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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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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람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

 

단봉선 중에 본부교회로 썼던 바공바얀 교회에서 2017년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카일이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형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분들이, 필리핀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렇게 와서 어떻게서든지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제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말로도 전도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애써보겠습니다.” 우리의 순종을 통해 카일 형제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선교가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낀 단봉선 일정이었습니다. 이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음이 되어주신 Love & Mission Community 행복한교회 믿음의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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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현지에서 “저는 지금 필리핀 까비떼에서 단봉선팀과 함께....” 이렇게 좀 현장감있게 목회자칼럼을 써서 보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현지 상황이 어떨지도 모르고, 또 칼럼을 쓸만한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어차피 주보도 만들어 놓고 가야 하기에 칼럼도 미리 써 봅니다.

 

우리 교회 유리문들에 보면 교회 이름인 행복한교회 밑에 작은 글자로 Love & Mission Community Church라는 글귀가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써 놓은 것입니다. 즉 우리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그리고 선교의 공동체를 꿈꾸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지난 2008년 가정교회로 전환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만으로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로 전환한 후 매주, 평일에, 가정집에서 식탁교제를 나누며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그 당시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 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는 실제로 선교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매달 한번씩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회를 하는 교회, 녹록하지 않은 재정이지만 매달 15%를 선교에 지원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번에 필리핀 단봉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성도님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관심은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가 되는 일에도 열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민센터를 통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과 함께 지난 해 가정교회 부흥회를 기점으로 한달에 한번 공동체 금식을 하면서 성도님들이 드리시는 헌금은 매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아름답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 한국교회의 현실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2022년 교단 총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보면 우리 교단은 지난 1년 동안 9만명의 교인이 줄었습니다. 1만 교회 정도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이 위기는 분명히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선교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이유도 결국은 선교입니다. 국내든 국외든 영혼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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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엇을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 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두 사람이 한 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음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해서 내 전부를 다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샤를 드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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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목회자칼럼을 읽어보신 분들 중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2008년에 가정교회 전환을 했으니 올해로 17년 차인데 그러면 가정교회의 정신에 더 올인해야지 왜 형식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익숙해지는 것이 제일 위험한 것입니다. “나는 다 안다! 세축 네기둥 다 안다!”라는 것이 우리에게도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모이지 않으면서도, 평일에 모이지 않으면서도, 가정집에서 모여서 식탁교제를 하지 않으면서도 가정교회를 하고 있는 것인 듯 착각을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릇이 없으면 내용은 담길 수 없습니다. 매주 모이지 않고, 평일에 모이지 않고, 가정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지 않고서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의 치유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목장으로 만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비용은 그날 순서이신 분이 섬기실 것입니다. 고마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김밥과 라면을 먹더라도 집으로 목원들을 초대해서 섬겨줄 때만큼 고마운 마음은 들기 힘듭니다. 그런 가정집에서의 섬김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 집사님이 우리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목장에서는 삶나눔을 통해서 마음치유를 경험해야 합니다. 물론 목장에서도 아직은 내 마음속 모든 것을 다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목장생활을 오래 하셨다면 다른 곳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고민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장에서는 뭘 꾸밀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꾸미는 것은 동창회 갈 때 꾸미는 것입니다. 가족끼리는 결코 꾸미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꾸며야 하는 모임에 다녀오면 피곤해지는 것이고, 꾸밀 필요가 없는 모임에 다녀오면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 나눔을 중심으로 합심해서 기도하여 목원들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곳, 그곳이 목장입니다.

 

이런 목장이 될 때 목장은 자연스럽게 VIP전도 중심의 목장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목장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 마음의 치유,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는데 이곳에 누구를 초대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들겠습니까? 진정한 사귐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삶나눔을 통해서 성령님의 치유를,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도록, 원칙에 다시 충실해보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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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에 가면 ‘가정교회 컨설팅’이라는 과목이라든지 ‘가정교회 코칭’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가정교회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받는 과목입니다. 주로 가정교회 20년 차 이상 되시는 목사님들이 강사이신데, 그 과목을 듣는 분들이 교회의 당면한 문제나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면 강사님들은 한결같이 이 기준을 가지고 답변을 해주시는데, 그것이 뭐나면 곧 세축 네기둥입니다. 세축 네기둥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잘 구현하고 있는지를 체크해주십니다. 세축이 형식(시스템)이라면 네기둥은 내용(스피릿)입니다. 세축은 여러분들도 이미 잘 아시는 목장모임, 주일연합예배, 삶공부입니다. 가정교회라고 하면 아무래도 목장모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성도들은 이 세축에 헌신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연약한 점이 무엇이냐면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즉 목장모임을 하는데 왜 하는지 모른채 열심히 합니다. 삶공부를 하는데 그냥 과정 마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한번 점검받아야 하는 것은 “시스템 말고 정신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영혼구원하기 위해서 모이고 있는지, 목장에서 보고 배움으로 제자되어 가고 있는지, 사역을 분담하면서 진정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남을 성공시켜주는 사람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지, 세축 각각에 이 네가지 정신이 들어가서 움직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세축보다는 네기둥이 더 중요한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축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서 네 기둥이 구현될 수가 없습니다. 내용물이 들어갈 그릇이 없다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장은 매뉴얼대로 하셔야 합니다. 매주 모이셔야 하고, 가정에서 모이셔야 합니다. 왜 가정교회(House Church)라고 부르냐면 예배당 소그룹실이나 식당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모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본인의 집이 없는 싱글들은 예외입니다). 부득이한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을 자주 허용하게 되면 그 목장은 목장으로서의 특징을 점점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신을 담을 그릇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도 마찬가집니다. 연합교회가 매학기마다 새로운 삶공부를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이미 다 들은 것이라서 들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 매뉴얼대로 5년마다 한번씩은 반복수강을 하면서 그릇을 계속 가꾸어야 그 안에 풍성한 내용이 더욱 잘 담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형식과 내용, 둘 다 중요한데, 2024년 우리 교회는 형식의 재정비에 좀더 방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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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사람들은 그 서문에 자기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동기를 적습니다. 그런데 그 말미에 항상 적는 것이 이 책을 쓰기까지 자기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2023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저에게도 참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제가 마음껏 목회하도록 묵묵히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원로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늘 “협력보필”이라는 말을 달고 시시는 네 분의 신실하신 장로님들께 감사합니다. 함께 식사를 할 때 제가 대표로 식기도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또 눈을 감고 기도를 하셔서 왜 또 하시냐고 했더니 목사님을 위한 153기도를 하는 것이라고 하셨던 한 권사님처럼 일년동안 저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주셨던 153기도요원들께 감사합니다. “목장사역을 해보니 목사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저는 10명 가지고도 이렇게 힘든데 목사님은 어떠시겠어요?”라고 하시며 개척교회 목회자 같은 말을 하시는 목자목녀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교회의 본당과 교육관을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화장실이며 각 방들이 늘 깨끗하도록 본인 집보다 더 청소를 열심히 해주시는 성도님들과 다 죽어가는 화분들도 능력의 손으로 부활시키는 꽃팀의 헌신은 제가 누구를 만나도 자랑하는 대목입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더 아이들같아 지시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시는 유아부, 유초등부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일년 동안 준비하시면서 청소년목장을 시작해주신 청소년목자들과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로 인해 아무 한 것 없는 제가 칭찬을 많이 들어서 살짝 민망합니다^^ 예배 시간에 영의 양식을 먹은 후 육의 양식까지 먹도록 주일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주신 주방팀의 자매님들과 부뚜막 형제님들, 그리고 늘 환한 미소로 성도들을 맞이해주신 안내팀과 서 있기도 힘든 한 여름, 한 겨울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신 주차팀원들께 감사합니다. 두 찬양대, 그 외 여러 찬양팀과 찬무팀, 악기로 수고해주신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더욱 풍성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잘하면~ 당연, 실수하면~어, 왜 그래?”란 반응이 나오는 곳에서도 이분들이 있기에 주일마다 예배가 행복했던 방송팀원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금요일마다 부모님께 따뜻한 밥상 차려드리는 마음으로 포에버목장을 섬겨주셨던 도우미들께 감사드리고, 교회의 살림하시느라 늦게 식당에 오셔서 때로는 햇반을 드시기도 했던 재정부원님들의 수고해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일주일 기도표에 빈칸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중보기도가 문화가 되는 교회를 만들어 주신 기도의 삶 중보기도팀원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벽기도의 그 자리를 지켜주셨던 제게는 보물과도 같은 분들....다 표현하지 못해도 여러분께 많이 고마운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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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한창이었던 3년 전 성탄절이 생각납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을 먹으면서 막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옛날에는(?) 오늘같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저녁에 교회에 모였어!” “모여서 뭐 했는데? 예배 드렸어?” “어~ 물론 예배도 드렸지. 예배가 끝나면 성탄찬양도 하고, 연극도 하고, 정말 재밌게 보냈지. 그리고 그런 순서가 끝나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형아 누나들은 또 다른 방에서 게임도 하고 즐겁게 놀았어....그러다가 12시쯤 되면 모여서 권사님들이 끓여주시는 떡국을 밤참으로 먹고 새벽송이라는 것을 돌러 나갔어!!” “새벽송? 새벽송이 뭔데?” “어~ 조를 짜서 성도님들 집을 돌아다니는거야. 집집마다 다니면서 현관문 앞에서 성탄찬양을 불러주는거지!! 한 소절만 불러도 문을 열어주시는 집도 있었고, 깜빡 잠이 드셔서 한 곡을 더해야 문을 열어주시는 집도 있었고^^ 우리가 찬양을 불러드리면 성도님들은 미리 사놓으신 과자선물을 주셨지. 그러면 우리는 자루에 그 선물을 넣어 메고 다녔어!! 산타할아버지가 된 것 같았지^^ 그렇게 다니다 보면 새벽송을 도는 다른 교회분들과도 만나서 서로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도 했었지. 밤에 다니는 거라서 귀도 시렵고 추웠는데 그런 때 선물을 주실 뿐만 아니라 잠깐 들어와서 쉬었다 가라고 하시는 집사님은 정말 천사 같았어!! 해마다 단팥죽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던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든 그 집사님이 사시는 동네를 돌고 싶어했었지. 하하^^ 그렇게 정해진 집을 다 돌고나면 자루 가득히 선물이 차게 되고, 각 조는 그 선물들을 교회 가지고 와서 다 풀어놓고 포장을 했어” “왜?” “어~성탄절 예배 때 은섭이 같은 주일학교 어린이들 선물로 주려고!! 그렇게 포장을 하고 집에 가면 새벽 4시 정도? 잠깐 눈 붙이고서 성탄절 예배에 와야 하는데 – 은섭아! 이건 그러면 안되는 건데 – 그러다가 그냥 잠을 자느라 정작 성탄절 예배에는 못오는 친구들도 있었지ㅜㅜ”

 

아들은 “와~~재미있었겠다!!” 정말 무슨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하며 들었습니다. 3년 전 성탄절은 교회에도 잘 모이지 못하는 때라서 각 가정들마다 성탄찬양을 준비해서 ‘온라인 성탄찬양 컨테스트’를 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풍성한 성탄축하 행사를 할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칸타타로 준비해주신 두 찬양대원들과 행사를 준비해준 목장과 사역팀들에게 감사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최선을 다해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 이 또한 성탄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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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유머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아픈 단면을 꼬집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한 3대 조건!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세상은 남자들이 가정을 이끌 수 없고, 이끌어서도 안된다는 메시지들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성경은 힘주어 남자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이라는 운전석에 앉힌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입니다!” 새가족반 첫 시간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추웠던 일과 따뜻했던 일”을 나누는데, 그때 성도님들이 하시는 이야기 중에 많은 부분들이 아버지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물어보면 된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 새로운 삶 시간에 리더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사탄은 누구보다도 리더를 공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대장을 먼저 해치우는 전략입니다. 이혼으로, 바쁜 일로, 오락으로, 사단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서 남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긴 리더십을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지지난 주 칼럼에서 ‘목장탐방을 하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수요일 새벽기도 강단에 올라갔을 때 주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근석아! 이곳에 남자들이 몇 명이나 있나 세어볼래?” 목사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 새벽기도 교인은 그 교회의 십일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100명이 모이는 교회면 새벽기도는 10명 나오고, 300명이 모이는 교회면 30명 정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 교인 숫자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날 새벽, 찬송을 부르면서 가사도 틀려가며 남성들이 몇 명이 있나 세어보니 4명이었습니다. 남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목회적인 면에서 참 회개가 많이 된 새벽이었습니다.

 

몇 년 전 휴스턴서울교회에서 세겹줄 도서로 정했던 책을 한 권 소개해드립니다. <남자의 결단>이라는 책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그저 막연한 준비가 아니라 구체적인 결심을 하는 준비였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내년에는 내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되기 위해서 새벽을 깨워보겠다고 결단하면 좋겠습니다. 전혀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일주일에 1-2회 정도로만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영적 리더가 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글을 읽으시는 남성들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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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겹줄기도회는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은 거의 다 하고 있는 ‘가정교회의 문화’중에 하나입니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전도서 4:12절 말씀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짝이 되어서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열흘 동안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입니다.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정말 전도서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를 한다고 해서 큰 결심을 하고 참석을 해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도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10일 완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짝이 정해지면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만나서 열흘 동안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제목들을 함께 나누고, 실제로 열흘 동안 매일 새벽마다 만나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기도해주고, 기도회가 끝나면 완주기념 쫑파티(^^)까지 하니 한 해를 시작하면서 뭉친 세겹줄 짝들은 제가 보니 거의 일년은 그 교제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세겹줄기도회의 장점 두어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세겹줄기도회는 10일 동안 기도짝 세 명이 설교가 끝나면 손을 붙잡고 10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기도훈련에도 참 좋습니다. 언젠가 한 성도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내가 내 가족 말고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10분 동안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게는 너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세겹줄기도회의 설교는 일반적인 설교를 하지 않고, 책을 한 권 정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읽게 하고, 제가 그 책의 순서를 기초로 해서 설교를 준비합니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성도들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 나의 영적시야를 넓혀주는 독서의 기회가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정교회에서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물결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공동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점점 좋은 문화가 자리잡혀 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작년 세겹줄기도회 때 주신 은혜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벌써 2024년 세겹줄기도회 짝을 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바라기는 이 물결을 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문화와 유행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우리 행복한교회 가족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세겹줄기도회는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은 거의 다 하고 있는 ‘가정교회의 문화’중에 하나입니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전도서 4:12절 말씀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짝이 되어서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열흘 동안 새벽을 깨우는 기도회입니다.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정말 전도서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를 한다고 해서 큰 결심을 하고 참석을 해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는 분들도 세겹줄기도회를 하면 10일 완주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짝이 정해지면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만나서 열흘 동안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제목들을 함께 나누고, 실제로 열흘 동안 매일 새벽마다 만나서 같은 자리에 앉아서 기도해주고, 기도회가 끝나면 완주기념 쫑파티(^^)까지 하니 한 해를 시작하면서 뭉친 세겹줄 짝들은 제가 보니 거의 일년은 그 교제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세겹줄기도회의 장점 두어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세겹줄기도회는 10일 동안 기도짝 세 명이 설교가 끝나면 손을 붙잡고 10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이것이 실제적인 기도훈련에도 참 좋습니다. 언젠가 한 성도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사님! 내가 내 가족 말고 누군가를 위해서 이렇게 10분 동안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게는 너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세겹줄기도회의 설교는 일반적인 설교를 하지 않고, 책을 한 권 정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읽게 하고, 제가 그 책의 순서를 기초로 해서 설교를 준비합니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는 성도들이라면 적어도 1년에 한번 나의 영적시야를 넓혀주는 독서의 기회가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정교회에서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물결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문화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공동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점점 좋은 문화가 자리잡혀 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작년 세겹줄기도회 때 주신 은혜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벌써 2024년 세겹줄기도회 짝을 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바라기는 이 물결을 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문화와 유행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우리 행복한교회 가족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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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는 주일연합예배, 삶공부, 목장모임, 이 세 축을 중심해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목장모임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가정교회라는 명칭도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 즉 목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여러 목장들을 탐방하면서 참 행복했고 고마웠습니다. 목사와 성도가 같은 꿈을 갖고 달려간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그 일에 동역자들이 되어주는 목자목녀, 그리고 목원들이 고마웠습니다.

 

동시에 ‘요것이 있었으면 좀 더 좋겠다...’라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서 칼럼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이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데, 목장들마

다 의의로 찬양이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반주할 사람이 없으니 주로 음원을 틀어놓고 하시는데, 음원에 맞춰서 찬양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색하고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원들 중에 통기타 한번 배워보시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기타에 익숙한 분들 중에서 동아리를 한번 만들어 보셔서 이런 면에 도움을 주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둘째, 삶을 나누는 것은 이제 모든 목장이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정말 마음의 고민들, 가정의 문제들을 깊이 나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나눔을 하는 목적은 그것 가지고 기도하려고 나누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해서 기도응답을 경험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기 위해서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 나눔 후에 기도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음악도 틀어주면서 교역자가 인도하는 기도회에 비하면 썰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기도회보다도 구체적이고 진실할 수 있는 기도회가 목장모임 때의 기도회입니다. 제가 보니 삶 나눔 후에 목원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한꺼번에 기도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한가정씩, 목원이 많으면 두 가정씩 묶어서 기도하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도를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좀더 간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목장은 치유공동체이면서 사명공동체입니다. 즉 우리가 목장을 통해 먼저 치유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통해 우리의 VIP도 예수님을 만나 그 인생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장모임에서는 늘 VIP에 대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VIP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 제일 좋지만, 그런 이벤트가 없었다고 해도 목장의 공동VIP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꼭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들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목장에서 공동으로 해 볼 것인가를 자주 얘기해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왜 이 바쁜 인생을 살면서 주일에 말고 또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는지가 우리 스스로에게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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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습니다. 역대급 불수능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험이 있고 나면 학교, 학원 선생님들이 “난이도가 어땠다, 변별력이 있었다”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시험문제를 평가합니다. 그럴 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있는데 곧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단순한 문제풀이식으로 공부하지 않고 개념과 원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수험생들이라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는 등의 말을 합니다. 이번 시험도 킬러 문항을 없앤다면서 왜 이렇게 어렵게 냈느냐는 말에 출제위원회의 대답은 비슷합니다. “개념와 원리에 충실하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개념정리가 참 중요한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헌신과 봉사’입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헌신과 봉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 속에서는 소위 말하는 갑은 “내’가 되고 부탁하고 사정해야 하는 하나님과 교회는 을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념정리를 아주 잘 못한 것입니다. 헌신은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서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서,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손에 내가 붙들려 ‘사용되는’ 것뿐입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날 부리시며 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감사하고 감격인데 하나님은 그 일을 내가 하면 잘했다고 상까지 주십니다. 이것이 헌신과 봉사의 올바른 개념입니다. 헌신과 봉사를 무거운 짐처럼 갖고 계셔서 12월만 되기를 기다리시는(?) 성도님들을 보면 살짝 안타깝습니다. 헌신과 봉사는 억지로 해야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천국에 상을 쌓아놓을 수 있는 특권,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다운교회를 섬기시는 석정일 목사님이 쓰신 이런 칼럼을 읽어보았습니다. “설거지나 청소나 빨래와 같은 집안일은 하기 싫어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이 있습니다. 집안일을 아무도 하지 않아서 쌓이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아내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하는 가정은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녀들과 남편이 일을 나누어 분담하면, 집안일이 훨씬 더 쉬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자녀들도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는 통로가 됩니다.” 교회는 사명공동체입니다. ‘성인아이’ 신앙에서 장성한 어른신앙으로 자라는 유일한 길은 공동체의 진정한 멤버로서의 책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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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I hate you, I love you"라는 이별노래 제목도 있고, 오래 전 프랑스의 한 디자이너는 ‘Hate'가 거울 앞에 서면 ’Love'로 보이는 묘한 반전 디자인 티셔츠를 만들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정말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기보다는 무관심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감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감사,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아니 신앙을 떠나서도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다보니 감사의 고백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감사꺼리들을 일부러 찾을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또한 감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난 주에는 감사할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 같아 감사가 안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라고 쉽게 생각이 드는 것처럼,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이나 원망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명절을 맞아 큰집에 가다가 길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고 아내와 제가 빵 터졌습니다. “여보~ 운전은 내가 할테니 전은 당신이 부쳐~” 막히는 귀성길 웃고 가자고 붙여 놓은 그 글귀에서 명절 때마다, 또는 아직 제사를 드리는 가문이라면 일년에 많게는 열 번까지 있는 집안 행사를 치르는 아내들의 수고를 느꼈습니다. 식사대접을 받으면 누구나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날마다 밥 해주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밥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같은 ‘당연함’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서 <하나님께 감사>라는 주제로 감사공모전을 했는데 이번에도 100명이 넘는 많은 성도님들이 동참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예상외로(?) 100감사 부문에 내 주신 성도님들이 많아서 더 감사했습니다. 올해 <말씀보화찾기>와 함께 했던 감사일기쓰기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0감사를 읽어보니 정말 그분의 인생여정이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아 덩달아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고백이 나오게 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며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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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감사가 많이 무뎌졌지만 아프리카에서 귀국해서 한국생활을 시작할 때는 정말 모든 것이 감사했었습니다. 우유를 줄 안 서고 살 수 있어서, 어렵게 산 우유를 좀더 오랫동안 먹어보려고 냉동시켜 놓았다가 녹여서 먹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샤워기에서 시원스럽게 나오는 물로 목욕을 하면서는 열흘 길게는 이주동안 물이 나오지 않아 1.5리터 페트병에 얻어 온 물로 몸을 씻었던 그때를 생각하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주유소에 가서 “가득이요!”라고 말할 때마다 완전히 서버린 차를 밀며 간신히 20리터 기름을 받고서 기뻐할 때가 생각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전기요금이 왜 이리 많이 나온 거야?”라고 하다가 전기를 하도 주지 않아서 촛불로 버틴 저녁 시간들이 많아 전기세를 거의 내지 않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우리는 참 좋은 나라에서 많은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외국 여행을 해 보시면 식당에 가서 물부터 공짜로 주는 나라, 반찬을 더 주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구요. 초고속 인터넷을 이렇게 싼 값에 이용하는 나라는 흔치 않습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만일 당신의 집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몸에 옷이 걸쳐져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8%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제목들 중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열심히 달려온 것에 하나님이 열매 주시는 것을 보니 “수고하고 애썼다”라고 격려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물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감사는 이미 주신 것들을 바라보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감사에서 나오는 행복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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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삶공부 중에 하나인 <기도의 삶>을 만드신 일본 가와사끼 초대교회의 조남수 목사님께 강의를 들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하루가 다르게 부흥하는 교회를 너무나 재밌게 목회하는 나에게 일본 선교사로 나가라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치고 선교사의 자녀가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를 꼭 일요일에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말이 서툰 아들이 그래도 잘 하는 것이 달리기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리기 1등을 해도 박수쳐주는 아빠 엄마가 오지 못하는 운동회는 아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을 붙잡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아들아!! 이번 운동회도 일요일에 하지? 우리 이번 일요일에는 비가 오도록 기도해보자! 조금도 아니고 운동회를 도저히 할 수 없도록 그 전날부터 비가 오도록 기도해보자!! 저는 아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된 것처럼!!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비가 안왔다면 제가 이런 간증도 하지 않겠죠? 운동회 전날부터 비가 왔고 결국 그 해 운동회는 며칠 연기되어 그 주간 평일에 하게 되었습니다. 평일에 하니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직장을 가야 하는 친구들 아빠는 못오고, 평일에 그래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저는 아내와 함께, 친구 선교사님들까지 동원해서 아들을 응원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지금 도쿄에서 일본인들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들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일본 성도들이 “아~~우리 목사님 아버지신가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했다는 그 아버지 목사님이신가요?” 하더라구요. 아들이 그 어릴 때 기도응답 경험이 얼마나 컸던지 목회하면서 성도들한테 자주도 말했나봅니다ㅎㅎ”

 

지난 화요일, 주간 일기예보를 보면서 에고~~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금요일 포에버 행사, 토요일 유아부 행사가 연이어 있는데, 목요일까지 날씨가 좋다가 금요일부터 우산 표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중보기도팀에 긴급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날씨 가지고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은미 사모님이 저에게 ‘날씨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제가 어디 가기만 하면 비가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요일에는 급했습니다. 분명 우리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는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도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 어르신들 1년에 한번 모처럼 나들이를 가는 것이고, 또 유아부는 더더군나나 전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비구름이 물러가게 하여 주세요. 지구의 자전과 공전까지도 잠깐 멈추셨으니 어려운 일 아니시죠?” 하나님은 금요일, 토요일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참 재밌습니다. 신앙생활은 참 행복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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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06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개혁자 루터가 외친 슬로건 중에 하나가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에 성도들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에서 내려오는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성경 자체도 모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전문 신학교육을 받은 사제들이 해석을 해주는 것에 의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이라는 말은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자”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성도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읽습니다. 굳이 신학교를 가지 않아도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계에서는 소위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자!”였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평신도의 손에 사역을 돌려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일은 온전하게 된 성도들이 하는 일”(엡4:12)이라고 되어 있는데, 500년 전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에도 이 모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여전히 목회자들이 독점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의 세번째 기둥인 “목회자와 평신도의 성경적 사역분담”은 오늘날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제2의 종교개혁의 중요한 실천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컨퍼런스로 인해서 교역자들이 교회에 없었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등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부목사님 중에 한분이 교회에 남아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역자들이 한 스피릿을 가지기 원했고, 또 하나! 이런 기회에 우리 목자님들이 훈련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일 동안 장로님들께서 새벽기도 설교와 수요기도회 인도를 너무 잘 섬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가정교회를 너무 잘 하는 순천강남중앙교회는 50명의 삶공부 평신도 강사가 있다고 합니다. 삶공부는 너무 다양한데 이것을 교역자들이 다 커버할 수가 없고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기에 가르치는 것에 조금이라도 은사가 있으신 성도들은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도록 모든 삶공부의 표준 강의안을 만드는 작업을 지난 몇 년 동안에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앞서가는 가정교회구나~~’ 부러운 생각과 함께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게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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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정말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어린아이들서부터 어르신들까지 240명 정도가 모처럼 운동회를 했습니다. 금요일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걱정했었는데, 어제는 정말 맑은 가을하늘 아래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VIP 지인들도 오셨는데, 그 VIP 중에 제가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던 분들은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으시는 남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너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감사했습니다. 어제 저는 그분들의 자녀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랑만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어제 하루는 아빠랑 같이 교회 행사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참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행복한 이유는 오늘 예배 중에 있는 세례식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님들과 대화할 때 제일 궁금한 것이 어떻게 예수 믿게 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신 분들이 아니라면 성인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된다는 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게 되는 박준오, 이근용, 하연경 성도님 세 분도 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자신의 삶에 일어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이제껏 나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깨달으며 오늘의 자리에 서게 되신 줄로 믿습니다.

 

세 분을 알게 된 것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인 것 같은데, 참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1년 전, 저를 처음 만난 날 제게 했던 질문을 저는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목사님, 저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이 지금은 목장에서 감사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삶공부를 하면서 교회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고백을 하셨을 때, 탐방 갔던 그날 제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온 그 순간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세례받게 되신 분 중에 또 한 분은 우리 교회에서 지난 5월에 한 ‘쉴만한 물가’에 오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운동회를 하면서 “하나님, 지난 봄처럼 이번에 오신 분들 중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분이 있겠죠?”라고 물었답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만드는 일에 한 방향을 바라봐 주시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면류관이요 목사의 자랑입니다.(살전2:19-20).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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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책으로 읽으신 분들도 있으실텐데, 저도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인데 장 도미니크 보비라고 불리는 기자였습니다. 그 동안의 기자 경력으로 마침내 여성잡지 <엘르>지 프랑스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쓰러져 20일 동안 혼수상태 끝에 깨어났지만 정확한 병을 알기 위해 또 몇 주의 시간이 걸립니다. 결과는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의식도 있고 인지능력도 있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물론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쪽 눈도 염증이 점점 심해져 봉해버렸는데 나머지 눈만은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치료를 돕기 위해서 온 언어치료사인 앙리에트는 특별히 고안된(빈도수가 높은 철자부터 순서대로 배열) 프랑스어 알파벳판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내가 읽을테니 당신은 말할 단어를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그 알파벳을 읽을 때 눈을 한번 깜빡이세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거부했지만, 어느 날 보비는 그렇게 눈을 깜빡이면서 “당신은 친절합니다. 고마워요”라고 문장을 만들어 마음을 전합니다. 그가 죽고 난 뒤(보비는 책이 출판된 후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책을 바탕으로 사후 10년 만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보비는 언어치료사에게 마음을 연 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왼쪽 눈 말고 멀쩡한 것이 두 가지나 더 있구나. 내 상상력과 기억들!” 그러면서 책을 써보기로 결심합니다.

 

아직 어린 아들이 보비의 흐르는 침을 닦아줄 때 영화는 그의 생각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아직도 내가 해 줄 것이 많은 이 아들이 내 침을 닦아주다니...그러나 애들을 만난다는 게 어딘가? 그래서 오늘은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찬양가사처럼 호흡마저도 주의 것이라서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잃고 나서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도 귀하겠지만, 지금 내게 있는 것,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당연함이 아니라 감사제목으로” 고백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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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칼럼을 쓰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끼리끼리 놉시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 친척들과 추석 명절을 보냈지만 사실 그 어떤 친척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그에 반해 목장식구들과의 관계는 거의 가족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분은 “아휴~~ 우리 교회는 여길 가도 목장식구, 저길 가도 목장식구, 자기들만 끼리끼리 노는 것, 그게 문제야!”라고 불평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여러 사람들을 두루두루 피상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스천의 진정한 교제가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안보면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러다가 만나니 너무 반가워서 소식이나 기도제목을 물어보고, 일주일 후에 만나면 일주일 동안에 그 문제 가지고 나도 기도했는데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이런 깊은 관계가 있는 교제가 진정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우리 인생이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습니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없습니다. 국회의원처럼 많은 사람들을 사귀면서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영적으로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눌 시간은 더 없습니다. 그러니 목장식구들끼리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질이 외향적이라서 나는 목장식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신 분들은 연합교회에서 제공하는 삶공부나 교회의 여러 사역팀이나 또는 행사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지난 봄에 했던 쉴만한물가라든지 이번 21일에 할 목장연합 가을운동회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행사들은 몸을 움직이면서 함께 땀을 흘려보는 시간이기 때문에 목장을 뛰어 넘어서 좋은 분들과 사귈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에 평소에 관계를 갖고 있는 VIP들을 초대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는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영혼구원하여 제자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행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이미 믿는 분들이 더 행복하게 예수를 믿게 되는 일에 우리 교회의 인력과 노력과 물질이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 행복한교회 with VIPs 목장연합 가을운동회도 이같은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일에 아릅답게 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끼리끼리 그리고 두루두루!!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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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로 행복한교회를 섬길 때 제가 장년교구와 맡은 부서는 청년부였습니다. 2012년 12월 서울의 목회지로 떠날 때 청년들이 그동안 추억들을 찾아서 만들어 준 사진 앨범은 여전히 저의 보물 상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역지를 옮기며 헤어지다보니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이 휴대폰에 어느 청년의 이름이 뜨면 십중팔구 결혼한다는 전화입니다. 하하^^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을 못 꺼내는데, 그래서 제가 먼저 “결혼하는구나?”라고 물어봐주면 그제서야 “목사님, 한번 찾아뵈어도 될까요?”라고 말합니다. 서울 사역 초기에는 어떻게든 결혼식이 있으면 대전에 내려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주일 4부예배 시간에 저는 적잖이 당황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내용 중에 “예수 잘 믿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신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등등 이미 결혼을 하신 장년들을 염두에 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부에는 주로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살짝 잊고서 설교원고를 수정하지 않고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잘 믿는 배우자를 만나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라는 쪽으로 수정해서 말하면 간단한 것이었긴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기를 원치 않으셨는지 원고에 없는 말은 잘 못하는 저에게 제가 생각하기에도 강한 말들을 부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청년들에게 했습니다.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예수를 잘 믿는 형제와 결혼하세요! 예수를 잘 믿는 자매와 결혼하세요!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마세요. 이것만큼은 타협하지 마세요! 조금 늦어지더라도 조급하거나 초조해하지 마시고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를 부탁합니다!!”

 

명절에 뉴스를 보니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유야 다양하지만, 청년들은 친척들을 만나면 듣게 되는 취업, 결혼의 문제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싱글목장 목원들과 그 부모님들이 “결혼이란, 외적인 모습에 끌려서(창6:2)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공유하는 남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연합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분명한 성경의 원리와 말씀을 붙들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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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에는 추석명절이 있습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분들도 제사라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제대로(?) 제사를 드리려면 명절 제사 말고도 일년에 최소한 열 차례 이상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요새는 그런 제사들을 한데 모아서 한번에 드리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자기 가족 이외에는 친척들간의 왕래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예비부부의 삶에서 제가 내주는 과제 중에 서로의 가계도를 그려서 예비 배우자에게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연합이 아니라 양쪽 가문과의 연합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알아야 할 것들을 서로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숙제를 하면서 한 커플도 예외없이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어느어느 친척과는 너무 사이가 좋은데, 어느 친척과는 관계가 좋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결국 상처 때문입니다.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받은 상처도 더 많고 더 깊습니다. 그러니 한번 틀어진 관계의 개선이 쉽지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척 전도,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힘들다, 안된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그래도 명절은 친척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척들은 내가 천국갈 때까지 계속 볼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성급하게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때를 만들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다 외로움에 힘들어 합니다.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참 외롭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도 TV 앞에 모여있거나, 각자의 핸드폰에 빠져 있는 그림은 이 시대에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느 한 친척(명절 전에 한 사람을 정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에게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불편한 이야기나 주제들은 언급하지 않고 그냥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나올 것이고 그럴 때 그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기회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명절은 돌아와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갔더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나누는 신나는 목장모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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