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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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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회 큰가요?”라고 했을 때 이 질문은 교회 건물이 크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되냐고 묻는 질문입니다.

숫자 중에서도 재적 숫자는 의미가 없고, 현재 출석하는 교인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가정교회에서는 그 숫자에도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물론 양적 성장을 터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주님의 교회가 부흥할 때 분명히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있는 기도모임에서 작년 12월, 한 해 감사를 나누는데 목사님들의 감사제목에 어김없이 들어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니 감사 차원을 넘어서서 주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면서 한 해를 살았는지 돌아보는 공통적인 기준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 교회는 올 해 몇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가운데서도 몇 명의 VIP들이 교회를 방문했고, 그 중에서 몇 명이 정착을 했고, 몇 명이 세례를 받아서 너무 기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정교회는 세례받은 분들의 숫자에는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세미나 개최교회가 되는 조건에도 “지난 12개월 세례인원이 청장년 주일 출석 인원의 5% 이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018년에 제4차 목자연합수련회를 성공적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런 저력이 있는 우리 교회가 언젠가는 평신도 세미나, 더 나아가 목회자 세미나도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꼭 세미나를 섬기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목적이 영혼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찌하든지 비신자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기도해주어서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세례받는 일에 드려지고 쓰임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병상에서 거동을 못하시는 박성열 집사님의 아버님을 찾아 뵙고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신 아버님에게 병상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대상포진을 앓으신 후에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셔서 화장실 출입도 못하시는 아버님을 돌봐드리면서 지내시는 집사님이 얼마나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해드렸는지 아버님 마음은 제가 가기 전에도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와서 수요일 저녁에 들은 오목사님의 설교가 그래서인지 더 은혜로웠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아멘”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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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주일부터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 연휴가 시작됩니다.

친척들 중에 예수 믿는 가정들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명절 제사 문제 때문에 마음이 힘드신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명절을 보내야 하는지 대한 문제에 부딪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예전에 남송교회 김명국 목사님께서 쓰신 글을 일부 수정하여 옮겨 보겠습니다.

1. 가능하면 일찍 내려가서 집안일들을 부지런히 돕는다. 다른 분들의 수고를 돕는 입장에서 열심히 봉사한다. 단 제사상에 올리는 일이나 절은 하지 않는다.

2. 친척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과 마음을 준다. 지혜로운 말이나 격려의 말을 하고,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나 상대방에게 힘든 이야기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는다. 특히 노처녀들에게 절대로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3. 설날에 만나게 될 사람들을 머리에 그리며 한 주간 중보기도로 준비한다. 그 사람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회복을 위하여 기도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그분의 최근 근황을 좀 더 알아보고, 전화 통화도 시도해 본다.

4. 상처를 주고받은 사람들과의 화평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연민의 마음을 갖고 진심으로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만나서 자연스럽게 기회가 주어지면 화해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눈빛이나 행동으로 시작한다.

5.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가족들에 대하여서는 사탄의 진을 파하는 중보기도를 주위에 부탁한다. 설 전에 전화로 안부를 묻고,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따뜻하게 대한다. 나로 인하여 기독교에 대한 못마땅함이 생기거나, 기독교를 욕하게 되지 않도록 애쓴다.

6. 친척들 중에서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하여서 특별 기도를 한다. 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한다. 대화 중에 이 분의 마음이 열리면 사는 지역의 교회로 인도한다.

명절에 기독교인은 방어적이 되지 말고 주도적이 되어야 합니다. 명절은 사랑과 섬김으로 친척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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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2년 동안 90세를 넘게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전쟁통에도 닫히지 않았던 교회문이 닫히는 일도 경험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방역이 일상화되어서 어디를 가든지 체온측정, QR체크인, 마스크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교회가 마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집단처럼 되어서 성도들은 더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이럴 때 우리가 더 조심해야 교회가 욕을 먹지 않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방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난 주일도 저녁 6시쯤에 퇴근을 하는데 방역팀들이 와서 예배당 방역을 하는 것을 보고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교회를 위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자신을 위한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욕먹지 않아야 하니까 모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마음이,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모이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방역을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하여 교회가 욕먹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여야만 힘을 얻는 교회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주일연합예배는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목장모임입니다. 우리 교회는 각 목장을 하나의 교회로 생각하는 가정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에 목장이 모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방역단계는 소모임 제한인원이 6인이라서 여섯 명이 넘는 목장은 모일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실제적인 이유는 사적모임 제한을 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6인 이하의 목장이라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대면으로 모이는 것에 대해서 아직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니 우리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온라인목장 모임입니다. 물론 방역규칙을 지키면서 대면으로 모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온라인 목장모임을 갖는 일에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방법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코로나도 마찬가집니다. 코로나의 종식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여 보는 것입니다. -손목사-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90세를 넘게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전쟁통에도 닫히지 않았던 교회문이 닫히는 일도 경험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방역이 일상화되어서 어디를 가든지 체온측정, QR체크인, 마스크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교회가 마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집단처럼 되어서 성도들은 더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이럴 때 우리가 더 조심해야 교회가 욕을 먹지 않는다는 마음을 가지고 방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난 주일도 저녁 6시쯤에 퇴근을 하는데 방역팀들이 와서 예배당 방역을 하는 것을 보고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교회를 위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자신을 위한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욕먹지 않아야 하니까 모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마음이,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모이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방역을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하여 교회가 욕먹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여야만 힘을 얻는 교회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주일연합예배는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목장모임입니다. 우리 교회는 각 목장을 하나의 교회로 생각하는 가정교회 공동체이기 때문에 목장이 모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방역단계는 소모임 제한인원이 6인이라서 여섯 명이 넘는 목장은 모일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실제적인 이유는 사적모임 제한을 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6인 이하의 목장이라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대면으로 모이는 것에 대해서 아직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니 우리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온라인목장 모임입니다. 물론 방역규칙을 지키면서 대면으로 모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온라인 목장모임을 갖는 일에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방법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 코로나도 마찬가집니다. 코로나의 종식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여 보는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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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우리는 2022년 첫 주간을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로 드렸습니다.

6일 동안 평소보다 세 배 가까운 인원이 모여서 “감사로 다시 시작하는” 한 해를 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평소에는 새벽기도를 힘들어하던 남자 성도님들도 많이 나오셨고, 특별히 주일학교 자녀들과 청년들도 함께한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정말 “특별” 기도회가 된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사실 “특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특별하지 않으면 그 일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대다수가 그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서울의 교회를 섬길 때 저는 행복한교회를 많이 자랑했습니다.

교회당 청소를 많은 성도들이 사역지원을 따라 하는 교회, 봄가을 40일 새벽기도회, 청년부의 5박6일 수련회와 방패기도회 등등. 그 자랑 중에 하나가 바로 전교인 여리고 기도회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여리고 기도회는 온천교회 시절부터 있던 것인데 이곳으로 와서는 초창기에는 하지 않다가 언젠가부터 다시 부활하여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새벽과 저녁으로 하루 2번, 매달 첫 주간에 했었습니다.

이번에 와보니 그 기도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여리고 특별 기도회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기도회가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물론 여리고 기도회를 참석하시는 성도님들 중에서는 한 달 내내 새벽기도는 못하지만 한달에 첫주는 어떻게든 새벽을 깨우려고 노력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새벽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시거나 건강 상 새벽기도가 힘드신 분들은 한 달에 6일을 연속적으로 새벽에 일어나시는 것이 힘드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전교인 여리고 특별 새벽기도회도 여전히 새벽기도를 평소에 나오시는 분들이 참석하시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월부터는 매달 첫째 월요일(첫째 주일을 지난 다음 날) 새벽을 “1일 특새”라는 이름으로 갖으려고 합니다.

한 달을 시작하는 첫 월요일, 우리의 가정과 목장과 일터와 교회를 주님께 맡겨드리며 예배하고 서로 합심하여 기도하는 새벽 시간으로 계획하려고 합니다.

가정교회에서는 ‘실천’을 강조하는데 특별히 ‘작은 실천’을 강조합니다.

포기하는 것도 작은 포기, 결단하는 것도 작은 결단부터 하여서 성취감을 가져봐야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매달 첫 월요일 새벽, 주일예배만큼의 성도들이 나와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는 모습, 정말 상상만해도 저는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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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간 인터넷 신문을 읽다가 최인아 논설위원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일부분만 발췌해 보면 <언젠가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너에게 칭찬해줄 점으로 뭐를 꼽겠어?” 나는 작은 성과에 쉽게 취하지 않는 것과 분별력을 꼽았던가.

친구는 의외의 얘기를 했다. 안달복달하지 않는 거라고. 그때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는다.

평이하게 말하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었다.....스트레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드물 만큼 우리 삶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는 남들이, 세상이 주는 것도 있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부터 줄이면 되지 않을까?

자신에게 가하는 대표적 스트레스인 ’안달복달‘부터 덜 하는 거다.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알면 통제력이 생긴다! 즉, ’내가 지금 안달복달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그러면 훨씬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위 글의 “방법은 나도 모르겠지만...”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방법을 나는 아는데...’ 우리가 안달복달, 일희일비하는 이유는 문제에 집중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함몰되니 주위에 작은 것도 다 문제가 됩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누군가 묻는 말에도 친절하게 대답하지를 못합니다.

그때 글쓴이는 “내가 안달복달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차원을 넘어서서 안달복달하지 않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문제보다 더 크신 분, 모든 상황 속에서 그 사건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로 내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를 안달복달하게 하는 그 문제를 그분 앞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는 내일부터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2022년을 주님께 맡기며 새벽을 깨우기 원합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에 영원한 동행자요 인도자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시작하면 우리는 더이상 안달복달하지 않는 성도의 넉넉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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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인 성경일독 동행 300일, 함께라면 할 수 있어요!

어제 성탄절 예배 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을 즐기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니 예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방법을 말씀드린 것인데 첫째는 ‘사귐의 기도’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매일 꾸준히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매일 꾸준히’ - 정말 알긴 아는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이라면 새해 다짐이나 기도제목 안에 어김없이 포함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일독입니다. 그만큼 신앙인들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교인들에게 성경읽기표를 나눠 드리기도 하고, 가정교회 삶 공부 시리즈 중에 <말씀의 삶>이라는 과목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쉽게, 좀 더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전교인 성경일독 동행 300일>이라는 것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법은 간단한데, 성경을 ‘듣는’ 것입니다. 물론 들으면서 눈으로도 읽을 수 있으면 더 좋지만, 일단은 ‘듣는 것’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구약시대 성도들은 말씀을 주로 들었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느8:3).

 

<전교인 성경일독 동행 300일>은 구약과 신약을 300일 동안 들으며 읽을 수 있도록 분량을 하루에 2~4장 정도로 정했고, 읽는 속도도 너무 느리거나 빠르지 않는 적당한 속도로 편집했습니다. 저는 목자목녀님들과 진행할 것이고, 같은 방식으로 목원들은 목장 단톡방을 통해서 하시면 됩니다.

 

목자님들이 올려주신 오디오 파일을 그날 하루 동안 편하신 시간에 들으시고 단톡방에 ‘제◯일차 완료’라고 적어주시는 것입니다.(가능하신 분들은 들은 말씀 중에서 은혜가 되는 구절이 있으면 한 구절씩 올려주시면 풍성한 나눔도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들으시는 데 집중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목자님들께서 그날 밤에 ‘완료 확인’톡과 다음 날 읽으실 분량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이렇게 해보려는 것은 연초에 사람들이 결심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운동인데, 운동 역시도 혼자하면 꾸준히 하기 힘든데, 같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일독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하면 힘들고 포기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즐겁게 할 수 있고, 끝까지 할 수 있습니다. 2022년 한 해는 우리 모두 성경일독에 성공해서 주님을 더욱 즐거워하는 행복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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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6F4F52A-6378-41EB-B269-32296EE65B63.png성도님들이 익히 아시고 주보에도 늘 써 있는 <가정교회 세 축>은 “주일 연합예배, 삶공부, 목장모임”입니다.

이 세 가지는 내용을 집어넣을 때만 의미가 있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정교회 네 기둥>이라 부르는 가정교회 정신입니다.

그 정신이 들어갈 때 주일예배가 한낱 종교행사가 아니라 의지적 결단이 있는 예배가 되어집니다.

그 정신이 들어갈 때 삶공부가 그저 지식의 만족을 위한 성경공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정신이 들어갈 때 목장모임이 단순한 친목모임에서 영혼구원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축의 중심에는 <담임목사의 리더십>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가정교회 로고를 통해서 보셨을 것입니다.

 

리더십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가장 훌륭한 정의는 “리더십은 영향력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향력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소통’입니다.

소통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심방이나 상담 이외에 제가 성도님들과 소통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주일예배 후 성도님들이 내주시는 헌신카드를 통해서 성도님들과 소통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말씀드릴 것인데,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결단했을 때 그것을 헌신카드를 통하여 제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분을 위해서 일주일 동안 새벽에 기도해 드리면서 목회를 해 왔습니다.

 

둘째 삶공부를 통해서 소통하는 방법은 삶공부 과제 코멘트입니다.

10년도 더 전에 저에게 새로운 삶을 들으신 성도님이 그때 제가 코멘트 해 드린 과제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고 하셔서 “무서운 분?(^^)이라고 했는데, 그런 방법은 성도님들과의 소통을 더욱 즐겁게 하는 것 같습니다.

 

셋째 목장모임을 통해서 소통하는 방법으로는 목장탐방입니다.

목자님들이 목양하는 목장에 탐방을 가는 날은 저나 목원들이나 신나고 행복한 날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 오래 이런 시간을 못 갖고 있음이 아쉬울 뿐이지만, 지난 주간부터는 성도님들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또 기도제목도 나누고 싶어서 교회든, 온라인이든 목장탐방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다섯 목장 식구들과의 만남을 가졌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소통 방법과 함께 매 주일 주보에 쓰는 이 목회자 칼럼도 제가 성도님들과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함을 잊지 마세요^^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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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6F4F52A-6378-41EB-B269-32296EE65B63.png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교민들에게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특명(?)이 내려집니다.

들어올 때 무슨 무슨 드라마나 영화 DVD 사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딱히 문화생활을 할 것이 없기에 한국 다녀오는 분들이 공수해 오는 것들을 집집마다 돌려보면서 그런 욕구를 해결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교회 집사님이 그 당시 큰 흥행을 했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DVD를 가져오셔서 교회 식구들이 그 집사님 댁의 넓은 거실에 모여서 함께 보았습니다.

영화관처럼 불도 끄고, 팝콘도 사다놓고^^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여집사님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켜자 집사님들의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창피하게도 제 눈만 말똥말똥~~ 집사님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이런 장면을 보고도 눈물이 안 나오세요?” 살짝 농담이신 것을 알기에 저도 가볍게 이렇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집사님...눈물이 안 나오는 걸 어떡해요?” 그러면서 저를 가만히 보니 저는 슬픈 걸 보면 눈물이 나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볼 때 눈물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몇 주 전에 한 장로님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서울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니 기도해달라는 말씀을 원로목사님으로부터 새벽에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인가 교회 2층에 올라오는데, 조용하고 깜깜한 복도 한 방(미션홀)에 불이 켜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보니 바로 그 장로님이 그 방을 청소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아니...장로님..뭐하시고 계신 거예요? 병원 다녀오신 분이....?” “머리가 계속 아프기는 한데 괜찮아요, 목사님^^ 내가 올해는 초등부 아이들 예배드리는 이 방 청소하기로 했거든요..”

장로님의 손을 붙잡고 기도해드리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그 날도 교회를 위해 몸을 드리시는 성도님들의 헌신(獻身)의 아름다운 모습은 저를 울렸습니다.

올해도 이런 우렁각시 성도님들 덕분에 교회의 이곳저곳의 필요가 채워졌습니다.

지난달에 사역지원서 작성을 했는데, 올해 남은 3주 동안은 사역지원서를 벽에 붙여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어느 사역에 손길들이 부족한지 서로서로 알게 되고 더 효율적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표에는 없지만, 이런 사역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은 주저 말고 써 주시면 완전 환영입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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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난주간이 시작되기 전 주간 최종환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미팅이 있는데 잠깐 얼굴이나 뵙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행복한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많은 교제는 없었던 분께서 바쁜 출장 일정에 짬을 내어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시는 전화를 받고서도 저는 전혀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좀 둔합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한교회로의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12월 서울의 동암교회에 2대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교만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연히 여기서 은퇴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저에게 많은 혼란과 갈등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와 금식이 계속될수록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주님의 음성이 10년 동안 정든 성도들에게도 저에게처럼 선명한 것은 아니었기에 저의 결심을 당회와 교인들에게 말씀드리고 설득하는 시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동암교회 성도들은 저의 뜻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아름다운 이별”을 눈물 속에서지만 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동암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이었기에 행복한교회에서 저를 청빙하고자 하는 공동의회가 열리기 전, 저는 내려와서 설교를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인사조차도 영상으로 대신해야 했습니다. 저를 아는 성도님들이 많으시겠지만 잠시 사역하다 떠난 부교역자를 기억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으시겠습니까?

그런데 담임목사를 청빙하는데 얼굴도 대면해서 보지 못한 채 가부를 묻는 공동의회를 한다니...아마 행복한교회 성도님들도 대략난감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의회의 결과를 주님의 최종 뜻으로 알겠다고 기도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올봄부터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 12월 첫 주까지 왔습니다. 2021년은 제 인생에 잊지 못할 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어디 가서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은 두 교회 성도님들의 성숙한 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믿어주시고 따라주신 성도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신뢰하고 함께 주님의 뜻을 기대해주시는 성도들, 두 교회의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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