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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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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서 영적 인격과 영성이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의 손길로 다듬어져 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은 것이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입니다.

영성을 허무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치면서 영성은 회복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가 많을수록 내면은 변화되고 그러면서 영성이 세워지게 됩니다.

 

영성은 오랜 시간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으로 인해 세워지게 됩니다.

분주한 삶 속에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머물면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사는 대신에 그것을 대체하는 편하고 쉬운 길을 찾기도 합니다.

영성을 매일의 삶이 아닌 특별한 시간으로 대체하려고도 합니다.

집회나 수련회와 같은 시간으로 영성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집회나 수련회 같은 시간을 통해서는 영적인 삶의 동기부여나 영적 삶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는 있지만, 영성은 세워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몇 시간이나 며칠간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나 수련회를 통해서 아무리 도전과 은혜를 입어도 말씀을 붙잡고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없으면 영성은 세워지지 않게 됩니다.

영성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머물면서 살아가는 삶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없이 일 년에 몇 차례의 특별한 모임이나 시간을 통해서 영성을 세우고자 하는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대가를 지급하면서 하나님 앞에 머물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헌신하면서 자신과의 영적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삶을 풍성하고 강하게 해주는 길입니다. 영적인 삶은 모방이 안됩니다.

영성은 삶을 살아내야 하고 삶을 살면서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영성은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지식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삶을 살아가면서 세워집니다.

영성은 삶을 살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세워지지 않습니다.

영성을 세우는 특별한 방법이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영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영성은 매일 하나님 앞에서 말씀과 기도로 꾸준히 영적 씨름을 하면서 살아갈 때 조금씩 조금씩 세워지게 됩니다...

 


2023.06.23 22:31

헌신 초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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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은 하나님이 내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그리고 우리 행복한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고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반응하여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설교말씀을 들을 때 은혜를 받기도 했고 속으로 결단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도 잠시 뿐, 예배는 그 작은 감동을 마음 속에서 다시 한번 되뇌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주차장으로, 집으로, 교회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내 마음 속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 밭 비유에서 길가와 같은 마음밭처럼, 말씀이라는 씨가 떨어지긴 했는데 곧바로 새(마귀)가 와서 먹어버려서 씨가 뿌려진 것조차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말씀드린대로 주일예배 시간은 은혜받는 시간이라기보다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들은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공개적일수록 결심한 것을 실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여러분이 헌신하실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평소에 고민했던 내용인데 오늘 말씀으로 어떤 결심을 하게 하셨을 때 *현재 풀어야 할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그 때가 다가올 때

*다시 한번 영적으로 새로워지고 헌신하고 싶을 때 *이 교회에 등록하기를 원할 때

*세례받기를 원할 때

*예수영접모임에 참여해보길 원할 때

*목사님께 특별한 기도제목을 부탁하고 싶을 때

*오늘 주신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할 때

*병중에 있거나 자신의 삶에 특별한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이 결심이 지속되도록 부탁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인도를 받고 싶을 때 등등입니다.

 

예배 중에 이런 마음이 들면 주저하지 마시고 마지막 결단찬송을 부르실 때 3열과 4열 맨 앞자리로 나오셔서 헌신카드를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축도 후에 바로 기도해드리고, 그 카드를 가지고서 한주간 동안 기도해드립니다.

 

예배 후에 제가 인사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실 그때 인사가 그저 눈 인사 정도(눈길조차도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이니까 헌신기도와 배웅인사 중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택한 것이니 제 생각에 동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래도록 제 마음에 소원했던 이 헌신초청 시간을 이번 부흥회를 통해서 이루게 되어서 제게는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반응하고 응답하며 주일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거룩한 몸부림이 습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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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해 준 다음 ‘시작’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각자 뛰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가서 그것을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인류학자는 의아해하면서 아이들에게 “먼저 뛰어가면 그 사람이 혼자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분트”(UBUNTU)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분트!” 반투족 말로 “네가 여기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전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자주 강조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분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것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것만큼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행복한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이미 이것을 경험하고 계신데 곧 목장입니다. “우분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가족”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가도 목장식구가 되는 것이 등록의 조건임을 알고 “그냥 교회만 다니면 안되나요? 목장을 꼭 선택해야 하나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하던 초창기 때도 이런 질문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성도님, 적지 않은 세월 교회를 다니셨는데 성도님이 정말 가족처럼 느끼시는 분들을 몇 분 정도 알고 계신가요? 나에 ‘관해서’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알고 나를 보고서 ‘우분트’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분이나 성도님 곁에 계신가요? 지금 신앙생활이 정말 행복하신가요?”

 

물론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가족’하면 여러분들 마음에 생각나는 단어가 있으실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도 있겠지만 반대로 ‘갈등’이라는 단어도 있을 것입니다. 즉 진짜 가족이라면 행복만 있지 않고 갈등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갈등이 두려워서 가족을 떠나서 “나는 혼자 살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행복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길은 곧 ‘우분트’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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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제목은 언젠가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한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였습니다.

너무 멋진 말인 것 같아 차가 신호대기에 걸렸을 때 얼른 휴대폰 메모장에다 적어 두었습니다. ‘리즈시절’이란 말은 원래 축구에서 온 말인데, 영국의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가 1998년에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팀에 입단을 했습니다. 그는 그 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고, 그 뒤에 그 팀을 떠나서도 다채로운 경기를 많이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언제나 그를 볼 때마다 아쉬워하곤 했습니다. “리즈시절 때는 이런 기회에선 어김없이 골을 넣었는데......리즈시절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바로 여기서 ‘황금기’ ‘전성기’를 뜻하는 말로 ‘리즈시절’이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과거의 최고 전성기를 추억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과거의 그 영광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나에게 족쇄처럼 작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성기’보다는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언젠가부터 ‘하프타임’이란 강의가 자신이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들어가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에게 그들의 ‘리즈시절’은 ‘과거’입니다. 지금보다 더 건강했을 때, 더 똑똑했을 때, 돈을 더 많이 벌었을 때가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나의 리즈시절’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의 전성기는 ‘나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쓰임받는 시기’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능력있는 시기를 보냈더라도 그 시간이 나와 내 가족들만을 위해 투자된 시간이었다면 여러분의 ‘리즈시절’은 ‘아직’입니다. 성도의 전성기는 나이나 능력같은 세상적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나이가 60 아니 70이라도 지금까지는 나만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이웃을 섬기는 일에 드려지고 쓰임받는 인생을 산다면 여러분의 ‘리즈시절’은 ‘지금’입니다.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인 나를 지으시고 사명을 손에 쥐어 주시며 세상에 보내주신 창조주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사용되며 살아가는 것만이 성도의 ‘리즈시절’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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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목사님께서는 부교역자들에게 여름휴가를 주일을 끼고 주셨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교역자들은 주일이 가장 긴장이 되는 날인데 일년에 한번이라도 다른 교회 가서 편하게(?) 예배드려 보라는 배려이셨고, 또 하나는 목사들은 주일에 다른 교회를 가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타 교회를 한번 방문해보라는 취지셨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해 여름휴가 때 저는 서울 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남포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는 은퇴하신 박영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교회인데, 제가 청년 때 참 많이 은혜를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고 여전히 목사님의 설교는 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성도들은 통로를 걸어나오며 악수하고 인사하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흔들면서 예배 때 받은 은혜를 서로를 향한 축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예배 때 받은 은혜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난 혼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교회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 외‧로‧움 이라는 세 글자가 제 머리 속을 가득 메웠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3층이었는데 1층까지 내려오고, 또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저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멋쩍은 표정관리로 힘들어했던 기억들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영국에서 외로움담당 장관이 생겼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청소년, 장애우, 초보 엄마에 이르기까지 외로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외로움은 질병으로서 매일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에게 목장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편안한 느낌의 가정집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주일 살았던 이야기, 감사와 고민, 더 나아가 서로를 향해 기도로 용기를 주는 이런 모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정말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목장을 뛰어 넘어서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사역팀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 오셔서 집에 가실 때까지 몇 마디의 말을 하시나요? 외로움을 느끼기 싫어서 더 바쁘게 살아가고 계시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각자의 인생 가운데 ‘아남카라’(anamcara:영혼의 친구)를 곁에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답니다. -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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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예배당 한 편에는 가정교회 세 축이라고 되어 있는 로고가 그려진 현수막이 늘 걸려 있습니다. 각각의 동그라미에는 목장모임(가정교회), 삶공부, 주일연합예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세 축이 잘 맞물려 돌아가면서 주님이 소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램을 그렇게 표현해 본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만든 것은 아니고 가정교회를 하는 모든 교회는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방문하신 분들이나 새가족들을 위해서 이 세 축의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가정교회를 목장모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왜 가정교회라고 부르는가? 대답을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라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선교지에 소개할 때 House Church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을 보니 모두 다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였기 때문입니다.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목장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정에서 모입니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냉난방이 잘 되어 있는 편한 예배당 소그룹실과 방바닥에 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는(고층에 사시는 분들은 에어컨이 없이 사시는 경우도 있더라구요ㅎㅎ) 가정집, 이 둘 중에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후자가 훨씬 더 “교회”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십니다. 그래서 밖에서 외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티타임은 가정으로 갑니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는 찬양, 깊은 나눔, 기도 등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삶공부는 성경공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공부가 지식적인 공부로 흐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신앙성숙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공부는 삶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더 되뇌기 위해서 ‘삶공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셋째, 주일연합예배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는 교회의 30개의 목장을 단지 소그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작은 교회로 봅니다. 왜냐하면 작지만 교회가 해야 하는 5가지를(예배, 교육, 교제, 전도, 선교) 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이 주중에 한번씩 다 가정교회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 작은 교회들이 주일에 모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주일예배를 ‘주일(목장)연합예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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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했던 김재정 목사님 초청 가정교회 부흥회! 아직도 저와 성도님들에게는 여운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부흥회 기간 동안 목사님께서 선교관에서 지내셔서 아침식사도 함께 하면서 참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행복한교회는 큐티를 하나요?”라고 물으셔서 당황했습니다. “목사님, 사실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잘하시는 거예요! 너무 많은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 교인들로 하여금 주일설교를 붙들고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또 한번은 “행복한교회는 부흥회를 몇 번이나 했나요?” 물으셔서 “목사님, 저는 서울에서 목회할 때도 10년 동안 딱 두 번 부흥회를 했어요. 그 중에 한번이 목사님이 오신 부흥회구요. 여기 와서도 처음이예요~” 그러자 목사님은 “정말 잘 하신 거네요! 부흥회를 너무 자주 하는 교회는 그것이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 버려요. 제 생각에는 5년에 한번 정도가 좋은 것 같아요!” 제 기를 살려주시려고 일부러 그러신 것인지 모르지만 老목사님의 말씀은 하나 하나가 다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정교회는 일반적인 부흥회를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흥회보다 더 하기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곧 가정교회 평신도 세미나(이하 ‘평세’) 개최입니다. 목사님들은 부흥회 몇 번 하는 것보다 평세 한번 개최하는 것이 교회에 더 큰 유익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평세를 개최할 수 있는 조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목장 참석 인원이 주일 출석 인원의 70% 이상이 되어야 하고 (즉 무늬만 가정교회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년간 세례 받는 사람이 주일 출석 인원의 5%가 되어야 (즉 영혼구원이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켜서 평세를 개최하는 교회들은 2박3일 동안 적게는 20명, 많게는 50명의 ‘천사’(평세에 참석하는 분들을 부르는 호칭)들을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천사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섬김으로 인해 행복하지만, 사실 수지맞는 것은 그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섬김의 행복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대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는 중고등부 가정교회 연합수련회 섬김으로 그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2박3일 동안 100명의 학생과 교사들을 섬기면서 정말 행복했고 기뻤습니다. 수련회를 섬기시는 성도님들을 뵈면서 ‘우리 교회도 빨리 영혼구원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꼭 평세를 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더욱 커졌습니다. 섬김이 행복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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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 싱글초원 수련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감정’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방법 중의 하나 역시 성령님이 주시는 감정에 순종하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삶공부가 시작되는데, 생명의 삶 클라스에서 예수님을 “laughing Christ”, 웃으시는 예수님이라고 설명해드립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늘 심각하신 고뇌의 인간, 혹은 현실은 모르고서 늘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말씀만 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심각한 분이 아니라 재미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너희 선생은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꼬며 말할 정도로 예수님은 잘 웃으시는 분이셨을 것이고, 굉장히 따뜻하고 푸근하신 분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 별명을 잘 지어주신 것만 보아도 예수님은 그렇게 심각한 분은 아니셨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제가 참 좋답니다.(하하^^) 이유를 물었더니 “목사님은 늘 웃어주셔서~”가 그 이유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부터는 더 웃는 얼굴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사전에서 얼굴의 뜻을 찾아보니 ‘얼굴은 인간이 가진 머리의 앞쪽 부분으로서 이마부터 턱까지를 포함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근원적인 의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의 얼(혼)이 들어 있는 굴”이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삶과 하고 있는 생각,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내는 그 사람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략적인 틀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것이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이 그 교회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교회 성도들의 ‘웃는 얼굴’입니다. “이 교회는 참 분위기가 밝네요~”라는 말도 그 교회에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의 환한 모습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님들은 “잘 웃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래 다닐수록 재미없는 사람, 까다로운 사람, 심각한 사람 되지 마시고 예수님처럼 많이 웃으셔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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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정교회를 알게 된 것은 행복한교회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부교역자 생활을 마치고 담임목사로 부임했던 서울의 교회에서도 가정교회를 했습니다. 사실 부임하자마자 바로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선배들로부터 “가정교회 정착의 실패는 서두르는 것”임을 하도 들어서 2년 동안은 생명의 삶만 일주일에 세 반을 개설하면서 토양작업을 하고나서 가정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성도들도 목자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저도 목자지원을 했습니다. 목장은 싱글(청년)목장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연령대만 모이는 공동체가 되어선 안되지만, 그때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5년 미만인, 이젠 싱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의 장년들과 잘 섞이지도 못하는 그런 분들과 함께 목장생활을 하고 싶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결혼한 지체들이 애기를 낳으면서 목원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가정교회는 신약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했던대로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 자녀를 낳고 기르는데 온통 에너지를 쏟고 살아가는 목원들에게 집을 오픈하고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장모임의 장소는 5년 동안 늘 저희 집이었습니다. 아내는 목장모임 때 설거지까지도 목원들이 하려고 하는 것을 극구 말렸습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텐데 이 시간, 목장에서만큼이라도 편하게 있다 가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흥회를 오신 최영기 목사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최목사님은 목원들의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것이 목자가 할 일인데, 믿음은 책임감과 섬김을 훈련할 때 성장한다면서 책임감은 목장모임에 성실히 참여하는 것으로 길러지고, 섬김은 가정을 오픈하면서 길러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목원이 식사준비를 힘들어 하면 목자가 식사를 준비해서 싸들고 그 집에 가더라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니 목자 집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목원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기 위해서 목자는 그런 수고도 하셔야 합니다!” 최목사님의 부흥회 이후로 저희 목장은 금요일이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는 진짜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린자녀들이 있어서, 혹은 맞벌이 부부여서 식사준비가 어려울 때는 시켜먹든지 라면을 먹을지라도(분식데이^^) 그날 목장모임을 통해 내 집이 교회로 쓰이는 기쁨을 뺏기고 싶어하지 않는 목원들이 되었습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것처럼 섬김의 시작은 가정을 오픈하는 것에서부터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 목장생활을 시작하신 새가족들께서도 가정을 오픈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 주간은 참 행복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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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걸어볼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시는 은혜가 넘쳐날 때 그 은혜는 옆 사람을 살리고, 내가 곤고할 때 옆 사람의 은혜가 나를 살리기도 합니다.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게 합심기도를 하면서 공동체성을 느끼게도 되고, 회중들과 부르는 한 줄의 찬송 가사가 내 맘을 요동치게도 만듭니다. 간증에 큰 위로를 얻기도 하고, 찬양대가 정성껏 준비하여 부르는 찬양에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설교를 통해 다시금 나를 위로하시고 도전하시는 주님 앞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결단하고 헌신할 용기를 갖습니다. 그렇게 심령이 촉촉이 적셔지면 예배가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면서 은혜의 여운을 느낍니다. 공동체가 드리는 예배의 장점입니다.

 

예배에 성공하기 위해서 세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예배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기대가 있다는 말은 예배를 드리러 갈 때 들고 갈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일주일 동안 살았던 헌신 된 삶일 수도 있고, 영적 싸움에서 얻은 승리, 혹은 실패와 상처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내어 드리고 싶은 감사의 열매든, 위로받고 해결 받아야 할 간구의 제목이든, 예배를 드리러 올 때 들고 갈 것이 있는 사람은 예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붙들고 살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예배시간에 늦지 말아야 합니다. 허겁지겁 와서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과 10분 전에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늦게 오다가 가끔씩 일찍 오는 사람은 자신이 예배에 일찍 오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 중에 한 번 예배에 일찍 오는 사람은 늦는 사람입니다. 이를 악물고 주일 아침에 준비하고 나오는 시간을 최소한 30분은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배 시작 10분 전에는 적어도 2/3 이상은 예배드리는 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성도님들을 보고 싶습니다.

셋째, 예배순서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 나에게 말씀하실지 모른다는 예민함을 가지고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자신을, 예배순서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 하나도 입술로만이 아니라 가사를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는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앞사람 뒤에 가려(^^) 있으려 하지 말고 설교자를 응시하며 설교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 합니다. 이 한 시간의 집중이 일주일의 삶을 승리로 이끈다면 해 볼 만한 시도 아니겠습니까? 일주일의 승부는 주일예배시간에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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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삶공부가 시작됩니다. 이번 삶공부 참여율은 대단합니다. 생명의 삶이 63명, 새로운 삶이 37명, 기도의 삶이 79명 총 179명이 삶공부에 참여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배워가는 기쁨은 매우 큽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기쁨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성경공부해서 구원얻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봄가을로 사람을 귀찮게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교회를 좀 편하게 다니실 수 있도록 성경공부를 강조하지 말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알아야 하고, 주님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공부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분을 신뢰할 수는 없기에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분들이 성경공부에 부담을 느끼시거나 거부반응을 보이시는 것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말만 많아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자체에 부담을 느끼거나 거부반응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가정교회 삶공부는 지식전달이나 축적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높은 지식수준이 아니라 오직 성실함만이 요구되는 과정입니다.

 

삶공부는 ‘생명의 삶’이 1단계 공부입니다. 행복한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은 이 생명의 삶부터 이수하셔야 합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도 저희 교회에 부임하시면 당연히 들으시는 과목입니다. 생명의 삶은 예수님을 믿어보고자 하는 분에게는 신앙의 기초를 쌓아드리고, 이미 믿으시는 분들에게는 신앙을 체계화시켜 드리는 성경공부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사역이든지 시작하기 전에 생명의 삶을 꼭 들으실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삶에서는 성경을 가르쳐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방향과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삶을 마치신 분은 2단계 공부인 새로운 삶을 수강합니다. 사실 생명의 삶은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교회라고 해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인데 반해서, 새로운 삶은 가정교회에 최적화된 성경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장생활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으시면 좋을 과정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삶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과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팁들을 얻으시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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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칼럼 제목으로도 쓴 것처럼 “가정교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피릿”입니다.

일반교회의 조직적인 시스템에 비하면 가정교회의 세 축은 엉성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세 축’보다는 스피릿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기둥’이 더 중요합니다. 그 네 기둥 중에서 목장에 더욱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둘째 기둥인 “보고 배움으로 제자가 된다”라는 것과 넷째 기둥인 “섬기는 리더십”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한 것은 2008년입니다. 올해로 16년 째입니다. 서울 열린문교회로(지금은 양주로 이사를 갔지만), 구미남교회로 교역자들 모두 가정교회를 배우러 다니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교회를 시작해보려고 애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서 둘째는 업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큰 애는 옆에 두고서 목장모임을 준비하느라 밥을 하시던 한 목녀님 모습 역시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목장모임을 하는 날은 다른 날보다 긴장이 됩니다. 미루던 청소도 해야 하고, 저도 처음 목장을 할 때는 화장실 청소까지 했습니다. 물론 처음 몇 번만이지 그 다음부터는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보여줄 것 다 보여줬기에 하하^^ 그런데 처음에 긴장하는 것은 어른들만이 아니라 목장모임으로 집을 오픈하는 그 가정의 아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장이 끝나고나면 집이 초토화(?)되기 때문인데, 특히 자기 방, 자기 장난감들이 그 대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출범하는 청소년 목장의 목자나 목원들 중에는 제가 방금 한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려지는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청소년 목자들과 만나서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자 해보니 어떤 점이 힘들거나 어렵니?” 만약 제가 장년 목자목녀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다양한 고충들이 답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소년 목자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별로 어려운 점은 없어요. 어릴 적부터 하던 목장이니까 그냥 보고 배운대로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가정교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피릿이라는 것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년목장과 청소년 목장, 물론 보여지는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영혼구원하여 제자 만든다는, 남을 성공시켜주겠다는 그 정신은 같기에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이 하시는 것을 보고 배운 청소년목자나 목원들은 목장생활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커서 싱글(청년)목장의 목자가 되기를, 그리고 결혼해서 장년목장의 목자목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전수가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바로 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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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이 깊은 갱도에 들어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지 아십니까? 곡괭이, 삽, 랜턴, 물, 음식, 무전기, 시계, 성경책, 가족사진 등등. 하지만 그런 중요한 것들과 함께 꼭 챙겨가는 것이 있는데, 카나리아라는 새입니다. 카나리아는 공기에 민감해서 유해가스가 조금이라도 유출되면 죽습니다. 광부들은 열심히 작업하다가 카나리아를 쳐다보는데, 만약 카나리아가 쓰러져 있으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밖으로 뛰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라는 책에서 유진피터슨 목사님은 ‘자녀는 부모의 영적인 카나리아!’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이 영적으로 쓰러지는 이유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기류가 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른들이 아무리 가르쳐도, 따끔하게 혼내도, 좋은 말로 타일러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사회적인 기류를 맑고 밝고 차분하게 조성하기 시작하면, 부모의 영적 카나리아인 아이들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어느 시기가 되면 대체적으로 영적, 지적, 정서적, 관계적으로 안정감을 찾으면서 성장이 멈추는데 자녀를 키우면서 그 자녀 때문에 부모 자신이 성장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자녀는 혼란 속에서 끊임없이 부모의 성장을 자극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도록 합니다. 부모는 자신의 무력감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부모의 눈에는 장래가 심히 걱정되는 자녀지만, 그 자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며 내가 사랑하는 자녀를 나보다 더 성실히 돌보시고 성장하도록 이끄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모는 자녀 때문에 성장하게 됩니다. 사춘기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요새는 자녀들의 사춘기가 빨리 온다지만, 어쨌든 아이의 사춘기 때 가정이 힘든 이유는 두 개의 태풍이 가정에 휘몰아치기 때문인데, 곧 사춘기 못지않은 태풍인 부모의 갱년기가 그것입니다. 청소년 목장을 출범하면서 지난 주간은 부모님들을 위해서 더 많은 기도를 드린 것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자녀와 함께 성장하십시오. 기도와 말씀 안에서, 그리고 나를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신 하나님의 인내를 나도 흉내내보면서.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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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에는 추석명절이 있습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분들도 제사라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제대로(?) 제사를 드리려면 명절 제사 말고도 일년에 최소한 열 차례 이상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요새는 그런 제사들을 한데 모아서 한번에 드리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자기 가족 이외에는 친척들간의 왕래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예비부부의 삶에서 제가 내주는 과제 중에 서로의 가계도를 그려서 예비 배우자에게 설명해주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은 당사자들만의 연합이 아니라 양쪽 가문과의 연합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최소한 알아야 할 것들을 서로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숙제를 하면서 한 커플도 예외없이 공통적인 것이 있는데 “어느어느 친척과는 너무 사이가 좋은데, 어느 친척과는 관계가 좋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결국 상처 때문입니다.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받은 상처도 더 많고 더 깊습니다. 그러니 한번 틀어진 관계의 개선이 쉽지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척 전도,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힘들다, 안된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그래도 명절은 친척들이 함께 모이는 기회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척들은 내가 천국갈 때까지 계속 볼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성급하게 전도하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때를 만들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다 외로움에 힘들어 합니다.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참 외롭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도 TV 앞에 모여있거나, 각자의 핸드폰에 빠져 있는 그림은 이 시대에 그리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느 한 친척(명절 전에 한 사람을 정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에게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불편한 이야기나 주제들은 언급하지 않고 그냥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나올 것이고 그럴 때 그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기회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명절은 돌아와서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갔더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나누는 신나는 목장모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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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로 행복한교회를 섬길 때 제가 장년교구와 맡은 부서는 청년부였습니다. 2012년 12월 서울의 목회지로 떠날 때 청년들이 그동안 추억들을 찾아서 만들어 준 사진 앨범은 여전히 저의 보물 상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역지를 옮기며 헤어지다보니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이 휴대폰에 어느 청년의 이름이 뜨면 십중팔구 결혼한다는 전화입니다. 하하^^ 처음에는 어색해서 말을 못 꺼내는데, 그래서 제가 먼저 “결혼하는구나?”라고 물어봐주면 그제서야 “목사님, 한번 찾아뵈어도 될까요?”라고 말합니다. 서울 사역 초기에는 어떻게든 결혼식이 있으면 대전에 내려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주일 4부예배 시간에 저는 적잖이 당황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내용 중에 “예수 잘 믿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신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등등 이미 결혼을 하신 장년들을 염두에 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부에는 주로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살짝 잊고서 설교원고를 수정하지 않고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잘 믿는 배우자를 만나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라는 쪽으로 수정해서 말하면 간단한 것이었긴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기를 원치 않으셨는지 원고에 없는 말은 잘 못하는 저에게 제가 생각하기에도 강한 말들을 부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청년들에게 했습니다.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예수를 잘 믿는 형제와 결혼하세요! 예수를 잘 믿는 자매와 결혼하세요! 이것만큼은 양보하지 마세요. 이것만큼은 타협하지 마세요! 조금 늦어지더라도 조급하거나 초조해하지 마시고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를 부탁합니다!!”

 

명절에 뉴스를 보니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유야 다양하지만, 청년들은 친척들을 만나면 듣게 되는 취업, 결혼의 문제가 부담스럽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싱글목장 목원들과 그 부모님들이 “결혼이란, 외적인 모습에 끌려서(창6:2)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공유하는 남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연합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분명한 성경의 원리와 말씀을 붙들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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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칼럼을 쓰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끼리끼리 놉시다!” 우리가 지난 주간에 친척들과 추석 명절을 보냈지만 사실 그 어떤 친척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그에 반해 목장식구들과의 관계는 거의 가족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분은 “아휴~~ 우리 교회는 여길 가도 목장식구, 저길 가도 목장식구, 자기들만 끼리끼리 노는 것, 그게 문제야!”라고 불평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여러 사람들을 두루두루 피상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스천의 진정한 교제가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안보면 그 사람이 보고 싶고, 그러다가 만나니 너무 반가워서 소식이나 기도제목을 물어보고, 일주일 후에 만나면 일주일 동안에 그 문제 가지고 나도 기도했는데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이런 깊은 관계가 있는 교제가 진정한 성도의 교제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우리 인생이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습니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없습니다. 국회의원처럼 많은 사람들을 사귀면서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영적으로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눌 시간은 더 없습니다. 그러니 목장식구들끼리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질이 외향적이라서 나는 목장식구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신 분들은 연합교회에서 제공하는 삶공부나 교회의 여러 사역팀이나 또는 행사에 동참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지난 봄에 했던 쉴만한물가라든지 이번 21일에 할 목장연합 가을운동회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이런 행사들은 몸을 움직이면서 함께 땀을 흘려보는 시간이기 때문에 목장을 뛰어 넘어서 좋은 분들과 사귈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에 평소에 관계를 갖고 있는 VIP들을 초대해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는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합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영혼구원하여 제자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행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이미 믿는 분들이 더 행복하게 예수를 믿게 되는 일에 우리 교회의 인력과 노력과 물질이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 행복한교회 with VIPs 목장연합 가을운동회도 이같은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일에 아릅답게 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끼리끼리 그리고 두루두루!!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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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책으로 읽으신 분들도 있으실텐데, 저도 기회가 되면 책으로도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인데 장 도미니크 보비라고 불리는 기자였습니다. 그 동안의 기자 경력으로 마침내 여성잡지 <엘르>지 프랑스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쓰러져 20일 동안 혼수상태 끝에 깨어났지만 정확한 병을 알기 위해 또 몇 주의 시간이 걸립니다. 결과는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의식도 있고 인지능력도 있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물론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쪽 눈도 염증이 점점 심해져 봉해버렸는데 나머지 눈만은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치료를 돕기 위해서 온 언어치료사인 앙리에트는 특별히 고안된(빈도수가 높은 철자부터 순서대로 배열) 프랑스어 알파벳판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내가 읽을테니 당신은 말할 단어를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그 알파벳을 읽을 때 눈을 한번 깜빡이세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거부했지만, 어느 날 보비는 그렇게 눈을 깜빡이면서 “당신은 친절합니다. 고마워요”라고 문장을 만들어 마음을 전합니다. 그가 죽고 난 뒤(보비는 책이 출판된 후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책을 바탕으로 사후 10년 만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보비는 언어치료사에게 마음을 연 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왼쪽 눈 말고 멀쩡한 것이 두 가지나 더 있구나. 내 상상력과 기억들!” 그러면서 책을 써보기로 결심합니다.

 

아직 어린 아들이 보비의 흐르는 침을 닦아줄 때 영화는 그의 생각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아직도 내가 해 줄 것이 많은 이 아들이 내 침을 닦아주다니...그러나 애들을 만난다는 게 어딘가? 그래서 오늘은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찬양가사처럼 호흡마저도 주의 것이라서 우리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잃고 나서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도 귀하겠지만, 지금 내게 있는 것,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당연함이 아니라 감사제목으로” 고백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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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정말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어린아이들서부터 어르신들까지 240명 정도가 모처럼 운동회를 했습니다. 금요일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걱정했었는데, 어제는 정말 맑은 가을하늘 아래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VIP 지인들도 오셨는데, 그 VIP 중에 제가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던 분들은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으시는 남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너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감사했습니다. 어제 저는 그분들의 자녀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엄마랑만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어제 하루는 아빠랑 같이 교회 행사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참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행복한 이유는 오늘 예배 중에 있는 세례식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님들과 대화할 때 제일 궁금한 것이 어떻게 예수 믿게 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신 분들이 아니라면 성인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된다는 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게 되는 박준오, 이근용, 하연경 성도님 세 분도 이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 자신의 삶에 일어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이제껏 나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깨달으며 오늘의 자리에 서게 되신 줄로 믿습니다.

 

세 분을 알게 된 것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인 것 같은데, 참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분이 1년 전, 저를 처음 만난 날 제게 했던 질문을 저는 아직까지 기억합니다. “목사님, 저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이 지금은 목장에서 감사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삶공부를 하면서 교회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고백을 하셨을 때, 탐방 갔던 그날 제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온 그 순간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세례받게 되신 분 중에 또 한 분은 우리 교회에서 지난 5월에 한 ‘쉴만한 물가’에 오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도 운동회를 하면서 “하나님, 지난 봄처럼 이번에 오신 분들 중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분이 있겠죠?”라고 물었답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 만드는 일에 한 방향을 바라봐 주시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면류관이요 목사의 자랑입니다.(살전2:19-20).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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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06주년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개혁자 루터가 외친 슬로건 중에 하나가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에 성도들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에서 내려오는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성경 자체도 모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전문 신학교육을 받은 사제들이 해석을 해주는 것에 의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이라는 말은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자”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500여 년이 흐른 지금, 성도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읽습니다. 굳이 신학교를 가지 않아도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계에서는 소위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평신도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자!”였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평신도의 손에 사역을 돌려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일은 온전하게 된 성도들이 하는 일”(엡4:12)이라고 되어 있는데, 500년 전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에도 이 모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여전히 목회자들이 독점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의 세번째 기둥인 “목회자와 평신도의 성경적 사역분담”은 오늘날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제2의 종교개혁의 중요한 실천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컨퍼런스로 인해서 교역자들이 교회에 없었습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등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부목사님 중에 한분이 교회에 남아 있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역자들이 한 스피릿을 가지기 원했고, 또 하나! 이런 기회에 우리 목자님들이 훈련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일 동안 장로님들께서 새벽기도 설교와 수요기도회 인도를 너무 잘 섬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가정교회를 너무 잘 하는 순천강남중앙교회는 50명의 삶공부 평신도 강사가 있다고 합니다. 삶공부는 너무 다양한데 이것을 교역자들이 다 커버할 수가 없고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기에 가르치는 것에 조금이라도 은사가 있으신 성도들은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도록 모든 삶공부의 표준 강의안을 만드는 작업을 지난 몇 년 동안에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앞서가는 가정교회구나~~’ 부러운 생각과 함께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게 되어 참 감사했습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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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삶공부 중에 하나인 <기도의 삶>을 만드신 일본 가와사끼 초대교회의 조남수 목사님께 강의를 들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하루가 다르게 부흥하는 교회를 너무나 재밌게 목회하는 나에게 일본 선교사로 나가라는 말은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치고 선교사의 자녀가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를 꼭 일요일에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당연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말이 서툰 아들이 그래도 잘 하는 것이 달리기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달리기 1등을 해도 박수쳐주는 아빠 엄마가 오지 못하는 운동회는 아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을 붙잡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아들아!! 이번 운동회도 일요일에 하지? 우리 이번 일요일에는 비가 오도록 기도해보자! 조금도 아니고 운동회를 도저히 할 수 없도록 그 전날부터 비가 오도록 기도해보자!! 저는 아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된 것처럼!! 여러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비가 안왔다면 제가 이런 간증도 하지 않겠죠? 운동회 전날부터 비가 왔고 결국 그 해 운동회는 며칠 연기되어 그 주간 평일에 하게 되었습니다. 평일에 하니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직장을 가야 하는 친구들 아빠는 못오고, 평일에 그래도 시간을 낼 수 있는 저는 아내와 함께, 친구 선교사님들까지 동원해서 아들을 응원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지금 도쿄에서 일본인들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들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일본 성도들이 “아~~우리 목사님 아버지신가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했다는 그 아버지 목사님이신가요?” 하더라구요. 아들이 그 어릴 때 기도응답 경험이 얼마나 컸던지 목회하면서 성도들한테 자주도 말했나봅니다ㅎㅎ”

 

지난 화요일, 주간 일기예보를 보면서 에고~~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금요일 포에버 행사, 토요일 유아부 행사가 연이어 있는데, 목요일까지 날씨가 좋다가 금요일부터 우산 표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중보기도팀에 긴급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날씨 가지고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은미 사모님이 저에게 ‘날씨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제가 어디 가기만 하면 비가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요일에는 급했습니다. 분명 우리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만큼이나 누군가는 간절히 비가 오기를 기도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 어르신들 1년에 한번 모처럼 나들이를 가는 것이고, 또 유아부는 더더군나나 전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니, 비구름이 물러가게 하여 주세요. 지구의 자전과 공전까지도 잠깐 멈추셨으니 어려운 일 아니시죠?” 하나님은 금요일, 토요일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참 재밌습니다. 신앙생활은 참 행복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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