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목장
> 연합목장 > 목회자칼럼
목회자칼럼
조회 수 22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은 ‘삶공부’라는 성경공부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삶공부 과정은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데 필수과정은 생명의 삶, 새로운 삶, 경건의 삶, 확신의 삶,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이렇게 5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확신의 삶은 목자목녀가 담임목사에게 배운 후에 자신의 목원들에게 전수하는 일대일 공부입니다. 이 5단계 외에 선택과목으로는 기도의 삶, 일터의 삶, 말씀의 삶, 부부의 삶, 생명언어의 삶 등등이 있습니다. 본당에 걸려있는 파란색 현수막을 보시면 가정교회 로고가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가정교회 세 축’이라고 부릅니다. 곧 ‘삶공부, 목장모임, 주일연합예배’입니다. 이것을 세 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동차에 축이 있어야 굴러갈 수 있듯이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기능되어질 때 가정교회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적(知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복을 가지고 목장모임에 갑니다. 가서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당연히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도-을 나눕니다.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가 개인적인 은혜였다면 목장모임에서는 서로서로 마음을 나눔으로 받는 은혜기 때문에 그 은혜가 배가 되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정적(情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주일에 모든 목장이 연합하여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삶공부에서 받은 은혜와 목장모임을 통해 나눈 은혜를 가지고 주일예배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주간 삶공부와 목장모임을 통해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목장이 다 함께 모인 주일연합예배에서는 나에게 또 어떤 은혜와 음성을 들려주실까?’하고 기대하게 되면서 그 예배를 통해 이번 한 주간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해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의지적(意志的)인 면이 채워질 때 행복할 수 있음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이번에 삶공부를 수료하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삶공부를 잘 끝내도록 기도와 배려와 섬김으로 도와주신 가족들과 목장식구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오늘 대표간증은 여섯 분이지만, 각반에서 다 간증을 했는데 모두다 도움 주신 분들께 대한 감사를 하시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축하받아야 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19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곤경에 처해 있다면, 그때 기댈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이웃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꼴지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이나 개인적인 안전(치안) 같은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위의 질문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묻는 부분에서는 우리가 개인주의적 사회라고 부르는 일본보다도, 또한 정치적으로 불안한 터키나 칠레, 멕시코보다도 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 ‘사회적 관계’는 더 약해졌습니다. 모임과 만남이 통제되었던 지난 2년간은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길만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은 더욱 발전하여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역사상 가장 잘 ‘연결된’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외로워합니다. 잘 연결된 것 같은데 단절감은 더 심해져서 이제 외로움은 단순한 심리상태가 아니라 질병으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님은 이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병은 어떻게 치료하는 것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유일한 치료법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곧 목장입니다. 설교준비를 하면서는 이론으로, 그저께 너무도 기다리던 목장탐방을 하면서는 그 깨달음이 진리임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남자라면 울어서도 안 되고 과묵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도 억누르며 지내다가 술이라는 힘을 빌어서 “나도 힘들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남성뿐이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하소연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들어줌”의 행위가 이 시대에는 ‘섬김’이 아니라 ‘직업’이 되어버렸고 ‘일상’이 아니라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같은 시대에 그 들어줌을 일상에서 섬김으로 하는 곳이 목장이니 목장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라기는 혼자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목장은 마음의 병으로 때로 힘들어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병원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19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래 된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교인의 70% 이상이 60세 이상인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유입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싱글들(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을 청년부라는 이름으로 따로 편성을 해 놓고, 젊은 목사님 혹은 전도사님들이 맡아서 따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도 장년들과는 다른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다보니 담임목사가 ‘내 목사’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제가 우리 교회를 부사역자로 섬길 때 주일 4부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청년들은 제가 행복한교회 담임목사인 줄 아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청년부’를 운영하는 이유는 싱글들만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키워준다고 그러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들도 교회의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장년들과 ‘같은 정신’을 가지기가 쉽지 않고 결국은 싱글들만의 다른 그룹이 만들어집니다. 사역도 독자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니는 교회에 소속감도 적습니다. 교회는 싱글들을 ‘보호의 대상’ 정도로 취급을 하고, 싱글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칩니다. 그러다 결혼이라도 하면 청년부에 남아 있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장년 예배는 ‘우리 교회’라는 인식이 없으니 결국 젊은 목사님이 계신 다른 교회를 찾아가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들이 담임목사님이 나이가 들어가면 회중의 평균연령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교회 노화현상이 심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어제 싱글야유회를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교회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시1:3) 늘 푸른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는 영적인 면에서 늘 주님과의 첫사랑을 유지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늘 푸른 신앙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장년들과 싱글들이 ‘한 교회’의 구성원으로 같은 정신을 공유하며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은, 싱글들이 아무래도 적용이 장년 중심이 될 때가 많은 제 설교도 좋아해 주어서 고맙고, 저를 “우리 목사님”으로 여겨주어서 행복합니다. 이번 쉴만한 물가에서도 무대세팅, 찬양, 찬무로 싱글들이 함께 해주어서 행사가 더욱 젊어졌습니다. 이번 22기 생명의 삶 수료생의 20%가 싱글들인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장년과 싱글들이 함께 가는 일이 예배와 사역에서도 더욱 확장되어서 모든 세대의 VIP를 품을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199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는 전도하여 등록한 VIP에게 때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교회 다닐 때는 하나님만 보고 다녀야 해! 사람 보지 말고~~알았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압니다. 사람보고 교회 다니다가 실망하거나 시험에 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교회를 다니려고 하는 그분에게는 사실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교회를 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보지 않고 교회를 다니라고 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가난한 조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처음 믿어보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분처럼 신앙생활 하면 돼”라고 자신있게 보여 줄 신앙의 모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이 있는 교회는 정말 행복한 교회입니다. “사람 보지 말고 하나님 보고 교회 다녀~”라는 말이 아니라 “저 장로님 보고 배우면서 교회 다니면 돼! 저 목자님 따라 하면 돼! 저 권사님 하시는 대로만 하면 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교회는 정말 건강한 교회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는 제3회 <쉴만한 물가>를 처음으로 교회 잔디마당에서 가졌습니다.

‘쉴만한 물가’라는 행사의 제목과 우리 교회가 위치해 있는 장소가 너무 잘 매치되는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하는 행사였고, 또 야외에서 하려다보니 생각보다 일이 많아서 사실 계획 단계에서는 “과연?”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저의 기우였습니다. 장로님들을 중심으로 목자목녀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이 각자의 은사대로 팀을 이루어서 최선을 다해 섬기며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욕(?)이 무엇일까요? “교회나 세상이나 똑같더라! 돈 많은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을 따르고 추켜 세워주는 것이 세상인데, 교회 와보니 교회도 마찬가지더라”는 말이 아닐까요? 교회는 달라야 합니다. 교회는 섬기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사람이 존경받는 교회!!” 가정교회를 접하면서 이 말을 알았고, 그래서 3층 예배당 현수막 거는 부분에 늘 걸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과는 다른 룰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이 행복임을 아는 사람들, 그렇게 멋진 하나님나라 가치관을 갖고 사는 행복한교회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손목사-

 


조회 수 20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목회자 컨퍼런스를 오관수 목사님 부부와 함께 잘 다녀왔습니다.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의 자리를 지켜주신 성도님들과 헌신적으로 섬겨주신 장로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컨퍼런스는 아침 9시 삶공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밤 11시 육겹줄기도회(세 가정 6명이 한 방에 모여서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를 마치는 것까지, 꽤 빡센(?) 일정입니다. 모든 순서들이 놓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참석자들이 큰 인사이트를 받는 시간 중의 하나는 바로 개회사입니다. 컨퍼런스 개회사는 지난 6개월 동안 가정교회의 세계적 흐름과 현 시점에서 가정교회를 하는 목사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장이 말씀해주시는 시간이어서 그렇습니다.

 

이수관 목사님께서 이번에 말씀해주신 개회사의 주제는 “Post-Covid를 준비하자”였는데, 역시 시의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코로나 그 이후를 준비해 나가야 하는지 짚어주신 4가지 중에 한 가지는 성도님들께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이냐면 ‘관계회복’입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반 정도를 코로나를 겪으면서 참 긴장 가운데 지냈습니다. 긴장하다보니 많이 날카로와졌고, 그러다보니 관계들이 비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인데, 코로나는 이 두 관계 모두에서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예배가 무너진 성도들이 많아졌고, 너무 재미있게 모이던 목장모임은 2년이 넘게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당연히 시간을 떼어 놓았던 금요일 저녁에 다른 약속을 잡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어갔고, 목장을 한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하게 되면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지만, 다시 모이려니 어색하고 힘이 들게 되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가 다시 에너지를 쏟아야 할 일은 목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코로나 중에도 컨퍼런스는 한번도 쉰 일이 없이 온라인으로 계속되어 왔지만, 이번에 대면으로 진행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으면서 교제하는 것의 파워를 다시 경험했습니다. 목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코로나는 진행중이어서 염려와 근심은 계속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염려하지 말고 나한테 맡기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는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손목사-

 


조회 수 20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금요일과 토요일 성은교회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대면으로 열린 목자연합수련회는 기대대로 넘치는 은혜를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대전, 충북, 세종지역에서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의 목자목녀님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를 외치며 찬양과 말씀, 특강, 간증, 친교 등으로보낸 이틀은 참 즐겁고도 유익했습니다.

목자목녀님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한 명의 VIP를 품고 기도하며 섬기며 목장이나 교회로 데려온다는 것은 정말 많은 수고와 헌신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면서 성도님들께 대한 감사와 자랑스러움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지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너무 처음부터 전도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자신의 삶을 훈련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인사입니다. 아파트, 직장 어디서든지 일상적으로 인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 인사하면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라면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하며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좀 어색해서 그 사람이 산책시키는 강아지를 칭찬했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때부터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고 하는 어떤 목자님의 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셋째, 그렇게 대화가 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되면,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분의 여러 가지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유용한 질문은“힘든 일과 좋은 일”입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전도를 잘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상대의 힘든 일을 마음을 다해 들어줄 때만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렇게 듣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그 주제에 맞는 짧은 간증을 합니다. 자신의 것, 목장식구의 것, 다른 교인의 것 다 좋습니다. 단, 그 간증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하려고 해서는 안됨을 주의해야 합니다. VIP중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분들도 많은데, 그럴 때에라도 반박하거나 논쟁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나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그래도 우리 목장, 우리 교회같이 좋은 교회도 있다면서 천천히 자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VIP를 확보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갈 때 주님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4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두 주 동안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보냈습니다. 유족들이 교회가 집례하는 장례를 요청하면 3일 동안 예배를 자주 드리게 됩니다. 한 목자님이 장례예배 때 하는 대표기도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하신 것처럼, 장례예배 설교도 쉽지 않습니다. 우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매번 다른 설교문을 준비한다는 것이 저의 실력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 장례식 설교가 어려운 이유는, 제가 고인(故人)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례식 설교야 돌아가신 분을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믿음의 삶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해주시는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는 우리 삶에 너무나도 중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너무 바쁜 삶을 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서7: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직접 죽음의 문턱 앞에 서보지 않았다고 해도 장례식 예배에 참석하여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하면서 좀 아쉬운 것은 ‘내가 고인이 어떤 분이셨고, 어떤 인생을 사셨는지를 알았다면 유족들에게는 좀더 위로가 되는 설교를, 조문객들에게는 인생의 지혜를 좀더 줄 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장례식의 모든 설교를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80 혹은 90의 인생을 사신 우리 부모님들의 그 헌신적이고 고단한 인생의 몇 조각만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중의 한번 정도의 예배는 고인을 위한 ‘맞춤 설교’를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고인이 우리 교회 성도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조각들을 얻을 수 있지만, 고인이 성도들의 부모님들이라면 그 조각은 유족들로부터만 들을 수 있는데, 일단 장례가 나면 유족들은 조문객들을 대하느라 너무 바빠서 이야기할 틈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되시면(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여건이 쉽지는 않지만) 저와 함께 임종예배를 계획하고, 믿지 않은 부모님이시라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이 어버이주일인데, 이것이 부모님에게 해 드릴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대의 효도일 것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19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로운 삶 시간에 이런 질문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야망은 무엇입니까?” 다소 거창한 이 질문은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오셨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성공, 승진, 재물, 남에게 인정받는 것, 안정된 삶 등등. 반원들의 대답을 듣고서 다음 질문을 드립니다. “그러면 그것을 위해 당신이 지불하신 대가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시간’입니다. 물론 그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관계적인 시간입니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소중한 시간들을 너무도 많이 희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코미디계에서는 아직까지도 기억되는 이주일 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일입니다. 몸이 약간 이상해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그에게 인생을 정리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폐암 말기였기 때문입니다. 투병 중인 그에게 기자가 찾아가 물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있어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제가 연예계에서 잘 나갈 때는 온 가족이 고생스러웠지요. 그러다가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병들어 가족을 힘들게 해요. 입맛이 없고 잠을 못 자니까 가족에게 짜증을 내요. 어저께 마누라가 내가 죽기 전에 정을 떼려고 그러는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참 가족이란 소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뒤늦게 가족의 중요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죽을 때 학위를 가지지 못한 것,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누구나 자신의 가족들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며 거룩하게 사는 일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가족을 만질 수 있는 날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가족을 칭찬하는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손이 자유롭게 움직일 때 내 가족을 한번 더 안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입이 자유롭게 움직일 때 내 가족에게 한번 더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들이기에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들부터 더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230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년이 넘게 계속되던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확진자 수는 많고 주위에서도 코로나에 걸리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생깁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적으로도 일상회복을 시작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에서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장모임이나 전도 같은 일들입니다. 특히 전도는 코로나 초기 때 신천지와 방역조치를 따르지 않는 일부 교회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져서 더욱 어려워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도의 길이 막혔었습니다. 그런데 전도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제대로 알았다면 코로나는 전도를 막는 걸림돌이 아니라 더욱 활발하게 전도할 수 있는 장을 활짝 열어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줄로 알고 열심히 전도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은, 전도를 목장이나 교회로 인도해서 목장이나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봄이 되면 전도 축제를 합니다. 전도대상자들을 작정하고 그들에게 선물을 하고 초청일에 맞추어 데려오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 3개월 프로그램을 돌리고 나서 남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전도마저 성과위주가 되어 비신자를 초청하지 못하면 너무 마음에 부담이 되어서 기신자들을 부탁(?)해데려오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전도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방법론만 무성하게 된 한국교회의 자화상입니다.

 

전도의 본질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마음을 주는 일입니다.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은 복음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섬기는 것이 교회에 데리고 나오려고 하는 것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은 그것을 알아채는 순간 마음을 닫습니다. 아마 이미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사랑을 쏟았던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가도 괜찮습니다. 아직 마음을 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기도하고 섬기며 씨를 심고 있으니 언젠가는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만으로도 벅차다고 하는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대가 없이 사랑해주고 섬겨주며 살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손목사-

 


조회 수 27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꽤 오래 전, 제 기억으로는 2000년도 부활절에 처음으로 방영된 ‘예수’(Jesus)란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인 CBS가 제작한 영화인데 ‘성경에 맞지 않는다’ ‘제작 감독한 사람이 복음주의자가 아니다’ 등등의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그려진 예수님이 가장 실재에 가까운 주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많이 웃으십니다. 30대 청년답게 제자들과 장난도 치십니다. 이 영화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잔치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하객들이 손을 잡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춤을 춥니다. 예수님도 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룟유다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 다음 그의 손을 이끌어 춤추는 무리에 끼어들게 하십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루이스는 마귀를 희화한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마귀의 가장 큰 특징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의 성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남의 약점을 웃어넘기지도 못합니다. 악마에게는 웃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도 기쁨도 없습니다. 이런 악마의 종노릇을 했던 가룟유다가 잔치의 즐거움에 참여할 줄 모른 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모습,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만 연상하면서 그렇게 고뇌에 찬 예수님의 모습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심각한 사람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재미없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까다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편하게 해주시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행복한 분은 예수님이셨고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우리 행복한교회 가족들은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은 행복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즐거운 것이고 쉬운 것입니다. 

 -손목사 생명의 삶 강의 중에서-


조회 수 27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유로운 영혼! 남의 눈치 안보고 어떤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을 보고 그렇게 부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오지만,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삶은 행복은 커녕 자유까지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전적인 말대로 형식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형식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용을 담기 위해선 형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교회에서 마련한 첫 번째 형식은, 특별새벽기도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신 분들은 “왜 이렇게 특새가 자주 있는거야?”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발상으로 전환하면 “내가 자발적으로는 못하니까 이렇게 교회가 준비해주는 특새에 5일만이라도 참석한다면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될까!”, 이렇게 감사의 제목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 특새에는 이런 감사의 내용이 담겨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교회에서 마련한 두 번째 형식은, 고난주간 한끼 금식입니다.

언젠가 전교인 금식을 선포하면서 “아침은 안쳐줍니다~~”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아침식사를 안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한 권사님이 “목사님, 저는 아침금식으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침금식이 제일 힘들거든요..” 특별히 모닝커피가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기 힘든 분들에게는 아침 금식은 엄청난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하루 세 끼 중에서 가장 수월한 때가 아니라 가장 힘든 때를 택하여 금식하면서, 밥을 먹는 그 시간에 꼭 기도를 하든지 성경을 읽든지 하셔서 굼식(^^)이 아니라 진정한 금식이 되도록 한다면 형식에 내용을 담는 유익함이 있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마련한 세 번째 형식은 수난일(금) 저녁에 있는 성찬예배입니다.

주일예배 시간에 하는 성찬식은 많이 경험해 보셨겠지만 평일 저녁에 교회에 나와서 갖는 성찬식은 처음이실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 주님의 십자가로 한 영적 가족 된 형제자매들이 함께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은 더없이 감격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교회에서 준비한 이 세 가지 형식에 좋은 내용들을 담아보셔서 의미있는 고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261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 교회는 2008년에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5년 동안 가정교회를 경험하고 서울 동암교회로 부임하고서 저는 가정교회의 ‘가’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성도님들과 친해지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동암교회는 그 몇 년전부터 셀교회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장이나 목자라는 용어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교회에서 모이거나 한달에 한두번 정도 모이거나 남성과 여성이 따로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목장은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그 목장의 목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한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울고 웃으며 1년을 보냈습니다. 그때 목자님이 지금은 장로님이 되어 계시는데, 그때를 돌아보며 “설교를 직접 하신 분 앞에서 설교요약을 하려니 엄~청 부담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그때의 목장 식구들은 지금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해 합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이듬해 봄, 목자님 가정과 한 목원 가정이 서울다운교회에서 열리는 평신도 세미나에 다녀오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목사님들의 빛보다 빠른 광클 덕분에 무사히 등록을 했습니다. 네 분이 세미나를 가 있는 동안 저는 아침금식을 했습니다. “하나님, 네 분이 지금 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네 분 모두가 하나님이 그토록 소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고 배우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 주일예배를 그 교회에서 드리고 네 분은 오후 3시쯤 도착하셨습니다. 목양실에 들어온 네 분은 너무나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아~ 성공했구나~~” 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목자님이 저를 와락 안아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네 분이 돌아가면서 저를 안아주신 후 목자님이 대표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 좋은 것을 왜 그동안 말씀을 안하셨어요? 다음 주부터라도 당장 해 주세요...” 

 평신도 세미나의 파워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목사가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보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그때 처음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평세를 다녀오지 않으신 성도님들께 정말 강추합니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이미 알고 계시다면, 이것을 가장 잘 보고 배울 수 있는 현장에 꼭 한번 다녀와 주시기를 권면드립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6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월 첫째 토요일에 시작한 새가족반이 어제 마쳤습니다.

사실 새가족반이라는 것은 어느 교회에나 있습니다. 주로 새가족 담당 부교역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마다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을 3주 정도 가르치고 마지막 주는 그 교회에 다니려면 알아두어야 할 기본사항들을 알려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가족반을 교회를 등록한 분들에게 필수로 권하다보니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믿고 있는데 어떤 사정으로 교회를 옮긴 분들에게는 그 내용이 살짝 따분한(?) 것이 되어서 내가 굳이 새가족반을 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여섯 분과 해본 새가족반은 저에게조차 신선한 새가족반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인생의 단면을 알게 된 첫 번째 시간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육십 평생을 살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 해보는 것 같다고 하신 분도 있을만큼 한 시간동안 함께 웃고 함께 눈시울을 적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이 새가족들의 인생을 서로 듣는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시간은 오직 저에게만 30분이 주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등록도 하고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실 분들이라면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 이야기(story)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다보니 제 인생 이야기 속에는 자연스럽게 목회비전이 담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두 번째 시간은 우리 교회의 비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세 번째 시간은 행복하게 예수 믿는 전략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목사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라 예수님만이 주인 되시는 교회, 그러나 투철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면 여러분은 우리 교회를 다니면서 행복할 의무밖에 없다고 좀 멋진(?) 말씀도 드렸습니다. 저도, 그리고 제가 착각하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3주 동안 함께 하신 여섯 분도 정말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새가족반이라면 새가족이 없는 달에는 이미 한 가족 된 성도님들과 해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산다고 다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니기에^^  

-손목사-


조회 수 269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 세 축”은 주일연합예배, 삶공부, 목장모임입니다. 이 세 축이 잘 돌아가야 신앙생활이 행복한 이유는 이 세 가지는 인간의 지정의(知情意)를 터치해주기 때문입니다. 삶공부를 통해 우리의 지적인 면이, 목장모임을 통해 정적인 면이, 주일연합예배를 통해  의지적인 면이 터치되면서 우리의 전 인격에 복음이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공예배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예배들에서도 지정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의 공예배하면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가 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예배만 잘 참석하면 우리의 지정의가 충족되면서 믿음도 자라고 신앙생활의 체계도 잘 잡히게 됩니다.

 

우선 새벽예배를 다니면 지적인 부분의 요구를 충족받으실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은 대부분 성경에 대해서 좀더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새벽예배 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큐티집인 <매일성경>의 순서에 따라 설교합니다. 10분 정도 되는 짧은 설교지만, 준비하는데 시간은 꽤 걸립니다. 하지만 저도 공부하며 준비하기에 제게도 참 유익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물론 새벽기도는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개인 기도를 하는 시간이지만(그래서 새벽기도는 절대 5시45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성경66권을 공부해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새벽기도에 나오시면 기도도 하실 뿐만 아니라 어부지리로 성경도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는 수요예배입니다. 수요예배가 다른 예배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찬양과 합심기도가 많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라는 말씀은 아는데 우리는 잘 부르짖지 않습니다. 아니 부르짖고 싶어도 환경이 여의치 않습니다. 새벽예배 후에는 조용히 기도하는 분들이 많으니 부르짖기가 힘듭니다. 그럴 때 수요예배에 나오면 부르짖을 환경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마음껏 찬양도 부르며 기도할 때 우리의 정적인 면을 성령께서 만져주시면서 나의 영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수요예배를 참 사랑합니다.

셋째는 자주 말씀드리는 주일예배입니다. 주일예배에서도 말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각 순서를 통해 감동과 은혜를 받을 수 있지만, 주일예배는 무엇보다 작은 것 한가지라도 결단하여서 바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세상의 삶에서 승리하기를 의지적으로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바라기는 이 세 가지의 공예배를 사랑하시고 많이 이용하셔서 여러분의 신앙이 균형있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프리카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양철 지붕의 예배당,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예배시간은 오후 2시30분, 전기가 나갈 때가 다반사였지요. 너무 덥기 때문에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오는 교인들이 있어도 뭐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명절에 대사관에서 교민들을 위로하느라고 쉐라톤 호텔로 식사초청을 했습니다. 때로는 대사관저로 초청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교인들도 교민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과 저도 당연히 갔었지요. 그런데 호텔 입구에서 만난 모 성도님을 저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더운 날의 점심 때 아래위 말끔한 양복에 와이셔츠 윗단추까지 여미고 넥타이를 맨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와우~ 성도님! 진짜 멋지세요! 근데 평소에 안 입던 옷이라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 성도님 말씀하기를 “목사님..그래도 할 수 없죠. 대사님이 별 다섯 개짜리 호텔로 초대하셨는데,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올 순 없잖아요!” 웃으며 함께 호텔로 들어갔지만 제 마음 속에는 그분이 한 그 말씀이 일주일 내내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대사보다 못하신 분인가? 우리 교회가 쉐라톤 호텔보다 못한 곳인가?” 이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새벽에 레위기를 성도님들과 함께 묵상해나가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참 많이 느낍니다. “제단불을 꺼지지 않게 하라”말씀하시면서 어떻게든 나와 좀더 많이, 좀더 깊게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렇게 나를 너무 좋아해주시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질 때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레위기가 한절 한절 오히려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너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이유로 너무 하나님을 가볍게 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현장은 바로 우리의 예배 현장입니다.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인데 우리는 내 편의상 주일을 지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약속 시간은 5분만 늦어도 화를 내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은 그리 죄송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약속 시간에 맞춰서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기도 합니다. 찬양하는 시간은 예배가 아닌 듯 설교 시간에 맞춰서 교회에 오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예배는 음향, 영상, 찬양, 설교의 수준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예배자의 삶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248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정교회가 좋은 것은 전도의 분업화입니다. 목장식구들은 VIP를 목장에 데려오면 됩니다. 목자목녀는 목장에 온 그분을 예수영접모임과 생명의 삶에 데려오면 됩니다. 담임목사는 이 시간을 통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면 됩니다. 이제 다음 주일이면 삶공부가 개강되어 주일사역과 함께 제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시작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아직은 삶공부를 강의할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생명의 삶만 개강하지만, 앞으로 여러분과 다양한 가정교회 삶공부들을 할 날을 꿈꾸어 보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언젠가 생명의 삶을 하는데 반원 중에 생명의 삶을 3번째 수강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유인즉, 처음은 출석미달로 수료를 못하셨고, 두 번째는 영광의 수료를 하셨고, 이번 세 번째는 자신이 들어보니 너무 좋은 생명의 삶을 최근에 등록한 남편도 듣게 하려고 같이 신청하여서 또 들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집사님! 제가 집사님 앞에서 강의하기가 좀 그러네요. 다 들은 말씀이실 거니까요...집사님, 이번 기수에는 대충대충 하세요.” 그랬더니 집사님께서는 “아니예요~ 목사님! 들을수록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무슨 말씀 하시는 줄 몰랐구요. 두 번째 들으니까 좀 감이 왔구요. 이번에 들으니까 이제 내 삶에 적용이 되더라구요.” 정말 진리같은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삶공부는 흡수율입니다. 우리는 성경공부 한 번 하면 다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번 수료한 삶공부를 다시 들으려고 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흡수율이 다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 들으면 보통 30-40%정도 흡수합니다. 같은 것을 또 다시 들을 때는 당연히 흡수율이 달라집니다. 생명의 삶은 너무나 좋고 수준이 높은 성경공부인데, 이것이 삶공부 1단계 기초과정이라는 것 때문에 시시한(?) 과정인 줄 아는 분들이 있고, 이것이 등록 성도들의 필수과정이라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과정인 줄 알고 기대 없이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들으셨다면 들었다고 하기가 민망할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들었던 삶공부라 할지라도 반복적으로 듣는 것은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흡수율이 달라지면서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말씀의 맛을 느끼게 되실 것입니다. 이번 기회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26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행복한교회 부사역자 7년 차가 접어들었을 때 저는 이제는 다른 사역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해가 38살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44살 때였습니다. 그때는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한 지 5년째가 되어서 정말 너무 사역이 재밌었습니다. 각 목장에 미니홈피(아! 옛날이여~~)들엔 댓글들이 넘쳐났었습니다. 그러나 괜히 행복한교회 부교역자로서 최장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 은근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성도님들도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사역을 끝내고서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 저 개척을 준비해보고 싶어요~~”

 

사실 저는 소위 말하는 개척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가 그런 결심을 한 것은, 개척보다 더 못하겠는 것이 새로운 교회에 청빙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면서 내 PR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MBTI로는 I이고, DISC로는 S, 그것도 High S입니다. 기질도 그런데다가, 이력서를 쓰려니 쓸 것도 변변찮았습니다. 그래서 개척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개척교회 하시는 목사님들께 죄송스런 생각이었습니다. 개척은 아무나 하나~~~ 그렇게 미래를 구상해보면서 당시 개발을 시작하던 세종시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세종은 상가도 제대로 들어서지 않았을 때입니다. 개척을 하려면 그래도 상가의 조그만 공간은 얻어야 하기에 부동산에 들어가서 자리가 나면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있는데 서울의 아는 집사님을 통해 동암교회에서 후임목사를 뽑고 있는데 이력서를 한번 내보라고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 연락을 받고서 저는 한번에 거절을 했습니다. 싸나이가 한번 (개척의) 칼을 뽑았으면 끝까지 해야지~하는 전혀 S 답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요청이 왔을 때는 제 정신이 들어서(^^) 청빙에 응했고, 그렇게 해서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모든 것이 결정되어 행복한교회를 떠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떠났던 교회를 다시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제가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는”(시37:23) 주님이 저의 인생도, 여러분들의 인생도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서 지척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려야 하는 오늘, 잠시 멈추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전부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되면서 감사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29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축복을 한문으로는 ‘祝福’ 이렇게 씁니다. 빌 축에, 복 복입니다. 말 그대로 “복을 빌다”는 뜻입니다. 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 “하나님! 아무개에게 복을 내려주세요”라고 비는 것이 축복입니다. 즉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무개를 축복하여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어법상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 “이 사람에게 복을 주세요”라고 빌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노회에서도 바른 기독교 용어를 사용해달라고 하면서 공문이 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하나님! 축복해 주세요”라는 것입니다. 너무 우리 입에 붙은 말이라서 고치기가 쉽지는 않은데, 되도록이면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아무개에게 복을 달라고 누군가에게 복을 빌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분해드리면,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축복합니다”라는 말은 “나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기 원하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도록 빌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니까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무개를 축복해 주시옵소서”는 틀린 말입니다. 굳이 맞는 말을 골라보면 하나님은 강복(降福)하시는 것입니다.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축복해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 복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맞습니다.

 

토요일에 우리는 <부모와 함께 하는 자녀축복기도회>를 할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 이 자녀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부탁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녀에게 복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남부럽지 않은 써포트를 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 자녀의 인생에 복을 줄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복은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말과 기도를 받고 자란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의 인생은 큰 차이가 납니다. 자녀는 부모가 하는 말의 열매를 먹고 자랍니다. 부모가 습관적으로 하는 잔소리나 원망의 말을 듣는 아이는 그 혀의 열매를 먹고 거칠게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토요일 새벽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축복기도를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행사’로 보이지 않도록 이번 한 주간 자녀들을 마음껏 축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제부터 우리들의 가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축복하는 말들이 강물처럼 흘러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말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손목사-

 


조회 수 24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성경적인 사역분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교회에서는 “전도의 분업화”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즉 목원들은 목장에 VIP들을 데려오고, 목자목녀는 이분들을 예수영접모임이나 생명의 삶에 참석시키고, 담임목사는 이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세례받게 하는 것! 전도하는 것부터 세례받게 하는 것까지 혼자서 다 하려면 힘든데 이렇게 목장의 공동 VIP를 정하고 목원들부터 담임목사까지 함께 노력하면 영혼구원의 열매가 더 잘 맺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지난 1월에 주님께서 9명의 새가족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신 분들도 계시고, 이미 신앙을 가지고 계시지만 여러 사정으로 우리 교회를 다니려고 선택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어떠하든지 간에 새로운 공동체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교회라는 곳을 처음 나오신 분들은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다 생소한 것들일테고, 설교도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잘 안 들어올 것입니다. 기신자이신 분들 역시 그동안 다녔던 교회의 예배 분위기와 당연히 다를 것이니 아직은 낯설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예배에 참석하다보면 조금씩 이 교회가 좋아지고, 나도 이 교회의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 등록은 그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다음 달부터 새가족반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1)방문자들 중에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매달 첫째 주간부터 3주 동안 있는 새가족반 모임에 참석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방문카드에 표시해주시면 됩니다. (2)새가족반은 매달 첫주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둘째 주일부터의 방문자들께서는 그 다음 달 새가족반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3)3주를 마치고 매달 네 번째 주간에는 예수영접모임이 있는데, 목장을 통해서 오는 VIP들은 이 시간이 선택사항이고, 기신자들은 필수사항입니다. 기신자들은 예수영접 모임 이후에 목장을 선택하여 목장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 등록카드를 작성하시게 됩니다. 기신자 등록을 조금 엄격하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는 기신자들의 수평이동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좀 교만한(?) 생각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정교회를 하면서도 원하시는 분들의 등록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는데, 가정교회의 근간인 목장에 소속되지 않는 분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가정교회의 동력이 약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3월부터 새가족반을 운영하려고 하니 이 시간이 행복한교회 새가족 되시려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목사

 


조회 수 25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도에는 이상한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믿지 않은 분들이 흔히 말하는 “우연처럼” 좋은 일이 많이 생깁니다.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도 좋아집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VIP를 놓고 기도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의 필요가 보여서 섬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도 주시는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같은 원리로 교회를 사랑하기 원한다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지만, 주님은 담임목사라는 리더를 통해서 그 교회를 이끌어 가시니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부족한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이같은 취지에서 “교회와 담임목사를 위해서 하는 중보기도”를 성도님들께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 없이는 목회자가 그 사역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교회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기도는 해 준다고 했으면 꼭 해야 하는 거니까, 막연히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이 아니라 153 기도에 함께 하실 마음이 있는 분들을 모집하려고 합니다. “하루에 53초씩”(물론 53초가 안될 수도 넘을 수도 있지만^^) 기도하자는 의미로 153 기도라고 이름을 붙였고, 기도할 때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주시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손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어 순종케 하시고 행복한교회가 목장을 통해서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53이라는 숫자가 베드로가 경험한 만선(滿船)의 축복이었듯이, 이 기도를 통해 제가 먼저 복을 받으며 목회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지원을 받는 목사만큼 행복한 목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 자신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행복한교회가 더욱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손목사-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