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13일 주간 목장모임 나눔지
목장모임 말씀 나눔지
(7월13일 주일설교/요한계시록2:8-11/세상 속에서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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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서머나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11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
일곱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그 구조가 “칭찬-책망-교정”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를 향한 말씀에는 책망이 없습니다. 책망이 없으니 교정도 없습니다. 모두 칭찬입니다. 주님은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고 하시며 그들을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환난’은 인간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가정에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참아야 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아야 할 때 당하는 환난을 말합니다.
서머나 교인들이 당한 환난은 두 가지였는데, 궁핍과 비방입니다. 그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장사를 하려면 대개 조합(길드)에 속해야 했는데, 그 조합원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려면 거기서 주최하는 이교적인 행사에, 예를 들어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머나 교인들은 그 제사를 거부했기에 소비자들은 그 상점을 이용하지 않았고 결국 그들은 가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서머나 교인들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주일 매상이 평일보다 훨씬 좋은 가게를 하시는분이 주일에 문을 열지 않을 때 그는 서머나 교인들처럼 자발적 가난을 택하는 것입니다. 목장과 VIP를 섬기느라 내 생활의 규모를 줄이며 산다면 그것도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하는 궁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둘째로 서머나 교인들이 겪었던 환난은 비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방은 비난이라기보다는 고발을 말합니다. 당시 서머나는 어느 도시보다도 로마에 충성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등 외적으로 반로마적인 모습을 보이자 서머나에 사는 유대인들은 이웃의 기독교인들을 당국에 고발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순교의 상황 속에서 매일매일 믿음을 지켜내며 살고 있는 서머나 교인들을 주님은 칭찬하시면서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왠지 불길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는 어떤 큰 고난이 오길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렇게 이야기하신 주님이 자신을 어떤 분으로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즉 주님은 그들에게 “나는 하나님이다! 너희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과 고난도 다 나의 주권 속에 있으니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루하루를 죽음과 마주하며 살고 있던 서머나 교인들에게 “나도 그 죽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살아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당하는 이 모든 고통을 나도 다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바라기는 우리도 서머나 교인들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장렬한 순교는 아닐찌라도 일상에서의 긴 순교를 해나가면서 ‘이기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살아가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주님의 칭호가 내 삶에 어떤 위로를 주는지 나눠봅시다. ②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켜내며 감당해야 할 내 “일상의 긴 순교”는 무엇인지 나눠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