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목장
> 연합목장 > 목회칼럼
목회칼럼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저자 빌 하이벨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교회 중 하나인 윌로우크릭 교회의 담임 목사다. 1970년대 초 파크 리지에서 열린 청소년 사역을 기점으로 1975년 10월 12일 팔라타인 시에 있는 대형 영화관을 임대하여 시작한 이 교회는 미국 굴지의 교회로 성장했다.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혁신적인 목회자로 널리 존경받는 저자는 미국 전역에서 교회 성장뿐 아니라 리더십, 목회에 관한 세미나를 주도하는 강연가이자 뛰어난 저술가이기도 하다. 특히 시카고 교회의 불신자 전도 사역을 이끄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구도자 중심 예배는 전 세계의 많은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저서로는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빌 하이벨스의 인생 경영』, 『리더십 용기』 등 다수가 있다. 

*역자 박영민 
총신대학교 영어교육과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외대 통역대학원 부설 통역 번역 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역서로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 『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 등이 있다. 

*Short Summary 
나를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이 가득하거나 주목 받고 있는 자리에서는 최대한 고상하고 멋지고 훌륭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게 마련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않는 가까운 관계,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는 일상에서는 우리 성품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인격을 갖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 ― 용기, 자기 통제력, 비전, 인내, 사랑 ―과 그 가치를 저자 특유의 명쾌한 문장과 생생한 예화, 재치 있는 유머로 풀어내고 있다. 초신자나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성과 인격에 관한 기본서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양서가 될 것이다. 

*차례 
여는 글 인격 ― 위기에 처한 자질들을 보존하는 것 
1장 용기 ―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2장 자기 통제력 ― 즐거움을 유보하고 성공을 달성하는 것 
3장 비전 ― 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 
4장 인내 ―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 
5장 온유한 사랑 ― 남의 처지에 서 보는 것 
6장 엄한 사랑 ― 친밀한 관계에서 진리를 지켜 나가는 것 
7장 희생적인 사랑 ― 끊임없이 주는 것 
8장 파격적인 사랑 ― 적대감의 연쇄 고리를 끊는 것 
맺는 글 그리스도인의 인격 



여는 글 인격 ― 위기에 처한 자질들을 보존하는 것 
“인격이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라고 어느 현인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인격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인격의 힘을 높이 평가하고 우리 사회와 자신에게 이 인격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는 이미 그리스도께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서 자신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여 인격의 미덕이 눈부시게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굳건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전쟁이나 굶주림, 가정 파괴, 범죄, 가난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시기 전까지 이처럼 완전한 세상에서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절망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인격이 굳건히 자라나는 만큼 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격을 형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격이 구원을 받는 방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든 값을 치르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빈손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을 따르고 싶습니다. 저를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 주시고, 씻기시고, 새 옷을 입히시고 당신같이 만들어 주소서.” 

그러면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우리가 영원히 그분의 소유임을 확증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그분을 닮기까지 우리를 다듬고 모양을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제1장 용기 ―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보통 용기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누군가 아주 영웅적인 행동을 해서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 때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생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맞닥뜨리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겁쟁이인가 용기 있는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선택을 합니다. 옳은 일과 편리한 일 중에서 선택을 하고, 신념을 지키는 것과 안락, 탐욕, 인정 때문에 신념을 굽히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합니다. 충분히 예견되는 위험 부담을 무릅쓸 것인지, 몸을 웅크려 안전함과 평온무사, 방관의 껍질로 숨어들 것인지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분을 믿고 신뢰할 것인지 아니면 그분의 뜻을 멋대로 지레짐작해서 회의와 두려움의 틈새로 숨어들 것인지 선택합니다. 때로 우리는 신중하게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는커녕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끔 그리스도인으로서 눈가리개를 한 아이와 같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7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게다가 우리는 홀로 숲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길을 지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소심한 겁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반문화적인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데에도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결혼 생활이나 육아나 친구 관계도 용기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데에도, 섹스에 미쳐 날뛰는 문화 속에서 성적 순결을 지키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요구됩니다. 

소심한 사람은 영적 순례에서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점점 움츠러들어서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며, 허락하신 시험은 당신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모험은 커다란 두려움과 회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용기는 우리를 얽어매는 두려움에 맞닥뜨릴 때 자라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선천적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체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어느 시점에서 두려움을 피해 달아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는 사람입니다. 두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부딪쳐 믿음으로 기꺼이 뚫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 주위에 훌륭한 본이 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성장합니다. 성경은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라고 말합니다. 끝으로, 마음이 변화되도록 자신을 내어 놓음으로써 용기를 기를 수 있습니다. 

용기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기본적인 것입니다. 용기가 있어야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고, 그분을 신뢰하여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용기가 있어야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도 우리가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저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용기가 생기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추구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제2장 자기 통제력 ― 즐거움을 유보하고 성공을 달성하는 것 
“자기 통제력은 삶의 모든 영역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격의 자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 통제력은 바로 즐거움의 유보(delayed gratification)입니다.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말합니다.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은 삶의 고통과 기쁨을 적절히 배열하는 과정이다. 곧 삶의 고통을 먼저 접하고 극복함으로써 나중에 기쁨이 배가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유보하는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만족감을 더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이런 원리를 적용할 줄 알게 되려면 부모가 수년간 계속해서 지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지도를 받은 경우, 이들은 청소년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오랜 근무 시간, 짧은 휴가, 반복되는 업무, 빈약한 봉급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이들은 훨씬 더 만족스러운 단계가 뒤따를 것을 믿고 일부러 어려운 일을 먼저 겪음으로써 즐거움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또한 즐거움의 유보는 영적인 생활에서도 중요합니다.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10분이나15분쯤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바른 시각을 얻게 되고, 그날 하루 종일 훨씬 더 만족스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자기 통제력은 친밀한 사람과의 관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내 린과 나는 결혼 생활에서 괴로운 문제를 겪고 있는 부부와 자리를 함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문제가 발생하고 불화가 일 때 대담하게 맞닥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괴로운 일이어서 그저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기보다 그저 사태를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에게 자기 통제력이 결핍된 결과는 괴로움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었고, 이들은 결국 더 이상 배겨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즐거움의 유보는 아이를 훈육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꼭 필요한 희생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 살배기와 노는 것보다 승진이나 텔레비전 시청, 긴 의자에서 낮잠 자는 것이 훨씬 더 마음이 끌리는 일 같습니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일에 마음을 쏟아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려서 감수성이 풍부한 때에 많은 관심을 쏟아 주면 아이에게 굳건한 인격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는 아이들과 평생토록 굳건한 관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외에도 육체적인 건강이나 돈을 쓰는 문제도 자기 통제력이 없거나 즐거움을 유보하지 않고는 확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자기 통제력을 ‘즐거움의 유보’로 기억할 수 있다면 자기 통제력이란 것을 이해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기 통제력을 실천하는 열쇠는 ‘사전 의사 결정’입니다. 삶의 여러 부분에서 어떻게 자기 통제력을 기를 것인지 미리 의사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내 건강에 대해 도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3시 30분이 되면 교회 사무실을 떠나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겠다고 ‘사전에’ 결정을 내리고 자기 통제력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전 의사 결정이 극도로 중요하면서도 유감스럽게 거의 적용이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계속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숙해 가려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룻밤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 시간을 ‘연애하는 밤’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사전 의사 결정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물론 우리의 구원은 많은 노력이나 계획 또는 자기 통제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우리의 노력 없이 주어졌듯이 영적인 생명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즐거움의 유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사전 의사 결정도 자주 했지만, 어쩐 일인지 당신의 굳은 결심은 뜨거운 유혹이나 게으름 앞에서 녹아내리고 맙니다. 이럴 때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함께 경주할 형제자매가 필요함을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개인으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당신의 결심을 지키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책임감의 힘을 이용하십시오. 이것은 자기 통제력에 엄청난 추진력을 줍니다. 게다가 성경은 당신이 자기 통제력(절제)이라는 열매를 맺도록 성령님이 도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통제력의 보상은 크지만, 당장 그 보상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세상이 즉각적인 즐거움과 손쉬운 해결책을 구하려고 아우성치고 있는 와중에서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고통을 견디며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때가 되면 보상이 찾아올 것입니다. 

제3장 비전 ― 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 
“요즘은 지시받은 대로만 일하는 사람, 현상유지에 만족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은 많아도 비전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비전을 갖추려면 너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고 땀을 많이 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용기, 자기 통제력과 함께 비전 역시 위기에 처한 인격적 자질인 것 같습니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할 일만 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비전을 지닌 사람은 땀을 많이 흘려야 하며, 보통 많은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두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위험을 무릅쓰기엔 너무 소심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안전하고 평온무사한 쪽을 택하려 합니다. 같은 감방에서 같은 창문을 바라보고 있지만,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시야의 차이는 삶에 커다란 차이를 낳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전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는 인격적 자질입니다. 누구나 창살을 보든지 별을 보든지 선택을 합니다. 사실 그런 선택을 날마다 몇 번씩이나 합니다. 

비전을 세 가지로 정의를 내린다면, 첫째로 비전은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그래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문제 지향적이 아니라 해결 지향적입니다. 문제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 이를 극복해 냅니다. 비전은 꼭 배양해야 할 중요한 자질입니다. 인생은 실로 문제와 과제와 시련과 실망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네 가지 단계는 당신이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단계: 마태복음 19:26을 반복해서 생각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내 문제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둘째 단계: 홀로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 야고보서 1:5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셋째 단계: 주위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해결 지향적인 사람들을 만납니다. 동정보다는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넷째 단계: 겸손과 기도와 성령님께 열린 자세로 가장 현실적이라고 여겨지는 네댓 가지 해결 방안을 적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 어떤 문은 여시고 어떤 문은 닫으시며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 주시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해결 방안 중 하나를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둘째로, 비전은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면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독특성과 행동의 동기가 되는 마음과 성품, 희망과 두려움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심어 두신 위대함을 길어 올립니다. 

셋째로,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맡길 때 그분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제 삶에서 중요한 계획을 세워 놓으셨다면 응하고 싶습니다. 떨리지만 신뢰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쇠창살이 아닌 별을 보고 싶습니다. 비전을 갖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제4장 인내 ―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 
“인내는 용기를 유지시켜 줍니다. 인내는 자기 통제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인내는 비전을 현실화해 줍니다. 인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자문합니다. ‘왜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대답은 명백합니다. 인내로 견뎌 나가는 것보다 중도에 그만둬 버리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단하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며, 우리들 대부분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것에 대한 대가를 호되게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12는 말씀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는 시험과 역경을 통해 인내를 기르게 되며, 이 때 인내는 인격이라는 무기고에 갖추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인내야말로 삶의 도전에 맞닥뜨리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인내는 용기를 유지시켜 줍니다. 용기를 한 15분 간 벼락같이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는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인내는 자기 통제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인내는 여러분의 비전을 현실화해 줍니다. 인내가 없다면 비전은 몽롱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극히 핵심적인 인격적 자질 가운데 하나인 인내를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인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입니다. “됐어! 이젠 더 이상 못 참아. 당장 사표를 써서 사장 책상에 던져 버리고 나가겠어.” 이것은 직장 생활에서 찾아오는 포기의 순간입니다. “나만 애쓸 까닭이 어디 있어? 아무도 이런 문제에 관심조차 안 보이는데, 그냥 일반적인 도덕 수준에 맞추어 살면 어때?” 이것은 도덕적인 포기의 순간입니다. 포기의 순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도 옵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당신의 삶에 개입해 오셨으며 당신은 중대한 변화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겪고 인간적인 배척과 모멸을 받으면 드디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더는 못 갑니다. 여기서 한 발자국도 더 안 나가겠어요. 제 분수에 넘는 걸 요구하고 계시니까요.” 이것은 영적인 포기의 순간입니다. 


당신이 지금 포기의 순간에 서 있다면, 기권하기 전에 그 대가를 잘 셈해 보십시오. 문을 쾅 닫으며 나가 버리는 것은 멋이 아닙니다. 포기하면 인격이 발달할 수 없으며, 하나님도 복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포기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힘입어 그 순간을 넘기면, 당신은 인내를 기르게 됩니다. 포기의 순간을 넘길 적마다 당신은 그런 순간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신의 영혼에서 인내가 더 크게 자랍니다. 다음 번에는 산이 더 높더라도 올라가는 데 더 많은 인내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가장 괴로운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이를 더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나는 우리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히 12:2) 구세주를 따른다는 것이 기쁩니다. 또 우리가 포기의 순간에 이를 때마다 성령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쁩니다. “이 순간을 넘겨라. 내가 새 힘을 주겠노라. 이 순간은 벽돌이 아닌 종이로 만들어져 있단다.” 

제5장 온유한 사랑 ― 남의 처지에 서 보는 것 
“거친 사람들은 온유함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온유함은 감상에 젖은 나약함이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향이 아닙니다. 온유한 사랑은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나고 같이 자란 형제도 한 사람은 마음이 온유하고 다른 한 사람은 거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32에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따르기 쉽지 않은 명령입니다. 온유함은 어떤 사람에게는 반사 작용과도 같이 나타나는 반면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의견이 옳다고 인정받아야 좋아하고 경쟁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이기고 싶어합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속으로 온유한 사람을 감상에 젖은 약골이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내면의 이러한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내 마음은 이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사랑을 직접 체험해 보았는데, 그분의 사랑으로 내 영혼이 감화를 받고 변화되었는데, 성령님이 내 삶에 거하시고, 더 사랑 많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속속들이 뒤집어엎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데, 나는 무신경하고 냉정하구나. 내가 더 온유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에게 더욱 온유하게 다가가려면 어떤 실제적인 단계를 밟아야 할까?’ 

우리같이 냉정한 사람이 온유함을 배우려면 첫째,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그 사람의 처지에 서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감정이입을 잘하고 남의 감정을 잘 공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냉정한 사람은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화가 난 사람을 보고도 ‘무슨 일이 제대로 안 되어 가나 봐’ 하고는 관심을 돌립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보다 그들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훨씬 더 능합니다. 

나는 나와 같은 냉정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많은 일을 해냅니다. 또한 정력적으로 활동합니다. 목표를 이루어야 하고,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볼 때 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계획, 목표와 관련해서만 봅니다. 출세 가도를 달리는 냉정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이란 이용할 수 있는 도구 아니면 피해야 할 골칫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 중요한 사람과 별 볼일 없는 사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고용주는 직원을 해고해야 하더라도 단순히 ‘목을 자르지는’ 말아야 합니다. 직원은 사표는 내던지며 문을 쾅 닫고 나가기 전에 고용주의 처지를 한번쯤은 헤아려야 합니다. 독신 남녀들은 사귀고 있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더라도 무례하게 ‘걷어차지는’ 말아야 합니다. 남과 공감하며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의 냉정한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콘크리트에 몇 줄의 금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천성적으로 온유한 사람들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메마르고 불만족스러울 것이므로. 또한 우리 모두가 온유함으로 자라갈 수 있음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거친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으므로. 

제6장 엄한 사랑 ― 친밀한 관계에서 진리를 지켜나가는 것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엄한 사랑을 베풀 필요가 있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사실대로 말하며, 꼬인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기 전에 그들을 꾸짖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심한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당신은 아마도 이 말이 선한 목자이며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임을 알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하신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거친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왜 이런 거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까닭은 이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인정하기 힘든 말이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거짓말 때문에 더 큰 피해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도 사실은 사실 그대로, 혼란이나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신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참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이 진리를 굳게 받아들임으로써 인생을 망치거나 영생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은 엄한 사랑을 보여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사랑은 아프기는 하지만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다행히 내게도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내가 반항적으로 나오거나 표리부동하거나 거만하게 굴 때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를 헛간으로 데려가, 나의 인격을 망가뜨리고 우리의 친밀한 관계에 해를 끼치는 잘못된 점을 직면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내가 엄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엄한 사랑으로 나를 대해 준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냉정한 세상에서는 온유한 사랑이 몹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 연민과 배려를 베풀며 남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랑은 그 상대역인 엄한 사랑이 없다면 금방 눈물을 짜는 감상으로 전락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친밀한 사람과의 사이에 분쟁이나 불화나 큰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을 피하려 할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기보다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쪽을 택합니다. 자기들이 고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릇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갈등을 일으킨 문제는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평온함은 점점 더 지키기 힘들어질 것이고 처음에는 분노로, 다음에는 비탄으로, 결국에는 증오로 번지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그 관계는 종말을 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화평 제일주의는 사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에베소서 4:25에서 마음이 온유한 사람을 뼛속 깊이 떨게 만드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엄한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훌륭한 정의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행동’입니다. 헌신적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현재의 편안한 관계를 무너뜨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며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엄한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 보십시오. 둘째로, 당신의 영혼을 깨끗이 하십시오. 먼저 자신의 눈 속에서 들보를 빼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상대방을 만나기 위한 시간과 장소를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넷째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다음으로는 당신의 관심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하겠습니다. 첫째로, 상대와의 관계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표명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십시오. 둘째로, 당신이 느끼는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비난하지 않는 태도로 설명하십시오. 셋째로, 대화를 유도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난 다음에는 스스로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내가 혹시 엉뚱하게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고 있는 건 없을까?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가?’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한 사랑으로 인해 관계가 영구히 단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의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라는 말이 불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이 죄악 된 세상에서의 삶은 때로는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추스른 다음 하나님의 은혜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랑은 참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끈질겨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온유한 동시에 엄합니다. 

제7장 희생적인 사랑 ― 끊임없이 주는 것 
“세상은, 혹은 교회는 사랑에 덧씌워진 거짓된 화려함을 벗겨 내야 합니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 요한복음 3:16은 사랑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내려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당신도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희생해야 합니다. 시간이나 기력이나 돈을 쓸 수도 있고, 계획이나 독립성이나 사적인 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4).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3―45). 역설적이지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긴다면, 세상이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은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한 굳은 우정의 중추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자매가 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귄다면 의무나 기대로 부담스런 지경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이는 역경을 만나면 곧 끝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 친구 사이는 다릅니다.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로의 삶에 관여하게 됩니다. 서로 격려하고 일깨워 주는가 하면 서로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희생합니다. 

아버지는 내게 편지를 쓸 때마다 이런 말로 끝맺곤 하셨습니다. “사랑이 제일 많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해라.” 그러나 희생적인 사랑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고 섬기다 보면, 극도로 지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사람들에게 분통이 터지고,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을 피하고 싶고 걸려오는 전화는 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모두 포기하고 싶은 커다란 유혹이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단거리 질주가 아닌 장거리 달리기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랑의 기력이 바닥났을 때 그것을 재충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연료 용기를 다시 채워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30장에서 우리는 한 사건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반군 지도자로 있을 때 자기 부하들을 사랑하고 이끌고 돕고 섬기다가 기력이 거의 소진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적군이 주둔지를 기습해 다윗의 아내와 부하들의 처자식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러자 부하들은 다윗을 원망하며 그를 내칠 것을, 심지어 죽일 것을 논의했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도자의 지위를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질렸고,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짧지만 놀라운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은 시편 46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는 홀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며 영적 에너지의 보급 창고가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오랜 기간 사랑과 섬김과 치유와 상담과 가르침의 사역을 하신 후에는 이같이 하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재충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을 베풀 기력이 바닥난 것처럼 느껴지는 수가 있습니다. 이 때 영적인 연료 계기판과 함께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정서적 계기판과 육체적 계기판입니다. 정서적으로 재충전을 하려면 휴식과 여가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육체적 재충전은 바른 식습관과 충분한 수면, 운동 등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게 되고 비판하며 성미가 급해지고 핑계를 찾고 부정적이 되곤 합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역시 이런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나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도 넘치는 상급을 내려 주십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게 되면 당신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놀라게 될 것입니다. “내 영혼을 만족시키시며 내 삶을 풍성케 하시나이다”라는 찬송이 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조품 사랑은 이런 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나를 가르친 대학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진정한 인격적인 성취감은 결코 자기 만족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것은 희생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제8장 파격적인 사랑 ― 적대감의 연쇄 고리를 끊는 것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한 개념은 한 차원이 더 나아갑니다. 사랑은 결코 최소한의 일만 해 놓고 의무를 벗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방법은 파격적이며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일부분인 마태복음 5:39―41에서 사랑을 또 다른 시각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예수님이 명백히 가르치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최우선순위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인 다른 사람들을 파격적이고, 보복하지 않으며, 십 리를 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즉, 자기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남이 비난하는 말을 반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하며, 오리를 가달라고 할 때 십리를 함께 가 주는 것의 신비한 힘을 누려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쉬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파격적인 사랑을 명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적대감이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파격적으로 사랑하려고만 한다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영적으로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에 파격적인 사랑을 행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해 파격적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는 뺨을 맞고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에도 못박는 이들을 향해 “아버지여, 이 죄값을 이들에게 묻지 마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 로마 장교가 감정이 격해져서 외쳤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이런 사랑을 보이라고 하시는 이유는 파격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뺨을 맞고, 법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짐을 지고 의무 이상의 거리를 가게 되면,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곤경에 처하는 것입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께 매달리게 됩니다. 평소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그분의 강한 지원을 느끼게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바다로 들어가는 항구를 결코 떠나지 못합니다. 그 험한 바다에 과감하게 나서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생생한 현장입니다. 그곳이야말로 해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가 뚜렷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깜짝 놀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게 됩니다. 파격적인 사랑을 완벽하게 보여 주신 예수님을 말입니다. 또한 그곳이야말로 모든 적대감이 사라지고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파격적인 사랑은 쉬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천하기 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세상에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인격이란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라고 어느 현인賢人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인격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평판과는 다릅니다. 성공이나 성취와도 다릅니다. 인격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인격 중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용기가 생기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용기는 지속적으로 추구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용기가 있었다면 삶이 이럴 수 있었다거나 이럴 것이라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하며 살지는 마십시오. ‘안전하게 사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지 마십시오. 
-용기 중에서 

자기 통제력의 보상은 크지만, 즉각적으로 그 보상이 따라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세상이 즉각적인 즐거움과 손쉬운 해결책을 구하려고 아우성치고 있는 와중에서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통제력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나눌 때 사람들이 나를 몰아세우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당신의 삶과 사역을 보실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느낌이 들며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당신을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비전 중에서 

당신이 요즘 어떤 인내의 시험을 받고 있든 당신에게 상기시켜 줄 말이 있습니다. 항구는 생각만큼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영원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본향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곳에 안전하고 건강하게 도달했을 때, 나처럼 당신도 포기하지 않은 것을 아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또 포기하지 않은 또 다른 완주자와 마주할 것입니다.
-인내 중에서 

북한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쿠바 사람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우리만큼 하나님께 중요한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주식 중개인과 의사 지망생과 신학생들을 사랑하시는 것만큼 죄수와 동성애자와 노숙인들도 사랑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십자가의 용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온유한 사랑 중에서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평화를 회복시키기 위해 정해 주신 바로 그 수단을 극도로 꺼립니다!…당신의 감정을 억지로 감추려 하지 마십시오. 응어리진 감정을 안으로 삭이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마음을 연 대화를 계획하고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시길 바랍니다.
-엄한 사랑 중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꾸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에너지를 아껴서 여가 시간을 즐기십시오. 자금을 비축해서 당신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쓰십시오.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재력을 쌓으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 중에서 

뺨을 맞고, 법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짐을 지고 부과된 의무 이상의 거리를 가게 되면,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깊은 곤경에 처하는 것입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께 매달리게 됩니다. 평소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그분의 강한 도우심을 느끼고,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파격적인 사랑 중에서

그분은 오로지 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창문의 창살을 뜯어내고 자물쇠를 따고 문을 활짝 열어서 그분을 맞아들인다면, 예수님은 온갖 것을 주셔서 당신의 집이 따뜻하고 아름답고 쾌적한 살기 좋은 곳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새로운 날 중에서 

나는 아직 그리스도의 인격을 갖추는 데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애쓰는 까닭은, 덕목을 갖춘 삶을 향해 갈 때 결코 표류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굳건한 인격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깁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는 빛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변혁 중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48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4.19
47 “그 중에서 ‘부모를 거역하며’라는 현상을 주목합시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4.25
46 삶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분들의 삶의 비결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5.04
45 전도해야 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6.08
44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6.15
43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6.21
42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6.29
41 맥추감사절의 의미(신16:9-12)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7.06
40 목적이 이끄는 삶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7.13
39 오늘 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7.20
38 믿음은 무엇일까요?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7.27
37 대화와 단절 그리고 위기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8.03
36 누구, 나에게 주님처럼 대화할 사람 없습니까?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8.09
35 말씀의 능력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8.24
34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9.11
33 인생의 촛점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9.20
32 목장 모임 약속문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09.27
31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의 복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10.11
»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10.17
29 고난을 통해 주시는 연단의 유익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19.10.1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