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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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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의 전도원리 두 가지는 첫째, 마음 열기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기 전에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전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담과 거절입니다. 그러므로 ‘전도’ 그 전에 ‘관계’라는 다리를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의 마음을 연 다음에, 그 다리로 복음이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으로 열까요? ‘감동적인 섬김’으로 엽니다. 이 말이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너무나 이기적이다보니 우리가 조금만 섬겨줘도 상대는 감동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가정교회 전도원리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 체험입니다. 전도현장에서는 사람을 이론으로 설득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더 닫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능력을 경험하면 이론을 내려 놓습니다. 그래서 나의 섬김을 받고 자기 마음을 열어준 VIP들에게는 기도제목을 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VIP는 ‘기도제목’이라고 하면 잘 모르니까 “요새 힘든 일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기도제목은 추상적인데 VIP들의 기도제목은 아주 구체적이라는 것 아십니까? 그 작은 기도제목 가지고 함께 기도해서 응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할 때 전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VIP를 만나 섬김과 기도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무기를 손에 들려드릴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오명교 목사님이란 분이 만드신 교재가 <행복한 삶>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의 최종 목표는 VIP들과의 만남을 좀더 깊어지게 하고, 그들이 내가 다니는 목장과 교회, 더 나아가 예수님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의 내용이 VIP와의 대화를 위해서 ‘마음’의 문제를 터치하다보니 결국 상대방 뿐만 아니라 인도하는 나도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이 과정의 매력입니다. 사실 우리가 본인 문제를 나만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 다 아는 내 장단점을 나는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상처 줘 놓고도 정작 자신은 모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을 하다보면 자신을 알아가면서 내가 먼저 변하게 되고, 내가 변하니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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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6기 생명의 삶이 수료식을 합니다. 생명의 삶 첫 시간에는 반원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생명의 삶을 듣게 된 동기와 이 삶공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삶을 시작할 때 반원들만 생명의 삶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도 이 삶공부를 통해서 수강생들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반원들이 생명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오해가 풀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그분들이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서 참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은 독선적이고 그런 신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는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좀더 심하게 “기독교는 심신이 미약한 사람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며, 인간 목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종교”라고까지 말하는 것도 들어보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이미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도 있어서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실수하는지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그 죄를 범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야단을 치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명의 삶을 시작할 때, 이 삶공부를 통해서 VIP든지 성도들이든지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풀리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둘째, 아무래도 생명의 삶은 신앙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분들이 많이 듣기 때문에 저는 생명의 삶을 들은 분들이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풀어지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좋아지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를 기대하면서 생명의 삶을 준비합니다. VIP들이 생명의 삶을 한주 한주 들으면서 ‘이런 하나님이라면, 이런 예수님이라면 믿어보고 싶다’ ‘이런 교회라면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또한 성도들은 ‘내 VIP도 생명의 삶만 듣게 하면 예수 믿게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는 것, 이것이 제가 생명의 삶을 시작할 때 갖는 기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반원들이 생명의 삶을 들은 후에는 ‘자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신앙생활하기를 기대하면서 생명의 삶을 준비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성경공부를 하는 것,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헌금하는 것, 이런 것들이 교회를 위해서 ‘선심 쓰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서 자발적으로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 그래서 허약한 종교인이 아니라 건강한 신앙인으로 행복한 교인들이 되는 것, 이것이 제가 생명의 삶을 통해서 수강생들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세 가지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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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일일특새 설교 중에 하프타임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하프타임이란, 축구같은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는 경기에서 그 중간에 있는 휴식 시간을 말합니다.이때 중요한 작전이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오고 갑니다. 그 팀이 지고 있는 경우라면 새로운 전술로 팀을 재정비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시간입니다. 이 하프타임을 잘 사용하여 후반전에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하는 경기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인생이 축구경기의 전반전, 후반전처럼 명확하게 구분될 수는 없기에 우리는 내 삶에서 수시로 하프타임을 가져야 합니다. 즉 중간중간 우리는 내 삶을 정비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충하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를 마친 후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서로 교제하는 여러분들의 환한 얼굴을 보는 것은 목사인 저의 기쁨입니다. 여러분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4부 예배가 있어 올라가면서 저는 속으로 항상 기도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가신 주님의 자녀들이 일주일동안 영적싸움에서 승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지만 우리는 연약합니다. 저는 종종 저의 연약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새벽기도 인도할 때하고 출근하기 위해서 면도할 때 내 마음이 달라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루에도 이렇게 변화무쌍한 우리들이니 주일날 충만했던 모습을 일주일 동안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요기도회라는 하프타임을 주셨습니다. 영적으로 무뎌진 곳은 없는지, 주일에 말씀으로 촉촉하게 적셔진 마음이 메말라버리진 않았는지 점검해 볼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점점 편의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수요기도회가 없거나 있어도 수요일 오전에 올 수 있는 사람들만 드리는 예배로 전락한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성도는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균형잡혀질 때 그 영이 살아납니다. 이 중에 말씀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면서도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와 찬양은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합니다. 특별히 뜨겁게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목장에서도 할 수 없는(층간소음 때문에ㅠ), 연합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요기도회를 통해서 저는 매번 은혜를 받습니다. 수요기도회 시간에 주님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설교의 영감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요기도회가 참 좋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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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평신도세미나를 다녀오신 한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교회>라는 말이 목사님이 만든 우리 교회 표어인 줄 알았는데 제가 세미나 간 교회에도 그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고요^^” 평신도 세미나를 가보신 분들의 공통적인 말씀들이 뭐냐면 남의 교회인데도 그리 낯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문화’가 같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는 일단 성도 간의 진정한 사귐이 있는 ‘목장’이라는 문화가 같습니다. 또한 가정교회~~하면 독특한 호칭 하나가 있는데 ‘목녀’(목자의 아내)라는 호칭입니다. 처음엔 이 호칭을 성도들이 많이 어색해하지만, 가정교회를 하다 보니 따뜻하고, 이해해 주고, 품어주고, 참아주고, 섬겨주는 가정교회의 정신을 대표하는 여성상으로서의 ‘목녀’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졌고 친근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설교를 듣고 나서 헌신대 앞에 나와서 작은 것 하나라도 결심하며 목회자에게 기도를 받는 것도 가정교회의 문화 중의 하나고, 일 년에 한 두 번씩 하는 세겹줄 기도회도 가정교회라면 모두 하고 있는 하나의 물결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교회의 문화 중의 하나가 바로 간증입니다. 가정교회는 모든 예배의 설교 전에 간증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평세 간증, 삶공부 간증, 세례 간증 정도이지만 가정교회 문화가 잘 정착된 교회에는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수요예배까지 더 다양한 간증이 드려집니다. 간증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잘 준비된 간증은 설교만큼이나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 2부와 3부 예배 시간에는 삶공부 간증, 평세 간증, 세례 간증이 있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의 간증문을 먼저 읽어보는 특권을 갖지만, 일단 간증의 최대 수혜자는 간증자 자신입니다. 세례 간증을 하면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삶공부 간증을 하면 삶공부 때 배운 것이 정리되면서 배운 말씀들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것인지가 선명해집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간증을 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더니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앞서 가시며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더욱 굳세어집니다. 그러므로 삶공부에서 강사가 간증 부탁을 하면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을 거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니 나 시켜달라고 손 드시길 바랍니다. 가정교회의 문화는 다 여러분들에게 유익(benefit)을 가져오는 것이니 이 물결에 여러분들의 신앙을 열린 마음으로 맡겨보시길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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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차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컨퍼런스를 잘 다녀왔습니다. 금요일 새벽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요즘 교계에서는 어떤 좋은 세미나를 한다고 해도 참석자 천 명을 넘기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당일 행사도 아닌 2박3일을 하는 행사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는 1001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것도 장소 수용인원 때문에 더 못받은 것이지 대기자들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관심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컨퍼런스를 듣고 가시는 목회자들의 숫자에 비해서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전통교회에서 가정교회로 전환하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변화를 외치면서도 변화를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저도 서울에서 섬기던 교회에 부임한 후 가정교회를 출범시키는데 만 2년이 걸렸습니다. 그 2년 동안 성도들에게 ‘가정교회’라는 단어는 안 썼던 것 같습니다. 괜히 시작하기도 전에 거부감을 느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라는 말 대신에 저는 ‘성경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라고 성도들에게 여쭈었고, 답은 “열매맺는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교회는 이 세 가지 열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첫째, 건강한 교회는 안 믿는 사람이 믿게 되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7년 이상 다니다 보면 주위에 거의 다 믿는 사람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를 이루려면 성도들이 일부러라도 VIP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합니다. 

 

 둘째, 건강한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내가 타인의 삶에 선을 넘지 않으려는 예의바름과 타인이 내 삶의 선을 넘어오는 것에 대한 불쾌함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교회에서는 이 경계가 무너집니다.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면서 삶이 변합니다. 셋째, 건강한 교회는 성도들이 교회생활을 기쁘고 행복하게 합니다. 요즘 우리가 새벽과 주일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는데, 사도행전에서 교회를 말할 때 늘 쓰는 용어가 있다면 바로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일까? 건강한 교회일까?” 컨퍼런스를 다녀오면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은 많이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이 열매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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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유회를 가는 목장들이 많습니다. 싱글목장들도 논산으로, 대청호로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소풍까지는 아니어도 금요일 싱글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시합을 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러시아알타이 목장에서 교회 잔디마당에다 큰 텐트를 치고서 바비큐파티를 했는데 VIP까지 오셔서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니 정말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런 모임들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몇 주 전 설교 중에 “목장 재밌게 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든 일에서 ‘균형’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해서 목장도 “진지함과 재미”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물론 목장은 그 모임 자체로 정말 재밌습니다. 아마 일주일 동안 웃는 웃음의 절반 이상은 목장모임 때 웃는 웃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밥을 먹을 때부터 즐거운 대화를 하며 웃습니다. 올리브블레싱 시간에 자녀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웃습니다. 삶을 나누면서 우리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목장모임 자체로 우리는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장모임은 아무리 자연스럽게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formal 할 수밖에 없습니다. formal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올해 초부터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가능하면 목장모임 매뉴얼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식적인 것은 나쁘지만, 형식이라는 그릇이 없다면 내용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장이 늘 formal한 것만 추구하다 보면 서로가 ‘한 마음’이 되는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감사한 것, 기도제목”도 좋지만, 이것도 정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종교적 언어들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장이 가끔 계획을 세워서 informal 한 모임을 갖게 되면 목장모임 몇 개월 한 것보다 더 급속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목장이 균형잡아야 할 ‘진지함과 재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장들마다 다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야유회를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목장식구들이 시간을 다 조율하기란 힘듭니다. 저는 요새 방문자들과 함께하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부리나케 내려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끼리끼리 노시는(^^)”모습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이 모습은 정말 제가 원하는 informal 한 목장모임입니다. 이 <informal 목장모임>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 주간 목장모임에서 만났어도 또 한번 그 비공식 모임에 참여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들은 진정한 그 목장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손목사-


2024.05.11 14:49

“나는 꼴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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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박찬석 교수의 칼럼이 생각나 찾아서 함께 나눠봅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데도 아들인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그 결과는 1학년 여름방학 때 성적표로 나타났다. 1학년 8반, 석차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성적표를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석차 1/68로 고쳐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음으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는 잘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1등을 했는가베.”하셨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당시 아버지는 처가살이를 했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였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7년 후....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살이 되던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뒤늦게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하고 시작하려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가 정색을 하며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표를 알고도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물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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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구마가야 목장의 강민석 목자님께서 제게 목장식구들 사진과 함께 이런 톡을 보내주셨습니다. <귀하를 임시은/김도이자매 천국 세례식 잔치에 초대하오니 많은 축하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정말 격식있는 자리에 초대받은 것 같은 초청장이었습니다. 강목자님의 센스 덕분에 또 한번 웃었고 행복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은 구마가야 목장 두 자매님의 세례식이 있는 날입니다. 정말 천국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회심의 변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현대교회는 회심이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에서 말해지는 회심은 초대교회에서 받아들여지던 회심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그 강도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알렌 크레이더는 “초대교회에서 회심자는 세례를 받기 전 세 가지의 변화(3B)를 확인받아야 했다. Belief(신념) Behavior(행동,영향력) Belonging(소속감)이다.” 그 당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목숨의 위협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께 소속을 옮기겠다는 고백이었으며, 이미 세례를 받기 전에도 그 사람의 가치관과 행동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저자는 이런 초대교회의 회심 및 세례에 대해서 말하면서 현대교회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정교회에서는 이런 걱정이 기우(杞憂)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두 자매님의 간증만 보더라도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Belief) 너무나 분명합니다. 나에게 새 생명과 넘치는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앞으로 그분 앞에서 더 성장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결단이 있습니다. 이 두 분들의 행동은(Behavior) 이미 달라졌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밥을 먹기 전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기도를 해줍니다. 아들은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기도가 끝나니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합니다. 더 자고 싶은 주일 아침에도 벌떡 일어나 찬양을 들으면서 교회에 갈 준비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게 보여지기까지 합니다. 이 두 분들은 구마가야 목장을 통해서 행복한교회를 온 분들이니 소속감이(Belonging) 확실하신 분들입니다. 신약교회를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소속감은 ‘교회’라기보다는 ‘목장’입니다. 오늘 설교말씀처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집에서 떡을 떼며, 함께 기도해주는 모임은 연합교회이기 이전에 목장이기 때문입니다. 회심이 변질되는 현대교회에서도 이렇게 분명한 회심을 하고 세례를 받는 가정교회가 저는 참 좋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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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설교 시간에 백령도 중화동 교회 허득이라는 분의 “예수 잘 믿으라”는 유언을 소개해 드리면서, 뭐를 하더라도 어중간하게 하는 것이 더 힘드니, 이왕에 믿는 예수님 열심히 믿어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주일 저녁에 예전에 함께 교회를 섬겼던 집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전혀 교회 배경이 없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사님의 자녀들이 교회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집사님이 등록을 하셨습니다. 사실 집사님은 교회에 등록하시기 전 이미 가깝게 지내던 목녀님의 VIP셨습니다. 집사님은 가정교회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단계로 믿음이 자라셨습니다. VIP에서 목장의 식구로, 목원에서 교회의 멤버로, 그렇게 예수영접모임을 하고, 생명의 삶을 하고, 세례를 받고, 집사임명도 받으셨습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이라고 말씀드리니 목장에서의 사역뿐만 아니라 연합교회의 사역에도 헌신하셨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있는 총목자모임 식사팀에서 섬겨주시는 집사님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것은 늘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금요일 시골에 계신 집사님의 어머니께서 어깨 수술을 하셔야 했습니다. 집사님은 금요일 고속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교회가 뭔지 모르시는 분입니다. 오로지 평생 농사만 짓고 사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다 그러신 것처럼 집사님 어머님도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일만 하시느라 어깨가 다 망가지셨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께서 금요일에 엄마 수술하신다고 내려온 딸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아니, 바쁜데 뭐 하려고 왔어? 그리고 오늘 목장모임하는 날인데 어떻게 왔어? 오늘도 목자님댁에서 하는 거야?” 집사님은 어머니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나 웃음이 나오면서도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교회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시는 분이 금요일은 목장하는 날인 것은 어떻게 아시고, 엄마 걱정돼서 내려온 딸을 보며 오히려 “너네 가족 빠지면 사람도 없을텐데~” 하시면서 목장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웃음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저의 감동 역시 며칠을 갔습니다. “아, 이것도 전도일 수 있구나! 우리 집사님이 목장보다 자기의 스케줄이나 상황을 우선하고 살았다면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셨을까? 안 믿는 어머니가 보기에도 ‘우리 딸은 금요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목장’이라는 인식이 박히셨기에 그런 말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이왕에 예수를 믿으려면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믿으면 이렇게 안 믿는 사람에게도 내가 믿는 예수님, 내가 다니는 목장과 교회에 대한 호기심이 들게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2024.04.20 20:13

“아가잘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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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6일에 했던 목자연합수련회는 참 좋았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이경준 목사님의 3번의 전체강의였습니다. 이경준 목사님은 서울다운교회(오늘까지 기쁨목장 오주현집사님 내외가 평세에 가 있는 교회)를 개척하시고 은퇴하신 목사님이신데, 은퇴하시고서도 한국가정교회 사역원장으로 전국을 다니시면서 열정적으로 섬기고 계신 분입니다. 강의를 들어보신 목자목녀님들은 느끼셨겠지만, 얼마나 말씀이 구체적이면서 쉬운지 모릅니다. 특별히 교회의 존재목적은 “제자 만드는 것”인데 제자훈련을 ①건강한 자아상 ②건전한 가정관 ③건실한 세계관으로 정리해주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예전에 가정교회사역원 홈페이지에 <버려야 할 척>이라는 글에 목사님께서 이런 댓글을 다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척하는 문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아가잘있나?’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 있는 척’하지 말자는 뜻으로 말이지요!” 어려운 개념도 참 쉽고 재밌고 기억에까지 남게 정리해주시는 목사님의 은사가 그때도 느껴졌었습니다.

 

이 ‘4가지 척’은 목사님도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글인데, 도시에 살던 사람이 귀농했을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그 경우만 해당되겠습니까? 특별히 교회에서는 더욱 많이 조심해야 할 것들입니다.

(1)교회에서는 ‘아는 척’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너무 아는 척을 하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지 못하여 경직된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2)교회에서 ‘가진 척’하는 것은 제일 좋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교회에 왔는데 교회마저 똑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그 영혼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교회에서는 ‘잘난 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정교회로 출범하면서 목자들 사진과 프로필을 붙여놓고 성도들이 목자를 선택하게 했을 때, 목자의 나이, 사는 곳, 자녀의 나이만 게시했습니다. 학력이나 직업, 소위 말하는 스펙을 자랑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또 하나 교회에서는 ‘있는 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친구나 친척 중에서 사회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가치를 깎아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 있는 척하는 일에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교회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아름다운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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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목회자컨퍼런스 개회식 때 휴스턴서울교회 이수관 목사님께서 가정교회가 잘 정착되고 문화가 된 교회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부임한 지 3년 차를 보내고 있는데, 작년 가을부터 부쩍 이수관 목사님의 그 말씀이 자주 생각이 나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성도님들과 함께 목자연합수련회를 섬기면서 우리 교회에도 이 세 가지가 점점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첫째는, 교회에 웃음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꼭 부흥강사가 아니더라도 목회자들은 다른 교회 가서 설교할 기회가 이따금씩 생깁니다. 그럴 때면 그 교회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아무리 재밌는 얘기를 해도 전혀 반응을 안 하는 교회가 있고, 별말 안 했는데도 온 교우들이 까르르 웃는 교회가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하면 교회에 웃음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담임목회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성탄절 찬양예배 때 교역자들과 함께 망가져(?) 보았습니다. 몸빼바지를 입고 춤을 추면서 트롯트 복음송을 불렀는데, 성도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설교시간보다 더 은혜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섬김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매년 망가져 보았습니다. 점점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면서 교회에 더욱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주일예배 후 점심을 먹을 때는 물론이고, 힘든 봉사를 하면서도 성도님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역시 가정교회가 좋구나’하는 생각에 감사하게 됩니다.

둘째는, 눈물이 많아집니다. 물론 눈물의 종류는 다양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눈물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여성들보다 오히려 남성들이 더 감성적이 되어서 눈물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정교회를 하면 많아지는 눈물의 공통점은 한 영혼을 생각할 때 흘리는 눈물인 것 같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목원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흘리는 아비의 눈물! 그런 눈물이 가정교회를 하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셋째는, 가족 구원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목장을 통해 교회에 나오고 예수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VIP들은 대부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제 부모님, 제 배우자, 제 자녀들은 아직 믿지 않고 있어요...내가 믿은 예수님을 함께 믿고 천국 갈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고 전도할께요!!” 우리 교회도 무엇을 하든지 웃음이 많아지는 것 같고, 한 영혼을 향한 눈물이 우리의 마음에 점점 더 많이 흐르는 것 같고, 가족 구원에 대한 열망이 더욱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교회로 같은 꿈을 갖고 나아가는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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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정교회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 교회 덕분이었습니다. 사실 아프리카로 사역을 떠나기 전에 함께 공부했던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최영기 목사님의 책을 선물 받은 것은 2002년 초였지만, <구역조직을 가정교회로 바꾸라>는 그 책은 제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냥 책장 안으로ㅜㅜ 그런데 2006년 우리 교회에 부교역자로 와보니 원로목사님께서 가정교회를 하려고 준비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정교회’가 제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가정교회를 배우러 간 곳은 서울에 있는 열린문교회(지금은 양주에 있는) 였습니다. 목사라고는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6박7일 동안 안방을 내주면서 섬기는 성도들! 그 섬김을 감당하는 그들의 얼굴 가운데서 읽히는 기쁨과 행복을 보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도 다 있구나! 그렇게 세미나를 수료한 목사에게는 봄가을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지금은 가정교회를 하거나 관심있는 목사님들이 많아서 이번 컨퍼런스(5월)도 천 명 정도가 등록할 것 같지만, 초창기 컨퍼런스는 한 200명 가량 되어서 가정교회를 이미 시작한 교회 중에서 역량이 되는 교회가 섬겨주었습니다. 2박3일 동안 강사님들로부터 배우는 것에도 은혜가 많았지만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오전 오후 교회 로비에 너무 예쁘게 데코되어 차려지는 수제 간식들 사진 찍느라고 바빴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돌아갈 때 그 교회에서 지역 특산물 하나씩 손에 들려주었지요. ‘와~ 세상에 이런 교회도 다 있구나!’ 참석자들은 정말 그분들에게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렸습니다.

 

지금도 평세를 가면 이런 섬김을 받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목자연합수련회나 컨퍼런스에서는 그렇게까지 섬기지 않아도 된다고 국제가정교회사역원에서는 가이드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목연수를 섬긴 우리 교회에서는 그 가이드를 어겼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뭐 이렇게까지 준비했어요?”라고 물으실 때 제가 “저희가 좋아서 한 거예요!” 그랬더니 바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맞아요! 손목사님! 성도들의 얼굴에 그 행복이 묻어나네요~~” 첫째날 마지막 기도회 시간에 ‘이런 섬김을 해내는 신실한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요.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던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씩” 먹어도 모자를 것이라고 한 사람들을 “원대로” 배불리 먹이시며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셨을 예수님, 그렇게 그날 벳세다 들판에서 무리들을 섬기셨던 예수님 모습을 상상하며 보낸 행복하고 감사한 목연수였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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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례를 받는 친구들과 예수영접모임을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답하기 좀 힘들어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물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들에게 한 방 먹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뭐가 어렵겠어요?” “목사님! 성경에 그렇게 써있잖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아이들의 대답의 클라이막스는 이 한 마디였습니다. “목사님! 사실이니까요! 사실인데 안 믿으면 안되잖아요!” 와우^^

 

맞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의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2천년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그 사실이 거짓이지는 않습니다. 꼭 예수님의 부활만이 아니라 우리는 과거의 일들 대부분을 역사적 사료로 증명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사료들은 차고도 넘칩니다. 생명의 삶 첫 시간에는 간단하게 이 부활의 증거들을 말씀드립니다. 첫째, 제자들이 돌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들이 담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바뀐 데에는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았겠습니까? 둘째, 제자들이 전한 메시지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제자들은 왜 굳이 예수가 부활했다는 전도 메시지를 고수하다가 순교를 했을까요?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봤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셋째, 당국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거짓말’을 잠재울 수 있었던 아주 손쉬운 방법은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당시 당국자들은 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빈 무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만들어 낸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오히려 빈 무덤을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마28:13) 부활을 입증하는 것이 빈 무덤이 아니라, 빈 무덤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믿음은 기적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는 것에서 생깁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사신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2024년 부활절, 다시 복음 앞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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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목사님께서 예전에 쓰신 칼럼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외부 집회 나가서 젊은이들을 만나면 술 마시는 것이 죄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술 마시는 것 자체는 죄는 아니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70% 이상이 실제적으로 술 중독자이기 때문입니다. 술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있는지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될 때 술 마시는 장면이 한 번이라도 안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압박감을 느껴도 술, 인간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술, 애인과 헤어져도 술, 온통 술입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까지 우리나라는 술로 망해갔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과거의 삶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술을 끊지 않는 한, 술이 연결고리가 되어 과거와의 단절이 어렵습니다. 요즈음 ‘금욕’을 말하면 ‘금욕주의’라고 비웃지만, 신앙생활에서 금욕적인 요소를 무시 못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 갓 영접한 사람이 술 담배를 끊으면서 믿음이 급성장 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술 담배가 죄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금욕의 결단이 믿음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술 담배를 비롯하여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즐길 것을 다 즐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이상 능력이 나올 수 없습니다.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비교적 믿음 생활을 잘 하는 것은, 새벽 기도회 자체에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잠자고 싶은 욕구를 극복하고 새벽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는 금욕적인 요소가 이들의 믿음을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금욕적인 요소를 절대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능력 있는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금주, 금연, 금식, 새벽 기도 등을 비롯하여,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금욕적인 요소가 있을 때 능력이 나옵니다. 신앙생활에서 자발적인 금욕이 사라질 때 그리스도인들의 봉사활동은 취미생활로 변질됩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우리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끼 금식이라든지 미디어금식, 새벽기도를 하면서 자발적인 금욕을 실천해보지 않는다면 이번 주도 별로 다르지 않은 주간을 보내시다가 다음 주 부활주일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 “금욕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나의 믿음 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금욕적 생활”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이번 주도 금식과 특새로 새로운 영적경험을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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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가식을 앞둔 주간에 저는 그 목장을 방문합니다. 그동안 한 목장 식구로 지내면서 감사했던 것, 즐거웠던 것,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서로 나누고, 더 신앙생활 잘 하자고 서로 축복해주고, 제가 목자목녀님, 신임목자목녀님 축복기도도 해 드리는 시간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눈물 바다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포에버목장을 마치고 부리나케 태국만나목장에 가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이런 시간을 갖는데 이제 목녀가 되실 집사님이 코가 빨개지도록 우시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는 목원들은 따라서 울고...ㅠㅠ 분명히 주일날이면 한 교회에서, 한 사역부서에서 또 볼텐데도 지난 시간동안 매주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나누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든 정이 그렇게 마지막 시간에는 우리 모두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은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목장 이렇게 잘되고 재밌는데 왜 자꾸 분가를 하라고 하는거야?” 하지만 그렇게 질문하시면서도 인원이 좀 되는 목장에서는 분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느끼십니다. 첫째, 인원이 많아질수록 출석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자 포함 3가정인 목장은 매주 전원출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정이 안 가면 목자님과 한 가정이 썰렁하게 목장모임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장식구가 많아지면 ‘나 하나 빠져도~’ 이런 생각이 들곤합니다. 둘째, 삶나눔이 피상적이 됩니다. 목원이 12명인 경우 한 사람이 10분씩만 나눠도 120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고서 ‘간략’하게 나누게 됩니다. 간단하게 삶을 나누면 주님께서 은혜도 간단하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셋째, 누군가를 데리고 오려는 마음이 식어집니다. 지금도 이렇게 인원이 많은데 무슨 VIP를 데리고 오냐 하는 마음이 들어서, 목장모임의 존재목적을 잃어버린 채 모이는 사교모임이 됩니다. 그래서 목장이 분가를 해야 될 시점이 오면 미루지 말고 분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 왜 꼭 분가를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시면 저는 좀 다른 대답을 드립니다. 위 세 가지도 분가의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가 분가를 해야 하고 또 분가를 축하하는 이유는, 또 한 명의 목자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제자를 만들기 위함인데, 제자의 삶은 목자가 되고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끌어안고 울어보는 사람, 내 필요보다 그 영혼의 필요가 우선인 사람이 또 한 명 세워지는 것, 그것이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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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도가 목장모임이 있는 금요일, 회사에서 조금 늦게 퇴근을 해서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목장에 갔어도 두 시간은 충분히 있다 올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아내와 아이들은 목장에 갔기 때문에 왠지 집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샤워를 한 후 소파에 앉아 TV를 켰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그러나 그 꿀맛도 잠시, 목장모임을 하고서 돌아온 아이들로부터 질문세례가 이어집니다. “아빠, 왜 안 왔어? 아빠, 집에 몇 시에 왔어?” “여보, 좀 늦더라도 오지~~ 오늘 **집사님, 넘 맛있는 거 했는데, 그리고 오늘 목장모임 넘 좋았는데.” 그 말을 들은 성도님은 뭔가 꼭 해야 되는 것을 안 한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목장에 나오시던 분들이 안 나오게 되면 그 이유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특히 감정을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 중심의 남성들은 나눔을 하는 것에서 얻는 것이 전혀 없고 괜히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오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신 분들께 만약 목장에 나오지 않을 때 얼마나 그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하시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TV나 스마트폰과 함께 그다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실 것입니다. 사람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멈추어 서서, 내가 일주일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있는 생각인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가정교회 목장모임은 오히려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시간입니다.

목장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사회생활은 곧 인간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분들을 보면 실력은 좋은데 사람들과의 관계가 미숙해서 승진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장이 쓸모없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을 그 안에서 만나고 부대끼면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사람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기 때문에 목장은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에게 소중한 곳입니다. 또한 자녀도 이웃과 교류가 없는 고립된 가정이 아니라, 늘 사람들이 드나드는 목장에서 자랄 때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면에서 목장은 어른들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임을 꼭 기억해 주세요^^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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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동안 제가 참 많이 부르는 복음송가가 두 곡 있는데 하나는, 1월부터 우리가 결단송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곡입니다.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 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그리고 또 한 곡은 지난 주에 우리가 함께 불러본 <내 안의 한계를 넘어>라는 곡입니다. 새가족반에서 우리 교회를 소개할 때 제가 우리 교회에서 부교역자를 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다는 말씀을 잠깐 드립니다. 그렇게 “잠깐” 드리는 이야기지만 제 인생에서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겠다는 말을 성도들께 드렸을 때 모든 성도들은 그야말로 멘붕이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문자를 보내시면서 표현하신 “놀람⇨부정⇨배신감/서운함⇨슬픔⇨슬프지만 인정⇨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기도” 이 문장 하나로 성도님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권사님이 보내신 문자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꺼라고 믿고 다독입니다. 억지로 순종이요~” 그리고 청년 찬양팀의 인도자 형제가 선곡해서 그때 처음으로 함께 불러본 찬양이 바로 지난 주에 불렀던 찬양입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시간 헛된 것 없네 그 어느 것도 주의 뜻 알기 어려워도 이유 있음을 알기 원해...” 그때 예배의 결단송이 <파송의 노래>였는데, 어느 성도님이 보내신 문자를 받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파송의 노래 가사처럼 이것도 주님의 뜻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암 투병을 하시는 성도님은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그동안 저희에게 가르쳐주신 것, 헌신과 섬김과 순종이잖아요? 보여주신대로 교회를 잘 지켜 나가겠습니다.”

 

보고 배우는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섬겼던 교회를 가정교회로 전환시킨 것도 우리 행복한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보고 배운 것이 가정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가정교회를 이끌고 나가는 헌신과 섬김과 순종의 문화 속에서 저는 목회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가서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했더니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교회 봉사와 사역을 선심 쓰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알고 일하는 것이 헌신임을 저는 우리 교회를 통해 배웠습니다. 없는 것으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순종하는 것도 좋지만 억지로라도-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몸을 쳐서-순종하는 것이 곧 믿음임을 저는 여러분들께 배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들어 오신 이 문화에 다음세대들도, 그리고 새로운 식구가 되시려는 분들도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귀한 것을 가르쳐주신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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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봄학기 삶공부 시즌이 이제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온라인 신청을 하실 때 읽어보셨을테지만, 칼럼을 통해서 각 삶공부의 특징을 설명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생명의 삶은 가정교회를 하면 할수록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의 최고봉입니다. 1단계 성경공부를 삶공부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기독교신앙의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터치하는 그 내용의 방대함과 동시에 삶에 적용되는 구체성은 들어본 분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라면(상반기에 등록을 하려고 마음 먹으신 분들도 미리) 모두다 들으셔야 하는 삶공부입니다. 새로운 삶은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 필수 2단계 성경공부로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정체성과 가치관을 다룰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성도가 얼마나 성숙해질 수 있는지를 배우고 연습하는 삶공부입니다. 목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공감되는 탁월한 성경공부입니다.

 

말씀의 삶, 일터의 삶, 생명언어의 삶은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의 선택과목들입니다. 생명의 삶을 하시고 나면 나머지 삶공부는 필수, 선택과목에 상관없이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의 삶은 우리 교회에서 이미 진행되어온 삶공부인데 이번에 1기라고 한 것은, 지금까지는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의 안내에 따라 <어, 성경이 읽어지네>라는 교재를 가지고 했는데, 이번부터는 <성경스팩트럼>이라는 새로운 교재를 가지고 진행하려고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말씀의 삶과는 전혀 다른 형식과 내용의 강의일테니 10주 동안은 성경의 배경강의와 함께 핵심본문을 읽어나가고 강의가 끝난 후 6개월 동안 성경전체를 통독해보고 싶은 성도들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강의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대부분 지내는 장소가 교회가 아니라 생업의 현장이기 때문에 일터의 삶은 참으로 중요한 삶공부인데, 제가 배워오고서도 개설해드리지 못한 이유는 제 자신이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았기에 현장감이 없을 수 있다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준비된 강사 변정주목자님께서 강의하시는 일터의 삶은 저도 꼭 들어보고 싶은 강의랍니다. 우리들의 언어생활은 신앙생활의 승리를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생명언어의 삶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으로 해야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1기 때 한 학생이 너무 숙제를 잘 하면서 들어서 ‘저 분은 나중에 강의를 하셔도 되겠다’ 눈여겨본 분이 바로 최예숙 목녀님인데, 이번에 저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삶공부 할까 말까?”가 아니라 “이번에는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무엇을 들을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실 성도님들의 모습을 “저 혼자” 상상해 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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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는 변치 말아야 것들을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함과 동시에 시대에 맞춰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과감히 개혁하는 것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어려워지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년층들은 무엇을 검색을 해도 전국민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합니다. 하지만 청년층들은 인스타그램에서 한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정말 자기가 가보거나 경험한 것들 위주로 올리기 때문에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다고 합니다. 물론 요새는 또 그것이 ‘보이기 문화’가 되어버려서 그것조차도 거짓정보가 많다는 말도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세미나에서 한 강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들! 무조건 인스타 하셔야 합니다!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모이게 하려면 목사님부터 젊어지셔야 합니다.” 그 목사님 교회는 몸이 아파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시는 성도들을 위해서 VR예배도 드린다고 합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든 교회를 섬기시는 그 강사님의 열정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거기까지는 꿈도 못꿉니다. 그런데 나도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명절에 집에 온 큰 아들에게 “지섭아, 인스타하기 어렵니?”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뭐 조금 배우면야 그것 못하겠습니까?ㅋㅋ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것을 시작한들 사진찍어 올리고 나와 우리 교회의 근황을 올리고,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만큼 제가 부지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난 목요일, 금요일은 싱글 수련회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이틀동안 찬양과 말씀, 기도회로 진행을 했습니다. 첫째날은 말씀을 듣고 목장별로 모여서 나누고, 둘째날은 영화를 보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수련회 진행을 하면서 또 제 마음에 ‘변화’에 대한 열등감이 솟아 올랐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청년들인데 ‘내가 부교역자 시절에 했던 식으로 수련회를 진행하니 이게 청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이번에 고른 영화는 2002년에 나온 영화이니ㅠ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야식을 함께 먹으며 “목장생활 어때?”라고 물었던 한 형제는 제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는 제 나름대로, 제 식대로 믿었거든요...제가 정말 교회를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목장이 제 삶에서 점점 많은 비중을 차지해가고 있는 것이 싫지 않네요...목장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목장에 가서 목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행복해요.” 그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복기하는 순간 참 행복했습니다. 열등감도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시대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2024.02.10 16:26

다른 세대, 닮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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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그 스승을 사숙(私淑)하되 자주 꿈에 보기까지 하였고, 학문과 덕행으로써 그 스승과 같이 되기를, 그 스승을 닮기를 원하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스승만큼 크게 되면 족할 줄을 알았다. 저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불초자식’이라고 써 온 것은 부모를 닮지 못한 부분에 대한 심통(心通)의 탄식이요 닮고자 하는 용약(勇躍)의 몸부림이 글자 안에 들어차 있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이제 현대인들을 살피건대 ‘초(肖)’자는 저들의 자전(字典)에서 도무지 삭제하여 버린 것 같다. 꿈에 그 스승을 사모하기는 고사하고 의식세계에서도 그 스승을 본받으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므로 남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여 본 자는 오리알 깐 암탉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화여자대학교 백소영 교수님이 “닮지 못한 세대를 탄식하다”라는 주제로 쓰신 글 중에서 제가 재인용을 한 것인데, 1936년 12월에 김교신이 <초불초>라는 제목으로 쓴 글의 일부입니다. 김교신은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 하지만 지극히 개인주의화된 이 시대의 ‘가나안성도’가 갖는 무교회사상이 아니어서 <성서조선> 주필로서 4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붙잡은 것은 성경적 공동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죠 - 저도 그분에 대해선 많이 알지 못하는데, 백교수님은 박사학위논문을 김교신에 대해서 썼을 정도로 이 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신앙의 색깔이 우리와는 다를 수 있지만 위에서 인용한 글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수련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부 친구들, 리더로서 열심히 섬겨주는 목자들, 또한 후배들 은혜받는 일에 집중하라고 교사로, 찬양으로 섬겨주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30년 전의 우리 교회, 지금의 행복한교회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난 후인 30년 후의 우리 교회! 한 공동체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세대가 ‘다른 세대’(수2:10)가 아니라 ‘닮은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가정교회는 이 시대의 희망이요 대안입니다. 셀과 목장이 거의 같지만 2%가 다른데, 그 2%가 바로 DNA 같은 것이라서 셀과 목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 하나가 목장은 ‘가족공동체’로서 신앙의 전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모습은 달라도 주님 안에서 같은 정신이 공유되고 계승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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