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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부 목자임명식을 장년들과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로 준비하면서 이번 한 주간은 우리 청소년 자녀들을 위해서 좀더 기도한 것 같습니다. 월요일 일일특새 후에 <청소년 부모의 삶>에서 함께 나누는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저의 부모되신 하나님을 먼저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참 부모가 되셔서 늘 기다려주시고, 안아주시고,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랑하는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부모의 권위로 복종시킨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무지와 그릇된 양육방식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자녀의 모습이 왜곡되고, 그 속에 분노가 쌓이게 되었으며, 정서가 상처받았을 순간순간들이 결국 저에게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주님! 먼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나의 자녀를 참 부모이신 당신의 품에 안아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나의 자녀를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저는 청지기가 되어서 자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게 하시고, 생명의 말씀과 부모 된 저의 모범으로 양육하게 하여 주옵소서.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여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내일은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생신입니다. 2024년 생신을 함께 보내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모신 추모관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지난 한주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예전에 성도들과 나누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모든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돈을 많이 번 부모 혹은 세상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부모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부모는 전(全) 인생을 통해 자녀의 기억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그 흔적은 자녀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힌트가 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지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에는 새벽설교를 하고 내려와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 가정에 세 자녀를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의 사명이 어떤 것인지 날마다 깨우쳐 주시옵소서. 하루하루 삶이 분주하여서 자녀를 바라보는 눈이 세상의 관점으로 향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회상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처럼, 저도 세 자녀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보여줄 수 있는 신실한 메신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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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기 생명의 삶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화요일 30명의 수강생이 참석하면서 개강되었습니다. 10월29일 화요일에 개강한다는 광고를 듣고 성도님들이 병원 결과나 듣고 시작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셨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개강한다고 선포했는데, 그 전날 월요일에 병원에서 1년 뒤에 낭종 변화를 보기 위한 CT를 찍어보면 될 것 같다는 너무나 감사한 결과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명의 삶을 시작할 수 있어서 그런지 화요일 아침부터 저녁이 기다려졌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컨퍼런스를 통해서 그동안 생명의 삶을 꽤 많이 강의했음에도 간과한 부분들을 알았기에 수강생들이 아니라 제 자신이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나온 생명의 삶 학생용 교재 서문에 최영기 목사님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던 것은 저도 성경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성경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굉장히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단도 하고 해법도 제시합니다. 그런데 진단 자체가 정확하지 않기에 처방도 효과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삶에서 여러 문제들을 만날 때, 우리들은 “남편을 잘못 만나서 그래! 아내를 잘못 만나서 그래! 애가 속을 썩여서 그래!”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성경은 이같은 인생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진단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책이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통해서 진짜 예수님을 알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고, 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영접모임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신 분들에게도 “괜찮으니까 생명의 삶에 한번 들어와 보시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이번 생명의 삶은 장년목장에서 14명, 싱글목장에서 7명, 그리고 새가족반을 하시고 목장탐방 중이신 분들, 혹은 11월 새가족반에 신청하신 분들 9명이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기수보다도 더 뉴 페이스들이 많으십니다. 생명의 삶은 타 교회 다니시는 분이 그저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서 듣는 것은 안되지만, 목장에 나오는 VIP나 여러분이 섬기시는 VIP들이 교회등록 여부와는 상관없이 수강 가능한 과정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생명의 삶, 다음 기수 때는 여러분들의 VIP들에게 소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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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컨퍼런스를 다니는 주된 목적 중의 하나는 다양한 삶공부를 배워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역자들은 저 포함 세 명이고, 평신도 강사도 이제 세워가는 형편이라서 개설되는 삶공부는 제한적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 교회 현실만은 아니라서 많은 가정교회의 성도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번 삶공부는 쉬려구요...더 이상 들을 과목이 없어요!” 맞습니다. 수료한 과목을 매 학기 반복해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삶공부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수(履修)를 목적으로 하는 코스웍 정도 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삶공부 중에는 성경도 읽고, 큐티도 하고, 암송도 하고, 영적일기도 쓰고, 남을 돕기도 해보고, 좋은 말을 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삶공부 수료식과 함께 끝납니다. 그래서 10~13주 정도 변화되는 것 같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가정교회의 성경공부를 ‘삶’공부라고 하는 이유는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성경공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우리의 현주소는 그 명칭이 무색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다보니 “삶공부 들어서 뭐해? 그때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삶공부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가정교회 세 축 중의 하나가 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청주 사랑의교회 안국철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요새 생명의 삶을 강의하기보다는 생명의 삶을 살아내려고 애써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곧 삶공부가 문화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봄가을로 일년에 두 번 삶공부가 개설되고, 거기에 많은 성도들이 등록해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삶공부가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이번 학기에 삶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들었던 삶공부의 내용을 삶 속에서 계속하여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곧 삶공부가 문화가 된 교회입니다.

말씀의 삶을 들었다면 수료한 이후에도 성경통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생명언어의 삶을 들었다면 수료한 이후에도 나와 남을 살리는 생명의 말들을 써 보는 것입니다. 일터의 삶을 들었다면 수료한 이후에도 매일매일 “나는 하나님이 우리 직장에 파송하신 선교사야”라는 생각으로 출근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들었다면 수료한 이후에도 목원들을 진정으로 내 가족으로 생각하고 내 자아를 죽이는 연습을 매일매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공부를 “수강하는” 성도가 아니라 삶공부를 “살아내는” 성도들이 많아질 때 그 교회는 세축이 문화가 되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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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주의영성주의교리주의.png지난 주에 “성도가 가져야 할 신앙스타일”이라는 설교를 한 후에 이경준 목사님이 최근에 쓰신 칼럼을 읽고나서 성도님들에게 이 칼럼도 소개해드리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표와 함께 목사님의 칼럼을 요약하여 나눕니다.

 

우리는 성경에 권위를 두면서도 자신의 성품이나 스타일에 따라 하나님을 이해하곤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부 하나님은 주로 지성적인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주로 의지적인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주로 감정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만물을 질서 가운데 다스리고 계시는 지혜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자연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자유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자연보호, 사회운동을 강조합니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순종하며 희생하는 의지적인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피를 의미하는 빨간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복음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희생과 헌신을 강조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여, 색깔로 한다면 바람을 의미하는 파란색으로 표현합니다. 대개 은사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능력과 은사를 강조합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경계선을 이탈하게 되면 자유주의자들은 혼합주의로 넘어가게 되고, 복음주의자들은 교리주의로 넘어가게 되고, 은사주의자들은 영성제일주의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야 하고,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성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물의 회복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은사주의자들 또한 성부 하나님의 창조 계시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 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도 신앙적 배경이 나와 다른 분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불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not wrong), 서로 다를(but different)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을 다 인정할 수 있는 믿음과 인격을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경준목사님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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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 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싱글 목장을 섬기고 계신 김민주 목자님은 농담 삼아 언젠가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목사님, 아직도 가슴에 두 손 모으고 휴대폰 꼭 쥐고 계시나요?” 당시 싱글들과 평일 저녁에 ‘회복’이라는 기독교영화를 보러 갔는데, 혹시라도 담임목사님께 전화가 오면 빨리 받으려고 전화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영화를 보는 제 모습이 재밌어 보이셨나 봅니다.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2006년 말 우리 교회에 지원하면서 면접을 볼 때, “우리 교회 왜 지원했느냐?”는 목사님 질문에 저는 “담임목사님 도와드리려고 지원했습니다”라고 대답했었습니다. 물론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보는 면접은 아니라서 그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그분들의 대답에 비하면 원대하지도 못하고, 성경적(?)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들으면 아부성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요새는 부교역자님들을 모시는 것이 너무 어렵지만, 저 때는 한 명을 뽑는데 늘 5-60통 정도의 이력서가 들어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답을 한 제가 합격을 그 대답조차도 담임목사님의 의중을 헤아리고 미리 준비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분석형 내지는 주도면밀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때 담임목사님이 나를 사용하기에 편한 존재가 되는 것이 내가 이 교회에 온 목적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대답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7년 사역을 한 후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은혜로 목양지를 주셔서 담임목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청빙위원들 앞에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받은 질문은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부교역자로 지원을 할 때 제 목회철학은 “담임목사님이 편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자”였지만, 이제 담임 후보자로서 내 목회철학을 말해야 했으니 저는 그 ‘담임목사님’이란 자리에 ‘하나님’이라는 말을 넣어서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부교역자 경험이 7년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담임목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이라면, 그분이 도와주실 것이니 아무튼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편한 목사, 하나님이 마음 놓고 부려먹으실 수 있는 목사가 되는 것, 이것이 제 목회철학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제 목회철학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야 할 기본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날 쓰시려고 할 때 좀 부담스럽고 편하게 시키실 수 없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일을 안 맡기실 것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인생은 아무리 다른 것이 풍족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2024.10.05 16:41

VIP의 눈높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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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미션스쿨을 나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학교는 일주일에 한번은 학생들 전부가 예수님을 믿고 안믿고에 상관없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학생들마저도 학기 중에 매일 있는 채플이 부담이 되는데 하물며 교회도 안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이경준 목사님께서 어느날 제자인 분당 차병원 교수님한테 상담전화를 받았답니다. 직원예배를 인도하는데 마지못해 참석하는 직원들의 예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목사님은 차(CHA)병원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병원을 설립하신 분이 차씨였기 때문이지만, 차병원의 차(CHA)안에는 C는 Christianity, H는 Humanity, A는 Academy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기독정신을 가지고, 인류를 사랑하며, 학문적 깊이를 추구한다, 이 정도가 되겠지요^^ 그때 목사님은 그 제자 교수님에게 이렇게 상담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 차 병원의 이름에 담긴 정신이 참 좋은데, 직원예배를 드리실 때는 CHA순으로 인도하시지 말고 거꾸로 AHC 순서로 인도해보시면 어떠시겠어요?” 정말 지혜로움의 대가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VIP를 대할 때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자세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통 목장에 VIP가 오면 너무 반갑고 좋지만, 한편으로는 모임을 어떻게 인도해야 좋을지 목자들은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너무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드리는 예배나 모임에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VIP가 오면 2-3번 정도는 원래하는대로 하지 말고 VIP에게 맞춰서 진행하라고 말씀드립니다. VIP에게 맞춰서 진행하라는 이 말이 위에 소개해드린 이경준 목사님 말씀대로 하자면 CHA순으로 인도하지 말고 AHC 순서로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처음에는 그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Academy)를 하는 것입니다. 그의 관심사나 필요를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왔을 때는 마음에 감동이 되는 이야기(Humanity)를 하는 것입니다. 목원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목장 식구들의 삶 가운데서 감동이 되는 스토리를(건강, 사업, 자녀 등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 등) 얘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이야기도 했고, 감동이 있는 이야기도 들은 VIP가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하면 그때 예수님과 복음에(Christianity)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할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이 단어를 VIP가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VIP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조급함에 너무 서둘지 마시고 그들의 필요를 살피면서 VIP와 눈높이를 맞추는 지혜를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2024.09.28 22:06

목장 돼지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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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갓즈패밀리교회(GOD’S FAMILY CHURCH)를 섬기고 계신 유대호 목사님을 통해서 우간다 가정교회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목사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우간다에는 현재 26개의 가정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26개 교회 안에 193개의 목장이 있습니다. 7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우간다선교를 하러 갔을 때 시골에 있는 교회의 목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완전 시골이어서 동네에는 염소, 닭, 돼지 그리고 소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었습니다. 워낙 가난한 동네여서 목장을 집에서 하지 못하고 집과 집 사이에 있는 뜰에서 돗자리 비슷한 것을 깔고서 목장을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장 하는 모습을 보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음에 모일 때 참석해도 되냐며 질문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목장에서 특이한 것을 경험하였었는데 그것은 목장 시간에 헌금을 세 번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헌금 바구니가 세 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 헌금은 오늘 목장을 오픈한 집에 줍니다. 두 번째 헌금은 연합교회에 헌금으로 드리고 세 번째 헌금은 오늘 참석한 식구 중에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전달합니다. 물론 헌금의 액수는 미국 돈으로 25센트도 되지 않는 액수였습니다. 저들이 세 번이나 헌금하는 모습을 보면서 목장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목장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장을 하는 동안에 꿀꿀거리는 돼지를 보게 되어서 왜 돼지가 여기에 있느냐 했더니, 저 돼지는 우리 목장의 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장이 분가하면 교회에서 아기 돼지를 선물로 준다고 합니다. 아기 돼지가 자라면 일 년도 안 되어 8-13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는데 그러면 그 돼지들을 팔아서 각 목장에서 일 년 동안 목장 음식을 해결할 수 있고 아니면 돼지들을 팔아 소를 사서 매일 각 목장 식구들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고, 아이들의 수업료로 쓰기도 합니다. 아기 돼지 한 마리로(60불) 한 목장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미국에 돌아가면 “목장 돼지 캠페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장 돼지 캠페인”의 첫 번째 목적은 어려운 우간다 목장들이 온전한 식사를 하면서 목장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로는 VIP를 전도하기 위함입니다.세 번째로는 어렵게 살아가는 우간다 성도들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함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번에 짐바브웨 목장에서 분가한 두 목장을 우간다 가정교회와 연결시켜 드렸습니다. 분가는 했지만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우리 목장도 우간다 가정교회에 목장돼지 한 마리 보내고 싶다고 하는 목장들이 있으면 함께 동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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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뭔가 세상이 바뀔 것만 같았던 2000년을 며칠 남겨두지 않고 유학길에 오를 때도, 내 인생 계획에는 없었던 아프리카에서 교회를 섬길 때도, 첫 담임목회자로 부담 백배의 사역을 시작할 때도,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결정을 하고 우리 교회로 올 때도, 제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기도가 삶이셨던 분이고예수님을 영접하신 이후로는 교회가 전부셨던 분이었습니다. 1년에 명절 말고 많아야 두어번 찾아뵈면 그때마다 아버지는 교회를 비우고 뭣하러 왔냐고 하셨습니다.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지난 주일 2부 예배를 마치고 아버지의 임종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핸드폰에 적어 놓았던 <아버지 유언>을 또 꺼내 보았습니다. 입원하신 동안 세 번 정도 함께 밤을 보내며 간호해 드렸을 때, 어느날 아버지가 힘이 없으셔서 작은 목소리로 30분 간격으로 얘기하신 것이, 늘 하시는 말씀이셨지만 예사롭지가 않아서 적어 둔 메모였습니다. ①근석아! 성도들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어라. 성도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어려움을 돌보는데 애쓰는 목사가 제일이야. ②예수님 닮은 제자 한 명 만들면 그것처럼 보람있는 일이 어디 있겠니? 그걸 목표로 삼고 목회하렴. ③근석아! 너도 목회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성도들은 어쩌면 더 힘든 삶을 산단다. 성도들은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면서 교회 일도 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 성도들의어려움을 알아주고,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억지로가 아니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목사가 되어줘. ④무엇보다 목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단다.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충분하게 알려줄 수 있도록 말이야.....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달라서 저희 가족은 아버지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지만 주님은 아버지와 저희들이 그 시간을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주기만 하셨던 아버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신 두 달 동안 가족들이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셨고, 아버지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맞춤 유언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제게는 죽음으로 남겨주신 삶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명절이라 당연히 가족끼리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빈소도 작은 것으로 준비했는데, 많은 성도님들 찾아오셔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다시 한번 큰 감사를 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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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새가족반에 아직 들어오지 않으신 채 함께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용어들이 있을 겁니다. 우선 예배 중에 인사할 때 “하늘 복 받으세요”라는 말도 그렇고 혹은 목자, 목녀, VIP 등등이 그렇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싱글’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 성인이 되기 때문에 가정교회에서는 그 명칭에서부터 청년과 장년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았으니 싱글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싱글목장들이 목장모임을 하는 것을 보면 좀 “짠합니다.” 미혼이니 일단 본인들 집이 없어 예배당에서 목장을 합니다. 우리는 순교의 각오로(?) 음식 가짓수를 줄이자고 하지만, 싱글들은 늘 반찬이 하나입니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 저녁에 교회 주방에서 음식을 만듭니다. MZ세대 형제들은 요리도 잘해서 요새는 늘 다른 메뉴의 식사를 하는 것 같지만 썰렁한 교회 식당에서 소수의 인원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것을 보면 짠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싱글들의 얼굴은 늘 밝고 즐거워 보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토요일 식사 인원들이 점점 적어졌습니다. 이유는 목장들 중에 ‘탈(脫) 교회’를 선언하는 목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작은 신혼집을 마련한 자매 목자가 가장 먼저 집에서 목장모임을 하기 시작하더니, 어떤 형제 목자는 한번도 누가 온 적이 없는 자취방을 목장모임 장소로 오픈했습니다. 상도 사고, 그릇도 사고....어떤 목자는 자기가 일하는 일터를 목장모임 장소로 오픈하기도 했습니다. 목원들은 본인은 장소를 제공할 수는 없지만, 목자만 수고하면 안된다고, 차례가 오면 자기가 재료를 준비해와서 음식을 준비하며 목장모임을 섬기기도 합니다. 자취방을 오픈한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그 방에 10명이 들어가면 좁을텐데 괜찮아?” “네~목사님..좀 좁지요 하하^^ 그런데 너무 좋아요! 장소가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교회에서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주어서. 적어도 우리 교회의 미래인 싱글들이 이렇게 가정교회를 제대로 이해해주어서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칼럼에서 싱글들과 함께 나아가는 위대한 발걸음으로 예배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위대한 발걸음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으로 ‘교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족은 식구(食口)입니다. 즉 함께 먹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청년과 장년이 함께 나아간다고 했을 때 “함께 먹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언젠가 한 목장에서 목원의 자녀가 속해 있는 싱글목장을 목장모임에 초대했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너무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싱글과 장년이 함께 나아가는 것은 구호만으로는 되지 않으니 장년 목장에서 이런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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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말, 제가 아프리카 사역을 마치고 우리 행복한교회 부사역자로 왔을 때, 우리 교회의 모든 것이 제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중에 두 가지만 얘기해 본다면 첫째, 예배였습니다. 주일 아침 7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예배가 4부까지 있는 것, 거의 모든 교회들이 주일 오후예배를 드리는데, 주일 저녁예배를 여전히 드리고 있는 것, 토요일 밤 9시에 그 다음날 주일예배를 위해서 본당에 모여 의자 하나하나를 붙잡고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 주일날에는 각 예배시간과 동일하게 지하기도실에서 중보기도가 드려지고 있는 것! 정말 예배에 목숨을 거는 교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청년들이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지어주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청년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말씀, 기도, 봉사에서 사역자들을 긴장시킬 만큼의 멋진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주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어른들은 곧바로 집에 가지만, 청년들은 남아서 본당과 계단을 대걸레질까지 해가며 청소를 했습니다. 이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서 지금도 우리 청년들은 4부 후에 교육관까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교회 청년들이 또 있을까...저는 어디가서도 우리교회 청년들 자랑을 한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와 청년들, 이 두 부분에서 충격과 놀라움을 받으면서도마음 한 켠에는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청년들만의 독립된 4부 예배였습니다. 청년들은 물론 그 예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장년들이 다 집에 가고 난 다음, 큰 예배당에서 소수의 청년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에 교회에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모든 중요한 행사는 2부와 3부에서 하기에 1부 예배를 드리는 성도와 4부 예배를 드리는 청년들은 그 모든 행사에서 소외되었습니다. 특히 같은 교회를 다니지만 1부와 4부를 드리는 분들이 듣는 설교와(그 당시 제 설교) 2부와 3부를 드리는 성도들이 듣는 설교(그 당시 담임이셨던 이성호 목사님 설교)가 달랐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지만, 한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사역을 공유하지 못하니,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교회 청년과 장년은 ‘한 지붕 두 가족’ 같아 보였습니다. 당시 청년 사역자였던 저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장년들이 무슨 교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청년들을 부르는 것 같아서 그것도 너무 싫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아프니까 성도님들이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목사님을 강제로 쉬게 하시나봐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저의 아픔을 계기로 하나님이 이제는 결단하라고 외치시는 것이 바로 청년과 장년이 함께 가는 교회를 만들라는 것 같았습니다. 뭔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제 성격상 이렇게라도 안 하면 영원히 못 할 것 같으셨나 봅니다^^ 이 위대한 발걸음에 서로 양보하고 희생해 주는 청년들과 장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울 청년들 더 많이 사랑해 주고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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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입니다. 금식 후 처음으로 죽이 나와 주일에 죽을 먹었는데, 월요일 아침 피검사에서 수치가 올라 다시 금식으로 들어가자 식사를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아니 왜 다시 금식이예요?”“네..검사결과가 좀 안좋게 나와서요” “어디가 아픈데요?” “네..췌장이 좀 안좋대요~” 그러자 아주머니 왈 “술 엥간히 많이 드셨나보네요~~”ㅋㅋㅋ

 

제가 없는 두 주 동안 부목사님들이 지난 주에는 주일설교까지 감당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을텐데, 주님께서 두 분을 얼마나 업그레이드 시키시려고 그러셨는지 이번에 장례가 3번이나 났으니 두 분은 정말 부사역자 인생 가운데 하이라이트(?) 시간을 보내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지만, 담임목사가 있는 한 좀처럼 해볼 수 없는 사역을 해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지면을 빌어서 두 분 목사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물나도록 고마운 것은 성도님들의 따뜻하고도 강력한 중보기도였습니다. “어린아이의 기도는 하나님이 잘 들어주신다”고 했다면서 새벽에 나와서 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유초등부 아이, 매일 저녁 6:30분에 모여서 “기도가 무너지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외치며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울 싱글들, 본인들도 여기저기 안 아프신 곳이 없으시면서도 저녁 7:30분에 교회에 모이셔서 한 시간 동안 찬양과 기도로 저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주신 포에버 어르신들, “목사님이 얼른 나으셔야 아침을 먹습니다”라고 하면서 금식으로 저를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시는 저의 영원한 동역자 장로님들과 목자목녀님들 그리고 각 목장의 목원들, 같은 목사의 길을 걸으면서 함께 걱정하며 기도해주시는 가정교회 지역모임과 저를 위해 하루 3번 특별기도를 하셨다는 김재정 목사님 중심의 온라인 기도모임과 총신 88학번 동기 목사님들,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매일 전화를 주시며 염려해주신 원로목사님의 기도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미 해단식까지 마친 제6기 <기도의 삶 중보기도팀>과 <기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 담임목사를 위한 기도팀>은 다시 중보기도를 시작하는 분위기로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셨습니다. 지난 주에는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예수님 영접하고 미국 애틀란타로 이민 간 한 집사님이 너무나 뜻밖의 톡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태평양 건너에도 목사님의 말씀 귀 기울이는 성도가 있음을 기억해주시고 어서 회복하세요!!”

 

목사임에도 부끄러운 고백을 해 보자면, 아파보니 기도가 잘 되지 않고 성경이 잘 읽혀지지 않더라구요. 큐티를 이번 주 수요일 입원하고서 처음으로 했으니까요. 기도를 하다가도 통증이 심하면 기도를 멈추고 간호사를 찾는 벨을 누르게 되더라구요ㅠ 그래서 기도는 아픈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은 사람이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이번에 성도님들로부터 그 복을 너무나 많이 받은 행복한 목사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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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신가요? 연일 열대야 기록을 갱신하는 폭염 속에서 하루하루 어찌 지내시나요? 많이 보고 싶네요. 아프니까 더욱^^ 저는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는 유성선병원에, 20일부터 지금까지는 대전성모병원에 입원 중에 있네요. 10년 전에 발생해서(그것도 주일 1부 예배 도중에) 저를 무척 당황시켰던 요로결석인 줄 알고 응급실을 찾았는데, 뜻밖에 급성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췌장염은 금식과 수액주사 외에는 딱히 다른 치료법이 없다 해서 지금껏 금식을 하고 있어요. 물론 좀 수치가 떨어지면 죽을 먹어보라고 해서 먹어보면 다시 복통이 찾아와서 또 다시 금식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다행히 지금 있는 병원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원인(췌장낭종+이분췌장이라는 살짝 복잡한 원인)을 찾아주었고, 이것이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는, 추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서울의 외과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볼 예정입니다. 여기까지가 2주 동안의 제 상황입니다. 아무튼 다른 이유도 아니라 몸이 아파서 주일 강단을 두 번이나 비우며 성도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넘 죄송합니다.

 

병원에 있어보니 참 힘드신 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제일 힘든 사람은 아무래도 환자 자신입니다. 선병원에서 제 앞 베드를 쓰셨던 60대 어르신은 대장암 수술을 하신 후 전이가 되신 것 같은데, 선병원은 보호자 상주가 안되는 병원이라서 극심한 고통을 밤새 혼자 참아내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둘째로 지금 있는 성모병원에 오니 환자들 곁에 있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병원에 있으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길게 자야 두 시간 쪽잠이지요. 그런데 보호자들은 그 불편한 간이침상에서 환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면서 지내니 거의 밤을 새시는 것 같았어요. 사실 지금 어머니와 누나가 그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환자 가족들의 헌신이 너무 귀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또 하나 정말 힘들겠다 싶은 분들은 간호사쌤들이예요. 환자들은 몸이 아프니 마음도, 말투도 날카로워지는데, 그런 환자들을 상대하면서도 따뜻한 말로, 능숙한 기술로 환자들을 도와주시는 그분들을 보며, 사명감이 없으면 하지 못할 것 같은 극한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파보니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신 것들이 더 많지만 오늘은 제 현재 상황에 대해 성도님들께 알려드려야 할 같아서 이렇게 간단히 써요. 주렁주렁 달고 있는 팔로 워드를 치기가 쉽지 않기도 하구요.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님들의 인생길, 그리고 우리 행복한교회가 나아가는 모든 길들을 인도하고 계신 줄로 믿어요. 우리가 늘 부르는 찬양처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말이죠! 사랑하고 축복해요!! 하나님께서 제게 더욱 사랑을 부어주셔서 여러분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목사가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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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서치 여론속의 여론’ 종교인식 조사에 의하면 2022년도 주요 종교 신자 호감도가 불교 신자 47.8점, 천주교 신자46.7점, 개신교 신자 32.3점이었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가 다른 종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나, 신부와는 달리, 목사나 개신교도들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이중인격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리 주장 대신에 양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주라고 하셨습니다[마태 5:41]. 사도 바울은 소송하는 대신에 불의를 당하라고 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6:7]. 권리 주장을 하지 말고, 양보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불의한 요구를 무조건 받아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들에게 무방비로 착취당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서 조금 양보하고, 조금 손해 보자는 것입니다.

 

 동업한 사람과 이익을 분배할 때, 상대방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조금 더 배당해 주는 것입니다. 회식 자리를 일찍 떠나야 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회비를 배로 내는 것입니다. 공휴일에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자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 줄은 알지만, 못 사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일 것입니다.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고, 가족이 쪽박을 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하여 손해를 감수할 때, 망하도록 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가정교회 목자 목녀들이 한 예입니다. 이들은 VIP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섬기고, 모든 것을 양보합니다. 그러나 삶이 궁핍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요로워집니다.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은 크리스천들이 양보할 줄 모르고 손해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광고나 홍보 행사가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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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6일에 개막해서 17일 동안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이 오늘 끝납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예상보다 많은 메달을 따면서 무더위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보셨을 올림픽 개막식은 기독교에 대한 모욕과 조롱, 동성애와 음란 코드로 가득했습니다. 프랑스 언론인 에릭 제무르는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책에서 “68혁명 이후 프랑스는 이슬람, 동성애 등의 문제로 자살의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68혁명은 1968년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 아래 정치, 사회, 성적(性的) 금기 등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을 깨뜨려야 한다는 문화운동이었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계의 반발에 대해서 개막식 연출가가 말한 답변은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었다”는 너무나 무책임한 한마디였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850만명을 보유한 브라질의 여자 스케이트보드 선수 하이사 레알은 동메달을 결정 지은 뒤에 자신을 비추는 중계 카메라에 짧은 수화로 다음과 같은 기독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포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것을 꼭 그렇게 밖에는 나타내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화가 납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진리는 전파(傳播)하고 파수(把守)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의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하나님께서는 주신 적이 없다는(행4:12) 말씀은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 때문에 기독교는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을 걸고 외쳐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등산로가 있지만 결국 어디로 가든, 만나는 정상은 같다는 종교다원주의는 틀렸습니다. 틀린 것은 틀리다고 해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준 것은 다양성과 포용성이 아니라 무질서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긴 것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법들이 세워지지 않기를, 그같은 반성경적인 왜곡된 관점과 문화에서 이 나라를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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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3부 예배 후에 방문자들이 계시면 새가족실에서 식사를 함께 합니다. 솔직히 방문자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지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실 때면 오늘 여기 들어오길 잘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방문자들 중에는 이사를 왔다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섬길 교회를 찾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예배 한번 드려보았다고 해서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면서 저도 이것저것을 여쭤보지만, 그분들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시기 때문에 30분 남짓되는 짧은 식사시간이지만 그분들에게 꽤 유익한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 방문자들이 제게 물어보는 것 중에 가장 자주 하시는 질문은 “가정교회가 뭐예요?” “목장이 뭐예요?”라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것도 밥을 먹으면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가족반’에 들어오시면 좀더 자세히 아실 수 있고, 만약 등록을 하신다면 ‘생명의 삶’에서 더 깊이 알게 되실 것이라고 말씀드리지만, 그래도 질문에는 대답을 해드려야 하니, “성도님, 교회 다니셨으니까 구역(속회, 셀) 아시죠?”라고 여쭤봅니다. “구역이랑 목장은 95%는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 5%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거지요...” 그 5%의 차이의 구체적인 예들은, 목장은 작지만 ‘교회’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내가 선택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하는 5가지 일을(예배,교제,친교,전도,선교) 다 합니다. 목장은 ‘교회’이기 때문에 매주간 한번씩 모입니다.(격주로 모인다든지 방학이 없습니다) 목장은 ‘교회’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같이 모입니다.(남편이 믿지 않아서 저녁에 모이는 부부목장에 나오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 여성목장이 있지만,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불신 남편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아내가 부부목장에 다니는 것입니다).

 

목장은 ‘교회’기 때문에 신자와 비신자가 같이 모이는 것을 오히려 권장합니다. 즉 교회는 아직 다니지 않지만 목장에는 나오는 비신자들이 목장마다 있어서, 목장에 참여하는 인원이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인원보다 더 많은 것을 ‘건강한 교회’의 표지로 볼 정도입니다. 또한 목장은 ‘교회’이기 때문에 몇 년이 되어도 분가를 못하는 목장이라 할지라도 해체시키지 않습니다. 효율에 중점을 두어서 정해진 기간 동안 부흥이 안되면 없애거나 다른 셀들과 통합을 시키는 셀교회와 이런 것도 다른 점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가정교회는 어찌하든지 신약성경에서 보여지는 원칙에 따라 “성경대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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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목회칼럼에 등장하는 '한국 남편들에게 아침밥이 주는 의미'라는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우리집은 음식을 폭식하는 경우가 많아서 식사가 좀 불규칙적이다. 그러다보니 아침밥은 보통 나 혼자 먹을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 내가 겪은 남편의 아침밥 이야기는 날 황당하게 또는 당황스럽게 또는 어이없게 만드는 일이 종종 있다. 남편은 타 지방에 근무하면서 본사에 업무가 있거나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때 집엘 다녀간다. 그게 어떤 땐 2박3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땐 3~4박 4~5일 될 수도 있다. 남편이 다녀갈 때마다 이 황당하고 당혹스럽고도 어이없는 일은 반복된다. 첫째날..."나 원래 아침밥 안 먹잖어." 한다. 그래서 다음날도 안 먹는 줄 알고 준비를 안 하면 그날은 또 아침밥을 먹는댄다. 그래서 그 다음날엔 아침밥을 준비해서 밥 먹자고 하면 "나 원래 아침밥 안 먹잖어" 그렇게 말한다. 어이상실이다. 그래서 그 다음 날에 “아침 먹을 거냐?”고 물어보면 "먹어야지~"그런다. '오늘 아침은 먹고 싶네'가 아니라 언제나 늘 먹어왔던 것처럼, 당연히 먹는 아침밥을 왜 먹을 건지 물어보느냐는 것처럼 느껴지게끔 "먹어야지"라고 답한다. 이런 남편을 보고 겪으면서 남자가 저렇게 무게감이 없이 일관성 없게 행동하는 것같이 보여지고 느껴져서 종종 짜증나기 일쑤였는데 이번 주 목회자 칼럼을 읽으면서 한 가지 결단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침밥을 먹든지 안 먹든지 늘 아침밥을 먹는다는 전제로 밥상 앞으로 남편을 불러들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원이 지난주에는 그런 말을 하였다. "늘 올 때마다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는 목자님이 너무 고맙다"라고 하였다. 나 또한 그렇다. 주일마다 정성을 다하여 점심밥을 차려주시고 총목자모임 때마다 저녁밥을 차려주시는 집사님 권사님들이 너무 고맙다. 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결혼 때까지 엄마로부터 밥을 거의 못 얻어먹고 자라서, 아니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결혼 때까지 엄마의 밥을 얻어 먹어본 기억이 없어 결혼 전 꿈꿨던 소원 중의 하나가 엄마가 해주는 밥 얻어먹고 결혼하는 것이었었다. 나의 그 소원을 이루게 해준 곳이 교회다. 그래서 나에겐 교회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밥 한끼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가 목자로 정성들여 밥으로 목원을 섬기고 난 또 교회에서 정성 들여진 밥으로 섬김받고 그 힘을 받아 또 섬겨가다보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고슴도치의 가시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온기와 온기가 더 가까워지고 만나 그 온기를 확대 상승시켜주는 그날도 오지 않을까 꿈꿔본다.(제목부터 내용까지 목회일기 전문을 싣도록 허락해주신 목자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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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국의 남편들에게 아침밥이 주는 의미”라는 쇼츠를 보았습니다. 한국의 남성들이 말하는 이혼 사유 1위가 “아내가 아침밥을 안해준다”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해가 안되시죠? 여성들에 비하면 그 이혼 사유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은 생각하기를 “그 아침밥이 도대체 뭐길래 거기에 그렇게 목숨을 거냐? 안 먹어도 그만인 것을...” 하지만 남편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도 고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가사 노동의 고됨은 육아휴직을 해 본 남편들은 다 공감하는 것입니다. 워킹맘들은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그럼에도 남편들은 난 일평생 일만 하고, 버는 돈은 다 집에 갖다 주고 나는 용돈 타서 쓰는데, 그래도 내가 아내한테 아침밥 얻어 먹을 때면 ‘아내가 나를 존중하는구나, 나를 대우하는구나’하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침밥은 단순히 탄수화물 몇 칼로리가 아니라 내가 이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 특히 아내한테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통창구라는 것입니다. 

 

 그 쇼츠를 보면서 예전에 이경준 목사님이 쓰신 칼럼이 생각이 났습니다. 목사님의 큰 형님은 성당에 다니시면서 제사를 드리시는 분입니다. 목사님은 마음이 불편해서 “형님! 이제 제사 지내지 말고 제가 추도식으로 인도할께요” 그랬더니 형님이 바로 고개를 돌리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의 마음 속에는 ‘맞다! 내가 형님께 너무 권위를 드리지 않았구나. 형님께서 제사권까지 내려놓으시면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시게 되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은 생각을 바꾸기로 하셨습니다. ‘형님에게 먼저 권위를 드려야 내가 전하는 복음도 받아들이시겠구나.’ 그 후로 목사님은 사소한 것도 형님에게 잘 물었습니다. 배추 열 포기를 싸주시면 두 포기만 더 달라고 비비기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가끔 그런 얘기도 듣는다고 하십니다. “배추 열 포기 무 몇 개 가지러 가봐야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 물론 고기랑 과일까지 사 가지고 가면 손해(?)입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꼭 효율을 따지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특별히 가족 중에 VIP가 많으실 겁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아직 예수를 안 믿으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복음을 들이밀(^^)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할 때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그분들의 권위를 충분히 인정해드리고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분들이 언젠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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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부에서 붙인 포스터를 보니 이번 주 토요일에 성경학교가 열리지만, 공과공부는 오늘 주일부터 하는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주일학교 여름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학교를 경험하면서 자라신 분들은 여름성경학교, 수련회가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이 꽤 큼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일주일 168시간 중에 우리 아이들이 교회 와서 머무는 시간은 고작 2시간입니다. 168대 2!!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갭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학업은 학교나 학원이, 신앙은 교회와 교역자가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금 말씀드린 그 물리적인 시간 양의 차이는 그것을 가능하지 않게 합니다.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성경은 아이들의 신앙교육의 책임은 부모라고 말씀합니다.(신6:1-9)

 

“아이들과 대화가 잘 되세요?”라고 부모님들께 물으면 보통 “잘 안된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아이들이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아이들과의 공통관심사가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답은 의외입니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는 나랑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상하죠?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정작 아이는 부모가 자기랑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느끼니 말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 만약 이런 것이 대부분이라면 아이가 그렇게 느낄만도 하겠지요. “숙제는 다 했어! 네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앞으로 뭐가 될래?” “네 방도 하나 못 치우니? 엄마가 치우는 것도 이제 지겹다!” “몇 시인데 이제 들어와!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고 돌아다닌 거니? 너가 지금 그럴 때야?”

 

오늘 마지막인 <행복한 삶> 4과 제목은 “소통을 위한 대화”인데, 그 기술은 크게 3가지입니다. 경청, 지혜의 말, 좋은 질문입니다. “아빠 엄마는 항상 내 말을 중간에 끊어요!” 부모가 경청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 아빠는, 너는 커서 무엇을 하고 싶어? 요즘 가장 좋은 일이나 가장 힘든 일이 뭐니? 라고 물어본 적이 없어요!” 부모가 좋은 질문을 하지 못한 겁니다. “엄마 아빠의 꾸지람을 듣고 나면 자신감이 없어져요. 자꾸 내 친구들과 비교하시니까..” 부모가 지혜의 말을 하지 못한 겁니다. 자녀에게는 부모만이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의 탱크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스스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아이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한데, 그 연료는 교회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정은 부모와 자녀간에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있는 가정인가요?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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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은 유기체입니다. 그래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목장은 전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오늘도 분가를 합니다. 다 아는 식구들이 나뉘어진 것이지만 그래도 식구가 적어지다보면 더 깊은 나눔과 친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맥시멈 1년입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임이 전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목장은 친교모임으로 전락되어 서서히 죽어갑니다. 요즘같이 바쁜 삶 속에서 가정을 오픈하고 밥을 한다는 것은 보통 헌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목장에 오는 사람들이 매주 똑같고, 나누는 기도제목들도 늘 변화가 없다면, 그렇게 같은 사람들이 같은 내용으로 매주 모인다는 것은 모두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장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우리가 아는대로 영혼구원입니다. 목표는 말 그대로 목표입니다.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여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목표가 목장에서는 VIP 5명입니다. 목장이 공동으로 기도하고 섬길 수 있는 VIP 5명을 정해서 식구들이 계속 기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목장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목장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VIP 5명을 정할 때는 내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아무나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 중에 비신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지금’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 하나님이 아니면 삶이 어려운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VIP를 찾는 단순한 이유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VIP를 찾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VIP에도 제한을 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즉 생활수준이나 학력이나 나이나 취향이나 여러 가지로 나와 비슷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것 하나만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하니 그런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목장은 그러면 안됩니다. 목장은 VIP를 고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면 섬긴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내주십니다. “하나님! 우리 목장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VIP가 오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으로 알아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기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을 보내주십니다. VIP를 그저 ‘전도대상자’로 생각하지 말고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잃어버린 자녀로 생각하고,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목원들이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이 과정에 모두 뛰어들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같이 경험해 볼 때 목장의 진정한 맛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 목장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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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목장모임지 적용 질문에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내가 목장모임을 안 다녔다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탐방을 다니면서 성도님들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은 “목장이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 이렇게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나고, 그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속마음도 털어 놓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이 공동체가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전도가 편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지식이 별로 없어서 전도를 어떻게 할지 잘 몰랐고, 늦잠 자는 일요일날 교회에 오라고 하기도 어려웠는데 목장을 하고부터는 그냥 툭 던지는 말로라도 “금요일날 우리 목장 한번 와볼래? 그냥 밥 한번 같이 먹자”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장모임에서 성경공부나 교회에서 하는 것 같은 기도회를 하는 것도 아니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전도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부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교회 얘기를 들으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사람들이 누가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밥을 같이 먹는다니?”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맞아! 나도 목장이 아니었다면 누굴 내 집에 초대할 사람도 아니고 누구 집에 갈 사람도 아닌데 목장 때문에 나도 많이 변했네. 가족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밥을 할 줄도 알고...” 이렇게 자신이 보기에도 살짝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계해서 목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신앙생활도 외톨이로 하였을 것”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격상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 거는 성격이 아니라서 목장이 아니었다면 주일날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은혜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주일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한 목자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목장이 아니었으면 전 참 기복이 심한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장을 하다보니 이게 삶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목장모임은 금요일이지만 일주일 내내 단톡에서 목원들과 이야기하고, 어려움이 있는 목원들은 찾아가 보고, 그렇게 목장이 내 삶의 일부가 되다보니 신앙생활도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아 참 행복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목장은, 하나님이 저를 그분 곁에 붙잡아두시기 위해 주신 축복입니다!” 2024년, 딱 절반을 보내면서 “목장이 아니었다면?”이란 질문에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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