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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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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이 깊은 갱도에 들어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지 아십니까? 곡괭이, 삽, 랜턴, 물, 음식, 무전기, 시계, 성경책, 가족사진 등등. 하지만 그런 중요한 것들과 함께 꼭 챙겨가는 것이 있는데, 카나리아라는 새입니다. 카나리아는 공기에 민감해서 유해가스가 조금이라도 유출되면 죽습니다. 광부들은 열심히 작업하다가 카나리아를 쳐다보는데, 만약 카나리아가 쓰러져 있으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밖으로 뛰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라는 책에서 유진피터슨 목사님은 ‘자녀는 부모의 영적인 카나리아!’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쓰러지는 이유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류가 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른들이 아무리 가르쳐도, 따끔하게 혼내도, 좋은 말로 타일러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사회적인 기류를 맑고 밝고 차분하게 조성하기 시작하면, 부모의 영적 카나리아인 아이들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어느 시기가 되면 대체적으로 영적, 지적, 정서적, 관계적으로 안정감을 찾으면서 성장이 멈추는데 자녀를 키우면서 그 자녀 때문에 부모 자신이 성장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자녀는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부모의 성장을 자극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부모는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부모의 눈에는 장래가 심히 걱정되는 자녀지만, 그 자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며 내가 사랑하는 자녀를 나보다 더 성실히 돌보시고 성장하도록 이끄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모는 자녀 때문에 성장하게 됩니다. 사춘기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요새는 자녀들의 사춘기가 빨리 온다지만, 어쨌든 아이의 사춘기 때 가정이 힘든 이유는 두 개의 태풍이 가정에 휘몰아치기 때문인데, 곧 사춘기 못지않은 태풍인 부모의 갱년기가 그것입니다. 청소년 목장을 출범하면서 지난 주간은 부모님들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드린 것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자녀와 함께 성장하십시오. 기도와 말씀 안에서, 그리고 나를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신 하나님의 인내를 나도 흉내내보면서.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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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칼럼 제목으로도 쓴 것처럼 “가정교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피릿”입니다.

일반교회의 조직적인 시스템에 비하면 가정교회의 세 축은 엉성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세 축’보다는 스피릿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기둥’이 더 중요합니다. 그 네 기둥 중에서 목장에 더욱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둘째 기둥인 “보고 배움으로 제자가 된다”라는 것과 넷째 기둥인 “섬기는 리더십”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한 것은 2008년입니다. 올해로 16년 째입니다. 서울 열린문교회로(지금은 양주로 이사를 갔지만), 구미남교회로 교역자들 모두 가정교회를 배우러 다니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시작해보려고 애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서 둘째는 업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큰 애는 옆에 두고서 목장모임을 준비하느라 밥을 하시던 한 목녀님 모습 역시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목장모임을 하는 날은 다른 날보다 긴장이 됩니다. 미루던 청소도 해야 하고, 저도 처음 목장을 할 때는 화장실 청소까지 했습니다. 물론 처음 몇 번만이지 그 다음부터는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보여줄 것 다 보여줬기에 하하^^ 그런데 처음에 긴장하는 것은 어른들만이 아니라 목장모임으로 집을 오픈하는 그 가정의 아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장이 끝나고나면 집이 초토화(?)되기 때문인데, 특히 자기 방, 자기 장난감들이 그 대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출범하는 청소년 목장의 목자나 목원들 중에는 제가 방금 한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려지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청소년 목자들과 만나서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자 해보니 어떤 점이 힘들거나 어렵니?” 만약 제가 장년 목자목녀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다양한 고충들이 답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목자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별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어릴 적부터 하던 목장이니까 그냥 보고 배운대로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가정교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피릿이라는 것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년목장과 청소년 목장, 물론 보여지는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남을 성공시켜주겠다는 그 정신은 같기에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하시는 것을 보고 배운 청소년목자나 목원들은 목장생활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커서 싱글(청년)목장의 목자가 되기를, 그리고 결혼해서 장년목장의 목자목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전수가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바로 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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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삶공부가 시작됩니다. 이번 삶공부 참여율은 대단합니다. 생명의 삶이 63명, 새로운 삶이 37명, 기도의 삶이 79명 총 179명이 삶공부에 참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워가는 기쁨은 매우 큽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기쁨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성경공부해서 구원얻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봄가을로 사람을 귀찮게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를 좀 편하게 다니실 수 있도록 성경공부를 강조하지 말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알아야 하고, 주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분을 신뢰할 수는 없기에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분들이 성경공부에 부담을 느끼시거나 거부반응을 보이시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말만 많아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자체에 부담을 느끼거나 거부반응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가정교회 삶공부는 지식전달이나 축적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높은 지식수준이 아니라 오직 성실함만이 요구되는 과정입니다.

 

삶공부는 ‘생명의 삶’이 1단계 공부입니다. 행복한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은 이 생명의 삶부터 이수하셔야 합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도 저희 교회에 부임하시면 당연히 들으시는 과목입니다. 생명의 삶은 예수님을 믿어보고자 하는 분에게는 신앙의 기초를 쌓아드리고, 이미 믿으시는 분들에게는 신앙을 체계화시켜 드리는 성경공부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사역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생명의 삶을 꼭 들으실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삶에서는 성경을 가르쳐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방향과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삶을 마치신 분은 2단계 공부인 새로운 삶을 수강합니다. 사실 생명의 삶은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교회라고 해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인데 반해서, 새로운 삶은 가정교회에 최적화된 성경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장생활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으시면 좋을 과정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삶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과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팁들을 얻으시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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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걸어볼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시는 은혜가 넘쳐날 때 그 은혜는 옆 사람을 살리고, 내가 곤고할 때 옆 사람의 은혜가 나를 살리기도 합니다.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게 합심기도를 하면서 공동체성을 느끼게도 되고, 회중들과 부르는 한 줄의 찬송 가사가 내 맘을 요동치게도 만듭니다. 간증에 큰 위로를 얻기도 하고, 찬양대가 정성껏 준비하여 부르는 찬양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설교를 통해 다시금 나를 위로하시고 도전하시는 주님 앞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결단하고 헌신할 용기를 갖습니다. 그렇게 심령이 촉촉이 적셔지면 예배가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면서 은혜의 여운을 느낍니다.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의 장점입니다.

 

예배에 성공하기 위해서 세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예배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기대가 있다는 말은 예배를 드리러 갈 때 들고 갈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일주일 동안 살았던 헌신 된 삶일 수도 있고, 영적 싸움에서 얻은 승리, 혹은 실패와 상처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어 드리고 싶은 감사의 열매든, 위로받고 해결 받아야 할 간구의 제목이든, 예배를 드리러 올 때 들고 갈 것이 있는 사람은 예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붙들고 살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예배시간에 늦지 말아야 합니다. 허겁지겁 와서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과 10분 전에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늦게 오다가 가끔씩 일찍 오는 사람은 자신이 예배에 일찍 오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 중에 한 번 예배에 일찍 오는 사람은 늦는 사람입니다. 이를 악물고 주일 아침에 준비하고 나오는 시간을 최소한 30분은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배 시작 10분 전에는 적어도 2/3 이상은 예배드리는 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성도님들을 보고 싶습니다.

셋째, 예배순서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 나에게 말씀하실지 모른다는 예민함을 가지고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자신을, 예배순서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 하나도 입술로만이 아니라 가사를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앞사람 뒤에 가려(^^) 있으려 하지 말고 설교자를 응시하며 설교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 합니다. 이 한 시간의 집중이 일주일의 삶을 승리로 이끈다면 해 볼 만한 시도 아니겠습니까? 일주일의 승부는 주일예배시간에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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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정교회를 알게 된 것은 행복한교회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부교역자 생활을 마치고 담임목사로 부임했던 서울의 교회에서도 가정교회를 했습니다. 사실 부임하자마자 바로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선배들로부터 “가정교회 정착의 실패는 서두르는 것”임을 하도 들어서 2년 동안은 생명의 삶만 일주일에 세 반을 개설하면서 토양작업을 하고나서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성도들도 목자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저도 목자지원을 했습니다. 목장은 싱글(청년)목장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연령대만 모이는 공동체가 되어선 안되지만, 그때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5년 미만인, 이젠 싱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의 장년들과 잘 섞이지도 못하는 그런 분들과 함께 목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결혼한 지체들이 애기를 낳으면서 목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가정교회는 신약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했던대로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 자녀를 낳고 기르는데 온통 에너지를 쏟고 살아가는 목원들에게 집을 오픈하고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장모임의 장소는 5년 동안 늘 저희 집이었습니다. 아내는 목장모임 때 설거지까지도 목원들이 하려고 하는 것을 극구 말렸습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텐데 이 시간, 목장에서만큼이라도 편하게 있다 가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흥회를 오신 최영기 목사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최목사님은 목원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것이 목자가 할 일인데, 믿음은 책임감과 섬김을 훈련할 때 성장한다면서 책임감은 목장모임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으로 길러지고, 섬김은 가정을 오픈하면서 길러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목원이 식사준비를 힘들어 하면 목자가 식사를 준비해서 싸들고 그 집에 가더라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니 목자 집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목원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기 위해서 목자는 그런 수고도 하셔야 합니다!” 최목사님의 부흥회 이후로 저희 목장은 금요일이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는 진짜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린자녀들이 있어서, 혹은 맞벌이 부부여서 식사준비가 어려울 때는 시켜먹든지 라면을 먹을지라도(분식데이^^) 그날 목장모임을 통해 내 집이 교회로 쓰이는 기쁨을 뺏기고 싶어하지 않는 목원들이 되었습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것처럼 섬김의 시작은 가정을 오픈하는 것에서부터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 목장생활을 시작하신 새가족들께서도 가정을 오픈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 주간은 참 행복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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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싱글초원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감정’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방법 중의 하나 역시 성령님이 주시는 감정에 순종하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삶공부가 시작되는데, 생명의 삶 클라스에서 예수님을 “laughing Christ”, 웃으시는 예수님이라고 설명해드립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늘 심각하신 고뇌의 인간, 혹은 현실은 모르고서 늘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말씀만 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심각한 분이 아니라 재미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너희 선생은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꼬며 말할 정도로 예수님은 잘 웃으시는 분이셨을 것이고, 굉장히 따뜻하고 푸근하신 분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별명을 잘 지어주신 것만 보아도 예수님은 그렇게 심각한 분은 아니셨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제가 참 좋답니다.(하하^^) 이유를 물었더니 “목사님은 늘 웃어주셔서~”가 그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부터는 더 웃는 얼굴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사전에서 얼굴의 뜻을 찾아보니 ‘얼굴은 인간이 가진 머리의 앞쪽 부분으로서 이마부터 턱까지를 포함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근원적인 의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의 얼(혼)이 들어 있는 굴”이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삶과 하고 있는 생각,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내는 그 사람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략적인 틀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교회 성도들의 ‘웃는 얼굴’입니다. “이 교회는 참 분위기가 밝네요~”라는 말도 그 교회에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의 환한 모습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은 “잘 웃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래 다닐수록 재미없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 심각한 사람 되지 마시고 예수님처럼 많이 웃으셔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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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했던 김재정 목사님 초청 가정교회 부흥회! 아직도 저와 성도님들에게는 여운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부흥회 기간 동안 목사님께서 선교관에서 지내셔서 아침식사도 함께 하면서 참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행복한교회는 큐티를 하나요?”라고 물으셔서 당황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잘하시는 거예요! 너무 많은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교인들로 하여금 주일설교를 붙들고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또 한번은 “행복한교회는 부흥회를 몇 번이나 했나요?” 물으셔서 “목사님, 저는 서울에서 목회할 때도 10년 동안 딱 두 번 부흥회를 했어요. 그 중에 한번이 목사님이 오신 부흥회구요. 여기 와서도 처음이예요~” 그러자 목사님은 “정말 잘 하신 거네요! 부흥회를 너무 자주 하는 교회는 그것이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 버려요. 제 생각에는 5년에 한번 정도가 좋은 것 같아요!” 제 기를 살려주시려고 일부러 그러신 것인지 모르지만 老목사님의 말씀은 하나 하나가 다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정교회는 일반적인 부흥회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흥회보다 더 하기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곧 가정교회 평신도 세미나(이하 ‘평세’) 개최입니다. 목사님들은 부흥회 몇 번 하는 것보다 평세 한번 개최하는 것이 교회에 더 큰 유익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평세를 개최할 수 있는 조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목장 참석 인원이 주일 출석 인원의 70% 이상이 되어야 하고 (즉 무늬만 가정교회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년간 세례 받는 사람이 주일 출석 인원의 5%가 되어야 (즉 영혼구원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켜서 평세를 개최하는 교회들은 2박3일 동안 적게는 20명, 많게는 50명의 ‘천사’(평세에 참석하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들을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천사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섬김으로 인해 행복하지만, 사실 수지맞는 것은 그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섬김의 행복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대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는 중고등부 가정교회 연합수련회 섬김으로 그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2박3일 동안 100명의 학생과 교사들을 섬기면서 정말 행복했고 기뻤습니다. 수련회를 섬기시는 성도님들을 뵈면서 ‘우리 교회도 빨리 영혼구원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꼭 평세를 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더욱 커졌습니다. 섬김이 행복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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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예배당 한 편에는 가정교회 세 축이라고 되어 있는 로고가 그려진 현수막이 늘 걸려 있습니다. 각각의 동그라미에는 목장모임(가정교회), 삶공부, 주일연합예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 축이 잘 맞물려 돌아가면서 주님이 소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램을 그렇게 표현해 본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만든 것은 아니고 가정교회를 하는 모든 교회는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방문하신 분들이나 새가족들을 위해서 이 세 축의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가정교회를 목장모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왜 가정교회라고 부르는가? 대답을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라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선교지에 소개할 때 House Church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을 보니 모두 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였기 때문입니다.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장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정에서 모입니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냉난방이 잘 되어 있는 편한 예배당 소그룹실과 방바닥에 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는(고층에 사시는 분들은 에어컨이 없이 사시는 경우도 있더라구요ㅎㅎ) 가정집, 이 둘 중에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후자가 훨씬 더 “교회”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십니다. 그래서 밖에서 외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티타임은 가정으로 갑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는 찬양, 깊은 나눔, 기도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삶공부는 성경공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공부가 지식적인 공부로 흐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신앙성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공부는 삶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더 되뇌기 위해서 ‘삶공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셋째, 주일연합예배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는 교회의 30개의 목장을 단지 소그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작은 교회로 봅니다. 왜냐하면 작지만 교회가 해야 하는 5가지를(예배, 교육, 교제, 전도, 선교) 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주중에 한번씩 다 가정교회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작은 교회들이 주일에 모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주일예배를 ‘주일(목장)연합예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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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목사님께서는 부교역자들에게 여름휴가를 주일을 끼고 주셨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교역자들은 주일이 가장 긴장이 되는 날인데 일년에 한번이라도 다른 교회 가서 편하게(?) 예배드려 보라는 배려이셨고, 또 하나는 목사들은 주일에 다른 교회를 가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타 교회를 한번 방문해보라는 취지셨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해 여름휴가 때 저는 서울 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남포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은퇴하신 박영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교회인데, 제가 청년 때 참 많이 은혜를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고 여전히 목사님의 설교는 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성도들은 통로를 걸어나오며 악수하고 인사하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흔들면서 예배 때 받은 은혜를 서로를 향한 축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예배 때 받은 은혜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난 혼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교회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 외‧로‧움 이라는 세 글자가 제 머리 속을 가득 메웠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3층이었는데 1층까지 내려오고, 또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저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멋쩍은 표정관리로 힘들어했던 기억들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영국에서 외로움담당 장관이 생겼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청소년, 장애우, 초보 엄마에 이르기까지 외로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외로움은 질병으로서 매일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에게 목장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편안한 느낌의 가정집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주일 살았던 이야기, 감사와 고민, 더 나아가 서로를 향해 기도로 용기를 주는 이런 모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정말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목장을 뛰어 넘어서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사역팀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 오셔서 집에 가실 때까지 몇 마디의 말을 하시나요? 외로움을 느끼기 싫어서 더 바쁘게 살아가고 계시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각자의 인생 가운데 ‘아남카라’(anamcara:영혼의 친구)를 곁에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답니다. -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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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제목은 언젠가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한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였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 차가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얼른 휴대폰 메모장에다 적어 두었습니다. ‘리즈시절’이란 말은 원래 축구에서 온 말인데, 영국의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가 1998년에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팀에 입단을 했습니다. 그는 그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고, 그 뒤에 그 팀을 떠나서도 다채로운 경기를 많이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언제나 그를 볼 때마다 아쉬워하곤 했습니다. “리즈시절 때는 이런 기회에선 어김없이 골을 넣었는데......리즈시절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바로 여기서 ‘황금기’ ‘전성기’를 뜻하는 말로 ‘리즈시절’이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과거의 최고 전성기를 추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그 영광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나에게 족쇄처럼 작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성기’보다는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언젠가부터 ‘하프타임’이란 강의가 자신이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들어가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에게 그들의 ‘리즈시절’은 ‘과거’입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했을 때, 더 똑똑했을 때, 돈을 더 많이 벌었을 때가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나의 리즈시절’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의 전성기는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시기’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능력있는 시기를 보냈더라도 그 시간이 나와 내 가족들만을 위해 투자된 시간이었다면 여러분의 ‘리즈시절’은 ‘아직’입니다. 성도의 전성기는 나이나 능력같은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나이가 60 아니 70이라도 지금까지는 나만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이웃을 섬기는 일에 드려지고 쓰임받는 인생을 산다면 여러분의 ‘리즈시절’은 ‘지금’입니다.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인 나를 지으시고 사명을 손에 쥐어 주시며 세상에 보내주신 창조주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사용되며 살아가는 것만이 성도의 ‘리즈시절’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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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해 준 다음 ‘시작’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각자 뛰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가서 그것을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인류학자는 의아해하면서 아이들에게 “먼저 뛰어가면 그 사람이 혼자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분트”(UBUNTU)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분트!” 반투족 말로 “네가 여기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전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자주 강조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분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큼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행복한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이미 이것을 경험하고 계신데 곧 목장입니다. “우분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가족”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가도 목장식구가 되는 것이 등록의 조건임을 알고 “그냥 교회만 다니면 안되나요? 목장을 꼭 선택해야 하나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하던 초창기 때도 이런 질문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성도님, 적지 않은 세월 교회를 다니셨는데 성도님이 정말 가족처럼 느끼시는 분들을 몇 분 정도 알고 계신가요? 나에 ‘관해서’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알고 나를 보고서 ‘우분트’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분이나 성도님 곁에 계신가요? 지금 신앙생활이 정말 행복하신가요?”

 

물론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가족’하면 여러분들 마음에 생각나는 단어가 있으실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도 있겠지만 반대로 ‘갈등’이라는 단어도 있을 것입니다. 즉 진짜 가족이라면 행복만 있지 않고 갈등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갈등이 두려워서 가족을 떠나서 “나는 혼자 살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행복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길은 곧 ‘우분트’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손목사-

 


2023.06.23 22:31

헌신 초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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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은 하나님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그리고 우리 행복한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반응하여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설교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기도 했고 속으로 결단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도 잠시 뿐, 예배는 그 작은 감동을 마음 속에서 다시 한번 되뇌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주차장으로, 집으로, 교회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내 마음 속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 밭 비유에서 길가와 같은 마음밭처럼, 말씀이라는 씨가 떨어지긴 했는데 곧바로 새(마귀)가 와서 먹어버려서 씨가 뿌려진 것조차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말씀드린대로 주일예배 시간은 은혜받는 시간이라기보다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들은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공개적일수록 결심한 것을 실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여러분이 헌신하실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평소에 고민했던 내용인데 오늘 말씀으로 어떤 결심을 하게 하셨을 때 *현재 풀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그 때가 다가올 때

*다시 한번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헌신하고 싶을 때 *이 교회에 등록하기를 원할 때

*세례받기를 원할 때

*예수영접모임에 참여해보길 원할 때

*목사님께 특별한 기도제목을 부탁하고 싶을 때

*오늘 주신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할 때

*병중에 있거나 자신의 삶에 특별한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이 결심이 지속되도록 부탁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을 때 등등입니다.

 

예배 중에 이런 마음이 들면 주저하지 마시고 마지막 결단찬송을 부르실 때 3열과 4열 맨 앞자리로 나오셔서 헌신카드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축도 후에 바로 기도해드리고, 그 카드를 가지고서 한주간 동안 기도해드립니다.

 

예배 후에 제가 인사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실 그때 인사가 그저 눈 인사 정도(눈길조차도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이니까 헌신기도와 배웅인사 중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한 것이니 제 생각에 동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래도록 제 마음에 소원했던 이 헌신초청 시간을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이루게 되어서 제게는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반응하고 응답하며 주일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거룩한 몸부림이 습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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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영적 인격과 영성이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손길로 다듬어져 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은 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입니다.

영성을 허무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치면서 영성은 회복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가 많을수록 내면은 변화되고 그러면서 영성이 세워지게 됩니다.

 

영성은 오랜 시간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으로 인해 세워지게 됩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머물면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사는 대신에 그것을 대체하는 편하고 쉬운 길을 찾기도 합니다.

영성을 매일의 삶이 아닌 특별한 시간으로 대체하려고도 합니다.

집회나 수련회와 같은 시간으로 영성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집회나 수련회 같은 시간을 통해서는 영적인 삶의 동기부여나 영적 삶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는 있지만, 영성은 세워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몇 시간이나 며칠간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나 수련회를 통해서 아무리 도전과 은혜를 입어도 말씀을 붙잡고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없으면 영성은 세워지지 않게 됩니다.

영성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삶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없이 일 년에 몇 차례의 특별한 모임이나 시간을 통해서 영성을 세우고자 하는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대가를 지급하면서 하나님 앞에 머물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헌신하면서 자신과의 영적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삶을 풍성하고 강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영적인 삶은 모방이 안됩니다.

영성은 삶을 살아내야 하고 삶을 살면서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영성은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지식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삶을 살아가면서 세워집니다.

영성은 삶을 살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세워지지 않습니다.

영성을 세우는 특별한 방법이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영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매일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영적 씨름을 하면서 살아갈 때 조금씩 조금씩 세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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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주일부터 쉼 없이 달려온 <생명의 삶>이 드디어 오늘 수료식을 합니다. 생명의 삶을 두 번 하면 일년이 가는구나~ 할 정도로 가정교회에서 생명의 삶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오늘 칼럼의 제목은 눈치 채셨겠지만 30년도 더 전인 19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34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 목사님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패러디해본 것입니다. 생명의 삶은 배워볼수록 그 안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 삶공부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가장 먼저 생명의 삶을 듣지 않고는 다른 삶공부를 수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24기 생명의 삶도 34명이 수료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처음 들으시는 분들도 있고, 이미 들으셨지만 다시 한번 수강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부목사님과 함께 가정교회 일일특강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사는 최영기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말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받아 적기 바빴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부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이미 다 아시는 것일텐데 뭘 그렇게 적으세요?” 맞습니다. 저는 이미 최목사님이 일일특강에서 다루시는 내용을 목사님으로부터 서너번도 더 들은 터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흡수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을 이번에 또 들으신 분들도 마지막 시간에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다고,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생명의 삶임에도 늘 수강하시는 분들이 아쉬워했던 것은 강의를 듣는 반원들끼리의 교제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가르쳐드릴 내용이 너무 많다보니 교제 시간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기수부터는 결단을 하고서 강의 내용을 좀 줄이더라도 중간에 조별모임 시간을 가졌는데, 이것이 정말 신의 한 수? 아니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습니다. 이번에도 5명씩 7조로 나누어서 조별나눔을 가졌습니다. 목양실까지 나눔 장소가 되는 바람에 저는 그 시간에 1층 로비에 가서 앉아 있어야 했지만, 반원들이 그 시간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저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한 시간이 끝나서 오늘 저녁부터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입니다 하하^^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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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족반 첫 번째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따뜻했던 시간과 가장 추웠던 시간”을 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새가족들의 이야기를 제가 주로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수 때 한 새가족이 목사님도 가장 추웠던 시간, 가장 따뜻했던 시간을 말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나는 말하는 시간이 아닌데...’ 살짝 당황했지만 뭐를 말할까 생각하니 제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시간이 최근이어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담임목사로 청빙되어 햇수로 10년을 섬겼던 정든 교회를 사임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컨퍼런스에서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설교에서 박종국 목사님이란 분이 목회가 너무 어려워서 그 교회를 떠나려고 최영기 목사님에게 장문의 상담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 얼마나 호된 꾸지람을 당했었는지 모른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2년 전 제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우리 행복한교회에서 공동의회를 통해 저의 청빙 결정이 난 다음에도 부모님의 반대, 교회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행복한교회 당회 앞으로 제가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메일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최영기 목사님께 저도 장문의 상담요청 메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답신은 딱 한 줄이었습니다. “저 같아도 손목사님 부모님 말씀대로 말해드릴 것 같습니다. 최목사”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에게서 온 그 차가운(?) 답신 때문에 저는 한동안 아내 말을 빌리자면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지냈습니다.(그 뒤로 최목사님은 오해해서 미안했다는 메일을 보내주셨지요^^) 하지만 주님의 은혜는 다시금 제 결심을 붙들어 주셨고, 그 강권하시는 음성으로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박종국 목사님은 설교 중에 사도행전 12:7절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저처럼 그 ‘다른 곳’이 다른 지역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다른 곳’이란 안주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내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다 옳다는 자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남을 성공시켜주기 위해서 애써 보는 것입니다. 저는 날마다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내가 가야 할 다른 곳이 어디임을 알면서도 가지 않는 제 고집을 꺽어달라고.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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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문경에서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주님이 꿈꾸셨던 교회를 세워보기 원하는 500명 가까운 목사님, 사모님, 선교사님들이 이번에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목회자 컨퍼런스 시간은 크게 공부, 간증, 기도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부라 함은 가정교회 삶공부를 성도들에게 제공하고자 목회자들이 먼저 배우고 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13과목이 개설되었는데, 저는 <새로운 삶>을 들었습니다. 간증은 가정교회로 목회를 하면서 주신 은혜들을 나누는 사례발표 시간으로 이번에도 5분의 간증은 우리들에게 많은 도전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라 함은 우리 교회에서 하는 세겹줄기도처럼 2박3일 동안 이틀밤을 육겹줄(6명이 한 조가 되어) 기도회로 함께 삶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순서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교회 컨퍼런스에서 참가자들이 제일 기대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개회사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개회사 들으러 온다는 말까지 하실 정도입니다. 오랫동안 최영기 목사님이 하셨고, 은퇴하신 후에는 그 자리를 이수관 목사님이 이어서 하셨는데, 이번에는 이 목사님이 못 오시는 바람에 최영기 목사님이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개회사도 좋지만, 역시 노장(老將)의 개회사는 우리들의 부족한 면을 속속들이 터치했습니다. 큰 타이틀만 기억해보면 (1)목회도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되 병약한 노인들에 대한 키워드는 배려고, 건강한 노인들에 대한 키워드는 활용이다. (2)성경에 기초한 삶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정교회 운동은 지속될 수 없다. (3)교회의 존재목적인 회복은 개인의 회복을 넘어서 가정회복, 사회회복, 자연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 (4)영성이 빠진 가정교회 세 축 네 기둥은 엔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다...이 네 가지였습니다.

 

이 중에서 저는 마지막 말씀이 제일 도전이 되었습니다. 최목사님은 영성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영성은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과 소통하며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영성을 이렇게 선명하게 정의해주시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면 이런 영성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영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친밀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님과 약속한 기도시간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과 둘째, 장 수를 채우기 위한 성경읽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한 성경읽기를 해야 합니다!” 2008년 가정교회를 알게 된 이후 16년째 일년에 두 번 다니는 컨퍼런스는 올해도 주님이 준비하신 은혜를 듬뿍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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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언제나 보아도 싱그러운 싱글들과 함께 체육대회를 가졌습니다. 요새는 늘 주말에 비가 왔는데 지난 주는 너무 날씨가 좋아서 감사는 했지만, 때 이른 높은 기온에 과연 얼마나 많은 싱글들이 참여할까 살짝 걱정했었는데, 새내기들도 많이 오고 정말 OB와 YB의 조화가 멋지게 이뤄진 날이었습니다. 그 따가운 햇볕 아래서도 피구며 발야구며 피날레로 줄다리기까지, 오히려 자매들이 더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젊음이 좋다”도 느꼈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이 있는 청년들은 이렇게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구나” 하는 생각에 참 감사했었습니다.

 

언젠가 스승의 날에 제자 한 명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았었습니다. “청년의 때 목사님을 통해 훈련받은 것이 제겐 큰 축복입니다!!! 저는 올 봄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7년 만에 복직해서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사역을 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감회가 컸겠다^^ 그동안 가정에서의 사역 훌륭하게 해내느라 정말 고생했어^^ 가정은 팀이고, 부부는 동역자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주님 일에 헌신할 때 주님이 덤으로 주시는 행복을 맛보며 사는 것이 가정생활인데, 정말 그대로 살아내는 것 같아서 나도 정말 기쁘다”

 

“목사님 보내주신 톡 읽고 또 읽으며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편에게 보여주며 함께 나누었어요^^ 남편도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며....아멘!이랍니다^^ 청년의 때에 이런 기도를 했었어요...직장과 소명이 일치되게 해주소서! 하나님 이야기를 마음껏 편하게 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나게 하소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청년부'의 2008년 겨울수련회를 잊지 못합니다. 여름, 겨울로 40일 동안 준비 새벽기도회를 한 후 교회에서 5박6일을 먹고 자며 했던 수련회를 저희들은 45박46일 수련회라고 불렀었잖아요? 기독교사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시금 확인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수련회였지요^^ 깊은 터널 속을 끝을 모른 채 헤쳐나가던 때였는데......뒤돌아보니 주님께서 함께 하셨고, 손잡고 이끌고 가셨더라구요. 내 힘으로가 아닌 주님의 힘과 의지대로 되어져가는 존재임을 느낍니다. 목사님~ 복직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목사님 설교가 종종 생각이 나더라구요.....기본에 충실하라! 말씀과 기도가 기본이다^^ 몸과 마음에 배인 목사님의 설교는 여전히 제 삶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대전에 오시다니....감사드려요.” 이제는 벌써 네 식구가 된 사랑스런 가정을 집으로 초대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두 사람이 주님 안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다운 관계인 것 같습니다. -손목사-

 


2023.05.13 02:38

부모만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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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은혜교회를 담임하시던 홍정길 목사님께서 은퇴 후 ‘굿 처치 포럼’에서 강의하신 내용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고 옥한흠, 고 하용조 목사님, 그리고 이동원 목사님과 함께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리며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목사님의 이름 앞에는 ‘성공’이란 단어를 붙인다고 해도 그리 어색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스스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실패한 목회자”라는 그의 말에는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이 묻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좋은 주장을 하고 좋은 생각만 갖고 있다고 좋은 목회자, 좋은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진리가 예배, 말, 신학 속에만 있지, 실제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수치이자 나의 수치이기도 하다”고 말씀합니다. “복음만 전하면 이 땅에 천국이 올 줄 알았다. 그래서 목숨 걸고 천만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이 나라 5만9천 마을마다 교회를 세워달라고 기도하며 민족복음화를 위해 달려왔다. 보이지도 않았던 서쪽 대륙 중국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마침내 이 기도가 이뤄졌다.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중국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다음 말씀에서 저는 목회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목사의 삶’ 아니 목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성도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치열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한국교회의 놀라운 양적 부흥을 목도했지만 목회자와 성도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 믿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싶어 제자훈련도 열심히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성도들의 성경 지식은 풍부하게 쌓여 갔지만 삶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목사님이 내리신 결론은 ‘자녀교육’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어제를 돌이켜볼 때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후회와 슬픔으로 남는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가 승리할 수 있겠나? 부모밖에 답이 없다. 바른 신앙을 가르쳐 바른 삶을 살게 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어버이날,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준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보고 배울” 수 있는 ‘부모의 삶’ 밖에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부모만이 답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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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부모되신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참 부모가 되셔서 늘 기다려주시고, 안아주시고,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녀 ○○○를 기다리지 못하였고, 윽박지르고, 부모의 권위로 복종시킨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무지와 그릇된 양육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자녀의 모습이 왜곡되고, 그 속에 분노가 쌓이게 되었으며, 정서가 상처받았을 순간순간들이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자녀를 참부모이신 하나님의 품에 품어 주옵소서.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를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저는 청지기가 되어 자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게 하시고, 생명의 말씀과 부모의 모범으로 양육하게 하옵소서.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청소년 부모의 삶 첫 시간에 수업에 들어오신 부모님들과 함께 읽고 시작하는 기도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드디어 초등 학부모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중학교 들어갔다고 매정하게 어린이날을 끊기는(?) 미안해서 영화관이라도 데리고 갔습니다. 이런 게 늦둥이 사랑이라는 것인가 봅니다. 그런데 사실 중고등학교 시기만큼 우리가 더 신경을 써야 할 때도 없습니다. 그들도 아프고 부모도 아픈 때는 사실 어린이 때가 아니라 청소년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절은 한마디로 혼란의 시기입니다. 영적으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부모님도 힘든 것은 부모들 자신도 중년기라는 혼란을 겪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이 힘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녀는 사춘기를 겪고 있고, 부모는 중년기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집안에 그런 태풍이 두 개가 있는 때이니 힘든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가 어른이니 버티어 주는 것은 부모여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좌절합니다. 반대로 자기 옆에서 자기를 신뢰해주며 버텨주는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자녀들이 바로 청소년 자녀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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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우리 교회를 다니시는 성도님들에게 금요일 목장모임은 익숙하신 것이지만, 이사를 오셔서 우리 교회를 선택하신 성도님들에게 제가 새가족반을 하면서, 우리 교회 몇 주 다니시면서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을 여쭤보는데, 그때 대부분 하시는 질문이 왜 금요철야(요새는 밤을 완전히 새우는 교회는 거의 없고 금요심야기도회 등으로 부르죠) 가 없냐는 것입니다. 저도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이 문제가 딜레마였습니다. 대부분의 목장이 모임을 금요일 저녁에 하게 되면서 금요 심야기도회를 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목회는 기도목회입니다. 목사가 기도하지 않고는 평신도를 사역자로 키우는 목회를 해 나갈 수 없습니다. 목자목녀가 기도하지 않고는 맡겨주신 목원들을 목양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목원들이 기도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교회 목회의 성공의 열쇠는-물론 성도들의 만사(萬事)가 다 그렇지만-기도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의 아쉬움이 당시 저에게는 정말이지 컸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금요기도회를 수요일로 옮겨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음날에 대한 부담이 없는 금요일과 평일의 한 중앙에 있는 수요일, 두 날은 나오시는 분들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지만,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저의 걱정은 한 마디로 기우였습니다. 첫날부터 금요기도회에 나오시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똑같이 나오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정교회를 하는 이상 기도하지 않고서는 영혼구원하고 제자삼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더 기도하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는 장소나 시간이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건 “정말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실 수 있다면,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수요기도회에 참여해 보십시오. 정말 좋습니다. 꿈을 자주 꾸지도 않고 꾸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금요일 밤에 꾼 꿈이 이 칼럼을 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수요기도회에 얼마나 성도들이 많이 나오셨는지 아랫 강단까지 성도들이 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회복의 은헤를 주시려고 하는 이 때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기를 정말 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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