는 바람에 저는 그 시간에 1층 로비에 가서 앉아 있어야 했지만, 반원들이 그 시간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저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한 시간이 끝나서 오늘 저녁부터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입니다 하하^^ -손목사-

 


2025.07.19 16:04

휴가다운 휴가

조회 수 24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이러니칼한 일이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편입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 우리에게는 자기 관점에서만 사물이나 사건을 보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살기에 바빠서 자기를 돌아볼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을 며칠이라도 탈피하는 것이 휴가라서, 그런 시간동안 자신을 살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벌써 ‘이번 여름휴가는 어딜가지?’ 인터넷을 검색하며 평소보다 더 바쁘고 분주하고 복잡한 일정을 계획합니다. 그래서 월요일 증후군처럼 휴가 후유증을 앓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바쁜 일상을 살아가지만, 생이 끝날 때쯤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은 조금은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생을 잘 살았나?> <하나님 앞에 가면 뭐라고 하실까?> 요즘은 매일 요한계시록을 묵상하고 있어서인지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올 가을은 성도님들 자녀 결혼식이 여섯 가정이나 있습니다. 저는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에게 과제를 내 줄 때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적어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몇 살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결혼 전후의 삶은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내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혼과제를 내 줄 때뿐만 아니라 새가족반이나 삶공부 등에서도 제가 종종 성도님들께 묻는 질문은 이런 겁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내 삶에서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고 그 일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최고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것, 혹은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금 당신이 추구하며 살아온 것,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살아온 지금 당신의 삶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이것만은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이대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여행도 가셔야 하겠지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이런 기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진다면 정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7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유로운 영혼! 남의 눈치 안보고 어떤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을 보고 그렇게 부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오지만,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삶은 행복은 커녕 자유까지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전적인 말대로 형식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형식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용을 담기 위해선 형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교회에서 마련한 첫 번째 형식은, 특별새벽기도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신 분들은 “왜 이렇게 특새가 자주 있는거야?”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발상으로 전환하면 “내가 자발적으로는 못하니까 이렇게 교회가 준비해주는 특새에 5일만이라도 참석한다면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될까!”, 이렇게 감사의 제목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새에는 이런 감사의 내용이 담겨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교회에서 마련한 두 번째 형식은, 고난주간 한끼 금식입니다.

언젠가 전교인 금식을 선포하면서 “아침은 안쳐줍니다~~”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아침식사를 안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한 권사님이 “목사님, 저는 아침금식으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침금식이 제일 힘들거든요..” 특별히 모닝커피가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분들에게는 아침 금식은 엄청난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하루 세 끼 중에서 가장 수월한 때가 아니라 가장 힘든 때를 택하여 금식하면서, 밥을 먹는 그 시간에 꼭 기도를 하든지 성경을 읽든지 하셔서 굼식(^^)이 아니라 진정한 금식이 되도록 한다면 형식에 내용을 담는 유익함이 있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마련한 세 번째 형식은 수난일(금) 저녁에 있는 성찬예배입니다.

주일예배 시간에 하는 성찬식은 많이 경험해 보셨겠지만 평일 저녁에 교회에 나와서 갖는 성찬식은 처음이실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 주님의 십자가로 한 영적 가족 된 형제자매들이 함께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은 더없이 감격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교회에서 준비한 이 세 가지 형식에 좋은 내용들을 담아보셔서 의미있는 고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에 가면 ‘가정교회 컨설팅’이라는 과목이라든지 ‘가정교회 코칭’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가정교회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받는 과목입니다. 주로 가정교회 20년 차 이상 되시는 목사님들이 강사이신데, 그 과목을 듣는 분들이 교회의 당면한 문제나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면 강사님들은 한결같이 이 기준을 가지고 답변을 해주시는데, 그것이 뭐나면 곧 세축 네기둥입니다. 세축 네기둥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잘 구현하고 있는지를 체크해주십니다. 세축이 형식(시스템)이라면 네기둥은 내용(스피릿)입니다. 세축은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아시는 목장모임, 주일연합예배, 삶공부입니다. 가정교회라고 하면 아무래도 목장모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성도들은 이 세축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연약한 점이 무엇이냐면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즉 목장모임을 하는데 왜 하는지 모른채 열심히 합니다. 삶공부를 하는데 그냥 과정 마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한번 점검받아야 하는 것은 “시스템 말고 정신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영혼구원하기 위해서 모이고 있는지, 목장에서 보고 배움으로 제자되어 가고 있는지, 사역을 분담하면서 진정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남을 성공시켜주는 사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세축 각각에 이 네가지 정신이 들어가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세축보다는 네기둥이 더 중요한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축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네 기둥이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내용물이 들어갈 그릇이 없다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장은 매뉴얼대로 하셔야 합니다. 매주 모이셔야 하고, 가정에서 모이셔야 합니다. 왜 가정교회(House Church)라고 부르냐면 예배당 소그룹실이나 식당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모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본인의 집이 없는 싱글들은 예외입니다). 부득이한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을 자주 허용하게 되면 그 목장은 목장으로서의 특징을 점점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을 담을 그릇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도 마찬가집니다. 연합교회가 매학기마다 새로운 삶공부를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이미 다 들은 것이라서 들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 매뉴얼대로 5년마다 한번씩은 반복수강을 하면서 그릇을 계속 가꾸어야 그 안에 풍성한 내용이 더욱 잘 담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형식과 내용, 둘 다 중요한데, 2024년 우리 교회는 형식의 재정비에 좀더 방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24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도들이라면 한번쯤은 ‘내 은사가 무엇일까’ ‘내 달란트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달란트 비유’라는 것도 나오고 또 은사대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설교도 적지 않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시는 분들은 성격유형 테스트 혹은 은사테스트를 해보신 경험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하는 것처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아무리 나의 은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은사를 행하지 않으면 그 은사는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나눠 주셨습니다. 그래서 은사 발견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한번 해보는 것(Try out)입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은사테스트를 해보는 것보다는 먼저 내 몸으로 부딪혀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은사입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 눈에 뜨인다면 그것이 내 은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 한다”고 인정해주는 것 역시 내 은사입니다. 은사에는 항상 남을 유익하게 해주는 열매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삶의 마지막 부분이 헌신으로 끝마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공부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아는 것, 배우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몸을 드려보라’는 것입니다.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목양실에서 일을 하다가 사택으로 들어가는데 1층 화장실 앞에 남성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청소하시는 거예요?” “네~~목사님~~” 그러면서 장화를 신은 채 안에서 나오시는 성도님은 그 아침부터 온 몸과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계셨습니다. 얼굴의 땀이라도 닦아드리려고 하니 10월에 또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날 아침 제가 본 성도님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기도의 삶 세미나도 마찬가집니다. 세미나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일주일에 한 시간을 남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내 몸을 실제로 드릴 때 우리는 참 행복을 맛보게되는 것입니다. 무척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헌신하는 성도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2023.06.23 22:31

헌신 초청에 대하여

조회 수 26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일 설교말씀은 하나님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그리고 우리 행복한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반응하여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설교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기도 했고 속으로 결단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도 잠시 뿐, 예배는 그 작은 감동을 마음 속에서 다시 한번 되뇌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주차장으로, 집으로, 교회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내 마음 속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 밭 비유에서 길가와 같은 마음밭처럼, 말씀이라는 씨가 떨어지긴 했는데 곧바로 새(마귀)가 와서 먹어버려서 씨가 뿌려진 것조차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말씀드린대로 주일예배 시간은 은혜받는 시간이라기보다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들은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공개적일수록 결심한 것을 실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여러분이 헌신하실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평소에 고민했던 내용인데 오늘 말씀으로 어떤 결심을 하게 하셨을 때 *현재 풀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그 때가 다가올 때

*다시 한번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헌신하고 싶을 때 *이 교회에 등록하기를 원할 때

*세례받기를 원할 때

*예수영접모임에 참여해보길 원할 때

*목사님께 특별한 기도제목을 부탁하고 싶을 때

*오늘 주신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할 때

*병중에 있거나 자신의 삶에 특별한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이 결심이 지속되도록 부탁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을 때 등등입니다.

 

예배 중에 이런 마음이 들면 주저하지 마시고 마지막 결단찬송을 부르실 때 3열과 4열 맨 앞자리로 나오셔서 헌신카드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축도 후에 바로 기도해드리고, 그 카드를 가지고서 한주간 동안 기도해드립니다.

 

예배 후에 제가 인사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실 그때 인사가 그저 눈 인사 정도(눈길조차도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이니까 헌신기도와 배웅인사 중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한 것이니 제 생각에 동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래도록 제 마음에 소원했던 이 헌신초청 시간을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이루게 되어서 제게는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반응하고 응답하며 주일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거룩한 몸부림이 습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33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주 전 월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제 다이어리에 <6월9일 서울성도님들>이라고 적혀 있는 날이었습니다. 10시에 “이산가족들 지금 만나서 출발합니다”라는 톡이 왔습니다. 차 안에서 너무 신나게 얘기하시는 바람에 길을 놓쳐 1시나 되어서야 교회 주차장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그리웠던 얼굴들이 차에서 내리셨고, 그들을 이산가족 되게 만든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제가 행복한교회로 오기로 결정을 했을 때 저는 ‘내가 떠나도 우리 교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익숙해진 성도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맞아들이는 데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났고 또 그 자리에 많은 새로운 분들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날 오신 분이 다섯 분인데 두 분 빼고는 섬기는 교회가 다 달랐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내가 그런 결정만 안했더라도 아무 일 없이 같은 교회 섬기면서 행복하게 지내셨을 분들인데~’하는 생각에 여전히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우리들의 대화는 영적으로는 무척이나 풍성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한 교회를 섬기고 있다면 그저 한 교회의 얘기만 했을텐데, 그날은 행복한교회까지 합치면 다섯 교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얘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당연히 있으십니다. 성도가, 다니던 교회를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없이 기도하고 또 고민하면서 결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단 그 교회에 식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옮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분들이 갖는 생각인 “이 교회에 가서는 정말 ‘예배만’ 드려야지”하는 생각은 버리셔야 합니다. 교회를 옮긴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교회를 옮기고 나서의 결과는 똑같아야 합니다. 곧 믿음의 성장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분명 이런 이유일텐데, 교회는 다니면서 세상적으로 완전히 나가자니 찜찜하고, 또 신앙적으로 헌신된 삶을 살자니 세상이 부러운 것입니다. 이런 삶만큼 불편하고 힘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교회생활도 마찬가집니다. 그 교회 다니기는 하는데 그냥 이름만 올려 놓는다면(우리 교회는 이런 불행한 성도를 만들지 않으려고 등록절차가 까다로운 것입니다^^) 그것처럼 불편한 교회생활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옮기신 분들은 먼저 저와 함께 새가족반을 하시고(2주), 예수영접모임을 하시고(1주), 목장탐방을 다니시고(3번), 생명의 삶을 듣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고, 그런 다음에 연합교회 사역도(이것은 생명의 삶 수강 이후이니 주위 성도님들은 아무리 그분과 함께 일하고 싶어도 기다려 주십시오!)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행복한교회 오셨으니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277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꽤 오래 전, 제 기억으로는 2000년도 부활절에 처음으로 방영된 ‘예수’(Jesus)란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인 CBS가 제작한 영화인데 ‘성경에 맞지 않는다’ ‘제작 감독한 사람이 복음주의자가 아니다’ 등등의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그려진 예수님이 가장 실재에 가까운 주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많이 웃으십니다. 30대 청년답게 제자들과 장난도 치십니다. 이 영화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잔치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하객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춤을 춥니다. 예수님도 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룟유다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 다음 그의 손을 이끌어 춤추는 무리에 끼어들게 하십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루이스는 마귀를 희화한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의 가장 큰 특징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의 성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남의 약점을 웃어넘기지도 못합니다. 악마에게는 웃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도 기쁨도 없습니다. 이런 악마의 종노릇을 했던 가룟유다가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할 줄 모른 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모습,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만 연상하면서 그렇게 고뇌에 찬 예수님의 모습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심각한 사람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재미없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까다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편하게 해주시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행복한 분은 예수님이셨고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 행복한교회 가족들은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은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즐거운 것이고 쉬운 것입니다. 

 -손목사 생명의 삶 강의 중에서-


조회 수 25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작년 12월 4일 토요일에 위임식을 갖고 그 다음 날부터 주일예배를 여러분과 함께 드렸으니 오늘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순종과 결단을 한 날이니 아마 평생토록 잊지 못할 날인 것 같습니다. 매년 이맘 때면 “야~ 올해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고 말하지만, 제게 있어서 2022년은 이 말로도 부족할 만큼 빨리 지났습니다. 기회만 되면 말씀드리는 것이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만남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소명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올해를 지나면서 저는 여기에다 또 하나의 만남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성도와의 만남’(여러분들 입장에서는 ‘목회자와의 만남’이겠지요^^)입니다.

 

아프리카 사역을 빼면 한국에서 담임목회 사역을 한지가 만 10년인데, 서울의 동암교회에서나, 대전의 행복한교회에서나 하나님은 제게 정말 과분한 ‘성도와의 만남’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얼마전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보, 성도님들 뵈면 너무 감사하다~ 내가 주일설교 시간에 이번 주는 작은 거라도 이런 것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씀드리잖아? 근데 그걸 많이들 하신다?” 목자목녀님들이 써 주시는 목회일기를 새벽마다 읽으며 기도하는 것은 제게 커다란 기쁨이자 목회의 보람입니다. 물론 그 일기에는 여러분들이 목장모임에서 나누신 이야기들이 다는 적혀 있진 않지만, 주일말씀을 듣고 혹은 삶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도전들을 삶에서 실천해 본 이야기들이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육아전쟁을 벌이면서, 사춘기 자녀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마음고생을 하시면서, 전업주부나 워킹맘으로 맡겨주신 일들에 온 힘을 쏟으시면서, 때때로 어깨를 짓누르는 가장의 짐 때문에 밤잠을 설치시면서도, 그리고 이제 고희(古稀)의 연세 언저리에 있으시면서도 목회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어린아이같이 순종하시면서 어떻게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쓰시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저는 한없는 행복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목회자와 성도’와의 만남의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썼던 칼럼의 제목 “목사에게 가장 귀한 책은 성도님들의 삶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제게 있어선 정답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0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의 전도원리 두 가지는 첫째, 마음 열기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기 전에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전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담과 거절입니다. 그러므로 ‘전도’ 그 전에 ‘관계’라는 다리를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의 마음을 연 다음에, 그 다리로 복음이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으로 열까요? ‘감동적인 섬김’으로 엽니다. 이 말이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너무나 이기적이다보니 우리가 조금만 섬겨줘도 상대는 감동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전도원리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 체험입니다. 전도현장에서는 사람을 이론으로 설득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더 닫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능력을 경험하면 이론을 내려 놓습니다. 그래서 나의 섬김을 받고 자기 마음을 열어준 VIP들에게는 기도제목을 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VIP는 ‘기도제목’이라고 하면 잘 모르니까 “요새 힘든 일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제목은 추상적인데 VIP들의 기도제목은 아주 구체적이라는 것 아십니까? 그 작은 기도제목 가지고 함께 기도해서 응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할 때 전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VIP를 만나 섬김과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무기를 손에 들려드릴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오명교 목사님이란 분이 만드신 교재가 <행복한 삶>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의 최종 목표는 VIP들과의 만남을 좀더 깊어지게 하고, 그들이 내가 다니는 목장과 교회, 더 나아가 예수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의 내용이 VIP와의 대화를 위해서 ‘마음’의 문제를 터치하다보니 결국 상대방 뿐만 아니라 인도하는 나도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이 과정의 매력입니다. 사실 우리가 본인 문제를 나만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다 아는 내 장단점을 나는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 줘 놓고도 정작 자신은 모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을 하다보면 자신을 알아가면서 내가 먼저 변하게 되고, 내가 변하니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손목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4 봄학기 삶공부 시즌이 이제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온라인 신청을 하실 때 읽어보셨을테지만, 칼럼을 통해서 각 삶공부의 특징을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생명의 삶은 가정교회를 하면 할수록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의 최고봉입니다. 1단계 성경공부를 삶공부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기독교신앙의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터치하는 그 내용의 방대함과 동시에 삶에 적용되는 구체성은 들어본 분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라면(상반기에 등록을 하려고 마음 먹으신 분들도 미리) 모두다 들으셔야 하는 삶공부입니다. 새로운 삶은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 필수 2단계 성경공부로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정체성과 가치관을 다룰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성도가 얼마나 성숙해질 수 있는지를 배우고 연습하는 삶공부입니다. 목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공감되는 탁월한 성경공부입니다.

 

말씀의 삶, 일터의 삶, 생명언어의 삶은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의 선택과목들입니다. 생명의 삶을 하시고 나면 나머지 삶공부는 필수, 선택과목에 상관없이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의 삶은 우리 교회에서 이미 진행되어온 삶공부인데 이번에 1기라고 한 것은, 지금까지는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의 안내에 따라 <어, 성경이 읽어지네>라는 교재를 가지고 했는데, 이번부터는 <성경스팩트럼>이라는 새로운 교재를 가지고 진행하려고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말씀의 삶과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의 강의일테니 10주 동안은 성경의 배경강의와 함께 핵심본문을 읽어나가고 강의가 끝난 후 6개월 동안 성경전체를 통독해보고 싶은 성도들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강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대부분 지내는 장소가 교회가 아니라 생업의 현장이기 때문에 일터의 삶은 참으로 중요한 삶공부인데, 제가 배워오고서도 개설해드리지 못한 이유는 제 자신이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현장감이 없을 수 있다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준비된 강사 변정주목자님께서 강의하시는 일터의 삶은 저도 꼭 들어보고 싶은 강의랍니다. 우리들의 언어생활은 신앙생활의 승리를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생명언어의 삶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으로 해야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1기 때 한 학생이 너무 숙제를 잘 하면서 들어서 ‘저 분은 나중에 강의를 하셔도 되겠다’ 눈여겨본 분이 바로 최예숙 목녀님인데, 이번에 저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삶공부 할까 말까?”가 아니라 “이번에는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무엇을 들을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실 성도님들의 모습을 “저 혼자” 상상해 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4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난 주에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는 변치 말아야 것들을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함과 동시에 시대에 맞춰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과감히 개혁하는 것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어려워지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년층들은 무엇을 검색을 해도 전국민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합니다. 하지만 청년층들은 인스타그램에서 한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정말 자기가 가보거나 경험한 것들 위주로 올리기 때문에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다고 합니다. 물론 요새는 또 그것이 ‘보이기 문화’가 되어버려서 그것조차도 거짓정보가 많다는 말도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세미나에서 한 강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들! 무조건 인스타 하셔야 합니다!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모이게 하려면 목사님부터 젊어지셔야 합니다.” 그 목사님 교회는 몸이 아파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시는 성도들을 위해서 VR예배도 드린다고 합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든 교회를 섬기시는 그 강사님의 열정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거기까지는 꿈도 못꿉니다. 그런데 나도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명절에 집에 온 큰 아들에게 “지섭아, 인스타하기 어렵니?”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뭐 조금 배우면야 그것 못하겠습니까?ㅋㅋ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것을 시작한들 사진찍어 올리고 나와 우리 교회의 근황을 올리고,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만큼 제가 부지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 목요일, 금요일은 싱글 수련회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이틀동안 찬양과 말씀, 기도회로 진행을 했습니다. 첫째날은 말씀을 듣고 목장별로 모여서 나누고, 둘째날은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련회 진행을 하면서 또 제 마음에 ‘변화’에 대한 열등감이 솟아 올랐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청년들인데 ‘내가 부교역자 시절에 했던 식으로 수련회를 진행하니 이게 청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이번에 고른 영화는 2002년에 나온 영화이니ㅠ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야식을 함께 먹으며 “목장생활 어때?”라고 물었던 한 형제는 제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는 제 나름대로, 제 식대로 믿었거든요...제가 정말 교회를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목장이 제 삶에서 점점 많은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는 것이 싫지 않네요...목장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목장에 가서 목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행복해요.” 그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복기하는 순간 참 행복했습니다. 열등감도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시대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6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제는 그 감사가 많이 무뎌졌지만 아프리카에서 귀국해서 한국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말 모든 것이 감사했었습니다. 우유를 줄 안 서고 살 수 있어서, 어렵게 산 우유를 좀더 오랫동안 먹어보려고 냉동시켜 놓았다가 녹여서 먹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샤워기에서 시원스럽게 나오는 물로 목욕을 하면서는 열흘 길게는 이주동안 물이 나오지 않아 1.5리터 페트병에 얻어 온 물로 몸을 씻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주유소에 가서 “가득이요!”라고 말할 때마다 완전히 서버린 차를 밀며 간신히 20리터 기름을 받고서 기뻐할 때가 생각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기요금이 왜 이리 많이 나온 거야?”라고 하다가 전기를 하도 주지 않아서 촛불로 버틴 저녁 시간들이 많아 전기세를 거의 내지 않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나라에서 많은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외국 여행을 해 보시면 식당에 가서 물부터 공짜로 주는 나라, 반찬을 더 주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구요. 초고속 인터넷을 이렇게 싼 값에 이용하는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만일 당신의 집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몸에 옷이 걸쳐져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8%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제목들 중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열심히 달려온 것에 하나님이 열매 주시는 것을 보니 “수고하고 애썼다”라고 격려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물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감사는 이미 주신 것들을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감사에서 나오는 행복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246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로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저는 목장만 만들어 놓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성도들이 삶을 나누며 교제하고, VIP들을 전도해서 영혼구원이 일어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는 시스템(system)이 아니라 스피릿(spirit)이라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직을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신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가정교회의 세축 – 목장모임, 삶공부, 주일연합예배 – 중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삶공부라는 것도 가정교회 목회를 해보며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식적인 성경공부는 우리 신앙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 삶공부는 성경지식, 그 자체를 위한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가정과 목장과 일터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성도들을 도와드리는데 최적화된 성경공부가 바로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입니다. 그 중에 1단계가 생명의 삶입니다. 삶공부 과목은 다양해서 교회에서 개설하는 삶공부가 많아질수록 과목별로 부교역자나 평신도 강사들이 맡게 되는데, 생명의 삶만은 담임목사가 계속 인도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삶은 처음 1/3이 복음에 관한 내용인데,(그래서 예수영접모임과 생명의 삶 처음 부분은 많이 비슷합니다)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담임목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그분에게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3주 동안 저와 삶공부를 통해 많이 친해지면서 저의 목회철학이나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을 하신 분들과 아직 못하신 분들은 담임목회자와 교회를 이해하는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필수과정인 생명의 삶과 함께 생명의 삶을 수료하신 분들이 들으실 수 있는 선택과목 중에서 생명언어의 삶을 개설해드리려고 합니다. 생명언어의 삶은 원래는 변화의 삶이었는데, 과목 명칭이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과목이 10주 동안 다루는 것이 전부 ‘언어’ 곧 우리들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설교 시간에 “절제된 언어가 영성이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생명언어로 바뀌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올 하반기에도 생명의 삶, 기도의 삶, 생명언어의 삶공부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스피릿을 키우는데 한 물결을 이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가 우리 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싱글 목장을 섬기고 계신 김민주 목자님은 농담 삼아 언젠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목사님, 아직도 가슴에 두 손 모으고 휴대폰 꼭 쥐고 계시나요?” 당시 싱글들과 평일 저녁에 ‘회복’이라는 기독교영화를 보러 갔는데, 혹시라도 담임목사님께 전화가 오면 빨리 받으려고 전화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영화를 보는 제 모습이 재밌어 보이셨나 봅니다.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2006년 말 우리 교회에 지원하면서 면접을 볼 때, “우리 교회 왜 지원했느냐?”는 목사님 질문에 저는 “담임목사님 도와드리려고 지원했습니다”라고 대답했었습니다. 물론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보는 면접은 아니라서 그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그분들의 대답에 비하면 원대하지도 못하고, 성경적(?)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들으면 아부성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요새는 부교역자님들을 모시는 것이 너무 어렵지만, 저 때는 한 명을 뽑는데 늘 5-60통 정도의 이력서가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답을 한 제가 합격을 그 대답조차도 담임목사님의 의중을 헤아리고 미리 준비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분석형 내지는 주도면밀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때 담임목사님이 나를 사용하기에 편한 존재가 되는 것이 내가 이 교회에 온 목적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7년 사역을 한 후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로 목양지를 주셔서 담임목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청빙위원들 앞에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받은 질문은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부교역자로 지원을 할 때 제 목회철학은 “담임목사님이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자”였지만, 이제 담임 후보자로서 내 목회철학을 말해야 했으니 저는 그 ‘담임목사님’이란 자리에 ‘하나님’이라는 말을 넣어서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부교역자 경험이 7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담임목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이라면, 그분이 도와주실 것이니 아무튼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편한 목사, 하나님이 마음 놓고 부려먹으실 수 있는 목사가 되는 것, 이것이 제 목회철학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제 목회철학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야 할 기본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날 쓰시려고 할 때 좀 부담스럽고 편하게 시키실 수 없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일을 안 맡기실 것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인생은 아무리 다른 것이 풍족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추수감사주일을 지나고 교회 김장도 하면 왠지 한 해가 다 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실 전통적으로 교회의 회계연도는 11월 마지막 주일로 끝나기도 합니다. 물론 맡으신 사역들은 한 달 남은 올해까지입니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교회 사역에 있어서 내가 했던 일을 돌아보면서, 내년에는 어떤 봉사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 나눠드린 2023사역지원서는 목장1사역, 연합교회 1사역을 하는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도록 도와드리기 위한 안내문입니다. 꼼꼼히 읽어보시고 기도하시면서 적어내실 줄로 믿습니다. 그 일에 몇 가지 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교회봉사는 은사에 따라 하면 됩니다. 은사라고 하면 비신자들에겐 생소한 단어이긴 하지만 ‘재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가지 이상씩은 다 있고, 그 재능은 훈련 여부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 은사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사역을 지원하시면 됩니다 .

둘째, 교회봉사는 내 눈에 띄는 것을 따라 하면 됩니다. 이것을 잘 몰랐을 때는 왜 이 사람은 저것을 안할까 불평하면서 스트레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만 보니 그게 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기 때문이더라구요. 그런데 그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죠^^ 그럼 그것이 내 은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역을 지원하시면 됩니다.

셋째, 교회봉사는 공동이익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저는 성도님들께 사역을 권하면서 항상 이 성경말씀을 드립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The Spirit has given each of us a special way of serving others.”(고전12:7). 이 말씀에서 “성령을 나타내주시는 것”은 은사를 주시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다른 사람을 섬겨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곳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일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사역을 지원하시면 됩니다. -손목사-

 


조회 수 305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목요일부터 3일 동안 국제가정교회사역원 평신도사역팀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평신도 사역팀은 목자목녀들을 위해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목자컨퍼런스와 지역별로 일년에 몇 차례씩 있는 목자연합수련회를 섬기기 위해서 전국의 여섯 교회에서 한 목자 가정씩을 파송해서 만들어진 팀입니다. 본인의 교회와 목장을 위해서 애쓰는 것만 해도 벅찰텐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해주는 12명의 목자목녀들과 이들을 파송한 교회의 담임목사 부부가 이번에 처음으로 연합수련회를 가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변정주목자님, 정혜진 목녀님이 오래 전부터 사역팀에서 섬기고 있는데, 그 덕분에 저도 이번 수련회에 참여해서 이틀 동안 선배목사님들이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 저녁, 판교 꿈꾸는 교회 박창환목사님의 설교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회복은 존재의 회복이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교회는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회복시키는 교회!”라는 표어를 쓰기도 합니다. 멋있기는한데 너무 추상적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듯이 회복이란 뜻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많이 아는 복음송가 가사대로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런데 삶이 재정적으로, 건강적으로, 관계적으로 힘들어지면 이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나를 계산적으로 대하고, 기계적으로 대하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내가 과연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럴 때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디서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을까요?

 

답은 여러분이 이미 아시듯 목장입니다. 목장이 아닌 다른 모임에도 사랑은 있습니다. 하지만 목장의 사랑은 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는 사랑은 무조건적이야 하고 지속적이어야 하며, 희생이 담긴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목장에서 우리는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존재가 회복됩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점검해야 할 목장의 모습들에 대해서 매주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목장에서 서로를 대할 때 더욱더욱 ‘존재’로 대하셔서 이미 예수를 믿는 우리들과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VIP들이 목장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31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1:23).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건강한 유기체는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성장하였고, 로마 제국을 뒤덮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가 양적 성장을 해야만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교인들의 장막이나 회사의 이동이 잦기 때문에, 전도를 많이 해도 교회 성장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은 못해도, 구원받는 사람은 더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숫자가 중요합니다. 숫자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 부흥을 설명할 때마다 숫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3천명에게 세례를 주었고(행2:41) 어느 때는 5천명이 더해졌다고(행4:4)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지속적으로 부흥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라는 산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나 힌두교 같이 종교적으로 폐쇄된 나라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세례 숫자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법적으로 제한을 받아서 전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상황은 다릅니다. 법적인 제제나 핍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되었다(요4:35)”라는 상황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올해 우리 교회, 우리 목장은 몇 명에게 세례를 주었는가?”를 늘 물어야 합니다. 교회의 질적 성숙과 양적 성장은 같이 갑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성숙해지는 것은 헌신적으로 VIP들을 섬겨서 이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그 교회의 본질을 추구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본질이 회복되어가면 열매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열매란, 비신자가 예수를 믿게 되는 것과 기신자가 예수님처럼 섬김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 이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2025년이 시작되면서 올해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실 것 같은 기대가 있어서 “하나님, 올해는 한달에 두명씩 세례받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2월에 세례가 두 명 있었습니다. 3월에는 없어서 하나님께 죄송했는데, 오늘 두 분, 그리고 다음 주 두 분 해서 4월에 네 명, 3월에 없던 것까지 채워주시는 것을 보니 정말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한 명의 영혼이 세례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바라기는 올해 우리 교회가 더욱 영혼구원에 올인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31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월부터 새벽과 주일, 계속해서 누가복음을 살펴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흘러내릴 수도 있고 안 내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무조건 흘러내려서 낮은 곳에 고이듯이 하나님의 사랑도 자동적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 환우들, 신체장애자들에 유난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이 약하니까 내가 더 사랑해야지’ 하셔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적으로 흘러서 고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고난을 당할 때 신자는 그 시간들을 충분히 감내하게 됩니다. 높은 언덕에 물이 고여 있을 수 없듯이 우리의 마음이 높은 산처럼 교만해져 있을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머무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당해서 우리 마음이 한없이 낮아지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고입니다. 생명의 삶에서 죄에 대해서 가르쳐 드릴 때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는 것이 “죄는 장래가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모두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옵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하면서 ‘내 인생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인생은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취미가 우리를 괴롭히시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은 내가 노력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그 높아진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을 분들이 많은 것만 보아도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생명의 삶에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너무 고난이 크면 위에서 말씀드린 것으로 위로가 안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산불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 앞에서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신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은 이 땅에서는 답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닌데,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에 고인다는 것, 하나님은 절대 당신의 자녀들에게 의미없는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믿음으로 버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22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존에 우리 교회를 다니시는 성도님들에게 금요일 목장모임은 익숙하신 것이지만, 이사를 오셔서 우리 교회를 선택하신 성도님들에게 제가 새가족반을 하면서, 우리 교회 몇 주 다니시면서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을 여쭤보는데, 그때 대부분 하시는 질문이 왜 금요철야(요새는 밤을 완전히 새우는 교회는 거의 없고 금요심야기도회 등으로 부르죠) 가 없냐는 것입니다. 저도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이 문제가 딜레마였습니다. 대부분의 목장이 모임을 금요일 저녁에 하게 되면서 금요 심야기도회를 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목회는 기도목회입니다. 목사가 기도하지 않고는 평신도를 사역자로 키우는 목회를 해 나갈 수 없습니다. 목자목녀가 기도하지 않고는 맡겨주신 목원들을 목양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목원들이 기도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교회 목회의 성공의 열쇠는-물론 성도들의 만사(萬事)가 다 그렇지만-기도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의 아쉬움이 당시 저에게는 정말이지 컸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금요기도회를 수요일로 옮겨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에 대한 부담이 없는 금요일과 평일의 한 중앙에 있는 수요일, 두 날은 나오시는 분들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지만,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저의 걱정은 한 마디로 기우였습니다. 첫날부터 금요기도회에 나오시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똑같이 나오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정교회를 하는 이상 기도하지 않고서는 영혼구원하고 제자삼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더 기도하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는 장소나 시간이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건 “정말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실 수 있다면,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수요기도회에 참여해 보십시오. 정말 좋습니다. 꿈을 자주 꾸지도 않고 꾸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금요일 밤에 꾼 꿈이 이 칼럼을 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수요기도회에 얼마나 성도들이 많이 나오셨는지 아랫 강단까지 성도들이 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회복의 은헤를 주시려고 하는 이 때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기를 정말 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손목사-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