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목장
> 연합목장 > 목회칼럼
목회칼럼

생명보다 사명이 우선입니다.

2020.5.17/사도행전20:17-24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데이빗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입니다. 

그는 30년 동안 아프리카 내륙을 횡단하며 오지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아프리카에 간 11년 동안은 어떤 개종자를 얻지도 못했고 어떤 선교지도 개척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기다렸고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내부로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위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직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수천의 마을들을 향하여 내륙으로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갔고 결국은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맹수와 질병과 원주민들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습니다. 

그의 이러한 극한의 어려움에 대한 소식을 듣고 친구들 몇 사람이 모여서 그를 돕기 위한 사람들을 파견하여 그를 도우려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편지에서 “자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자네를 도와줄 사람을 몇 명 그곳으로 보내려 하네. 그러니 그곳까지 가는 길을 상세히 적어 다음 편지에 보내 주면 좋겠네.” 하고 써 보냈습니다. 그러자 리빙스턴은 정중하게 그 제의를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곳까지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이곳에서 진정 필요한 사람은 길이 없어도 스스로 찾아오겠다는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네” 

 

그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에게 한 번은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밀림에서 사자에 물려 큰 부상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 

그 믿음대로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났으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칠 때까지 정글 속 탐험을 계속하여 아프리카 선교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여기 이 고백을 한 또 다른 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사도 바울도 담대하게 이런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본문을 관찰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요? 

“당신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여러가지 대답들이 나올 것입니다.

돈, 건강, 권력, 자녀…

그런데 결국에는 '생명'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6장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땅에서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귀하고 대단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명을 잃어 버리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온 천하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그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바꿀 만 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었습니다.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주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고백하는 신앙공동체 고백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구원으로 부르심은 사역으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으로 부르셨습니다.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역으로 부르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 받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 일꾼으로 사명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있는 장로들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고자, 세 차례에 걸쳐서 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선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교를 거의 다 마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밀레도에 도착했을 때에,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에 오도록 청하였습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까지는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먼 곳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부름에 순종해서 에베소에서 밀레도까지 와서 바울을 만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에 가지 않고, 굳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초청해서 밀레도에서 만난 것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에베소까지 갔다가 오면 시간이 지체되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늦어지기에 장로들을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촌음을 아껴 쓰면서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사역에 헌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급하게 가고자 하는 것은 뭔가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22-2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결박과 환난과 고난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큰 위험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굳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도대체 그에게는 그 어떤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에 자기의 생명까지 바치려고 했느냐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보다 사명이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1. 우리가 본문을 관찰해서 먼저 깨닫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본문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받은 사명은 “주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어릴 때에 뜻도 잘 모르면서 “국민교육헌장”모르지만 암송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암송할 때에 흥분이 되고 가슴을 뛰었습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나에게 이런 사명이 있었구나’ 

뭔 내용인지는 잘 몰랐지만 뭔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나라로부터, 그리고 직장에서 맡겨진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생명까지 바칠 궁극적인 사명은 국가가 주는 것도 아니고, 개인이 스스로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나를 불러 쓰시겠다고 부르신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사명입니다. 

 

다시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고백했습니다.

내게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고 똑똑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그 사명은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기에 귀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귀한 사명이기에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은 여러분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 사명을 받기 이전에, 자기 나름대로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어떤 종교적인 신념과 자기 열심에서 온 것이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종교적인 어떤 신념과 더불어 자기 열심이 위험한 것은 그것은 주님을 거스리고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를 범했던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은 신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도 사도 바울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영혼구원하여 제자삼으라”

이것이 주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우리의 사명입니다.

 

스승의 주일에 우리가 다시 깨닫고 결단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다면, 오늘 여기 계신 분들 모두에게 이 사명이 있음을 아멘하셔야 합니다.

구원으로 부르심이 사역으로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하여 제자삼으라”

*사명은 특별한 분들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라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임을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시는 모든 분들과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목자, 목녀로 헌신하시는 모든 분들은 주님께 사명을 받고 감당하시는 귀한 분들입니다.

스승의 주일에 주님께로부터 “영혼구원하여 제자 삼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희생있는 헌신으로그 사명을 감당하시는 행복한교회 주일학교 교사님들과 목자님들/목녀님들을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때에 모든 성도들은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2. 그렇다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모든 겸손과 눈물”로서만 감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8-20절까지 읽겠습니다.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기 나름대로 종교적인 신념으로 사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교회를 핍박하고 말살하기에 앞장섰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할 때에는 사람들을 죽이고 해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가 선택한 사명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을 때에는 그 자세가 아주 달라집니다. 

 

1) 그는 먼저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은 겸손으로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에는 겸손한 자세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생명조차 아깝지 않은 그러한 귀한 사명을 깨달았지만, 그 일들을 감당할 때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겸손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낮추었으면 모든... 겸손이라고 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겸손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 그 당시에 겸손은 아름다운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겸손”은 노예가 그 주인에게 가지는 낮은 자세를 말합니다. 

자신이 모든 겸손으로 사명을 감당했다고 했을 때에는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맹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고 없는 것과 같이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 완성하기 위해서,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신을 철저하게 십자가 앞에 죽이고, 종이 되어 겸손히 주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2) 그리고 그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은 눈물로 감당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는 늘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시험을 당할 때도 눈물을 흘리며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모든 시험과 환난과 고난을 당해도 분노와 앙갚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눈물로 오래 참으면서 인내하면서 감당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의 태도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본문을 관찰하면서 깨달아야 할 진리는 이것입니다.

그것은 “생명보다 귀한 것은 사명이다”이라는 것을 깨닫고 헌신해야 한다는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십자가로 인류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모범으로 하여 우리는 헌신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 분명하고 똑똑하게 고백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본문을 다시 읽고 관찰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도 생명보다 사명을 귀하게 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삶의 목표는 살든지 죽든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자기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가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해줍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마친다’라는 말은 ‘완성한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자신의 삶과 사명을 완성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원대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거쳐 세상 끝으로 여겨지는 스페인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바울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바울의 관심사는 환난 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24절을 관찰하면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택하시고 그 은혜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 은혜로 살게 하신다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경주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거리 경주는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결승점에 다다를 때까지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고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이 아름다울 때 그 인생이 진짜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이 아름다운 인생, 진짜 성공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요?

주님과 같은 삶을 살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어떤 삶이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으시는 주인공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역의 현장에는 때로는 피하고 싶은 상황, 가정, 직장 때로는 교회, 이 사회와 이 나라 등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지만, 이곳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지이고 감당해야 할 주님께서 주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믿음으로 고백하며 “스승의 주일”예배를 드리는 저는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모두를 축복할 때에, 특별히 생명을 맡아 온갖 수고를 감당하시는 *주일학교 교사님들과 *목자님들 목녀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목회자님들,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이, 이 사명을 마치기에는 나의 생명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사명자의 고백과 보람과 감사가 저와 여러분들의 사역 가운데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363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문제는 풀립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31
362 우리는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30
361 행복한 가정의 성경적 원리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23
360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23
» 사명은 생명보다 우선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16
358 이제 교회에 나와서 목장연합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16
357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09
356 어버이 날이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09
355 축복 받은 삶으로 나아가기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5.02
354 하나님 일꾼 세우기와 자격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26
353 하나님 일꾼 세우기 세가지 기준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25
352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18
351 쉬지 않는 기도만이 승리하게 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14
350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12
349 부활의 의미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11
348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으면서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03
347 예수님이 대속물(代贖物)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4.02
346 코로나19 재난과 사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3.27
345 코로나 재난 앞에서 주님께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3.21
344 환난 날에는 목숨 걸고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행복한사람(담임목사님) 2020.03.1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