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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서성필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이광호 목사님의 글을 전재하여 올립니다.

목자님들과 중직자님들께서 꼭 보시고 신앙의 점검과 방향과 신앙적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에서 ‘청소년’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나 마치 갓난아이가 이땅에서 태어나서 장성한 성인으로 계속 성장해가는 성도들을 얘기 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청소년과 신앙성장
 
이광호 목사


[시작하는 말]
 
신앙성장이라는 과제가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성도는 마치 갓난 어린아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장성한 성인으로 자라가듯 끊임없이 성장해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의 신앙 성장을 주로 의식하여 기술하려고 한다. 청소년들은 다른 연령층과는 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 관심도가 비교적 넓고 깊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으로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에 속해 있는 청소년들이 어느정도냐에 따라서 그 집단의 미래는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 교회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잘 자라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를 알아볼 수 있다. 전체 교회 규모가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그 교회의 청소년들의 신앙이 비뚤게 자라가고 있다면 그 교회의 실상은 대단히 연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의 청소년들이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고 있다면 그 교회는 결코 연약한 교회가 아니다.
이제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신앙 성장을 멈춘 교회내의 청소년들의 문제점과 신앙 성장과 교회의 본질적 사명 그리고 신앙성장을 위한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신앙성장을 멈춘 교회내 청소년들의 문제점]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일반 사회적 관념에서 말하는 문제 청소년에 대해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문제 청소년이라 함은 정상적인 가정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이탈하여 불건전한 단체나 행습에 빠져 있는 청소년 등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내에서 말하는 청소년들의 문제점은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즉, 교회내에서의 문제있는 청소년이란 신앙 성장을 멈추었거나 잘못 비뚤게 성장하고 있는 경우를 지칭할 수 있다.
우리가 만일 정확한 신앙의 안목을 가지고 그들을 점검하지 않는다면 얼른 보아 전혀 문제성이 없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점검하는 자가 그들과 동일한 신앙상태에 놓여 있다면 도저히 그 문제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잘 영위해 나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적으로 잘 성장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는 몇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
우선 그들은 교회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교회는 이 지상의 어떤 단체와도 구별되는 모임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공동체요 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요 결정권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교회는 민주적인 모임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절대 주권영역인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들은 교회를 여느 단체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의지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려 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내부적인 자발적 반성 없이는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더구나 젊은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그에 대한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들은 자기의 사고와 그 결과들을 무조건 옳다고 고집하여 관철시키려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저들의 의지나 능력을 긍정적으로 인정할지라도 그들의 모든 의지와 능력은 성경말씀에 의해서 잘 해석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성장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의 교유한 의지와 능력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경험과 이성에 의존하려 한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적 실천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단체가 아니다. 따라서 교회는 다수결의 원칙을 무조건 신봉해서도 안되며 과거의 행사를 일반적인 견지에서 반성적으로 보아 새로운 것을 도출하려 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고들이 교회내 청소년들의 사고를 깊숙히 침범하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적 문제보다 이러한 본질적 사고 문제가 교회를 더 크게 위협할 수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적인 문제가 결국은 외부적인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신앙성장과 교회의 본질적 사명]
 
각 성도의 신앙 성장은 교회의 성장과 직결되며 교회의 올바른 성장은 참된 예배를 위한 절대적 조건이자 사명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올바른 신앙 성장을 위해 유념해야 할 몇가지 사항이 있다. 그것은 우선 교회가 성도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전에 본질적인 것을 깨우쳐야 한다. 즉 신앙의 방법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인 지식을 갖게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신앙의 본질적인 면 보다는 일을 미리 요구하고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그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올바른 신앙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 반해 일 하는 것은 많이 드러나게 되므로 사람을 규모없이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회에는 올바른 신앙을 소유한 성도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교인을 더 인정하는 경향이 짙은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모든 은사의 발견과 개발은 올바른 신앙 위에서만 유효하다. 아무리 뛰어난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해도 올바른 신앙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을 성령께서 간섭하시는 은사로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 그리고 성가대원등 일반 은사적 재능을 상당히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더욱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일학교 교사는 더욱 그렇다. 만일 교회내에 올바른 신앙을 갖추지 못한 똑똑한 대학 졸업자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올바른 신앙을 가진 청년이 있다면, 마땅히 학교교육은 덜 받았으나 올바른 신앙을 가진 그 청년을 교사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을 교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성경말씀에 따른 올바른 신앙 훈련만 되어 있으면 누구나 교사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은사적인 측면이 충분히 감안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그 지적인 면에서는 모든 성도들을 교사의 수준만큼 끌어 올려야 한다. 교회는 각 성도들의 신앙이 올바르게 자라 가도록 도움을 주는 가운데 전체 교회가 성장해 가는 것이 곧 교회의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앙성장을 위한 과정]
 
1) 올바른 터를 가꾸는 작업
 
어떤 사람이 새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미리 해야만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밭을 일구는 작업이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전에 밭을 정리할 때 우선 겉보기에 좋게 하기 위해서 일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씨앗을 뿌려서 잘 자라나게 되도록 모든 장애물을 치워내고 흙을 잘게 부수는 일을 하는 것이 필히 해야만 할 일이다.
밭을 깊이 갈아서 보이지 아니하던 돌들까지도 다 골라내어 버리고 그 전에 뿌리내리고 있던 잡초의 잔목들을 골라내므로 좋은 토양을 형성해야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적 토양도 이와 흡사하다. 교회의 교사나 혹은 미리 성경말씀을 잘 깨달은 자가 신앙적으로 어린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게 될 때는, 우선 그 사람의 마음 밭을 일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전에 알고 있던 진리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인식 그리고 기존의 믿고 있던 자기 경험들을 하나씩 둘씩 잘게 부수어 주어야 한다. 또한 세상의 즐거움이나 쾌락, 그리고 그 목적하는 바가 얼마나 단명하며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잘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그의 마음밭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도록 준비시켜야 하는 것이다.
 
2) 씨를 뿌리는 작업
 
씨를 뿌리는 농부는 늘 신중하다. 왜냐하면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따라 그 수확률이 충분히 예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좋고 유익한 씨앗을 뿌리면 즐거운 수확이 따를 것이고 나쁘고 해로운 씨앗을 뿌리면 그와 같은 수확이 따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씨앗을 뿌릴 때 혹시라도 잡초나 다른 해충이 씨앗에 함께 들어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가려 파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도 그러하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자는 자기 마음대로 아무런 씨앗이나 마음대로 뿌려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나 경험에 따른 씨앗을 심어 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씨앗을 잘 골라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잘 정리된 토양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씨앗을 뿌린다면 차라리 토양 정리를 하지 않은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잘못된 씨앗이 그 좋은 토양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무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좋은 씨앗들을 잘 골라서 심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
 
3) 물을 주고 돌보아 주는 작업
 
씨앗이 자라나게 하시는 분께서는 하나님이시다.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적절한 기온을 주신다.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공급하신다.
복음의 씨앗이 자라나는데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전 3:6)고 말한 것이다. 적어도 자라나는데 대해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은혜를 베푸심으로 말미암아 그 씨앗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성령을 통해 영혼의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성령의 은총을 허락하실 때에야 비로소 그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물을 주고 김을 매는 작업이다. 아침 저녁으로 잘 살펴보아서 물을 주고 어느 사이엔가 잡초가 들어가 있다면 그것을 뽑아 주는 일을 성실히 할 때 그 뿌린 씨앗이 잘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나 외부적 영향으로 그 뿌리가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흙을 덮고 다독거려 주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교육도 그와 마찬가지다. 잘 살펴보아 형제의 영적상태가 메말라 있을 성 싶으면 물을 주기도 하고 세상의 잘못된 사고에 시달리고 있으면 적절히 김을 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4) 성장한 식물의 열매
 
그 뿌려진 씨앗이 잘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으면 그것으로 다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일꾼들인 성도들의 적절한 순종의 노력으로 맺어진 결실들은 올바르게 잘 처리되어야 한다. 그 식물의 열매는 온전히 그 주인에게 바쳐져야 한다. 그러면 주인은 그에 대한 댓가를 그 노력한 종들에게 지불하게 된다.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어느 형제의 마음에 잘 심어져 저가 장성하여 열매를 맺게 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려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함께 참여한 우리에게도 그에 대한 기쁨을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는 그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맺음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 성장의 기초는 복음의 씨앗이다.  그 복음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자라나므로 한 그루의 나무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는 그 뿌리로부터 모든 영양가와 수분을 공급받아 결국 열매를 맺게 된다. 그 열매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열매라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화롭게 바쳐지며 또 새로운 씨앗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 자라난 성도가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 있어서 청소년들은 교회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그 청소년들이 어떻게 자라가느냐에 따라 그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을 잘 받아들여 올바르게 잘 자라는 청소년들이 많은 교회는 앞이 밝다. 이는 그 청소년들이 곧 교회의 구체적인 사명들을 새로이 감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혹 잘못된 씨앗을 받아들여 잘못 자라나고 있는 교회라면 앞이 어둡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재정적 뒷받침이 든든하고 아무리 활발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 자체는 크게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이 글 가운데 신앙성장을 위한 과정 중 <성장한 식물의 열매>에서는 주로 개인적 성장을 이야기 했으나 교회내의 청소년 단체에도 적용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교회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 즉 교사들은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해 마음밭을 잘 일구어 참된 복음의 씨앗을 뿌려 잘 자라나도록 돌보아 주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싱싱한 열매들을 많이 맺어 하나님께 드려진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교사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그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므로 그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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