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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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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개그콘서트에서 “애정남”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당시 최효종씨는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뭔가 선택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가정교회를 하다보면 기준이 분명하니까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이 일이 영혼구원하는 데 도움이 되나? 이것이 제자 만드는 데 도움이 되나?”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하반기에는 몇 목장들이 분가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분가 역시도 이 질문을 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가 영혼구원하여 제자만드는 사역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때는 언제냐면 목장식구들의 숫자가 성인 5~6명일 때입니다. 왜냐하면 목장식구가 세 가정(6명)일 때 만약 한 가정이 그날 빠지면 두 가정만 단촐(?)하게 목장을 하면서 빨리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기 때문이고(=전도공동체가 되고) 그렇게 한 세 가정 정도 모이면 목장모임에서의 나눔이 깊어지면서 목장을 통해서 내 신앙이 자라기(=치유공동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의 숫자가 되면 전도도 잘 안되고, 나눔도 잘 이뤄지지 않아서 목장이 그저 친교하는 모임이 되어버려 목장이 존재해야 하는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목장이 분가해야 할 사이즈가 되면 반드시 분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분가할 때 성도님들이 가지셔야 하는 중요한 마인드는 “목장은 자꾸 모이고 자꾸 헤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구원을 위해서라면 “나는 누구든지 새로운 사람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고,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이 없으면 목장은 고인 물이 되어버리고, 결국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서 분가를 하되,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면서 분가해야 합니다. 분가를 할 때는 당연히 기존목자와 신임목자 중에서 목원들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이란 것은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쪽’을 고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내가 좋은 사람보다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택하는 섬김을 해보는 것입니다. 내 필요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서 아브라함처럼 “네가 좌(左)하면 나는 우(右)하리라...”라는 섬김을 실천해보면 분가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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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한국 지성을 대표한다는 말을 들으며 무신론자로 살아왔고, 해박한 성경에 관한 지식으로 기독교를 비평하는 강의까지 하던 한 사람이 신앙에 입문하며 펴냈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많은 분들이 읽으며 전도용으로도 구입하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저 역시도 교직에 계시다 은퇴하신,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으시는 큰 아버지께 이 책을 선물하며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올해 2월 하늘나라에 가신 이어령 교수님은 이 책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계기는 한마디로 영혼의 고달픔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을 지성에 의지해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한 사람이 인생의 후반부에서 느끼는 인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지요. 결국 그 고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있을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그 한마디 말씀에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직접적인 계기는 딸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분의 딸은 대학에서 전 과목 A학점으로 3년 만에 조기졸업을 한 소문난 재원이었는데, 영문학을 공부하려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검사가 되었는데, 이 딸이 한국에 전화만 하면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 얘기를 했답니다. 너무 그러는 것이 얄미워서 어떨 때는 “하나님 아버지도 좋지만 이 땅의 아버지도 좀 생각해 주면 안 되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딸이 자기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가 딸과 같이 있어 준 시간은 기껏해야 휴가 때 함께 여행하며 즐거워했던 그 시간뿐이었지, 딸의 자식이 심한 ADHD로 학교도 못 보내고 밤새 고통할 때 같이 있어 주셨던 분도, 그리고 딸이 암에 걸려 죽음을 넘나들고 있었을 때 그 시간을 함께하고 그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셨던 분도 본인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였다는 사실, 즉 딸을 키운 것은 자기가 아니고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명절을 보내시면서 아직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과 친척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분들이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주님 안에서 소망과 기대를 가지십시오. 분명히 그분들도 영혼의 고달픔으로 인해 주님을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오래 참으며 섬기고 기도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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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로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저는 목장만 만들어 놓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성도들이 삶을 나누며 교제하고, VIP들을 전도해서 영혼구원이 일어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는 시스템(system)이 아니라 스피릿(spirit)이라는 것을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직을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신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가정교회의 세축 – 목장모임, 삶공부, 주일연합예배 – 중에서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삶공부라는 것도 가정교회 목회를 해보며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식적인 성경공부는 우리 신앙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정교회 삶공부는 성경지식, 그 자체를 위한 성경공부가 아닙니다. 가정과 목장과 일터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성도들을 도와드리는데 최적화된 성경공부가 바로 가정교회 삶공부 시리즈입니다. 그 중에 1단계가 생명의 삶입니다. 삶공부 과목은 다양해서 교회에서 개설하는 삶공부가 많아질수록 과목별로 부교역자나 평신도 강사들이 맡게 되는데, 생명의 삶만은 담임목사가 계속 인도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삶은 처음 1/3이 복음에 관한 내용인데,(그래서 예수영접모임과 생명의 삶 처음 부분은 많이 비슷합니다)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담임목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그분에게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3주 동안 저와 삶공부를 통해 많이 친해지면서 저의 목회철학이나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을 하신 분들과 아직 못하신 분들은 담임목회자와 교회를 이해하는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필수과정인 생명의 삶과 함께 생명의 삶을 수료하신 분들이 들으실 수 있는 선택과목 중에서 생명언어의 삶을 개설해드리려고 합니다. 생명언어의 삶은 원래는 변화의 삶이었는데, 과목 명칭이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과목이 10주 동안 다루는 것이 전부 ‘언어’ 곧 우리들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설교 시간에 “절제된 언어가 영성이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정말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생명언어로 바뀌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올 하반기에도 생명의 삶, 기도의 삶, 생명언어의 삶공부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스피릿을 키우는데 한 물결을 이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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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기업으로 알려진 이랜드에서 근무하던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랜드는 기독교 가치관을 주창하는 회사라 거기에서 근무하게 되면 교회에 안 다니는 것이 힘듭니다. 그런데 10년을 일했으면서도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굳세게 버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삶을 보면 나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안 듭니다’” 그렇습니다. 인타깝게도 일반적으로 교인들의 삶이 비신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고,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거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가정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변합니다. 안 믿던 사람이 예수 믿고 변화된 모습을 보고서 자신도 예수를 믿고 싶어졌다는 간증을 흔히 듣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정교회에서는 성과 속의 구분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도 교회생활과 마찬가지로 사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크리스천이 되려면 가정에서는 좋은 부모와 좋은 자녀, 좋은 배우자가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좋은 보스와 좋은 직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삶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말씀대로 살 엄두를 못 냅니다. 이런 교인들에게 주일은 영적으로 목욕하는 날입니다. 예배당 나와서 일주일의 죄 회개하고 목사님에게 설교를 통해 꾸중(?)듣고 나면 좀 깨끗해진 기분이 됩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세상에 나가서 다시 똑같은 삶을 삽니다. 그러나 가정교회 성도들은 설교를 실생활에 적용합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에 목장이라는 완충지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아가서 말씀을 적용해보기 전에, 목장 식구들을 대상으로 실습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 어떻게 말씀대로 살지 모를 때에는 목장모임에 와서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패배하고 상처받으면 목장에 와서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교회 교인들에게 주일은 목욕하는 날이 아니라 충전받는 날입니다. 주일에 선포된 말씀을 갖고 세상에 나가 분투하며 살다가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 주일예배에 나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며 위로받고 말씀을 통해 세상을 이길 지혜를 얻어, 다시 한번 바르게 살 각오를 다짐하는 충전받는 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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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교회의 고객입니까, 성도입니까? 
 
 “당신은 교회의 고객입니까, 성도입니까?” 톰 레이너의 <I am a Church Member>라는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입니다. 책도 작고 100 페이지정도 밖에 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 여운은 상당히 오래 남는 책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성경에 근거하여 참으로 우리가 교회 멤버라면 이런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첫째, 제 역할을 수행하는 성도여야 합니다. 둘째, 사랑으로 연합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자기 취향과 욕구에 교회를 맞추려 하지 않는 성도여야 합니다. 넷째, 교회 리더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여야 합니다. 다섯째, 가족이 건강한 성도가 되도록 이끄는 성도여야 합니다. 여섯째, 교회 멤버십을 소중한 선물로 여기는 성도여야 합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은 멤버십 비유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교회는 컨트리클럽 같은 곳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합니다. 교회를 컨트리클럽 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하시겠지만 현대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다닙니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사택이 1990년대 세계적인 골퍼였던 짐바브웨의 닉 프라이스가 사비로 지은 아름다운 골프장 “곁에” 있었습니다. 우와~~하시겠지만, 멋진 골프장 곁에 있었을 뿐 늘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끊기는 집이었습니다. 물이 안 나와서 정 볼일이 급하면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아프리카니까 가능한 일입니다^^)골프를 쳐 본 적은 없지만 때로는 교인들을 따라서 아름다운 그린도 걸어보곤 했지요. 그 골프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비싼 회비를 내는 대신 그 골프장이 제공하는 많은 혜택과 특권들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컨트리클럽 멤버십은 회비를 지불한 대가로 다른 사람의 서비스(섬김)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멤버십은 섬김받기가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권리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취향대로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체를 위해 내 취향을 포기하는 희생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성도, 진정한 교회 멤버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슬로건 중의 하나가 “주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가 되어보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에 속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성도가 되는 행복을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함께 누려보기를 간절히 소원해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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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겪으면서 ‘혼밥’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관공서 등에서는 구내식당에 칸막이를 하고서 밥을 먹는 곳이 많으니 같이 먹으면서 대화하기도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을 때는 창피해서 식당에 들어가기가 좀 멋쩍었는데, 요새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메뉴판에 1인 메뉴들이 등장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여가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대여섯명이 함께 가던 노래방도, 적어도 친구하고 둘이서는 가던 영화관도 이제는 혼자서 노래하는 코인 노래방을 즐기고, 꼭 영화매니아라서가 아니라 그냥 혼자서 영화보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현시대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속에 있는 깊은 외로움입니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관계는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참 곤란한데(기도를 잘 한다거나, 성경을 많이 안다거나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는 것을 100% 증명할 수는 없기에ㅠ), 그 사람이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Give & Take’라는 것이 야박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 문화조차 미덕이 되어버린, 서로 ‘안주고 안받자’라는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성도들끼리도 “부담스러운 일은 우리 서로 하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현대교회입니다. 그렇게 살면 물론 편하겠지요.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가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서서 확대된 가족의 개념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우리 행복한교회 다니시는 성도님들은 ‘나홀로 교인’ ‘혼밥 교인’이 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밥을 먹으며 너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고, 너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는 그런 행복한 신앙생활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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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DISC로는 S형, MBTI로는 I형, 사군자 성격유형 검사로는 내향국화형입니다. 어떤 도구로 해봐도 결과가 같으니 제 성격이나 기질은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 주도형이기보다는 안정형, 과업지향보다는 관계지향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간 서울의 교회에서도 부임하고서 2년은 그 하고 싶은 가정교회를 하겠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대신 2년 동안 생명의 삶을 한 기수 당 세 반을 개설하여 네 기수를 하면서 성도들과 친해지는 시간만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하니 성도들과 정말 가까워진 것 같았고 내가 뭘 하자고 해도 믿고 따라와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목양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성령님께서 저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손목사야! 오늘도 설교하느라 수고했다. 그런데 지금 너의 설교를 듣고 돌아간 나의 자녀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무슨 기도제목을 가지고 몸부림치다 왔는지 너는 아니?” 그 말씀에 저는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담이 6개월 정도 가다가 가정교회로 전환을 했고, 목자님들은 목장사역을 하면서 목회일기를 쓰셨습니다. 목자님들은 그 일기에 목원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살면서 느낀 감사라든지 목장에 부탁한 기도제목을 써 주십니다. 그리고 그 목원에 대한 목자의 기도도 써 놓으십니다. 요즘 우리 교회 목자님들도 쓰시는 이 목회일기를 읽으며 기도할 때 저는 제일 행복합니다. 저는 더 이상 “내가 목양하는 양들의 상황도 내가 모르고, 모르니 구체적으로기도해줄 수도 없으면서 내가 무슨 목회를 한다고 하나...”라는 자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때로 성도들과 교회 복도에서 만날 때, 성도님들의 일상을 살짝 아는 척을 하면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세요?”하고 놀라시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답니다 하하^^ 성도님들 중에는 저를 그저 멀리 강대상에서 “설교만”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목사”로 여기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여러분들과 이미 상당히 친해져 있음을 느낍니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는 것도 맞지만, 기도하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목자님들의 목회일기 덕분에 제게 있어 기도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여러분 한분 한분을 위해서 내가 마땅히 해드려야 할 일을 하는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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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라면 한번쯤은 ‘내 은사가 무엇일까’ ‘내 달란트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달란트 비유’라는 것도 나오고 또 은사대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설교도 적지 않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시는 분들은 성격유형 테스트 혹은 은사테스트를 해보신 경험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하는 것처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아무리 나의 은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은사를 행하지 않으면 그 은사는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은사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나눠 주셨습니다. 그래서 은사 발견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한번 해보는 것(Try out)입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은사테스트를 해보는 것보다는 먼저 내 몸으로 부딪혀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은사입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 눈에 뜨인다면 그것이 내 은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남이 “잘 한다”고 인정해주는 것 역시 내 은사입니다. 은사에는 항상 남을 유익하게 해주는 열매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삶의 마지막 부분이 헌신으로 끝마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공부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아는 것, 배우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몸을 드려보라’는 것입니다. 금요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목양실에서 일을 하다가 사택으로 들어가는데 1층 화장실 앞에 남성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청소하시는 거예요?” “네~~목사님~~” 그러면서 장화를 신은 채 안에서 나오시는 성도님은 그 아침부터 온 몸과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계셨습니다. 얼굴의 땀이라도 닦아드리려고 하니 10월에 또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날 아침 제가 본 성도님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기도의 삶 세미나도 마찬가집니다. 세미나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일주일에 한 시간을 남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내 몸을 실제로 드릴 때 우리는 참 행복을 맛보게되는 것입니다. 무척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헌신하는 성도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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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다녔던 모교회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지금은 다른 이름의 아파트가 세워져 있지만, 당시는 주공아파트였는데, 그 아파트 상가 3층에 있었습니다. 지붕이 비스듬하게 되어 있어서 장의자 안쪽에 앉으신 분들은 일어나시다가 곧잘 머리를 천정에 박기도 하셨고, 기둥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 기둥 뒤의 의자에 앉으면 강대상이 보이지 않아서 그 기둥에는 조그만 모니터를 설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 자리가 인기가 많았습니다ㅎㅎ 80년대 초 교회가 부흥되자 건너편 고층아파트 상가로 이사하여 조금 더 넓은 공간을 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건은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유치부서부터 중고등부까지 아이들은 제일 많았습니다. 아니 수적으로 많은 것을 넘어서서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한 대 뿐인 ‘교회 봉고’에는 주방도구를, 우리들은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서 간 수련회가 생각이 납니다. 도착한 기도원도 소리나는 선풍기 두 대가 앞뒤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함 가운데 은혜가 있었습니다. 저녁집회 도중 찬양을 인도하시는 선생님께서 갑자기 산기도를 가자고 하셨고 선생님들의 랜턴 하나를 의지하고 50명의 아이들이 캄캄한 산을 올랐습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정말 별이 쏟아질 듯 많았습니다. 그 별빛을 받으며 우리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회개의 눈물이 터졌고 기도의 문들이 열렸습니다. 그 가운데 저와 지금의 아내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그 말씀과 함께 하나님은 목회자의 소명을 그 수련회 마지막 날 밤에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회를 참 좋아합니다. 수련회 광고가 나가면 저의 마음은 벌써 들뜹니다. 수련회를 통해서 나를 만나시고 나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번 수련회에서는 또 어떤 영혼을 만나실지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중고등부 수련회가 열립니다. 청소년은 ‘장성한 어린이’가 아니라 ‘미숙한 어른’입니다. 그러기에 바로 이때 성경적인 가치관과 믿음을 심어주고, 바른 삶을 가르쳐주고, 리더십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느냐는 청소년기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중고등부와 이번 수련회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그 영혼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이 사회가 변화되어 나갈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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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 번씩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에서는 목회자들에게 컨퍼런스를 제공해줍니다.

2박3일 동안 전국, 해외에서 가정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님 사모님들과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함께 가정교회 스피릿을 나누며 낮에는 강의와 사례발표, 밤에는 기도회를 합니다. 목사님들은 그 컨퍼런스에서 여러 가지 삶공부를 속성(?)으로 배운 후에 강의 준비를 해서 교회에 강좌를 개설합니다. 다양한 삶공부 과목들이 있기 때문에 컨퍼런스 신청서를 작성할 때 무척 고민이 됩니다. 이것도 듣고 싶고 저것도 듣고 싶어서^^ 그 말은 곧 우리 교회에는 이 삶공부도 필요할 것 같고, 저 삶공부도 필요할 것 같고....이런 영적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해 최영기 목사님께서 홈피에 이런 제목의 글을 쓰셨습니다.

“기도의 삶을 제일 먼저 수강하세요!!” 내용인즉, 기도의 삶을 개설하여 중보기도팀을 운영하는 교회마다 좋은 결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본인도 이번에는 컨퍼런스에서 강의를 하지 않고 이 삶공부가 도대체 무엇인가 들어보았는데, 너무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교회를 시작하시려는 목사님들은 성도들에게 ‘정보’를 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우선 중보기도팀을 만들어서 성도들이 기도로 교회를 지원하게 할 때 영적인 보호막이 쳐지면서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로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글을 읽고 바로 다음 컨퍼런스에서 기도의 삶을 들었고 2018년부터 기도의 삶을 도입하였습니다. 결과는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도 우리 교회는 중보기도팀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극히 소수가 하고 계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새로 부임한 목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중보기도에 동참하셔서 현재 35명이 중보기도팀에서 함께 기도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정식으로 제1기 기도의 삶을 개강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삶은 4주 세미나를 듣고 3개월 중보기도 헌신을 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왔던 형태의 중보기도는 7월30일까지만 하고, 8월에 4주 세미나를 한 후 11월까지 3개월 동안 중보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중보기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남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 시간만이라도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기도의 삶을 꼭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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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기쁨 목장> 목장탐방을 했습니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목원들 네 가정과 자녀들, 저희 부부까지 21명이 세 상에서 밥을 먹고 함께 감사와 기도제목을 나누다 보니 10시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와 함께 발인예배까지 있어서 좀더 있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누르고 일어서야만 했습니다. 저도 마스크를 벗은 얼굴의 목원들을 보면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니 너무 좋았고, 목원들도 멀리 강대상에서의 양복 입은 제 모습만 보다가 편한 옷차림의 담임목사와 가까이서 교제를 하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목원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런 시간이 아니면 목사와 성도는 예배 마치고 돌아가면서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가 됩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좋은 일(=감사)과 힘든 일(=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형교회도 아닌데 목사와 성도가 이런 사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될 수 있는대로 저를 노출시키고, 여러분들의 기도제목을 알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저를 노출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목회자칼럼>입니다. 이 짧은 지면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요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일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혹은 교회적으로 무슨 결정을 했다면 어떤 동기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등등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교인들이 저랑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분들도 ‘나는 손목사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목장모임 때 어느 한 목원이 담당해서 목회자칼럼을 다시 한번 소리내서 읽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제 자신을 노출시킨다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어떻게 여러분들을 노출시키시나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감사한 일이나 기도제목을 자주 여쭤봅니다. “나는 목사님에게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하시겠지만, 목자님들이 목장모임을 마치시고는 <목회일기>를 쓰시는데 그것을 통해 여러분들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저에게 노출되신답니다^^ “개인정보보호”가 우상시 된 사회지만, 적어도 목사와 성도 사이에는 이 정도의 노출은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도는 나를 영적으로 케어해 줄 목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알고, 목사는 내게 맡겨 주신 양의 기도제목을 아는 관계, 그것이 진정한 교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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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는 행복한교회에 부임하고 바쁘게 달려온 7개월의 시간들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사실 적응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 교회 어느 곳에는 제 손글씨로 쓴 라벨들이 여전히 붙어 있고, 1층 식당 어느 수납장에 냅킨이 들어 있는지도 알겠으니^^ 다만,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다운되어 있는 교회의 분위기와 목장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하는지가 날마다 어깨를 무겁게 하는 큰 숙제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목자목녀님들을 중심으로 치러냈던 제3회 쉴만한 물가는 하나님이 우리들 모두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먼저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12개의 분과가 움직이면서 100명이 넘는 성도들이 자신의 은사대로 섬겨주셨습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사역으로의 부르심임을 확인하는 신앙생활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70명이 넘는 VIP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이 안전하게 쉴만한 물가”는 오직 사랑의 예수님의 품임을 보여준 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오래도록 이번 쉴만한 물가를 잊지 못할 이유는, 하늘나라에 가신 조현정 자매님 때문일 것입니다. 수요일엔 현정자매에게 다녀왔습니다.

 

“교회가 처음이라고 하셔서 귀가 번쩍 뜨였어요!!” “하하~저도 교회가 처음이라 뻘쭘뻘쭘했는데, 절 보시자마자 처음 오셨냐고 하면서 아기방도 안내해주셔서 덕분에 오늘 교회 잘 다녀왔어요..새가족반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새가족반 3주가 끝난 뒤 그 다음 주 토요일 “현정 성도님! 오늘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심을 축하드려요!! 아마 세례 받으실 때는 하나님의 축하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뜨거운 축하도 받게 되실 꺼예요!” “목사님! 오늘도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항상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도님들의 뜨거운 축하? 뭔지는 모르지만 이목이 집중되나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네요ㅋㅋ” 투병을 하면서도 이토록 밝았던 현정자매는 쉴만한 물가 홍보 포스터 다자인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다녔기에, 교회 주변을 “살아내기 위해서” 죽을만큼 힘들어도 걸어다녔기에 그려낼 수 있었던 그림이었습니다. 너무 힘들면 못하겠다고 하라던 남편의 말에도, 교회를 위해서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힐링이라고 하면서 현정 자매님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앞으로도 쉴만한 물가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번 쉴물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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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서 기도응답이 빈번한 이유

 

가정교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에게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하면 교회에 간증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를 가보면 우리가 지난 주일에 들었던 삶공부 간증은 물론이고, 감사할 일, 은혜받은 일, 결단한 일, 고난 중에 주님을 경험한 일이 있으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어느 예배 때라도 간증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증’하면 성도들에게는 여전히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 쉽지 않음이란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서 말한다는 것이 낯설다는 것이지 간증할 ‘꺼리’가 없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흔히 가정교회에서는 “6개월 지난 간증은 간증으로도 안 쳐준다”는 우스갯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목장에서는 매주 삶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고, 기도응답을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싱글목장들도 식사를 하는 대면목장모임을 재개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가정교회의 참맛을 서서히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이곳 저곳에서 기도응답의 소식을 들을 때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다시금 생각해보았습니다. 목장에서 기도응답이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목장은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만들어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도 부모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이쁜 것처럼,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노력하는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기쁘게 보시고 기도를 들어주려고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목장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가장 강력하고도 쉽게 경험하는 것은 기도응답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기도응답의 선물을 주시고 그 결과 성도들이 하나님을 이론과 관념의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목장에서의 기도를 잘 들어주십니다. 셋째, 목장에서는 실제적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목장모임에서는 목원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헤어져서도 그 기도제목을 가지고 어떻게든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그 기도제목이 이루어졌나 확인합니다. 그렇게 실제적으로 기도를 하기 때문에 목장에서는 기도응답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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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은 ‘삶공부’라는 성경공부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삶공부 과정은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데 필수과정은 생명의 삶, 새로운 삶, 경건의 삶, 확신의 삶,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이렇게 5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확신의 삶은 목자목녀가 담임목사에게 배운 후에 자신의 목원들에게 전수하는 일대일 공부입니다. 이 5단계 외에 선택과목으로는 기도의 삶, 일터의 삶, 말씀의 삶, 부부의 삶, 생명언어의 삶 등등이 있습니다. 본당에 걸려있는 파란색 현수막을 보시면 가정교회 로고가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가정교회 세 축’이라고 부릅니다. 곧 ‘삶공부, 목장모임, 주일연합예배’입니다. 이것을 세 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동차에 축이 있어야 굴러갈 수 있듯이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기능되어질 때 가정교회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적(知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복을 가지고 목장모임에 갑니다. 가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당연히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도-을 나눕니다.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가 개인적인 은혜였다면 목장모임에서는 서로서로 마음을 나눔으로 받는 은혜기 때문에 그 은혜가 배가 되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정적(情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주일에 모든 목장이 연합하여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와 목장모임을 통해 나눈 은혜를 가지고 주일예배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주간 삶공부와 목장모임을 통해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목장이 다 함께 모인 주일연합예배에서는 나에게 또 어떤 은혜와 음성을 들려주실까?’하고 기대하게 되면서 그 예배를 통해 이번 한 주간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의지적(意志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할 수 있음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이번에 삶공부를 수료하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삶공부를 잘 끝내도록 기도와 배려와 섬김으로 도와주신 가족들과 목장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오늘 대표간증은 여섯 분이지만, 각반에서 다 간증을 했는데 모두다 도움 주신 분들께 대한 감사를 하시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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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곤경에 처해 있다면, 그때 기댈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이웃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꼴지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이나 개인적인 안전(치안) 같은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위의 질문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묻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개인주의적 사회라고 부르는 일본보다도, 또한 정치적으로 불안한 터키나 칠레, 멕시코보다도 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 ‘사회적 관계’는 더 약해졌습니다. 모임과 만남이 통제되었던 지난 2년간은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길만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은 더욱 발전하여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역사상 가장 잘 ‘연결된’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외로워합니다. 잘 연결된 것 같은데 단절감은 더 심해져서 이제 외로움은 단순한 심리상태가 아니라 질병으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님은 이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병은 어떻게 치료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유일한 치료법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곧 목장입니다. 설교준비를 하면서는 이론으로, 그저께 너무도 기다리던 목장탐방을 하면서는 그 깨달음이 진리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남자라면 울어서도 안 되고 과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도 억누르며 지내다가 술이라는 힘을 빌어서 “나도 힘들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남성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하소연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들어줌”의 행위가 이 시대에는 ‘섬김’이 아니라 ‘직업’이 되어버렸고 ‘일상’이 아니라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같은 시대에 그 들어줌을 일상에서 섬김으로 하는 곳이 목장이니 목장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라기는 혼자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목장은 마음의 병으로 때로 힘들어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병원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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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교인의 70% 이상이 60세 이상인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유입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싱글들(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을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따로 편성을 해 놓고, 젊은 목사님 혹은 전도사님들이 맡아서 따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도 장년들과는 다른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다보니 담임목사가 ‘내 목사’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부사역자로 섬길 때 주일 4부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청년들은 제가 행복한교회 담임목사인 줄 아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청년부’를 운영하는 이유는 싱글들만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키워준다고 그러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들도 교회의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장년들과 ‘같은 정신’을 가지기가 쉽지 않고 결국은 싱글들만의 다른 그룹이 만들어집니다. 사역도 독자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니는 교회에 소속감도 적습니다. 교회는 싱글들을 ‘보호의 대상’ 정도로 취급을 하고, 싱글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칩니다. 그러다 결혼이라도 하면 청년부에 남아 있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장년 예배는 ‘우리 교회’라는 인식이 없으니 결국 젊은 목사님이 계신 다른 교회를 찾아가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님이 나이가 들어가면 회중의 평균연령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회 노화현상이 심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어제 싱글야유회를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교회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시1:3) 늘 푸른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는 영적인 면에서 늘 주님과의 첫사랑을 유지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늘 푸른 신앙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장년들과 싱글들이 ‘한 교회’의 구성원으로 같은 정신을 공유하며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은, 싱글들이 아무래도 적용이 장년 중심이 될 때가 많은 제 설교도 좋아해 주어서 고맙고, 저를 “우리 목사님”으로 여겨주어서 행복합니다. 이번 쉴만한 물가에서도 무대세팅, 찬양, 찬무로 싱글들이 함께 해주어서 행사가 더욱 젊어졌습니다. 이번 22기 생명의 삶 수료생의 20%가 싱글들인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장년과 싱글들이 함께 가는 일이 예배와 사역에서도 더욱 확장되어서 모든 세대의 VIP를 품을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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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도하여 등록한 VIP에게 때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교회 다닐 때는 하나님만 보고 다녀야 해! 사람 보지 말고~~알았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압니다. 사람보고 교회 다니다가 실망하거나 시험에 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교회를 다니려고 하는 그분에게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교회를 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보지 않고 교회를 다니라고 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가난한 조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어보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분처럼 신앙생활 하면 돼”라고 자신있게 보여 줄 신앙의 모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있는 교회는 정말 행복한 교회입니다.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 보고 교회 다녀~”라는 말이 아니라 “저 장로님 보고 배우면서 교회 다니면 돼! 저 목자님 따라 하면 돼! 저 권사님 하시는 대로만 하면 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교회는 정말 건강한 교회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는 제3회 <쉴만한 물가>를 처음으로 교회 잔디마당에서 가졌습니다.

‘쉴만한 물가’라는 행사의 제목과 우리 교회가 위치해 있는 장소가 너무 잘 매치되는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하는 행사였고, 또 야외에서 하려다보니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 사실 계획 단계에서는 “과연?”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장로님들을 중심으로 목자목녀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각자의 은사대로 팀을 이루어서 최선을 다해 섬기며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욕(?)이 무엇일까요? “교회나 세상이나 똑같더라!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을 따르고 추켜 세워주는 것이 세상인데, 교회 와보니 교회도 마찬가지더라”는 말이 아닐까요?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는 섬기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이 존경받는 교회!!” 가정교회를 접하면서 이 말을 알았고, 그래서 3층 예배당 현수막 거는 부분에 늘 걸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과는 다른 룰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이 행복임을 아는 사람들, 그렇게 멋진 하나님나라 가치관을 갖고 사는 행복한교회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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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컨퍼런스를 오관수 목사님 부부와 함께 잘 다녀왔습니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의 자리를 지켜주신 성도님들과 헌신적으로 섬겨주신 장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컨퍼런스는 아침 9시 삶공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밤 11시 육겹줄기도회(세 가정 6명이 한 방에 모여서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를 마치는 것까지, 꽤 빡센(?) 일정입니다. 모든 순서들이 놓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참석자들이 큰 인사이트를 받는 시간 중의 하나는 바로 개회사입니다. 컨퍼런스 개회사는 지난 6개월 동안 가정교회의 세계적 흐름과 현 시점에서 가정교회를 하는 목사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장이 말씀해주시는 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이수관 목사님께서 이번에 말씀해주신 개회사의 주제는 “Post-Covid를 준비하자”였는데, 역시 시의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코로나 그 이후를 준비해 나가야 하는지 짚어주신 4가지 중에 한 가지는 성도님들께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냐면 ‘관계회복’입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반 정도를 코로나를 겪으면서 참 긴장 가운데 지냈습니다. 긴장하다보니 많이 날카로와졌고, 그러다보니 관계들이 비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인데, 코로나는 이 두 관계 모두에서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예배가 무너진 성도들이 많아졌고, 너무 재미있게 모이던 목장모임은 2년이 넘게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당연히 시간을 떼어 놓았던 금요일 저녁에 다른 약속을 잡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어갔고, 목장을 한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하게 되면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지만, 다시 모이려니 어색하고 힘이 들게 되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가 다시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일은 목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코로나 중에도 컨퍼런스는 한번도 쉰 일이 없이 온라인으로 계속되어 왔지만, 이번에 대면으로 진행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으면서 교제하는 것의 파워를 다시 경험했습니다. 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코로나는 진행중이어서 염려와 근심은 계속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염려하지 말고 나한테 맡기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는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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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과 토요일 성은교회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대면으로 열린 목자연합수련회는 기대대로 넘치는 은혜를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대전, 충북, 세종지역에서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의 목자목녀님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를 외치며 찬양과 말씀, 특강, 간증, 친교 등으로보낸 이틀은 참 즐겁고도 유익했습니다.

목자목녀님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한 명의 VIP를 품고 기도하며 섬기며 목장이나 교회로 데려온다는 것은 정말 많은 수고와 헌신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면서 성도님들께 대한 감사와 자랑스러움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지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처음부터 전도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자신의 삶을 훈련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인사입니다. 아파트, 직장 어디서든지 일상적으로 인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 인사하면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라면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하며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좀 어색해서 그 사람이 산책시키는 강아지를 칭찬했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때부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고 하는 어떤 목자님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셋째, 그렇게 대화가 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되면,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유용한 질문은“힘든 일과 좋은 일”입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전도를 잘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상대의 힘든 일을 마음을 다해 들어줄 때만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렇게 듣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그 주제에 맞는 짧은 간증을 합니다. 자신의 것, 목장식구의 것, 다른 교인의 것 다 좋습니다. 단, 그 간증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됨을 주의해야 합니다. VIP중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분들도 많은데, 그럴 때에라도 반박하거나 논쟁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나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래도 우리 목장, 우리 교회같이 좋은 교회도 있다면서 천천히 자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VIP를 확보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갈 때 주님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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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동안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보냈습니다. 유족들이 교회가 집례하는 장례를 요청하면 3일 동안 예배를 자주 드리게 됩니다. 한 목자님이 장례예배 때 하는 대표기도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하신 것처럼, 장례예배 설교도 쉽지 않습니다. 우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매번 다른 설교문을 준비한다는 것이 저의 실력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 장례식 설교가 어려운 이유는, 제가 고인(故人)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례식 설교야 돌아가신 분을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믿음의 삶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해주시는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는 우리 삶에 너무나도 중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 바쁜 삶을 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서7: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접 죽음의 문턱 앞에 서보지 않았다고 해도 장례식 예배에 참석하여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하면서 좀 아쉬운 것은 ‘내가 고인이 어떤 분이셨고,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를 알았다면 유족들에게는 좀더 위로가 되는 설교를, 조문객들에게는 인생의 지혜를 좀더 줄 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장례식의 모든 설교를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80 혹은 90의 인생을 사신 우리 부모님들의 그 헌신적이고 고단한 인생의 몇 조각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중의 한번 정도의 예배는 고인을 위한 ‘맞춤 설교’를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고인이 우리 교회 성도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조각들을 얻을 수 있지만, 고인이 성도들의 부모님들이라면 그 조각은 유족들로부터만 들을 수 있는데, 일단 장례가 나면 유족들은 조문객들을 대하느라 너무 바빠서 이야기할 틈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되시면(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여건이 쉽지는 않지만) 저와 함께 임종예배를 계획하고, 믿지 않은 부모님이시라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인데, 이것이 부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대의 효도일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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